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가치와 의미부여/성춘복 시인
성춘복 선생은 늘 뵙고 싶은 분이었다. 아니 여러 문학행사에서 자주 뵈어온 분이었지만 마주하고 오랫동안 문학이야기며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이어서, 그걸 메인스토리로 취재해 우리 스토리문학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진즉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올 봄에 성춘복 시인은 『내 안 뜨거워』란 시조집을 출간해서 시조시인이신 지성찬 주간에게 보내오셨다. 그리하여 스토리문학에 성춘복 선생의 시조가 소개되고 인연이 닿기 시작했는데, 근자에 선생은 우연하게도 스토리문학 창간부터 늘 아껴주시고 지도해주시는 함동선 선생의 사무실 같은 층에 이사를 오시게 되었다. 그래서 함동선 선생께 메인스토리 취재를 하게 소개해 달라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하셨고, 성춘복 선생께서도 ‘그럽시다’라면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선생과의 약속날짜인 7월 13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명륜동에 있는 선생의 사무실 계간 <문학시대>로 찾아가니 선생은 벌써 나오셔서 자료와 사진 등을 꼼꼼히 챙겨놓고 계셨다. 조금 있으려니 지성찬 주간께서 오시고 정연순 수필가와 최규흥 시인이 잇달아 들어오신다. 우리 일행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마치 오랫동안 교류한 사이처럼 허물없이 사진을 찍으며 차를 마셨다. 문단에 나와 활동하는 시인이라면 최근에 등단한 시인을 빼고는 성춘복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 큰 주먹코에 부처님 귀를 가지신 분으로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소나무 같이 느리고 정적인 느낌의 시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느리시지도 정적이시지도 않은 분이다. 사무실에는 늘 손님이 찾아오고, 곳곳에서 선생을 모셔 문학행사를 열고 있으니 말이다. 성춘복 선생은 그림을 잘 그리는 분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6월 10부터 6월 20일까지 세계일보사 주최, 미국 뉴욕에 있는 롱아일랜드에서 미 동부 한국문인협회의 후원으로 성춘복 시인의 ‘시가 있는 그림’展이 열려 다녀오셨다는 말씀이다.
그럼 성춘복 선생과의 취재 내용을 독자의 예우 차원에서 호칭을 생략하며 대화형식으로 싣는다.
성춘복 : 오늘 비가 많이 오는 날인데도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커피 한 잔 하세요. 오늘 일찍 나와서 직접 내린 커피라 맛이 있을 겁니다.
김순진 : 네 선생님, 커피가 아주 맛있습니다. 한 잔 더 주세요. 오늘 바쁘신 데도 이렇게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의 메인스토리 취재에 응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어릴 적 이야기와 등단 이야기 좀 해주세요.
성춘복 : 발행인 선생은 성격이 더풀더풀한 것을 보니 정다운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문학시대>는 계간인데도 힘이 드는데 젊은 분이 월간으로 하시려니 얼마나 힘드실까요? 사설은 접어두고 이야기를 해나가겠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일본강점기 시대였음으로 조선말을 입에 담게 되면 단단히 회초리를 맞아야 했지요. 그러다가 광복이 되고 ‘도시락’을 ‘벤또’라 하고, ‘젓가락’을 ‘와리바시’라고 해서 또다시 회초리를 맞아야 했지요. 그 무렵 등사판으로 어설프게 밀어낸 학급 문고에 어쩌다 글이 실리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으로 나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고 좀 더 자라서는 시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산중학교 때 잠시 친구 김봉태(화가)를 따라 나도 그림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나봅니다. 그러나 우연히 참가한 진주의 개천예술제 후에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일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개천예술제에는 행사를 주재했던 설창수 시인과 이형기, 박재삼, 송영택 등이 참가하였는데, 저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지성찬 : 지난번에 보내주신 시조집과 시 원고는 감사했습니다. 시를 쓰는데 도움을 주신 스승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등단은 어떻게 하셨나요?
