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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문학기행담
정 훈 교
그토록 손꼽던 기다림의 갈증은 동료 문인들을 맞닥뜨리는 김해국제공항에서 이내 해소됐다.
이윤정 부산불교문인협회 사무국장은 일찌감치 공항에 당도한 듯 나흘 여정의 공동준비물을 여유롭게 챙기면서도 동료들을 맞느라 분주한 모습이 역력했다.
계획된 시간보다 이르게 모두 도착한 것은 이 국장의 평소 치밀함에서다.
부산불교문인협회 이번 가을문학기행의 격은 한결 다르다. 연임에 이른 네 해에 이르도록 처음으로 갖는 조헌호 회장 임기 중 첫 해외문학기행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1일 이사회 의결을 거친지 두어 달 만이다.
그간 2015년 4월 25일 통영 연화도 연화사·보덕암을 찾았던 첫 문학기행을 시작으로 그해 가을 전남 해남지역과 대흥사·미황사, 2016년 봄 충남 논산지역과 관촉사·개태사, 1박 2일 일정의 가을 강원도 남이섬과 월정사·상원사, 2017년 봄 안동지역과 지금은 유네스코 문화유신인 봉정사, 가을엔 포항·경주지역과 오어사·골굴사, 2018년 봄 하동지역과 쌍계사 순례를 잇기까지 줄곧 옹골찼다고들 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이번만큼 옹골찰까? 자신에게 자문자답하며 악수의 강도가 여느 때 보다 확연하게 다르다. 그간 이름을 몰라 머뭇거렸던 ‘돌이와 순이’도 금세 절친이 되고 말았으니 이래서 바깥 여행은 금상첨화라 하는가 보다.
저마다 이름표를 두르고 건네받은 여행팸플릿을 펼쳤다.
오후 2시 25분 북경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빙 둘러선 대합실은 뜨거운 느낌이다. 곧장 조헌호 회장의 발대식 한 말씀에서다. “오늘 이 만남이 소중하듯 북경과 만리장성 찾는 문학기행은 영영 사그라질 수 없는 보배와 다름없는 산물입니다.” 덧붙여 “창작거리를 가득 담아오는 여행이었으면 합니다.” 이에 화답하는 26명의 우렁찬 박수 소리는 이륙하는 객실 귀청에까지 은은했다.
펼쳐본 여행팸플릿에 나흘 여정이 비교적 세세하게 실려선지 일행은 하늘아래를 바라보기보다 연신 눈을 떼지 못한 팸플릿이다.
첫날 북경에 도착하면 왕부정거리를 그리고 중국 전통 기예서커스를 즐기게 된다. 다음날 지구상 최고의 인공구조물로 일컫는 만리장성과 서태후가 애용했던 황실 정원 이화원을 놓칠 수 없다. 셋째 날,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금성과 용경협이다. 마지막 넷째 날엔 북경의 신흥 관광명소가 된 스치하이거리와 798거리를 보는 것으로 알차게 꾸며졌다.
이러한 패키지 여행상품은 무난한 가격으로써 나 역시 세 번이나 가게 되는 반복코스지만 나는 무엇보다 누구와 가느냐에 따른 기준을 우선하기에 어떤 반복이든 괘념치 않는다.
이래서 여행 마니아란 딱지가 붙었는지 모르지만 하긴 우리 일행 중에서도 동료 마니아가 몇 더 있기에 이참에 좀 더 털어놓고자 한다. 지난해 2017년만도 대마도와 백두산을 다녀왔다. 기회만 닿으면 무조건 ‘오케이’하는 우리 여행 마니아 마인드는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두어 시간 남짓한 고도 1만여 피트 상공을 지나는 동안 오늘날 부산불교문인협회 위상이 무척 높아졌다는 상념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그러했을 것이다. 나아가 동참치 못한 250여 회원의 뜻도 공감일까? 호젓함에서 입 밖으로 새는 말이다.
이 북경문학기행담은 한 역사 남김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정인을 두둔하는 그런 글이 아닌 지극히 현실을 두고서다. 많은 업적이 있으나 한 가지만 들고자 한다. 이 짚지 않으면 훗날 퍼뜩 뇌이지 못할 수도 있다.
