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56호 행주산성 역사누리길
2019.6.8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 15번길 89번지 소재 행주산성은,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 56호로써
덕양산 정상 중심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토성이며 전체 둘레길이는 약 1 ㎞이다.
산성의 남쪽은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은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흘러 천연의 요새지로써
인근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되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라순찰사이던 권율이 승군을 포함한 정병 2천3백여명으로 왜군 3만 명을 격퇴한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지 중한곳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 35년(1602) 그날의 승전을 기념하여
대첩비가 세워졌다. 현종 8년(18420에는 행주나루터에 기공사를 창건하여 권율 도원수를 제향하였으나
6.25전란 때 소실되어 1990년도 후반 원형 복원하였다. 1970년 행주산성 정화사업을 시작으로,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진강정, 대첩비각, 대첩문이 건립되었다.
행주대첩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인 1503년(선조26) 1월, 우리군과 명군이 반격을 펼쳐서 북상했던 왜군을 격퇴,
서울로 퇴각시켰으나 1.27 벽제관 싸움에서왜군이 명군을 깨고 다시 사기가 올랐다.
전라도 순찰사 권율 장군은 이미 1592년 11월부터 5천의 군을 이끌고 수원 독산성에 진을 친 뒤
서울에 머물고 있는 왜군을 후방에서 위협하다가 조방장 조경, 승군장 처영과 함게 2천3백명의정예군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옮겨 목책을 세워 요새화하고 서울 수복을 꾀했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서울에 집결했던
왜군이 벽제관 승리의 여세를 몰아 3만의 대군을 7대로 나누어 행주산성을 총공격하였다. 우리 군은
권율 장군의 지휘하에 유리한 지형을 이용, 격전을 벌여 왜군을 모두 격퇴, 수를 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왜군을 죽여 시체를 네곳에 쌓아 불태우고 오후5시경퇴주하였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이 행주대첩은
관군, 의병, 승군, 부녀자의 총력전으로써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엎는데 결정적인 계기가되었다.
관군
권율 장군의 가장 높은 지휘소에서 왜군의 정세를 살피던 중 왜군의 목책에 접근했을 때에 큰북을 세번 치자 우리 군은
활을 쏘고 차포는 일제히 불을 뿜었다. 왜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교대로 산성으로 올라와
조총을 쏘며 목책을 넘으려했다. 이에 권율은 큰칼을 뽑고 진두지휘하니 전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의병
관군과 함께 공방전을 펼쳤다. 적이 목책에 불을 놓으면 물로 불을 끄고 화살이 다하면 돌로 적을 쳤다.
왜군의 격퇴를 위해서 자원한 민간인으로 구성된 군대이다.행주산성의 의병은 전라도 순찰사 권율을 따라 올라온
전라도 의병이 많앗다. 관군에 비해 무장이 허술하고 훈련이 부족했지만 사기는드높아 칼과 도끼 등을 들고
관군과 함께 공방전을 펼쳤다. 적이 목책에 불을 놓으면 물로 불을 끄고 화살이 다하면 돌로 적을 쳤다.
승군
승려의 몸으로 전투에 참가한 군대다. 슨군장 처영이 이끄는 승군은 행주산성의 서북쪽에 있는 자성에
진을치고 있었다. 왜군이 계곡으로 올라와 조총을 쏘며 목책에 불을 질러 한때 목책의 진지가 위태했으나
이때 권율 장군이 진두지휘하고 승군장 처영이 독전하자 승군은 육박전으로 왜군을 쳐서 끝내 그들을 격퇴시켰다.
여성
우리 군은 산성 위에서 화포와 활을 쏘고 큰돌을 굴려 적을 막았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므로
포탄과 화살 돌마저 떨어지게 되자 성내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주어 싸움을 계속하였다.
부녀자들의 호국의 의지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여 '행주치마]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충장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도원수 권율의 전공을 기리고
그의 호국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70년 문화재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사당이다.
삼도삼문
궁궐 사당 서원 향교에서 볼 수 있는 구도는 중앙부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를 두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는 곳으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3도와 3문이있을 때 들어가는 방법은 우입좌출로써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온다.
충장사에도 3개의 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주대첩비
대첩기념관
각궁
우리나라 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물소뿔, 뽕나무, 소힘줄, 실 등을
복합적으로 붙여 만든 활로써 탄력성이 매우 높다.
철신포
봉화대에서 사용된 통신용 화포로써 포성의 횟수로 명령을 전달한다.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화약과 격목만을 장진한 후 발사한다.
변이중화차와 비격진천뢰
변이중화차는 망양 변이중(1548-16110이 개량한 것으로 행주대첩에 크게 기여했다.
승자총통 40개를 장착한 것으로 전면 14개와 좌우측간 13개로 3면에서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사격이 가능했으며 방향구조의방호벽은 방패역할을 하여 왜군의 조총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진강정
덕양정
행주대첩탑
충의정
토성
행주대첩 기씨신도비
기감천 우물
행주산성과 동산동 밥할머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