성춘복 : 네. 성균관대 재학시절에는 수주 변영로, 월탄 박종화 선생은 물론 조윤제, 김구용 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요. 그런 연고로 대학 3학년 때 <현대문학>에 신석초 선생님으로부터 초회추천을 받게 되었고 마지막 추천과 동시에 을유문화사에 취업이 된 겁니다. 당시 같은 대학에서는 윤명로, 김태웅, 김여정, 강계순 등과 문학동우회를 했습니다. 김구용 선생님과 신석초 선생님은 문인으로서 선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박목월 선생님과 황금찬 선생님은 신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지요. 김구용 선생은 그 흔한 문학상과 예술상을 자격 운운하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눈 딱 감고 입을 오므리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데, 이 세상의 영화를 무엇에 쓰느냐”며 걱정하시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신석초 선생께서는 젊어서는 신교육의 철저를, 늦게는 현대 언론에 몸담아 고대 한시로부터 서양의 발레리에 이르기까지 고루 섭렵하여 엄정한 몸짓과 사고법으로 저에게 너무나 큰 영향을 주셨지요. 특히 ‘시인답다’는 것은 대개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전 근대적 시인상, 막연한 관념이거나 아니면 의당 그러해야만 시인일 것이라는 그 나름의 상상적 인상이기 일쑤입니다. 세상물정 같은 것은 아예 도외시하고 세속적 이해를 포기하고 술에 잔뜩 절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엉뚱하게 행동하고 푸념이나 늘어놓는 류가 아닌 세속에 등을 돌리고 싶은 깊은 눈과 날카로운 의식으로 모든 사물에 대하여 한 톨의 먼지도 그 몸에 묻기를 거부하는 고고하고 초연한 몸짓과 같은 것임이 분명합니다. 시인에게 있어 문학이란 나를 세우는 일이지요. 여기에서 세움은 여러 가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시인답다, 남자답다’와 일관될 수 있는 것으로 저는 일생을 그 네 분 선생님들의 말씀에 따라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순진 :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되기 위해 꿈을 꿉니다. 꿈이란 어떤 것일까요? 선생님은 시인을 꿈꾸고 시인이 되신 것을 후회하지는 않으시나요?
성춘복 : 오늘 내가 문인으로 또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삶을 영위하게 된 까닭도 꿈을 향하여 매진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의 성취를 위한 끝없는 노력의 도정인 만큼 후회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꿈은 인생의 값이고 인생의 길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만일 그런 꿈이 내게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전혀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했기에 내내 가난했다던가, 값비싼 것으로 나를 돋보이지 못해 원망스럽다거나, 내 가족을 고생시켜 미안해한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꿈이 크고 화려할수록 좋겠지만 모든 아이의 꿈이 한결같이 대통령이고 장군이고 재벌총수라면 인간세계는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모든 아이의 꿈이 유명화가거나 1급 연주가라면 이 세상은 황폐할 것입니다. 모든 아이가 박세리나 박찬호가 되었다면 이승은 난장판일 겁니다. 꿈은 이룰 수 있는 소박함을 지녀야 합니다. 작고 섬세한 것일수록 성취가 가능합니다. 소박한 꿈으로 후회하지 않는 인생에 높은 값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지성찬 : 독서는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또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요?