부산불교문인협회가 장차 장대하게 나아갈 산실인 자가 사무실취득이다. 문화의 요충지 서면에 자리하게 된 것도 깊은 안목에서다. 조헌호 회장께서 연임을 거치면서 일궈낸 대역사라 하겠다. 굳건한 뚝심이 있었기에 결코 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역사를 되짚어보면 역대 양원식 회장 당시 사무실 마련 주춧돌을 놓았으며 후임 김창식 회장 또한 그 반석을 다졌던 지금까지 약 14년 만에 쾌거의 결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덧 다른 미래를 설계하기도 하는 도취에 어느덧 북경수도국제공항에 당도했었다.
A팀 B팀 C팀으로 나눈 팀별로 ‘단도리’를 여무지게 했다. 콩나물시루와도 같은 사람들 속에 자칫하면 놓치기 일쑤이기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중국이란 거대 국가를 먼저 헤아려본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라는 걸 비롯해 면적과 인구의 90% 이상이 한족이고 법적으로 종교 활동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반면 한 자녀 출산 제한도 근래 완화했다는 등등을 팸플릿에 담았기에 이미 익혔었다. 1992년 한·중 국익을 위한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등 중공을 중국으로 일컫게 된 시기가 이 무렵이었음도 다시 깨쳤었다.
앞서 1988년 10월 한국은 중국 관광금지를 해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늘처럼 자유로운 왕래에 있다.
그런 가운데 꺼림칙이 있다. 올부터 중국 비자 제도가 시행돼 강대국의 ‘횡포 아닌가?’ 반감까지 인다. 그래도 꾹 참고 북경 최고의 번화가로 알려진 왕부정거리로 우리네 물결은 이끌려간다.
먹자골목이 첫 눈길을 끈다. 근데 군침이 넘어가지 않는다. 나라 간의 식성이 다르기도 하다지만 지글지글 고깃덩이가 코끝에 가까이하지 않게 한다.
왕부정의 이름 유래는 이렇다. ‘청나라대 이 일대에 모여 있던 10여 왕부가 사용하던 우물이 왕부정이라’ 유래한다.
한국의 명동과도 비견되는 거리에 유명한 백화점들이 즐비하다. 전해지건대 청나라 멸망으로 왕족과 부호들이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지닌 보물을 죄다 내 팔면서부터 형성된 시장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어 첫날 막 코스인 ‘중국 전통기예서커스’를 즐긴다. 아슬아슬한 곡예라 할 접시 돌리기, 십여 명이 한 자전거에 켜켜이 엉켜도 끄떡없이 굴러가는 기묘라든가 하여간 중국의 서커스는 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이래서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인가?
서커스 마당을 나오면서 의문시되는 하나가 있다. 좁디좁은 타원형 공간에서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오토바이쇼가 그것이다. 서로 맞부딪히지 않는 건 내 나름의 결론이다. 가령 하나의 오토시스템 작동에서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서로 비켜 움직이게 함에서 가능할 게다.
첫 밤을 맞은 금자은호텔 한 방이다. 다 들어설 수 없는 비좁은 공간인데 서커스 자전거묘기에서 얻은 켜켜이 지혜를 발휘해 어렵사리 한 둥지를 텄다.
‘첫 밤은 만남의 밤이요, 이틀 밤은 문화예술의 밤이요, 막 밤인 사흘째는 광란의 밤’이라 이름 짓고 그럴싸한 연출 주문이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다들 글만 출중한 줄 알았으나 가요 낭송 장끼 기타연주에 듀엣 쇼까지 넘쳐났다. 아쉽게도 첫 밤은 만남의 장인만큼 자기소개와 더불어 여행 소감을 듣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그런데도 칭다오맥주는 새벽녘 이도록 방바닥에 계속 굴러들었다.
이틀 여정의 첫 시작은 만리장성으로 굴러간다. 준령의 기온 탓에 겹겹이 동여 입은 매무새는 완전무장 느낌 주기에 충분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앞다퉈 나부끼는 깃발 지점으로 향한다. 부산불교문인협회 북경문학기행단이 지르는 함성에 저만치에서 메아리의 답이 온다. 아마도 “조헌호 만리장성 입성단을 대환영합니다.”인듯하다.
