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과 결과 요즘 집집마다 차가 많아져서 주차난이 심각하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는 주차장이 넉넉한 편입니다. 지하 1층과 2층 주차장이 있고요, 지상 주차장도 있습니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곧바로 올라가니까 편리한데 우리 아파트는 지하에서 걸어서 계단을 올라와야 해서 사람들이 아무래도 지하보다 지상 주차장을 선호합니다. 지상 주차장도 급수가 달라요. 건너편 동에 딸린 주차장보다는 제가 사는 103동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이 더 좋고요, 그 중에서도 제가 사는 통로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이 ‘금자리’지요. 간혹 한밤중에 집에 갔는데 이 금자리가 비어 있으면 “이게 웬 떡이냐? 오늘 운이 좋네.” 기분이 좋아요. 그게 뭐라고, 몇 십 미터 더 걷는 차이뿐인데 그까짓 일로 기분이 좋다 나쁘다 하니 사람이 참 별 게 아닌가 봅니다.
하루는 밤중에 주차를 하는데 건너편 동에 자리가 있어 차를 대려다가 혹시 ‘금자리’가 비어 있을까 싶어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그새 누가 와서 차를 대고 있더군요. 그냥 아까 거기 댈 걸 후회 많이 했지요.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주차장 이론’이라 부릅니다. 눈앞에 보장된 자리가 있지만 좀 더 편하려고 차를 가까운 데로 몰고 가면 이미 그쪽은 꽉 찼고, 아까 그 자리조차 빼앗기게 되지요. 이 이론은 뭘 말하는 걸까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크나큰 선택부터 오늘은 어떤 TV 채널을 볼까, 점심은 자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 하는 아주 작은 선택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게 되는데, 그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가 정말 확 달리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오늘 교회 갈까 딴 데 갈까 고민하다 선택한 분들 계신가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있는 C다.” 영어 알파벳에 B와 D 사이에 C가 있잖아요? 사르트르가 말한 B란 Birth, 즉 탄생을 뜻하고, D란 Death, 죽음을 뜻합니다. 그럼 C는 뭘까요? Choice, 즉 선택입니다.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이지요. 맞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숱한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매일 매일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가 어떤 C, Choice,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정말 달라지게 됩니다. 아무쪼록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현명하게 잘 하는 복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은 바로 ‘복 있는 성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다른 선택도 중요하지만 신앙적인 선택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겁니다. 옛날 TV에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1980년에 나온 금성(지금의 LG) 하이테크 칼라비전 TV 광고입니다. 컬러 TV가 귀할 때니 우리 회사 TV 사면 10년은 참 잘 샀다고 만족할 거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광고는 시편 1편의 내용에 따르면 3단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한 번 따라 하실까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이게 1단계고요. 2단계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마지막 3단계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이겁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1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의 순간의 선택이 10년, 아니 평생을, 아니 영원을 좌우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선택, 영적인 선택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을 만나고 나는 둘 중 어디로 가야 할까 선택해야 하는데, 오늘 시편의 첫 장인 1편도 인생에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두 길인가? 한 길은 축복으로, 다른 한 길은 저주로 이어집니다. 한 길은 구원의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심판과 멸망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길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결과냐? 한 길은 복 받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다른 한 길은 저주 받는 길로 인도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두 길 중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도 대답해 보기 바랍니다.
이 ‘두 길의 원리’는 성도 개인뿐 아니라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복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 선택해야 할 길은 교회가 복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도 그대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복 있는 교회’입니다. 오늘이 우리 효자교회 창립 71주년 기념주일이지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 16일 우리 교회가 9명의 성도가 모여 천막을 치고 기도처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뜻깊은 교회창립 기념주일을 맞으며 우리 효자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71년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 효자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 우리의 미래가 반드시 복 있는 교회의 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시편 1편을 통해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하는 것입니다.