성춘복 : 독서의 양은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였는데, 당시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는 것은 유행처럼 번져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데, 입기가 다급한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신 건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 건강은 후세를 위하여, 단단한 가풍을 위하여 의당 노력해 갖추어야 합니다. 육신보다는 독서라는 다양한 체험정신을 위하는 일에 더 열심이어야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책의 요건으로는 먼저 내용이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표현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을 고르려면 연령에 맞는 적절한 흥미 유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전철에서 잠시 잠깐이나마 책을 펼쳐 읽고, 프랑스 사람들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넉넉하고 푸짐한 뿌리가 땅 속 깊이 묻혀있는 나무가 든든하고 짙푸른 잎사귀를 가지듯, 우리의 삶도 책읽기에서 얻은 친화력과 끈기로 조급함을 물리친다면 풍요로운 삶과 정감 넘치는 인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순진 : 선생님의 고향은 상주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성춘복 : 네, 제 고향은 경상북도 상주입니다. 지금은 시가 되었지만 제가 자랄 때만해도 아주 두메산골이었지요. 고향으로 가는 길은 꼭 화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길이 어머니께 향하는 길에 틀림이 없다면 두렵거나 지저분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귀소본능으로서의 고향, 그 회귀가 단순한 동물적 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해도 삶의 뿌리인 과거와 미래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 무한의 동경을 갖기 마련이지요. 고향은 내가 태어났거나 부모가 한생을 살던 곳이라 자주 가는 것은 아닙니다. 고향이란 개념의 하늘과 산과 개울이 그곳에서 지키며 기다리고 있지요. 그 근처에 비를 피할 수 있고, 또 군불 따위로 체온을 데울 수 있으며 등허리를 뉘어 쉴 곳이 있으니 얼마나 밈음직스럽습니까? 이웃에 몇 촌의 누군가가 내 땅을 붙여먹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확실한 고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어릴 때는 선유동 계곡이나 화양구곡에서 딴청을 부리기도 했지요. 기암괴석, 폭포와 옥류가 뒤섞여 그야말로 장관인 그곳은 동물들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세력 다툼의 식물 군락이 있고 그 기묘한 이름과 생태를 조감할 수 있어 내 문학의 공부거리가 되었지요. 근처에는 상주온천 또는 용화온천이라 불리는 문장대 온천도 자랑꺼리입니다. 문암바위와 미타사, 성주골 등도 비경이지요 늘티와 장암 중간에는 후삼국시대에 견훤이 그 누이동생과 더불어 청화산의 돌을 주워다 쌓았다는 성도 있고, 조선조에 세조가 다녀갔다는 곳, 임경업 장군과 관련된 터전도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드문드문 떨어진 낚시터엔 제법 씨알 굵은 붕어들이 올라오고 칠중사며 채운사, 봉암사, 성불사가 적당한 거리에 있어 여러 가지 재미를 변화롭게 대할 수 있는 곳이 상주입니다. 그런 고향이 있어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지성찬 : 시를 왜 쓰시나요? 선생님은 시에 있어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성춘복 : 시인이 하는 일을 허구적이고 은유적인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단이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미묘한 일입니다. 그러니 시를 몇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가, 또 부지런히 그것을 읽어야 하는지가, 그 중추적 역할의 동력이라 할 은유는 무엇이며, 거기 현실을 배제하면서 고달프기 짝이 없는 대체세계에 매달려 그럴 듯한 세계는 왜 만들려 하는지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탐구해왔습니다. 프로이드는 “아름다움은 쓸모가 없다. 명백하게도 문학적인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도저히 우리를 지탱시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시쓰기란 매우 개인적이고 고독한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잠재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고, 또 시인이라는 고답적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음이 없이 언어와 지역, 혹은 그 민족적 정체성까지 뛰어넘어 초월적인 자리에 새 삶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신비로운 대체제계로 다시 새로운 우주를 일으키는 일을 우선에 놓습니다.
김순진 : 시란 무엇인가요? 또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성춘복 : 이 문제는 인간 상실이나 소외에 대한 영구운동永久運動으로써 자동적 상상력이 항구성을 지니고 노래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문제가 모두 나름의 고민과 고통을 지니고 있으나, 그 모습과 그 빛깔에서 절대적 인간의 고독과 자폐적 현상을 안간에로 돌려야 한다는 얼마의 노력이 거기 깃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어쩌면 근대 이후, 우리의 시가 실험성과 지나친 사회성 또는 압살하려고 드는 고집스런 시대성을 대변하는 일만으로도 다른 한켠으론 본질을 잃고 있다는 것에 무관하지 않습니다. 감정과 서정의 시적 본질은 시인이 하고자하는 원망의 뜻과 그렇도록 구성한 시적 요소가 어떠해야 한다는 점에 우린 유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의 논객들 역시 이런 관점에서 충분히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를 읽어야 하고 또 비평해야 합니다.