메아리의 기세를 탄 너도나도 길고도 길게 뻗은 구불구불 장벽을 내리 보며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마냥 호령이라도 칠 듯 부리부리한 눈이다.
처음 와본 만리장성이라는 소리가 일행 한쪽 편에서 들려온다. 같은 말이 장단을 맞추는 걸 보면 “지금껏 와보지 못한 이들이 있구나!” 혼잣말로 지껄여졌다.
만리장성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인공구조물로 손꼽힌다.
아직도 그 정확한 길이를 알 수 없는 경지의 만리장성을 두고 윌리엄 에드거 가일은 1909년 이런 시를 썼다. ‘지구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벽, 필라델피아에서 캔자스까지 콘스탄티노플에서 마르세유까지의 거리만큼 뻗은 벽, 별빛으로 보든 달빛으로 보든 자욱한 먼지 사이로 보든 소나기 사이로 보든 아니면 눈보라의 눈송이들 사이로 보든 그것은 기대하고 믿기 어렵고 요지부동이며 유령 같은 잿빛의 과거 유물이다.’
흉노족, 몽골인, 만주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국이 여러 시대에 걸쳐 북방에 건축한 거대한 성벽 군이며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유적이란 실감을 오르면 오를수록 가슴 벅차게 느끼게 했다.
이화원은 서태후가 애지중지하고 스스로 애용했던 황실 정원이다. 거대한 인공호수에서 성큼 다가서는 서태후의 이미지는 그 크기만큼이나 일렁이는 거리낌이 있다. 청나라를 수렴청정의 도가니에 담았거니와 자식마저 제거한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자신과의 하룻밤 풋 비희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서태후의 뭇 사내들 혼이 서려 있기에 이화원 정원을 내딛는 마디 걸음이 뼈저린 느낌일 테다.
허나 청나라 말 최고 통치자 서태후는 역사에서 비켜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오늘의 이화원은 매우 아기자기하고 정겹다. 노인들의 쉼터로 눈길을 끄는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장기를 두기도 더러는 카드놀이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는 오밀조밀 여인들의 뜨개질하는 아리따움도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
정액권 카드를 들고 이화원을 자유로이 출입하는 노신사가 장기와 카드놀이를 즐기는 멤버 아닌가 싶다.
이틀째 만찬은 일절 공개되지 않은 깜짝 이벤트를 연출했다. 살짝 감지는 됐으나 당일 공개키로 한 것은 괜스레 부풀려 실망이나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런데 궁중과도 같은 음식점으로 안내돼 다들 휘둥그레진 눈빛이었다. 북경 최고의 샤브샤브요리점으로 모셔진 것이다. 영접에 나타난 한 신사 모습이 닮은 느낌이 퍼뜩 드는데 저쪽 누군가 조헌호 회장의 장남이라 했다. 부자간의 듬직함이 어쩌면 저리 같을까? 하는 첫인상을 심었다.
듣기로 장남은 북경현대 중경(Chongqing)현대자동차 대표로 있다.
“아버지께서 부산불교문인협회 회원 분들을 모시고 오신다기에 중경에서 막 도착했습니다.” 했다. 비행기로 북경까지 세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성큼 다가온 조재일 대표는 손님 접빈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요리가 수천 가지 있다고 해도 양고기, 쇠고기 샤브샤브만 할까? 서로들 주고받는 말들에 중국 최고의 술 마오타이가 등장했다. 쉼 없이 무르익는 만찬장은 다들 여태 인생살이에서 맛보지 못함이었을 게다.
‘원더풀’의 최고조가 곧 이것이구나 하는 연발이 터져 났다.
“아니 이토록 황홀한 만찬을 펼치면서 우째 귀띔 한번 주지 않았냐?”는 흥얼댐에 조대표는 “저의 인생 가늠자라 하면 제 아버지와 어머니”라 하고 두 분께 넙죽 절을 올리는 연출에 큰 박수가 좀체 끊일 줄 몰랐다.
이렇게 깊어만 가는 밤 중국 최고의 보이차까지 손에 손에 들고 조대표와 부인과 둘 아들과의 석별의 악수는 또 하나의 역사이다.
첫댓글 북경 문학기행. 그 행복한 시간이 다시 연상되는 한편의 훌륭한 서사시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