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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뢰야식
alaya-vijnana , 阿賴耶識
● 대승불교 유식학파의 핵심 개념.
이 학파에서는 인간이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여 자신을 형성한다고 보고, 인간이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8 단계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인식의 세계를 아뢰야식이라고 불렀다. 아뢰야식을 통해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깊은 곳에 담아 놓았던 인식이 그 사람의 본질을 형성하며, 거꾸로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해골의 물을 달게 마시고 깨어난 고승 원효가 마음에 따라 사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는 아뢰야식에 대한 철학적 논고인 <대승기신론소>로 이를 설명했다.
○ 대승불교 가운데에서도 불교의 유가행유식학파(瑜伽行唯識學派, 한국에서는 법상종이라고 부름)의 용어. 산스크리트 알라야 비즈냐나를 음역한 것으로, 아라야식(阿羅耶識) · 아랄야식(阿剌耶識) · 아려야식(阿黎耶識) ·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한다.
이 학파에서는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세상은 사람이 인식하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본다. 이런 생각의 틀 안에서 이들이 깊이 고찰한 것이 외부 세계를 인간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인간이 외부의 물상을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거쳐서 인식한다고 본다. 이 다섯 가지를 5식(識)이라 하고, 정신을 6번째의 인식 방법으로 생각해서 제6식(識)이라고 한다.
그 다음 제7식은 말라식(末那識, manas- vijñā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 정신보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뜻한다. 아뢰야식은 제8식으로 자아의식의 뿌리가 되는 심층의식(잠재의식)을 뜻한다. 인간이 생활하면서 제1식으로부터 제7식에 이르기까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심층으로 내려가 아뢰야식에 기록된다. 모든 것이 누적된 아뢰야식은 무의식중에 거슬러 나타나서 인간의 마음과 행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아뢰아식이 인간 모든 활동의 근원이 된다고 본다. 마음이 따뜻하고 차가운 것, 행동이 착하고 악한 것, 생각이 더럽거나 깨끗한 것도 모두 그 깊은 바닥에 있는 아뢰아식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아뢰야식보다 위에 있는 제1식부터 제7식까지의 인식은 대상을 대할 때마다, 기분에 따라 바뀌며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된 아뢰야식은 그 모든 것의 근본으로 제7식인 자아의식보다도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그 모든 것의 진리를 성찰하는 인식을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뢰야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수행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자신의 속에 어떤 업이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에 업이 씨앗처럼 자리잡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이 다하면 그동안 인간이 느끼고 받아들였던 모든 인식이 아뢰야식에 담겨 있다가 씨앗처럼 자라나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본다. 선행이 선행을 낳고 악행이 악행을 낳는다는 것이 바로 이 논리인데, 이를 輪廻라고 한다. 하지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을 경우 아뢰야식에 담긴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그 업을 소멸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이 아뢰야식을 철학적 입장에서 분석한 글이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다. 원효는 외부의 것에 대한 마음에 따라 외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대승기신론소>와 <별기(別記)>에서 아뢰야식이 만들어지고 바뀌며 사라지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의했다.
Q&A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를 음을 따라 표기한 것으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하며,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 또는 간단히 제8식(第八識, eighth consciousness)이라고도 한다.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중기 이후의 대승사상 > 아뢰야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아뢰야식: 阿賴耶識 알라야비즈냐나(alayavijnana)의 음사(音寫)로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쓰며, 유식설은 우주만유전개(宇宙萬有展開)의 근본으로서, 만유를 굳게 보지하여 잃지 않기 때문에 무몰식(無沒識), 만유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藏識), 만유발생의 씨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意識)으로 간주된다. 외계에 있는 빛의 파동(波動)도 눈(眼:視力)이 없으면 빛깔이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은 눈(眼)이 원인(原因)이며, 외계의 빛의 파동은 조연(助緣)에 불과하고, 눈(主觀)에 갖추어진 힘의 요소만이 빛깔(客觀)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눈은 빛깔의 주관적인 입장, 빛깔은 눈의 객관적인 입장에 불과하며, 이 양자는 동일 존재인 것이 주객(主客)으로 분열된 모습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식(六識)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六境)을 역설하고, 이 6식의 구석에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 또한 이들 7식(七識)이 성립되는 근거로서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역설되고 있다. 아뢰야식은 인간의 생명력에 타고난 유전적 요소나 여러 행위의 결과로서의 기억, 그리고 이에 의해 형성된 성격 등이 결합된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로서 이에 의거해서 인식이나 판단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 7식이 현재적(顯在的)인 데 대해서 아뢰야식은 잠재적이며, 과거의 여러 행위, 즉 업(業)의 결과가 종자(種子)로서 감추어지고 보존되어 인연(因緣)이 합쳐지면 또다시 아뢰야식에서 7식으로 현행(現行)하며, 또한 7식에 의한 경험은 업(業)의 형태로 아뢰야식으로 훈습(熏習)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이 생기며, 이것이 주객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하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되고 있는 상태를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라고 한다. 이같은 외계의 일체를 식의 현현(顯現)으로 보고 그 유식관(唯識觀)을 익혀 아뢰야식의 본질을 개조(改造:轉依)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유가행파의 입장이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 등에 따르면 마음[心]은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6식(六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 등에서는 마음에는 6식외에 이보다 더 심층의 의식인 제7식인 말나식과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으며, 따라서 마음은 8식(八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나아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아뢰야식이 우주만물의 근본이 되며, 아뢰야식에 포함된 종자로부터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개된다고 보는데, 이것을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또는 뢰야연기(賴耶緣起)라 한다.