지성찬 : 현대시의 문제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춘복 : 우리는 오늘을 살며 현대를 고민하고 현대의 말로 현대시를 쓰고 있습니다. 독자 역시 현대어로 현대적 상황을 읽으며 현대적인 안목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완전하지 못한 매듭이 있습니다. 서구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그들이 보여준 그 근대적인 사고가 그네들의 것이었고, 그런 역정 위에 오늘을 세워놓았다면 우리와 입장이 매우 달랐을 것이란 결론에 이릅니다. 우리는 매우 짧은 기간에 우리 나름의 묘한 진통으로 근대와 현대를 올려놓고 범벅이 된 사회를 가졌었고, 어정쩡한 사유를 했으며, 그런 방법으로 우리의 시를 잉태시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불안한 요소가 있을 수 있고, 좌절이나 소화불량도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더러는 도피적인, 더러는 도전적인, 더러는 망상적인, 더러는 파탄을 노정하는 과정인, 더러는 자만에 가득 찬 오만의 상황에서 살아왔던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시의 본래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대하여, 또는 경제적인 것보다는 단순의 분배율에 대하여, 사회적인 것보다는 계층의 위화에 대하여, 또 정치적인 것보다는 갈등에 대하여 눈을 돌려왔고, 공리성에 가치기준을 설정하여 매우 우스꽝스런 일까지 겪어왔습니다.
김순진 : 그럼 현대시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무슨 처방을 내려야 할까요?
성춘복 : 오늘 우리들 눈앞에 매우 심각한 양상의 한국문학, 특히 한국 현대시의 이해를 위하여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문학의 역사를 통한 종적 관계에서 구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들 눈앞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잡다한 횡적 관계에서 연계를 찾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두 방법이 혼용되어 시어라고 하는, 즉 언어의 의미를 상징과 연관시키고 시 작품의 형식과 거기에 등장하는 언어의 심리적 요인을 밝힘으로써 한국 현대시에 대한 반성을 삼아야 합니다. 특히 한국 시단과 같이 한정없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의 언어적 직설성, 난잡성, 요설성, 추잡성 등에 막연히 매료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이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독특한 미적 체험을 가지고 함축과 상징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멋대로의 언어를 멋대로의 독자가 확대 전파시키는 일은 현대시단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만일 잘못된 것이 있고, 옳지 않은 길을 향하는 인생이 있다면 그것을 아무리 음미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값어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잘잘못을 먼저 가려낸 다음,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건 버려야 한다’고 하면 나머지의 참된 값은 저절로 매겨지게 될 것입니다.
지성찬 : 선생님은 최근에 보내주신 시조집 잘 읽었습니다. 시조를 쓰는 마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성춘복 : 네. 한국 사람으로 시조는 꼭 써야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간 시를 쓰면서 다문다문 썼던 시조들을 『내 안 뜨거워』란 시조집으로 금년 2월에 출판하였습니다. 새삼스레 우리 말글의 향취에 쏠린 늘그막의 바람이라, 비록 서툴긴 해도 맵고 짠 맛에 취하여 스스로 만족하다보니 세권 남짓의 작품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나해진 시의 취기 때문인지 속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내 안 뜨거워』란 제목을 붙이고 이 시조의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노년의 욕심으로 탓하지 말고 어여삐 보아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이상으로 대화를 마친다. 한흥자 시인은 성춘복 시인의 시에 대하여 “자연을 통해 주어지는 우주 질서에 담담하게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후반부에서 흔히 나타나는 회한이나 노욕을 떨쳐버린 정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주변에서 하찮게 넘겨버리기 쉬운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야 할 것을 무언으로 건네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어떤 욕심도 분주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삶의 길을 성실하고 차분하게 걷고 있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말한다.
성춘복 시인과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시를 쓰실만한 인품이시고 안 쓰면 안 될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큰 손으로 그려내는 그림의 섬세함은 마치 그 큰 덩치 속에 들어있는 얌전한 시의 마음 같다. 시를 쓰던, 그림을 그리던 예술은 살아있어야 하고, 사람의 가슴을 지녀야 하는데 선생의 그림과 문학은 모두 살아있으며 따스한 사람의 가슴을 지녔다. 보편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선생의 그림과 시는 누가 읽고 보아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만치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필치이니 쉽게 쓰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신 것이다. 소재의 선택이 기계적이지 않고도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머물러 있거나 흐르거나 매한가지로 역동성을 준다. 수많은 시집과 저서를 내시고도 늘 공부하는 자세로 새롭게 임하신다. 바위를 보거나 모래알을 보거나,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시는 선생은 연필 하나 붓 하나를 함부로 하지 않으시고 무엇이든 여러 개 가지려는 습관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데서 작은 것들의 군집성이 큰 예술가를 키워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스토리문학 독자들에게 많은 시간 할애해주신 성춘복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취재기 뒤에는 그분의 해당 작품을 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두들 시인이 시를 싣는 기존 관념을 벗어나 성춘복 시인의 자전적 동화 한 편을 싣는다.
