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어떻게 망했는가. 고종이 조선을 망해먹었고 팔아먹었다. 고종은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무능하고 부패하고 거짓말을 일삼았던 교활한 악질 매국노다.' <매국노 고종>을 집필한 박종인 기자의 고종에 대한 진단입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본인이 체결했으면서도, 신하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이 조약을 체결하게 했다는 사실조차도 거짓말로 하라는 고종이었습니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전에 일본으로부터 뇌물 2만 원(현재금액으로 25억원)을 받았습니다.
좌편향의 정치인과 역사가들은 조선 망국의 원인이 전적으로 일본에게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고종 개인에게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서술합니다. 1864년 즉위하여 1907년 퇴임할 때까지, 자신의 권력보위에만 집착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고종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국가의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다. 국민 행복을 위한 두 가지 수단은 부국과 강병이다. 국부를 증강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인다. 국가가 독점한 폭력을 사용해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다른 수단은 부차적이다. 이 두 가지 수단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국가는 존립할 가치가 없다. 그 국가는 잘못된 국가다. 조선은 국가였나. 고종은 그 국가의 지도자였나. 실질적으로 조선 왕국 최후 지도자로서 그는 국가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했는가. 앞으로 부국과 강병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고종의 행적을 알아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고종은 매국노다. 부국을 하는 대신 금고를 채웠고, 강병을 하는 대신 강병에 투입할 국가 자원을 개인 호기심과 탐욕을 채우는 데 소모했다.'
고종은 대원군의 실질적인 섭정 10년을 끝내고 1873년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세도정치를 끝내려는 대원군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과 천주교 탄압과 노론세력의 작업으로 권좌에서 밀려났습니다.
고종은 민비와 그녀의 외척세력과 연합하여 친정을 벌인 결과 민씨천하가 되었습니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고종과 민씨연합 정권은 나라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안보를 무너뜨렸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민비 외척세력과 손잡고 전횡한 결과가, 조선의 멸망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노라면, 고종이 얼마나 세상물정을 모르고 국제정세에 어두웠으며 본인과 민씨들만 위했던, 그야말로 무능의 극치였고 무사안일의 대변자였는지 기가 믹힐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저자는 '고종은 국제 정세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전무했으나 권력유지 기술에 관한 한 도사였다'고 한탄합니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을 포함해서 7번이나 외국 공관으로 파천을 시도합니다. 박종진 기자는 고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고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고종은 순수하게 매국노다. 군사력과 경제력과 인력을 독점한 군주 고종이, 그 모든 자원을 사적 탐욕을 위해 소진한 끝에 국가를 판매한 것이다. 적게는 을사조약 한 달 전 2만원 수뢰에서 훗날 자기 일족에게 매년 150만 엔이라는 거금 증여와 신분 보장을 약속받고 팔아넘긴 것이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덕수궁에서 죽었다. 고종 장례 이틀 전인 3월 1일, 전 조선인이 일어났다.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왕공족은 이후로도 신분을 유지했다. 왕공족은 해방 2년 뒤인 1947년, 일본이 신 헌법으로 황족 예우 규정을 폐지하면서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부활한 나라, 대한민국에 산다. 또 다시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고종에게서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하는가.'
저자는 고종이 개혁군주라는 허황된 신화에서 벗어나 고종의 민낯을 봐야 조선 멸망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거울로 삼아야 오늘의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을 잘 살게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증산상제님은 조선의 임금과 신하가 나라를 더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고, 백성이 가렴주구의 대상이 되어 도탄에 빠졌기에, 어쩔 수 없이 조선 백성을 살리고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근대화시키기 위해 일본에 넘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조선은 일본을 통해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났고, 백성은 일본을 통해 근대문물을 접했습니다.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앞날의 역사를 제대로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 장근을 명하여 식혜 한 동이를 빚어넣으라 하사,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널버기에 담아서 잉경 밑에 넣으시고 가라사대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이 있으니 이제 바둑의 원조 단주의 해원도수를 이곳에 부쳐서 조선국운을 돌리려 하노라. 다섯 신선중에 한 신선은 주인이라 수수방관할 따름이요, 네 신선은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들쳐서 따먹으려 하므로 시일만 천연하고 승부가 속히 나지 아니한 지라. 이제 최수운을 청해와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하려 하노니, 이 식혜는 곧 최수운을 대접하려는 것이로다. 너희들 중에 그 문집에 있는 글귀를 아는 자가 있느냐." 몇 사람이 대하여 가로대 "기억하는 귀절이 있나이다."
증산상제님께서 양지에 '걸군굿 초라니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시며 가라사대 "이 글이 주문이라. 외울 때에 웃는 자가 있으면 죽으리니 주의하라." 또 가라사대 "이 글에 고저청탁의 곡조가 있나니, 외울 때에 곡조에 맞지 아니하면 신선들이 웃으리니 곡조를 잘 마추어라." 하시고, 상제님 친히 곡조를 마추어 읽으시며 모두 따라 읽게 하시니, 이윽고 찬 기운이 도는 지라. 상제님 읽기를 멈추시고 가라사대 "최수운이 왔으니 조용히 들어보라." 하시더니, 문득 잉경 위에서 "가장이 엄숙하면 그런 빛이 왜 있으리."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거늘 가라사대 "이 말이 어디 있나뇨." 한 사람이 가로대 "수운가사에 있나이다."
상제 잉경 위를 향하야 두어 마디로 알아듣지 못하게 수작하신 뒤에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오, 일본은 임진난 후로 도술신명들 사이에 척이 맺혀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 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통일지기(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주어 역사를 잘 시키려니와, 한 가지 못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자라. 만일 어질 인자까지 붙여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仁)자는 너희들에게 붙여주노니, 오직 어질 인자를 잘 지키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오,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에는 품삯도 못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 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대순전경』 pp203-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