| | | | | ▲ 파호이호이용암류가 흐른뒤 양쪽이 함몰되면서 용암류가 돌다리처럼 남아있는 모습. | | |
곶자왈용암류 한 가지 아닌 불규칙 암괴상으로 정의 쪼개진 용암더미 미기후 등 동·식물 서식 환경 적합 평평한 용암대지 자연적 풍화작용으로 곶자왈 형성 용암류 대한 관심 증가 바깥은 제법 차가운 봄바람이 불어대나 곶자왈 속을 뚫기엔 이미 매서움이 다했다. 벌써 하얀 거미줄 같은 집에서 막 깨어나 꿈틀대기 시작한 천막벌레나방 애벌레에 맞서 찔레나무는 야들야들한 잎을 서둘러 딱딱하게 키우느라 숨 막히는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발아래 펼쳐지는 생존을 건 싸움에 아랑곳없이 저만치서 수 갈래 줄기와 가지마다 연녹색 잎을 피워내는 단풍나무는 봄에도 화사하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했듯이 우리 눈은 늘 화려한 꽃이나 맛있는 열매, 아니면 멋진 나뭇잎만을 보고 기억한다. 혹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잎이 아닌 이른 봄 보일 듯 말듯 짙은 붉은색 알갱이처럼 매달린 단풍나무 꽃을 본 적이 있는가. | | | | | ▲ 탱자나무꽃. | | |
이름이 말해주듯 으레 단풍나무는 가을을 곱게 물들이는 나뭇잎으로 기억할 뿐이어서 단풍나무를 곁에 두고 자주 보는 사람들도 꽃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씨앗으로 번식하는 단풍나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빨간 단풍이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꽃이다. 알록달록 단풍에 눈이 가고 감탄하면서도 단풍나무 꽃에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듯이 곶자왈을 찾은 사람들도 꽃이나 나무에는 눈길을 주지만 정작 곶자왈을 만들어내는 돌무더기 지질에는 별다른 관심과 감흥이 없는 듯하다. 가끔 탐사와 교육을 할 때도 지질 이야기는 마음을 끌지 못할 때가 많다. 하긴 시커멓고 생명이 없는 돌무더기에다 제주 사람들이야 늘 보고 지나는 흔하디흔한 현무암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재미를 느끼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곶자왈이란 말이 어느덧 제주 자연생태계를 대표하는 말로 알려지면서 시커먼 돌무더기 용암류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늘고 있다. 더불어 이제는 파호이호이용암(Pahoehoe lava)이니 아아용암(Aa lava)이니 하는 화산지질용어도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 됐다. 파호이호이용암·아아용암 | | | | | ▲ 무릉리 웃빌레질과 곶자왈. | | |
우리에게는 빌레용암과 곶자왈용암이 훨씬 정겹겠지만 세계 지질학계에서는 하와이 주민들이 쓰던 파호이호이용암과 아아용암이란 용어를 주로 쓰고 있다. 파호이호이용암은 1100~1200℃ 정도로 높은 온도를 띠며 점성이 낮기 때문에 유동성이 좋아 빠르게 흐르며 평평하게 굳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하와이 사람들은 '매끄럽고 깨지지 않은 용암'이란 뜻인 파호이호이용암이라고 불렀다. 제주에서는 빌레라고 부르는 용암류다. 아아용암은 파호이호이용암과 대비되는 성질을 지닌다. 온도가 1100∼1000℃로 상대적으로 낮으며 점성이 높아 잘 흐르지 않고 표면이 거친 암석덩어리가 발달해 '거친 돌투성이 용암'이라는 뜻인 아아용암이란 이름을 얻었다. 제주도 암괴상 아아용암류를 연구한 송시태 박사는 암괴상 아아용암류 대신 곶자왈용암류로 이름 짓기도 했다. 곶자왈을 만들어내는 용암류란 뜻이다. 하지만 곶자왈용암류가 모두 암괴상 아아용암류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최근 연구결과에 따라 곶자왈용암류는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이 2012년 실시한 '제주도 곶자왈지역에 대한 지질학적 고찰:예비연구결과'는 곶자왈이 암괴상 아아용암류가 아닌 파호이호이용암류 분포지역에서도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결과를 보면 대정읍 신평리와 한경면 저지리, 조천읍 선흘리, 성산읍 수산리 곶자왈 지역에서 압력돔과 붕괴도랑, 용암함몰구, 용암동굴과 같이 전형적인 파호이호이용암류 특징이 나타난다. 결국 곶자왈용암류 특성을 말할 때 파호이호용암류냐 암괴상 아아용암류냐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암괴상 용암류로 정의해야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실제 곶자왈용암류는 파호이호이용암류가 아아용암류로 바뀌기도 하고 지형 영향으로 압력돔이나 붕괴도랑, 함몰지와 같은 암괴상으로 변하기도 해 어느 한 가지 용암류로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용암지질, 곶자왈로 재탄생 올레꾼들이 주로 찾는 무릉곶자왈은 빌레와 곶자왈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곶자왈로 들어가기 전형적인 파호이호이용암을 볼 수 있다. 마을사람들이 웃빌레질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용암이 흐르다가 물결치듯 굳은 새끼줄 구조를 볼 수 있고 평평한 용암층 아래는 동굴처럼 비어있는 모습도 보인다. 곶자왈 속에서도 함몰이나 깨지지 않은 채 빌레를 이루고 있는 파호이호이용암지대를 볼 수 있는데 초지나 덤불정도여서 곶자왈 숲과는 다른 모습이다. 파호이호이용암류지라도 곶자왈을 만들어낸 것은 크고 작은 암괴상 용암류다. | | | | | ▲ 빌레위에 뿌리 내린 찔레. | | |
파호이호이용암류가 굳는 과정이나 굳은 후 압력돔이나 용암동굴 천정이 무너지며 생기는 함몰지, 나무뿌리나 기후변화에 따른 동결파쇄 영향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쪼개지면서 만들어낸 불규칙한 용암더미는 보온·보습기능과 함께 미기후를 만들어내면서 여러 동식물이 서식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곶자왈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온통 바위들이 우거진 숲 사이로 마치 돌다리와 같은 용암층을 볼 수 있다. 점성이 낮은 용암이 평평한 용암대지를 이룬 뒤 양쪽 용암층이 무너지면서 용암다리(lava bridge)처럼 남아있다. 파호이호이용암류가 흘렀던 흔적이다. 수만년전 도너리오름에서 분출한 붉은 용암물결은 한경면과 대정읍 중산간 일대 고토양층을 뒤덮으며 흘러 평평하고 넓은 용암대지를 만들었다. 다시 세월을 더한다면 바위사이를 파고드는 나무뿌리나 자연적 풍화 영향으로 지금처럼 남아 있는 빌레지대 마저 무너지고 나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나갈 것이다. ▲특별취재팀=김영헌 정치부 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