(동화)
공짜로 떠난 바다 여행
성춘복
햇볕이 따갑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불어오는 바다 바람이 시원하기만 합니다. 바람 속에서 짭짭한 바다 냄새가 맡아지기도 합니다.
“이것 볼래?”
길남이가 종잇장처럼 빳빳한 것을 내보이며 자랑을 합니다.
“뭔데?”
골목에 모인 아이들은 눈빛을 빛내며 길남이 옆으로 모여듭니다.
“사이다 병뚜껑으로 만든 거야.”
길남이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날카로운 못으로 구멍 두 개를 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시을 끼고 빙빙 돌리기 시작합니다.
“윙윙윙.”
칼처럼 날카로워진 병뚜껑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갑니다.
“이 노끈 잘라 봐.”
한 아기가 길남이 앞에 질긴 노끈 한 개를 들이밉니다. 노끈은 힘없이 툭 끊어지고 맙니다.
“와, 정말 힘세다!”
아이들은 모두 탄성을 지릅니다.
“바위도 자를 수 있어.”
길남이는 허풍을 떨며 주머니 속에서 조개 두 개를 꺼내 보입니다.
“해운대 가면 이런 조개가 얼마나 많은지 알어?”
“우와, 진짜 조개껍질이다!”
아이들은 부러운 눈초리로 길남이가 보여주는 조개껍질을 살핍니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조개껍질은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이 나기도 합니다.
“해운대 가면 멋있어?”
한 아이가 묻자 길남이는 금방 어푸어푸, 수영하는 시늉을 해보입니다.
“물이 얼마나 깊은데. 한번 들어가면 물이 이만큼이나 차. 굉장히 차고 시원해.”
길남이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해운대까지는 그다지 먼 길이 아닙니다. 차를 탈 수만 있다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좀 먼 곳입니다. 바람이 불면 바다 냄새는 맡을 수 있지만, 해운대를 다녀 온 아이는 별로 없습니다. 해운대를 다녀 온 아이들은 그곳에서 주워 온 조개껍질을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처럼 여깁니다.
“정말 예쁘다.”
“나도 갖고 싶다.”
“우리 엄마 졸라서 나도 해운대 갔다 올 거야. 거기 가서 조개껍질 이만큼 주워올 거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조개껍질이 부러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우리 전차 가는 소리 들어보자.”
갑자기 철호가 빠르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자. 철로에 귀를 대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
아이들은 전차가 다니는 큰길 쪽으로 우르르 뛰어갑니다.
“여기에 귀를 대고 있으면 전차 오는 소리가 들려.”
철호가 먼저 철로에 귀를 갖다 댔습니다. 아이들 모두 따라서 몸을 굽혔습니다.
“우르릉, 우르릉…….”
저 멀리서 달려오는 전차 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진짜 해운대 갔다 오자.”
철호의 말에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우리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가?
“그래 걸어서 언제 가냐?”
아이들은 입을 삐죽이며 대답합니다.
“바보들아, 돈 없이 공짜로 가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공짜로 가?”
아이들은 금방 환한 표정이 되어 철호를 쳐다봅니다.
“나만 따라 와.”
철호는 앞장서서 뛰기 시작합니다.
“따라 가 보자.”
애들은 금방 철호 뒤를 쫓아갑니다.
햇살이 몹시 따갑습니다. 매미들은 더운 것이 좋은가 봅니다. 나뭇잎 뒤에 숨어서 맴맴맴,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그래도 나뭇잎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철호는 아이들을 부산진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리로 커다란 기차가 햇볕을 받으며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는 모습도 보입니다. 기차는 금방 출발할 것 같습니다.
