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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이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50m)을 기점으로 포태산(胞胎山:2,289m), 두류산(頭流山:2,309m) 등 해발고도 2,000m 내외의 고봉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한다. 산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차일봉(遮日峰:1,742m), 철옹산(鐵瓮山:1,085m), 두류산(頭流山:1,324m), 추가령(楸哥嶺:752m)으로 이어진다. 또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金剛山:1,638m), 진부령(陳富嶺:529m), 설악산(雪岳山:1,707.9m), 오대산(五臺山:1,563.4m), 대관령(大關嶺:832m), 두타산(頭陀山:1,352.7m)을 거쳐 태백산(太白山:1,566.7m)에 닿는다. 여기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小白山:1,439.5m), 죽령(竹嶺:689m), 이화령(梨花嶺:548m), 속리산(俗離山:1,058.48m)으로 뻗어내린다. 이로부터 추풍령(秋風嶺:221m), 황악산(黃岳山:1,111.4m), 삼도봉(三道峰:1,177m), 덕유산(德裕山:1,614m), 지리산(智異山:1,915m)으로 이어지면서 산줄기는 끝이 난다.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한국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正幹) 및 13개 정맥(正脈) 체계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산줄기[山經]의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제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대간, 두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정맥, 세번째 굵은 선으로 표시한 것은 지맥,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 등으로 나타냈다. 이렇듯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되었으며, 삼국의 국경과 조선시대의 행정경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곳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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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개념도.
# 1구간(여원재~사치재). 2005년 3월 26일. 백두대간종주의 첫 발걸음을 이곳 남원 여원재
에서 내디디다. 마침 지리산이 산방기간이라 천왕봉에서 시작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출발.
산행은 완전 쌩초보인 마눌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다.
# 2구간(사치재~복성이재). 2005년 4월 2일. 백제 무왕의 한이 서린
아막산성에서 포즈를 취한 마눌. 이 날은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의
기일이라 짧게 구간을 마치고 진주로 갔다.
# 3구간(복성이재~중재). 2005년 4월 5일.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
자락의 억새밭을 지나고 있음.
# 4구간(중재~육십령고개). 2005년 4월 9일. 백운산 산죽밭을 오르고
있음. 이 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며 날씨가 궂었고, 종내는
캄캄한 밤중에 어두운 산길을 걸어야 했었다. 첫 야간산행이라 마눌
이 굉장히 겁을 많이 먹었었지.
# 5구간(고치령~박달령). 2005년 4월 23일. 회사 직원의 결혼식이 경북 영주에서 일요일에
있는 바람에 구간을 많이 건너 뛰어 소백산 구간을 진행한 날.이 때는 대간을 처음 시작한
직후라 열정이 아주 대단했음. 특히 이 날 라푸마 론칭 행사로 진행되는 백두대간 종주팀
과 함께 온 가수 이문세씨를 만나 함께 산행을 했다.
# 이문세씨의 싸인도 받았다.
# 6구간(성삼재~여원재). 2005년 5월 1일. 지리산 산방이 풀려서 이
날은 지리산 구간을 하기로 했었다. 만복대의 멋진 품에 안긴 날이
기도 한데,마지막에 또 한 시간여 야간산행을 해야 했다.땀을 너무
많이 흘려 사타구니가 허는 바람에 아주 고생을 했었고.
노치마을 천년송과 교감하는 마눌.
# 7구간(육십령~동엽령). 2005년 5월 5일. 대간 종주를 시작한 이후 목숨의 위협을 느낄 만
큼 가장 위험했던 날이다. 삿갓재대피소를 지나 무룡산을 오를 때 갑자기 폭풍우 수준의
비바람을 만났는데 바람이 어찌나 강하던지 마눌의 몸이 등로 곁으로 날려 가더라. 비를
여러시간 동안 맞고 하산한 후 육십령에 복귀한 뒤 또 갑자기 저체온증에 빠져 정신을 잃
을 뻔 하기도 했었다. 산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사진은 장수덕유산 오르기 전에 만난 전망바위.
# 8구간(동엽령~빼재). 2005년 5월 15일. 앞 번의 위험했던 산행과는
달리 이 날은 5월의 싱그러운 숲 향기에 마음껏 취한 멋진 날이었지.
빼재 전에 있는 갈미봉 오름의 싱그러운 숲길.
# 9구간(성삼재~중산리). 2005년 5월 21,22일. 드디어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었다.원래 이 구간이 대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만,산방
기간때문에 부득이 이 계절에야 할 수 있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참으로 행복한 이틀이었다.
# 10구간(빼재~삼도봉). 2005년 6월 4, 5일. 무거운 야영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구간.
저질체력의 한계를 느낀 날이었기는 하지만 산속에서 마눌과 둘이서 야영하는 재미도
좋았었다. 이 때는 연세드신 장모님을 모시고 살 때라 이틀씩 집 비우기 힘들어 이후는
야영산행은 하지 못했다. 사진은 덕산재 지나 폐광터에서 야영하는 모습.
