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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구간은 청주의 동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진행을 하게된다.
초반에는 여느 정맥 산행과 비슷한 나즈막한 봉우리을 오르내린다.
이정목이 잘 서 있는 구간이며 길도 대체적으로 뚜렷한 구간이다.
11km 지점에 있는 현암삼거리는 묵밥으로 유명한 곳이니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해도 좋을 듯.
이후 만나는 상당산성은 청주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아끼는 곳이다.
단, 무턱대고 진행을 하다가는 알바하기 십상인 곳이니 주의를 요한다.
전체 길이 26km.
길다싶어지만 구간 전체가 걷기 편하고 길도 양호한 편이어서 8시간에서 8시간 반 정도를 예상한다.
▶ 추정재에 있는 미원석물과 sk 주유소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좌측,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 동네사이 골목을 진행하다보면 산으로 난 정맥길이 나타난다.
네비정보 충북 청원시 낭성면 관정리 410
충북 청원시 낭성면 단재로 2079
▶ 처음부터 완만한 길이다. 주위조망은 우거진 잡목으로 인해 별로 없는 것이 흠이다.
▶ 산행시작 30여분 만나는 곳이 487봉이다.
▶ 산행길은 계속하여 완만한 길이나, 군데군데 벌목을 해놓아 산만한 길이 이어지므로 주의를 요한다.
▶ 비포장도로를 만나면 선두산이 가까이 있다고 보면된다.
▶ 비포장도로에서 선두산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선두산 직전에 525봉이 나오고, 잠시후 선두산이 있다.
▶ 선두산에서 약 4,50분을 더 진행해야 선도산이 나온다.
정상에는 통신탑이 세워져있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인다.
▶ 선도산에서 30분 정도 더 진행을 하면 현암삼거리이다. 묵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점심으로 따뜻한 묵밥 한그릇을 사 먹는 것도 산행중의 추억이 될 것 같다.
네비정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현암리
▶ 512번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200여 미터 진행을 하면 좌측 산으로 붙은 시그널이 보인다.
▶ 잠시후 잘 조성된 묘지가 있으니 점심 싸오신 분들은 여기서 식사하셔도 좋을 듯
▶ 10여분 정도 진행하면 목련공원묘지가 나온다.
▶ 20여분 더 진행을 하면 깃대산 활공장이 나오는데, 팔각정이 옆에 서 있다.
▶ 길이 여러갈래이고 다니는 사람이 제법되어 헷갈리는 곳이다.
무조건 산성 쪽으로 진행을 한다. 좌측 편에 최근에 복원된 봉수대가 있다.
▶ 봉수대지나 10여분 거리에 상봉재가 있다.
상봉재를 올라서면 검은 대리석에 적힌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가 한편의 시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 상봉재에서 10여분거리에 산성고개 구름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너 상당산성 쪽으로 진행을 한다.
▶ 남암문으로 들어와 동암문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정맥길이다. 무턱대놓고 산성길을 따르면 알바하기 십상이다. 무심코 동암문을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를 요한다. (산성알바주의)
산성안에는 간이매점이 있으니 참고 바람.
▶ 상당산성을 빠져나와서도 주의를 요한다. 소로에다 빡빡한 잡목에 여러갈래길이 있으니 주의하여 진행을 한다.고 되어있으나 이번 답사 결과 이티재 가는 길 이정표가 상당히 잘되어 있었다.
▶ 477봉 넘고 또 넘어 상당산성에서 새티재가는 길은 멀기만하다. (선답자 산행기 1시간 반)
▶ 노거수가 있는 새티재 뒤로 정맥길은 또 이어진다.
▶ 시험에 들게하지마옵소서. 마지막 오름질이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만만치 않은 468.8봉이다.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초소가 있다.
▶ 날머리인 이티재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네비정보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 272-4 / 미원면 미원초정로 978
산행지 : 한남금북 4구간 (추정재 ~ 선두산 ~ 선도산 ~ 현암삼거리 ~ 깃대봉활강장 ~ 구름다리 ~ 상당산성 ~ 새티재 ~ 이티재)
산행인원 : 백옥회원 21명
조식 (속리산 휴게소 매식) 하산주 (이티성영토 오리백숙)
날씨 : 전체적으로 흐리고 약한 바람 조금.
[동영상:38]
추정재의 옛이름은 머구미고개이다.
청주-고은3거리-가덕-낭성-미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완만한 고개인 추정재는 32번 도로가 지나간다.
새로난 4차선 도로 옆으로 옛길인 2차선 도로가 놓여있는데, 동네 마을버스가 다니는 듯 하다.
미구미마을 언저리에는 고령신씨종중에서 관리하는 신숙주의 영정이 모셔진 묵정영당이란 건물이 있다.
건물사진은 지난 3구간에 찍은 감포의 사진을 참조
전면 3칸, 측면 2칸의 사람인자 맞배지붕 형태의 한옥으로 고종 25년에 축조된 건물이다.
영정은 마루방에 보관되어있으며 관광객의 출입은 제한이 되어있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말라버린 잔디아래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땅을 디디며
담너머로 훔쳐본 묵정영당은 세월의 무상함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이른 봄이 오려는지 목련나무 가지에 달린 움이 살짝 피어있었다.
출발.
초출도 중출도 모두 출발.
512번 도로 현암삼거리 근처에 있는 현암묵집은 근처에서 제법 이름값을 하는 집이다.
정맥꾼들에게는 한끼 접시을 혹은 맛난 하산주를 제공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버스를 대자 꼬맹이 아가씨가 달려 나온다.
주인 행세를 하려는지 문을 열더니 빼꼼이 쳐다본다.