“여기 숨어 있다가 기차가 오면 잽싸게 올라타면 돼.”
철호 말에 아이들은 깜짝 놀랍니다. 까딱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기차에 매달렸다가 떨어지면 정말 큰일입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 말만 믿어!”
철호는 자신 있게 말하며 고무신을 벗어 허리춤에 찹니다. 철호 신발은 코가 터져 있습니다. 옆구리도 몇 번씩이나 실로 꿰맸습니다.
“좋아, 해 보자.”
아이들은 모두 철호처럼 고무신을 벗어 허리춤에 찹니다. 달릴 때 고무신이 벗겨질 수도 있습니다. 신을 잃어버렸다가는 부모님한테 심하게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풀섶에 숨어 숨을 죽이고 기차를 살핍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드디어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더 바짝 엎드려 몸을 숨깁니다. 손바닥으로 땀이 흥건하게 고입니다. 기차는 조금씩 속력을 내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매달려!”
철호가 제일 먼저 뛰어가 기차에 매달립니다.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기차에 매달립니다. 모두 성공입니다.
“모두 들키지 않게 잘 숨어 있어야 해!”
철호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주의를 줍니다. 해운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들통이 났다가는 정말 야단입니다. 그대로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다행이 기차가 해운대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들키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역을 향해 속도를 줄이기 시작합니다. 기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뛰어내려야만 무사히 해운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성공이다!”
“해냈다!”
아이들은 해운대역을 빠르게 빠져나오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바다로 가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해운대를 향해 뜁니다. 철썩철썩, 끼룩끼룩,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바다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놀러 왔습니다.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고, 모래성을 쌓으며 노는 아이도 있고, 모래 속에 몸을 묻고 누워있는 어른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듭니다. 옷을 입은 채로 말입니다. 고무신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모래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야호!”
“어푸어푸.”
“철썩철썩.”
“끼룩끼룩.”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만큼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도 드높기만 합니다. 하늘의 해님도 활짝 웃으며 떠들며 노는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얼굴을 물속에 처박고 주머니가 방방해지도록 예쁜 조개를 주워 담습니다. 친구한테 조개껍질을 선물로 주면 정말 좋아할 것입니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친구 얼굴을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나옵니다.
얼마나 놀았을까요.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조금 있으면 기차가 출발할 것입니다.
“또 올게!”
아이들은 노을이 지는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곳을 떠납니다.
“야, 기차 놓치면 어떻게 해?”
역이 가까워지자 겁 많은 영호가 긴장하는 표정으로 묻습니다. 기차를 놓쳤다가는 그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얼른 기차에 매달리면 아무 걱정 없어.”
철호는 여전히 배짱 좋게 떠듭니다. 기차가 마악 출발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역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몸을 숨기고 기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
“됐다, 매달려!”
철호가 빠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철호의 고무신이 그만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어, 내 고무신!”
철호는 기차에 매달리며 소리를 지릅니다. 철호뿐만이 아닙니다. 고무신이 벗겨진 아이들이 여럿입니다. 모두들 고무신을 벗어 허리춤에 차야 된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더 큰 일이 생겼습니다. 몇 아이들이 기창에 못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난 몰라, 난 몰라…….”
기차를 놓친 아이들은 더 빠르게 달려보지만 덜컹덜컹,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를 따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서쪽 하늘로 울긋불긋 노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새들도 부지런히 집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에이 할 수 없다. 걸어서 가자.”
아이들은 금방 환한 표정이 되어 집을 향해 뜁니다.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께 많이 혼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 명랑한 얼굴입니다. 기차도 타 보고, 바다도 보고, 실컷 수영도 하고, 주머니에는 보물 같은 조개가 잔뜩 들어 있고.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하루였으니까요. (끝)
성춘복 시인 연보
호는 상남尙南, 또는 내산箂山
1936년 2월 14일. 경북 상주시 화남면 소곡리에서 아버지 성부귀成富貴 선생과 어머니 윤학술尹學述 여사와의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수산으로 이주하여 성장함.
1942년. 부산 공생원(유치원)
1943년 소정소학교.