❚ 복 있는 교회가 가지 말아야 할 길 가장 먼저 시편 1편은 복 있는 성도, 복 있는 교회가 따라가지 말아야 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길 세 가지가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1절 말씀을 같이 읽읍시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어떤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까? 첫 번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꾀’란 ‘충고’ 혹은 ‘조언’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남의 충고나 조언을 잘 듣는 게 중요하지만 아무 충고나 다 듣고 따르면 안 됩니다. 특히 악인들의 충고는 절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은 우리에게 뭐라고 충고합니까? 군대 다녀온 선배들은 후배에게 군대 가면 제일 빨리도 말고 늦게도 말고 남들 많이 서있는 곳에 서라고 충고합니다. 손해 안 보려면, 찍히지 않으려면 대중 속에 섞여 남들 가는대로 휩쓸러 가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악인들은 우리에게 손해 보지 않도록 세상 사람들 하는 대로 따라 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고 별 수 있냐? 괜히 튀지 말고 남들 사는 대로 적당히 휩쓸려 살라고 충고합니다. 안 그러면 괜히 손해 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이런 가치관과 충고를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른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교회를 향해서도 같은 충고를 합니다. 저도 가끔 선배 목회자들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목회도 다 사람이 하는 건데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고 대충 해, 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안 그러면 이 목사가 손해 봐.” 하지만 아닌 건 아닙니다. 저도 유혹이 있습니다. 대충 타협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헌데 정말 아닌 것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게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고 성도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면 안 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길 원하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하고 크게 부흥한 교회가 복 있는 교회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장과 부흥을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방법,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도 따릅니다. 교회가 절대 손해 안 보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 효자교회,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부흥하는 방법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세상 앞에서 부끄러운 방법은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손해 봐도 좋으니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 그게 복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둘째로 시편 1편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이 말씀처럼 죄 짓는 길, 멸망 길은 넓고 편해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길, 의인의 길은 좁고 힘들어 보여서 많은 이들이 안 갑니다. 우리는 넓고 편해 보여서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길이라 해도 그것이 죄 짓는 길이요 죄인의 길이면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분명 같은 신앙생활을 해도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편한 길을 있습니다.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적당히 예수 믿고, 절대 손해 안 보고 교회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편하고 넓기는 하지만 절대 좋은 길은 아니라는 겁니다. 때로는 손해도 좀 보고 고생도 되는 힘든 길이라 해도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효자교회, 편한 길, 쉬운 길만 선택하지 맙시다. 좁고 좀 고생스러운 길이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갑시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이 하신다! 교회 부흥도 성장도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 모두가 이 확신을 가지고 효자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열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좀 높은 자리에만 앉으면 바로 교만해집니다. 조금만 잘 되고 잘 나간다 싶으면 금세 사람이 달라집니다. 식당 중에 이런 데는 가급적 가지 마세요. 작은 가게를 하다가 맛집으로 소문나서 가게를 크게 새로 짓고, 주인이 주방에서 직접 음식 만들다가 주방장 두고 장사하는 집이요. 십중팔구 음식 맛은 옛날보다 떨어지고 가격은 더 올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나갈 때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이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잘 나갈 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누가 나보고 저 높은 자리 앉으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저기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하고 사양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성장하고 부흥했다고 교만해져서 다른 교회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도들끼리 만나 얘기할 때 “나는 이런 큰 교회 다닌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큰 교회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만큼, 교회가 커진 만큼 하나님이 지워주시는 책임이 많습니다. 작은 교회나 목회자, 성도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더 귀히 여기고 섬겨야 합니다. 이런 유혹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목회자지요. 저도 어디 가서 조금이라도 저희 교회보다 큰 교회 목사님 만나면 괜히 주눅 들고, 조금이라도 작은 교회 목사님 만나면 으쓱해지니 참 큰일입니다.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정말 회개 많이 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우리 효자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 성장하고 부흥해 왔습니다. 아름다운 성전도 지었습니다. 지역에서 제법 칭찬도 부러움도 받습니다. 긍지를 가지세요. 하지만 방금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 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해 왔다.” 목회자가 한 것 아닙니다. 제가 한 것도, 여러분들이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자랑할 일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책임이 더 커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지역을 더 잘 섬겨야 합니다. 다른 교회와 성도들, 특히 작은 교회 힘든 교회를 더 잘 섬겨야 합니다.
❚ 복 있는 교회가 가야 할 길 1절에서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복 있는 교회가 따르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길을 말씀한 후에, 2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 교회가 따라야 할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같이 읽지요.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딱 우리 교회 목적 아닙니까? 효자교회 목적!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 찌르면 자동적으로 나와야지요. 그렇습니다. 복 있는 성도는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의 말과 충고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묵상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말 복 있는 교회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말이 아닌, 오직 말씀 위에 든든하게 서서 그 말씀대로 운영되고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효자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영되고 효자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복 있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3절은 그런 성도, 그런 교회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지요.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마르지 않는 시내에 뻗쳐 아무리 가뭄이 와도 철을 따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처럼, 우리 효자교회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면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그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요즘 어렵고 힘든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성도수가 급속도로 줄어 고민이고, 헌금이 너무 줄어 힘들어 하고,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교회는 갈등과 다툼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교회도 참 많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런 시대에도 우리 교회는 오직 하나님 말씀 붙잡고 나아갑시다. 그러면 어떤 가뭄이나 위기도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6절 말씀을 읽습니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무릇 효자교회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포항 교계나 다른 성도들에게 인정받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너희 교회 참 좋은 교회다, 그지? 참 내 맘에 든다.”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따라 합시다.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행 9:2 등). 여기서 도란 길 도(道) 자입니다. 이 길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실 때 그 길입니다. 즉 성도란 오직 예수님을 따르고 그 분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란 오직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따르고 어떤 분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까? 창립 71주년을 맞는 우리 효자교회는 지금 어떤 길을 따르고 누구를 본받으려는 교회입니까? 세상에 멋진 교회, 큰 교회, 잘 나가는 교회가 많지만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따르고 닮아가려는 교회 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