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으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 칭하고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원을 참배하였으며, 1790년에서 1795년
(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화성행궁'은 경기도수원시 팔달구 남창동에 위치해 있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건립된 행궁으로 정조가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건립 당시 21개의 건물 576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평소에는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곳이다.
화성행궁을 복원을 하면서 기념으로 제작
▲ 신풍루
황성행궁의 정문이다.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다.
▲ 중양문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이다.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1795년 봉수당 진찬례 때 봉수당 앞으로는 정조와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의 종친과
대신들이 자리 하였고, 중양문 밖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 승지와 사관, 각신이 반열을 이루었던 바 있다.
▲ 좌익문
중앙문 앞 동쪽에 있는 문으로 좌익이라는 이름은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다.
중앙문 바로 앞에서 도와 행궁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KBS 2 TV 1박2일에서 스탬프찍기 게임이 벌어졌던
이곳 화성행궁에는 곳곳에 스탬프가 있어 행궁을 돌아
보면서 스탬프를 찍어 보는 재미가 솔솔 하였다.
▲ 비장청
조선시대 감사, 유수, 병사, 수사 등을 따라 다니는 관원을 비장이라고 하는데,
비장청은 화성유수부 비장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 외정리소로 들어가는 문
▲외정리소
임금행차시 화성행궁에서 치러지는 행사준비를 담당하던 곳이다.
▲ 유여택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대왕이 행차시 잠시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 봉수당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혜경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으며,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써 봉수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이곳에서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곳이다.
진찬연에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갖추는 장면.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 경룡관으로 경룡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한다.
▶ 장락당
장락당(長樂堂)은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에,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봉수당의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졌다.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정조대왕이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한다.
▲ 복내당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며 장락당 남쪽에 위치하였다.
상량문은 정조 20년(1796) 11월 민종현이 지었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원래 복내당은 정조 14년(1790)에 수원부 신읍치소의 내아로 건립되었고
정조 13년에 세웠다. 좌우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이자 화성유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다.
화성행궁의 성격 자체가 국왕이 잠시 머무는 행궁의 성격과 화성을 책임지던 유수의 집무공간이었던 까닭에
복내다은 화서 유수 가족들이 거처하던 주택과 행궁을 방문하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숙식을 지원해야 하는 역할이 있었다.
따라서 복내당은 행각들이 상당히 많고, 국왕이 거처하던 봉수당과 장락당이 바로 붙어 있다.
한류바람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요즘.
화성행궁은 역사적인 가치뿐 아니라 '대장금','이산', '무사 백동수','뿌리깊은 나무', '해를품은 달','옥탑방왕세자'
'왕의남자' 등 화제의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곳에서 촬영된 대장금덕으로 중국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촬영시 사용되었던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성행궁 체험마당
화성행궁내에는 효와 전통 궁중문화의 중심 '화성행궁'에서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체험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한 켠에 뒤주체험이라는 푯말과 함께 뒤주가 놓여 있다.
장용영 대장 서유대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지극한 효심으로 달래준 왕으로.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니 수원화성을 계획하고 축성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 왕 이다.
정조는 수원화성 축성 뿐 아니라 규장각을 설치해 문화정치를 실천하고.
인재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펼친 임금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정조의 업적 가운데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조의 '군사개혁 의지' 이다.
문화와 인재 등용에 힘썼던 정조가 군사개혁을?? 얼핏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정조는 조선 최고의 군대로 평가 받는 '장용영(壯勇營)'을 이끌어 나갔던 왕이다.
정조때 최대의 역사였던 화성 성역은 1차적으로 화산의 현륭원 호위와 함께 팔달산 정상 바로 아래
성내 중심부에 건립된 행궁을 둘러싸면서 이를 수호하는 것을 중요 목적으로 설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화성 행궁이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서
정치적·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화성행궁의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고목으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이다.
영목, 신목 등으로 불려왔으며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꺽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느티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면 모든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집사청
집사청은 잡다한 사무를 처리하던 곳 왕명전달, 궁궐 열쇠 관리, 임금의 붓 벼루 먹 등의 비품 조달업무를 하였다.
동으로 제작된 화성행궁 모형 제작도
화성전도
수원화성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
031-251-4435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관람요금
개인 어린이 7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른 1,500원
단체(20명 이상) 어린이 500원 / 청소년,군인 800원 / 어른 1,200원
첫댓글 이 포스팅을 보고 나니 수원화성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수원화성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