# 11구간(삼도봉~추풍령). 2005년 6월 17일,18일. 역시 1박 2일로 진행한 구간인데,이 구간
은 중간에 추풍령이 있어 그 곳 모텔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좌우 두 구간을 진행했다.
이 구간은 황악산, 바람재, 추풍령, 괘방령 등 유명한 곳이 많고, 가성산 오름에서 정상이
자꾸만 뒤로 도망가는 걸 처음 느낀 날이기도 하다.
사진은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을 배경으로 포즈하고 있다.
# 12구간(추풍령~큰재). 2005년 7월 16일. 장마철이 찾아와 3주만에 다시 찾은 대간길.
이 때 이미 대간병이 깊이 들어 3주의 공백에 좀이 쑤셨던 기억이 난다.
큰재에 도착하며 산행을 종료하는 순간. 큰재에 사시던 박할머니는 아직 건강하실까?
# 13구간(큰재~신의터재). 2005년 7월 31일.이 구간은 큰재, 회룡재,
개터재, 윗왕실재, 개머리재, 지기재, 신의터재 등 고개가 아주 많
은 구간이다. 날이 무더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사진은 백학산 계곡에서 휴식할 때인가 보다.
# 14구간(신의터재~화령재). 2005년 8월 5일. 여름휴가 두번째 종주길.
이날 폭염주의보가 내렸는데 마눌이 더위먹는 바람에 산행을 절반만
하고 화령재에서 멈췄다. 대간하면서 처음으로 마눌에게 화를 낸 날
이기도 하다. 의지 약하다고...
# 15구간(화령재~갈령). 2005년 8월 21일. 무려 한 달 만에 나서는 대간길. 그만큼 집중력이
떨어져 고생을 했다. 저멀리 구름 속에 속리산이 가까워지고 있다.
# 16구간(죽령~고치령). 2005년 8월 28일. 이 날은 남한강 단양에서
견지낚시 동호회 정기출조가 있는 날이었다.낚싯꾼에서 산꾼으로
변신하면서 낚시친구들로부터 원망이 많아서 모임에 참석도 하고
산행도 할 요량으로 구간을 다시 건너 뛰어 소백산 구간을 하기로
했다. 이 날의 소백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라 꽃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사진은 국망봉 가는 길.
# 17구간(갈령~밤티재). 2005년 9월 11일. 속리산의 절경을 마음껏 즐긴 구간이다. 천황봉,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문수봉, 문장대 등등... 그만큼 오르내림이 많아 고생스럽기도 했고.
특히 이 구간의 문장대 이후 구간은 출입금지 구간이라 맘이 조마조마했었다. 또,그 구간엔
여러곳의 개구멍과 절벽구간이 있어 위험하기도 했음.
사진은 이제는 철거되어 없어진 문장대 휴게소.
# 18구간(밤티재~밀재). 2005년 10월 2일. 어느듯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어 산속에 밤이 빨리
찾아드는 시기라 밀재에서 용추계곡으로 탈출하는데 계곡에 물이 불어 있고 길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어 굉장히 위험한 하산을 했었다. 용추계곡 돌마당식당의 심사장과의 만남도 즐거
웠다. 사진은 물맛이 좋은 고모샘.
# 19구간(밀재~은티재). 2005년 10월15일.이 구간은 백두대간 길 중
가장 위험한 구간 중 하나인 대야산 직벽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3단의 직벽이 연달아 이어져 있어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곳인데, 마눌이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오도가도 못하는 바람에
바위를 타고 올라 가 어깨에 싣고 내려와야 했었다. 또, 캄캄한 밤
에 은티재 전 대슬랩에서 길을 잃고 숲속에 한 시간여 갇혀 쌩고생
을 하기도 했었다. 위기의 구간이었다.
사진은 대야산 오름의 대문바위.
# 20구간(은티재~이화령). 2005년 10월 29일. 은티재 너머에는 봉암사
결사로 유명한 청정도량 봉암사가 있다. 봉암사는 1년에 단 하루만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수행도량이라 뒷산인 희양산을 封山하고
있다. 때문에 은티재,지름티재 등에서 스님들이 산객의 출입을 막고
있는데,어렵게 그들을 설득해서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희양산 오름
역시 온통 밧줄 구간이라 마눌이 아주 힘들어 했고. 특히, 새 등산화
때문에 발뒷꿈치가 까져서 두어시간 발을 질질 끌고 이화령에 겨우
내려서는 걸 보고 내내 안타깝고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은 희양산 오름에서 밧줄과 씨름 중인 마눌. 이 날은 마눌에겐
고난의 하루였다.