뒤를 돌아보니 주인인듯한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 운동이라도 다녀오시는지 막 마당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11시에서 11시반 경 동료들이 도착할 터이고, 그동안 차를 주차시켜 놓을테니 잘봐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도로 확장공사중인지 산만한 512번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가 도로를 건너 좌측 산쪽으로 붙었다.
현암묵집뒤로 약 500여미터를 돌아야하나 길도 묵었고 중출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생략했다.
갓길 주위에 놓아둔 도로 표시 플라스틱 드럼통 위로 걸린 줄을 건너자
나즈막한 야산으로 길은 이어졌다.
산길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정도였지만
겨울 모습의 껍질에다 숨겨놓은 잡목들 성화는 여전하였다.
목련공원묘역 둘레를 걷다가 다시 고갯길을 넘자 약 10분 정도의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깃대봉 활강장이다.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로 고개를 돌리는 풍향계와 팔각정, 나무그늘 대용으로 사용된 듯한 커다란 그물줄이 나무와 나무를 엮어 놓았다.
바람은 청주쪽에서 불어 오고 있었다.
채 녹지 않은 미끄러운 길을 따라 동네사람들도 어슬렁거리며 바람 속에다 제 호흡을 풀어내고 있었고,
희뿌연 장막이 쳐진 하늘 아래 청주의 속살이 실루엣으로 비쳐져왔다.
발목에 부담을 주는 아이젠을 신지 않고 진행할려니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디디지 않은 가장자리를 골라 밟는데도 몇걸음 못가서 걸음이 휘청거린다.
활강장아래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듯한 너른 공터에 화장실 두동이 서있고,
좌측으로는 봉수지, 우측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정맥길은 봉수지 너머 산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5기의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는 청주 깃대봉 봉수지는
봉수대에서 올리는 연기와 횃불의 갯수로 현지의 상황을 알리는데
경남 남해에서 서울까지 전달되는 통로 2개 중의 하나가 깃대봉 봉수지이다.
2009년 복원을 하였는데
봉수대 아궁이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린다.
청주시에서 알아서 관리를 잘하겠지만
주인된 시민의식이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 답게 여기저기로 많은 길이 나있다.
정맥길은 상당산성 방향이다.
음달쪽은 눈이 녹았다 얼었다하면서 미끄러운 빙판을 형성하고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결국 모두 아이젠을 차고 나서야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구름다리라 불리우는 현수교는 산성고개 위로 걸려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있고, 스틱을 사용하지 말라달라는 안내문도 걸려있다.
구름다리에서 상당산성까지는 약간의 오름길이 이어진다.
숨이 쪼금 가빠오나 싶으면 산성으로 통하는 남암문이 나타난다.
상당산성은 둘레가 4.1km, 높이 2~4m, 면적이 704,609㎡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을 통해 통일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충청도의 군사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는 청주읍성에 있었으며, 그 배후인 성당산성에는 병마우후를 두어 방어하게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부터 영조 23년(1747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성벽 축조는 물론 성내에 구룡사 및 남악사와 장대사의 3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으며, 관아건물과 장대·포루·창고 등이 완성되어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서문·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남암문의 2개 ㅇㅁ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남아 있다.[2]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30만 명의 병력으로 쌓았다고도 하며, 따라서 김유신 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이라는 설도 전해진다.[3]
산행도우미난에 틀린 내용이 있어 이를 수정한다.
남문으로 된 곳은 남암문으로 수정을 하고 북문으로 된 곳은 동암문으로 수정을 한다.
상당산성의 구조를 잘 파악하지 못한 무식의 소치이니 너그러이 양해를 구한다.
암문은 유사시에 사용을 하는 비상문의 역활을 담당하는 곳이다.
성벽을 좌측으로 따라 동암문까지 진행을 한다.
길은 사진에서 보는대로 완만한 편이다.
많은 수의 시민들이 산행이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공사중인 서문인 미호문을 지나자 길에 쌓인 눈의 양은 더 많아졌다.
상당산으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 동암문 근치에 오자 성밖 나무가지에 걸린 시그널이 보였다.
높이는 1m에서 1.5m 정도로 뛰어내릴수도 있는 정도의 높이였다.
시그널이 걸린 나뭇가지에서 약 30여미터 더 진행을 하면 동암문이 나온다.
성멱아래로 숨겨진 것 같아서 무심코 진행을 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
표지판이 서 있어 주의를 히면 찾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성밖으로 나왔다.
촘촘히 쌓여진 석벽위로 말라버린 이끼가 살짝 덮혀있다.
전화를 걸어 일행을 찾았더니 우리보다 먼저 진행을 한 상태였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점심 준비 중인 일행을 만났다.
준비해 온 불고기에 라면 등등을 끓여
제법 긴 만찬을 즐겼다.
식후의 정맥길은 그저 그런 정도.
상당산성에서 1시간 반정도를 걸어 새티재에 도착을 한다.
비포장도로인 새티재 좌우측에는 축사가 몇동 있고
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는 한산한 곳이었다.
화마를 당했는지 벼락을 맞았는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노거수뒤로 또 길은 이어져있다.
날머리 이티재 도착을 하니 고개위 전경이 과거와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이티성영토라는 제법 규모있는 식당이 세워져있다.
동계절에는 오후5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예약을 하면 이후시간에도 식사가 가능하다고 안내문이 적혀있다.
한마리에 4만 8천원하는 오리백숙을 여섯마리 예약해놓고
뜨신 방에 들어앉아 파전에다 낮술을 한잔한다.
이런저런 애기에 또 취했다.
취한 감포의 어깨위로 어둠이 내려 앉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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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도 사진도 너무 좋으세요~~
이 환한 웃음들과 산길 사진속에 저도 있고 싶어 집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