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대덕면 덕산재(德山재)에서 거창군 웅양면 우두령(牛頭嶺, 밀재)까지 걸었다.
제 9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5년 11월 22일(일)
2) 어디를:
(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1170~삼도봉~밀목재~화주봉(석교산)~우두령...23.9km(백두누계 (188.5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 이야기 :
이번 산행은 본래 지난 주일(11월 15일)에 산행을 할 계획이였다.그러나 가을비 때문에 1주일 연기 하였고 한번 더 당일 산행를 하기로 한다.오늘 가야 하는 길은 23.9km 결코 가벼운 길은 아니다.늦가을 낙옆이 떨어진 다소 쓸쓸할 것 같은 가을산속으로 들어 가 보자.덕산재(德山재)는 경북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와 전북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다.다른 이름으로 주치령(走峙嶺)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해발 544m이며 이 곳을 경계로 하여 경상북도와 전라북도가 도 경계를 이루고 국도 30호선이 이곳을 지난다.우두령(牛頭嶺)은 높이 580m의 봉우리가 소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령이라 한다. 이 고개는 소백산맥의 대덕산(大德山, 1,290m)에서 동쪽으로 가야산(伽倻山, 1,430m) 방면으로 뻗는 지맥(支脈) 이고 국사봉(國士峰, 875m)과 수도산(修道山, 1,317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위키백과사전 참고)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물 안개에 쌓인 덕산재 표지석)
(십승지 안내의 글)
새벽 4시 광주를 출발하고 장성(읍)에서 강쌤과 합류하여
전북 무주군 무풍면으로 달렸다.무풍면 면사무소 마당에 차를 주차하고
예약한 무풍면 택시를 타고 8시10분 덕산재에 도착한다.
새벽안개는 산행을 떠나는 길손의 길을 지체 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그렇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시야를 가린 안개의 불편함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기로 한다.
어쩜 늘 습관적인 공간을 벗어 난다는 자체가 기분이 좋은일이다.
어떻든 오늘은 저 새벽안개에 쌓인 저 산이 좋다.
덕산재는 십승지(十勝之地) 였다. 즉 피난처 열곳중 하나인 것이다.
십승지(十勝之地)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이다.
십승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에 나오는데 그곳은 영월의 상류지역,풍기의 금계촌,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부안의 호암 아래,보은의 속리산 아래,남원 운봉의 동점촌,안동 화곡,
단양영춘, 그리고 무주의 무풍지대이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이 열곳의 피난처중 하나였다.
자자체에서 이것을 관광상품화를 했다.
여기가 무풍지대(無風地帶)여서 조용하게 숨어 살만한 곳이라고
광고하는것 같기도 하다.역사의 순간 어떤이들이 위기에 여기로 피난한곳이다.
(나무가지에 맺힌 물방울)
2015년 11월 22일 8시20분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스틱의 길이를 조절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간밤에 춤추고 놀던 안개는 나무가지에 작은 물방울을 맺혔고
날이 밝고 인간이 들어서자 안개는 수줍은 듯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새벽의 숲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길을 허락하고 있었다.
(물안개 길을 걷는 강쌤)
늦가을 대부분의 낙옆은 지고 안개에 쌓인 숲길은 몽환(夢幻)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많은 습 때문에 안경을 접어 넣었고 2시간여 걸어 부항령에 도착한다.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5.2km구간이지만 완만한 마룻길이여서 걷기 쉬웠다
부항(釜項)이란 지명은 마을의 모양이 "가마솥'같이 생겼다 하여 "가매실" 또는 "가목"이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면서 "부항"이 되었다는 지명이다.
삼국시대 무풍지역이 신라에 소속 되었을 때 덕산재와 소사고개는 중요 통로였으며 삼도봉
아래에는 현재 삼도봉 터널이 지나고 있다.
(부산 낙동산악회에서 설치한 현판글 참조)
(부항령 안내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게 되는데 오늘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은 안개산행인가보다. 시야는 50m정도, 조망은 포기하고 그냥 가을안개에 취해 걷는다.
(백수리산 정상 표시석)
3시간쯤 걸었나 보다. 드디어 백수리산(1,034m)에 도착한다.
백수리산은 독수리의 하얀 머리를 닮은 산인데 오늘은 주변 조망를 할 수 없으니
산세는 알 수 없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간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떻리~~
지금 밟고 가는 땅의 이 기운과 숨 쉬며 들이키는 공기가 이 숲의 것이며
스치며 지나치는 풀잎과 작은 나무가지도 이 숲의 것이니 그 기운을 느끼며 가까운 숲과 나무를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하다. 1,170m봉 표시석은 김천산꾼들이 세운 소박한 돕탑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반들 반들한 표시석보다 투박하면서 소박한 이런 표식이 더 멋져 보였다.
어느덧 삼도봉(1,177.7m)을 앞에두고 오르는데
좌측 먼곳에 석기봉(1,242m)이 우뚝 솟아 보인다. 친구야 ! 쉬어 가자!
삼도봉을 앞에 두고 쉬어 가기로 한다.
오전 산행때 거리를 충분하게 걸어 줘야 하기 때문에 오랜 쉼 없이 걸었다.
삼도봉까지 올라가 휴식할 생각이였으나 다리가 퍽퍽하고
어깨도 무거워 삼도봉을 지척에 두고 숲길 중간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5시간 가까이 걸었으니 서서히 피곤이 밀려 온다.
다시 삼도봉을 향해 걷고 삼도봉 아래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안개에 쌓인 저 계단이 하늘로 가는 계단 같고 느낌이 오묘하다.