# 21구간(이화령~하늘재). 2005년 11월 12일. 이화령부터는 월악산
구간에 속하게 된다. 특히 이화령~조령구간은 무수한 밧줄구간이
계속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덕분에 마눌은 또 고생을 많이 했다.
이날 하늘재 선녀와 첫만남이 있었고.
# 22구간(하늘재~차갓재). 2005년 11월 26일. 드디어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통과한 구간이다.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고.
# 23구간(차갓재~저수재). 2005년 12월 11일. 이 날은 영하 11도의 혹한의 추위가 몰아친
날이어서 모든 것이 얼어 붙어 고생을 많이 했다. 물이 모두 얼어서 목마름과의 싸움도
해야 했고. 황장산 오름에 있는 암벽에서 또 한번 마눌이 아찔하게 매달렸었고. 대간꾼
들을 안내해 주기로 유명한 안생달마을의 명물인 백구를 만나 어루만져 주기도 했는데,
얼마뒤 백구는 실종되고 말았다더라. 사진은 황장산 정상.
# 24구간(박달령~도래기재). 2005년 12월 17일. 지난 봄에 박달령에서 탈출하느라 미처
다하지 못한 도래기재까지의 짧은 구간을 산행한 날이다.
# 25구간(도래기재~화방재). 2006년 1월 1일. 2006년의 첫날을 태백산
천제단에서 보내보자는 각오로 출정한 날이다. 그러나 이 날의 태백
은 천지가 눈구덩이라 쌓인 눈을 헤치고 가느라 엄청나게 체력소모가
많고 시간 소요도 많았다. 중간에 날은 어두워지고 눈은 점점 더 많아
져서 119에 조난 신고를 고민했었는데 휴대폰 불통지역이라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무려 16시간 20분 동안 눈밭을 헤친 끝에 겨우 화방재에
내려 설 수 있었다. 사진은 태백산 정상에 도착하여 겨우 조난의 위험
에서 벗어나 안도하는 순간이다.
# 옷에 묻은 눈이 그날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 26구간(화방재~피재). 2006년 1월 21일. 1월 1일 눈밭에서의 사투
이후 웬만한 눈은 이제 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백산 정상에서
마눌이 눈에 미끌려 바위에서 거꾸로 떨어질 때는 정말 아찔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더라.
사진은 매봉산 고랭지채소밭의 풍력발전단지.
# 27구간(피재~댓재). 2006년 2월 26일. 설날, 집안행사, 회사 행사 등등으로 무려 5주일만
에 나선 대간길. 이 구간은 삼척 환선굴을 우측 품에 안은 구간이고 귀네미골 대단지 고
랭지 채소밭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중간에 물이 떨어져 내내 눈을 먹으며 걸었다.
# 28구간(댓재~원방재). 2006년 4월 23일. 3월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엄마와 단 둘이 살
아 온 마눌은 그 충격에서 오래 헤어나지 못했다. 두 달만에 나선 대간길. 이번 구간은
대간구간 중 그 길이가 가장 긴 구간이다.두타, 청옥, 고적, 갈미, 상월산 등 산들도 높고
많다. 그런데 산행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마눌이 컨디션 난조로 도저히 못가겠단다.
그래서 마눌은 댓재로 돌아가 차를 몰고 백봉령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산행은 나 혼자
진행하기로 했다.이 결정 때문에 산꾼들에게 무심한 남편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정작
마눌은 홀로 돌아간 자신을 더 미안해 했는데...
# 29구간(저수령~죽령). 2006년 5월 13일. 철쭉 필 때 진행하려고 아껴두었던 이 구간을
철쭉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냥 진행하였다. 도솔봉의 경치가 기가 막힌 구간
이었다. 도중에 연속종주 중인 경남 양산의 개인택시 팀을 만나 같이 산행을 했다.
한 달 정도의 산중생활로 다들 산짐승냄새가 나더라.
# 30구간(원방재~백봉령). 2006년 6월 3일. 지난 4월 컨디션 난조로 댓재~백봉령구간을 못한
마눌을 위해 해리님 내외와 용또산님이 동행해서 그 긴 구간을 같이 진행해줬다. 나는 그때
비 때문에 마치지 못한 나머지 원방재~백봉령 구간을 땜빵하고... 때문에 중간에 산속에서
네 사람과 도킹한후 서로 반대쪽으로 헤어졌었다. 산행 마치고 동해로 내려가 어느 식당에
서 뒷풀이를 했다. 이 때는 다들 얼굴이 앳되어 보인다.
# 31구간(백봉령~삽당령). 2006년 6월 10일.지난 구간을 마눌과 함께 하면서 대간 진행속도가
우리와 같아진 해리님 내외와 팀을 이루어 진행한 구간이다. 석병산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
다워 깜짝 놀라는 중이다.