1949년. 부산중학교에 입학. 개천예술제(4회)에 참가, 문학동인 <용광로> 주제함.
1955년.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월탄 박종화 선생, 도남 조윤제 선생, 김구용 선생 등을 만나 사사받음. 주간 <성대신문> 기자. <에튜데> 등의 동인에 가담함.
1958년. <현대문학>지에 신석초 선생에게 1차 추천 받음.
1959년. 제2, 3추천 받음. 을유문화사 편집부 입사(~1969년까지 근무)
1963년. <시단詩檀> 동인 결성(이형기, 박재삼, 신동엽, 문덕수, 최원 송영택 등)
1965년. 처녀시집 『오지행奧地行』 상재.
1966년. 제2시화첩 공원 파고다(장시. 김광배 화백 그림) 간행. 이 시집으로 월탄문학상 수상.
1969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협회로 잠시 직장을 옮겼다가 다시 입사. 삼성출판사 편집국장으로 이직함.
수필집 『소월에게 띄우는 편지』 출간
1970년. 3시집 [산조散凋] 출간.
1971년 ~1978년까지. 서라벌예술대학 문창과 출강. 이어서 중앙대학교 예술대에서 계속 강의함.
1972년 ~1997년까지. 성균관대학교 출강.
1974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2000년까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1976년. 삼성출판사 편집주간 사임, 편집 기획회사 우문사 창립(~1980) 『편지쓰기』(마을문고) 집필, 출간
1978년. 한국단편문학 및 문학선집 기획 출간, 세계시인대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1979년. 노벨문화사 상임이사(~1982), 한양대학교 출강(~1984),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2005).
1981년. 제5차 세계시인대회(샌프란시스코) 참석. 세계시인대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1982년. 제6차 세계시인대회(마드리드) 참석.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 전문위원(문학담당 ~1990).
1984년. 4시집 『복사꽃 제』 출간. 제1회 동포문학상 본상 수상. 한국해외문학심포지움(스위스 인터라켄) 주제.
1985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피선(~1991). 수필집 『무엇이 나를 울게 하나』 출간
1986년. 5시집 『바깥 세상에 띄우나니』 출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프로렌스 시인대회 참가, 마드리드 세계시인대회 참가.
1987년. 계간 문예지 <시대문학> 주간 취임, 6시집 『꽃잎 띄운 물 마신 듯』 출간, 명예문학박사. 로테르담 국제 시낭송회 참가
1988년. 프에르토리코 국제PEN대회 참가. 7시집 『네가 없는 이 하루는』 출간.
1989년. 선시집 『떠돌이의 노래』 출간, 2수필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출간.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피선(~1991), 대새문학 발행인 겸 편집인(~현재까지).
1990년. 8시집 『길 하나와 나는』 출간. 제 1회 해외문학상(한국문인협회 시상)차 미주 여행, 시와 그림 전시회<성춘복의 하루> 예총화랑.
1991년. 제2회 해외문학상 시상 차 북경, 연길, 동북 삼성 여행.
1992년. 9시집 『그리운 죄 하나만으로도 나는』 출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피선, 한국예총 이사 피임.
1993년 국제PEN문학상 수상. SBS문화재단 이사 선임(~2000)
1994년. 타이페이 세계시인대회 참가, 포르투칼 리스본 시낭송회 참석.
1995년 10시집 『혼자 부르는 노래』 출간.
1996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1시집 『헤적이기>해작이기』 출간. 예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피선.
1998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2001), 12시집 『혼자 사는 집』, 4수필집 『어느 날 갑자기』출간.
2000년. 13시집 『마음의 불』. 출간 LA해외문학 심포지엄 참석. 한일 문예교류 도쿄낭송회 참석.
2001년. 시론집 『화두와 때깔』 출간, 5수필집 『보이지 않는 세상』 출간.
2002년. <문학의집․서울> 상임이사.
2004년. 14시집 『부끄러이』(시조집) 출간.
2005년. 고희문집 『공책』 출간, 15시집 『그림자놀이』 출간.
2009년. 16시집 『봉선화 꽃물』, 시조집 『내 안 뜨거워』 출간
2009년. 현재 <문학시대>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문학의집․서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