지리산 반야봉을 오를 때 느낌과 비슷하고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느낌이다.
안개 때문에 오는 엄숙함이 스며드는 이 분위기는 나만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머리의 생각과 가슴은 둔한 열정이지만 지금 그대로 이 기분에 맡기고 천천히 걸어 올라 간다.
드디어 삼도봉(1,177.7m)에 올랐다.
(운무에 쌓인 삼도봉으로 오르는 계단)
이곳의 삼도봉은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를 나누는 삼도봉이다.
이곳 정상에는 거창한 삼도봉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990년경 영동군수와 무주군수, 그리고 지금의 김천시가 되기전 금릉군수가
삼도 화합을 위해 이 탑을 제막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거대한 조형물이다.삼도의 화합을 위한거라면
산 정상에 거대한 탑을 세운것보다 문화의 교류라든지 아니면 체육의 교류라든지
아니면 인재를 교류하여 지역의 발전을 위하는 여러 방법들도 많았을것인데
추상적인것 같아서 탑의 의미에 동의 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씁쓸하고 묘한 기분이 들며, 신비롭고 벅차게 오른 감정이 반감한다.
탑은 커다란 거북의 등에 올라 탄 세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용은 서로 엉켜 있고 용의 머리가 각 삼도(三道)을 향했다.
나는 조각과 예술을 모르는 무지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조용한 산에 어울리지 않은
대형 석조 조형물 같았다.자연석 하나에 작은 표시만 해 주면 충분 할 것이다.
이제 걷는 시간은 5시간을 넘고 있었다.
오늘은 숲이 물안개에 쌓여 어디를 볼 수도 없으니 하염없이 걸을 수밖에...
삼도봉 정상에는 단체 등산팀중 일부가 남아 소란스럽다.
오늘은 사람 구경을 못했으니 저분들도 조금은 반가웠지만
소란스러움의 불편함이 더 컸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광주시 금호지구 "김가네 김밥" 한줄로 아침겸 점심을 떼운다.
(삼도봉의 석조 조형물)
어떻든 삼도봉에서 인증사진를 찍고 우두령을 향하여 하산을 시작한다.
그리고 삼도봉 아래 50m 정도가 가파른 밧줄구간을 만난다.
밧줄구간이 길면 스틱을 접고 두손으로 하강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 위험구간이 아니더라도 하산시에 이미 하체는 피로 하므로 위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목재를 지날 무렵 앞서 가는 산악회원 일부를 만나는데 우린 그들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시간상으로 산행이 끝날 즈음 어두워 질 것 같았다.
새벽 4시에 덕산재를 출발한 일산의 어느 산악회는 선두와 후미가 많이 길어 졌다.
(석교산 표시석)
심마골재를 지나고 밀목재을 지나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석교산(화주봉1,207m)에 오른다.
지도를 보고 오늘 가야 할 거리를 가늠하고 아침에 탔던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한 후
오후 5시 무렵 지체 없이 빠른 걸음으로 하산를 시작한다.
산행 속도는 우두령까지 6시무렵에 도착할 것 같았으나 생각보다 늦어 졌다.
뒤에서 내려 오는 일산의 어느 산악회원의 일행이 걱정이 된다.
5시 이후 급격하게 어두워 질텐데...후미의 일부 인원이 많이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교산에서 30여분 내려 오는데 어둠은 이미 주변을 점령해 버린다.
우두령이 지척인듯 한데 어둠에 분간를 할 수 없어 헤드라이트를 켠다.
헤드라이트에 의지하고 10여분 하산하니 우두령에 도착하고
표시석인 큰 황소 한마리의 석상(돌)이 나타난다.
(어둠에 도착한 우두령 돌탑)
그러나 오후 6시를 지나며 이미 어둠이 몰려와 주변을 자세하게 볼 수가 없다.
8시20분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6시20분에 완료하였으니10시간 산에 머물고 걸었나 보다.
소머리를 닮은 산세도 보고 싶었지만 어둠에 볼 수 없어 아쉽다.
뒤 따르는 일산의 산악회원님은 아직도 2시간쯤 후에나 도착할 것 같은데 걱정이 되었다.
후미의 그들이 조난하지 않고 무사하게 하산 하시길 바랬다.
친구야 ! 오늘 수고 많았제! 나의 백두대간 9번째 산행은 이렇게 마칠 수 있었다.
광주로 가면서 줄 곧 생각했다. 겨울철 산행은 오늘부터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내년 2~3월부터
시작하기로 한다.나의 백두대간길은 앞으로도 30여회 이상 더 가야 한다.
우선 장성읍내로 달렸다. 전남 장성역 앞 막걸리집으로 들어가서 오늘의 무사한 산행과
금년에 걸었던 산행을 마감하는 의미의 해단식을 하기로 한다.
강쌤 사모님도 마중을 나오시고 나는 막사(막걸리와 사이다),
그리고 강쌤은 입술(잎새주)로 건배! 했다.
그리고 잠시 내년에 넘을 태백산을 상상한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산행기 쓰는것이 익숙해지니 타성에 졎어가는 느낌이다.
산행후에 곧 바로 산행일기를 써야 하는데 미루다 보니 한달이 되간다.
그래도 기억이 사라지기전에 겨우 짧은 산행기를 마쳤다
게으름은 임금님도 못 말린다 했거늘 ~
게으름으로 늦었지만 겨우 썼다.
2015년 11월 22일 (일) 걷고 12월 19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