# 32구간(삽당령~대관령). 2006년 6월 17일. 이 구간은 27.1km의 아주 긴 구간이고, 화란봉,
고루포기산, 능경봉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어 매우 힘이 든 구간이다.특히 닭목재 너머 고루
포기산은 아주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 33구간(대관령~진고개). 2006년 7월 30일. 이 구간 역시 25.8km로 아주 긴 구간이고, 소
황병산의 출입금지 구간이라 마음 졸이며 걸은 구간이다. 선자령과 대관령 목장지대 등
은 이국적 풍취를 보여 주어 멋진 곳이기는 한데,중간에 대관령목장의 소떼들에게 무시
를 당해 기분이 팍 상하기도 했다. 소떼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비켜주지를 않더라...
사진은 선자령 지나 곤신봉으로 오르는 길의 풍광이다.
# 34구간(진고개~구룡령). 2006년 8월 4일. 드디어 오대산 구간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러나
복더위 속에 걷는 대간길은 너무나 힘이 들었고, 두로봉에서 멧돼지를 만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사진은 두로봉에서 멧돼지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 35구간(구룡령~조침령). 2006년 8월 26일. 정감록에 나오는 삼둔사가리를 좌측에 두고
북상하는 구간이다. 난리가 나도 모르고 살 정도로 오지이니 산세 역시 엄청나게 가파
르고 험한 곳이어서 끊임없이 오르고내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이번 구간도 해리님내외
와 함께 산길을 걸었고, 홀산 머슴인 대명님이 조침령으로 마중을 나와 주어서 산행을
마치고 명개리에 민박을 잡고 모두 함께 하루 잘 쉬었다.
힘든 산행 마치고 조침령에 도착. 표정들이 하루의 힘들었던 여정을 말해준다.
# 36구간(조침령~단목령). 2006년 9월 2일.이 구간은 애초에 1박 2일로 한계령까지 가는 것
으로 계획을 잡았다.일행도 늘어나서 첫날은 단목령까지 두팀의 부부가 진행하고 뒷날은
대명님까지 합류해서 5명이 함께 점봉산을 넘을 작정이었다. 첫날은 계획대로 산행을 잘
마치고 단목령 계곡에서 알탕까지 시원하게 즐긴 후 방태산휴양림에 베이스캠프를 차렸
다. 그런데 마눌이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해 약 먹고 민간요법 동원하고 난리를 치뤘지만
차도가 없어서 우리팀은 빠지고 세 사람만 점봉산으로 올랐다. 뒷날 마눌은 응급실로 가
서 역류성식도염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해야했다.
사진은 북암령 가는 길에 짙은 개스 가득한 숲에서 휴식하고 있는 모습.
# 37구간(단목령~한계령). 2006년 9월 16일. 지난 구간 마눌의 건강
때문에 미쳐 마치지 못한 점봉산을 넘은 날이다. 점봉산은 설악을
가장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이 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락
가락해서 조망은 없고 망대암산구간의 암릉길이 미끄러워 상당히
위험한 산행을 해야 했다.
# 38구간(한계령~미시령). 2006년 10월 3,4일. 드디어 설악구간이다. 긴 구간이니 만큼 첫
날은 희운각대피소까지 짧게 끊고, 뒷날 공룡능선과 황철봉 너덜구간을 넘었다. 설악이
야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곳이고, 그만큼 힘든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곳이다. 참 많이 오르내리고 많이 걸었으며 많이 감탄하였다.
사진은 공룡능선 양각봉 오르기 전 대슬랩에서의 모습이다.
# 황철봉 너덜지대.
# 39구간(미시령~진부령). 2006년 10월 14일. 드디어 백두대간 대단원의 발걸음이다.
미시령 구간은 출입금지구간이고 단속이 심하여 새벽 일찍 미시령을 출발했다. 그런데
상봉 오름에서 갑작스레 굉장한 통증이 찾아왔다.세상이 끝날 것 같은 통증을 어찌어찌
극복해서 상봉정상에 올랐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때 바로 119를 불러야 하는 순간이었
지만 그때는 백두대간 졸업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진은 상봉정상에서 햇살을 마음껏 받고 있는 마눌.
# 구불구불 미시령 고갯길을 따라 운무가 넘고 있다. 맞은편에 황철
봉 너덜지대도 보이고.
# 드디어 800km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 지난 2년 세월의 여러 사연들이 감격스러웠는지 마눌은 울고 있다.
그렇게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 많았던 강/사/랑 부부의 백두대간 종주가 많은 뒷이야기를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뒷이야기는...)
백두대간종주를 했다고해서 세상이 달라지거나 삶이 변화하는 것은 없다. 다만, 길지 않은 인생에 다시 하기 힘든 멋진 도전을 완성하였다는 점과 소중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인 듯 하다.
무엇보다 종주기간 동안 가졌던 '몰입'과 '열정'의 순간들이 정말 행복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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