아뢰야연기설에 따르면 개별 유정의 아뢰야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상속하여 각자 자신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즉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를 이룬다. 그리고 모든 유정의 각자의 우주는 서로 교섭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을 이루기도 하고 서로 교섭하여 공통된 변현을 이루기도 한다. 각 유정의 마음 즉 8식과 마음작용승의근 등은 유정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인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불공변(不共變)이라 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은 모든 유정의 교섭에 따른 공통된 변현인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공변(共變)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연기설은 개인적(주관적)상대적 유심론(唯心論)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의 증득의 측면 즉 환멸연기의 측면에서는, 아뢰야연기설에서는 유루(有漏)의 아뢰야식 가운데는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의 종자[無漏種子]가 들어있다고 본다. 이 무루종자는 부처와 보살 등의 깨달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듣는 것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하고 그 세력이 성도(聖道)에 의해 강력해져서 3계를 윤회하게 하는 원인인 모든 번뇌 즉 번뇌장과 소지장을 마침내 끊고 전의(轉依)가 증득되며, 그 때 전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제6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제7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成智)로, 제8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완전히 변형되어 전식득지(轉識得智)가 이루어지며, 이 상태는 곧 8식의 무루의 상태이며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이다. 8식 가운데 여덟 번째의 제8식을 칭하는 명칭으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제8식의 본질적 성질[自相, 體性]에는 여러 분위(分位) 즉 여러 성격 또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무몰식(無沒識) 장식(藏識) 또는 택식(宅識) 이숙식(異熟識) 또는 비파가식(毘播迦識) 아타나식(阿陀那識) 또는 집지식(執持識) 심(心) 소지의(所知依) 종자식(種子識)일체종식(一切種識) 또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무구식(無垢識) 또는 아마라식(阿摩羅識) 본식(本識) 초식(初識)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 초능변식(初能變識) 제1식(第一識) 식주(識主) 제8식을 칭하는 여러 명칭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뢰야식(阿賴耶識)인데 이것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를 현장이 음역한 것으로 신역어(新譯語)이다. 다른 음역어로는 아라야식(阿羅耶識)아랄야식(阿剌耶識)아려야식(阿黎耶識)아리야식(阿梨耶識)이 있으며 줄여서 뢰야(賴耶) 또는 리야(梨耶)라고도 한다.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ālaya vijñāna) 즉 아뢰야식에 대한 대표적인 의역어로는 진제의 견해를 대표하는 명칭이다. 즉, 이 번역어에 담긴 뜻의 차이는 제8식에 대한 구역가와 신역가의 견해 차이를 보여준다. 무몰식(無沒識, consciousness with no loss, nondisappearing consciousness, inexhaustible mind)은 진제의 과정 어디에서도 소멸되지 않으며 항상 존재하는 식 즉 사라지지 않는 식(nondisappearing 을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에 의한 것이다. 또한 그는 알라야 비즈냐나를 장식(藏識)이라고도 의역하였다. 그는 산스크리트어 알라야의 3가지 의미[義] 또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장식은 이들 가운데서도 집장의 의미 또는 측면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능장(能藏, operation of storage)은 제8식이 만유의 종자를 능히 보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소장(所藏, that which is stored)은 제7식제6식전5식의 7식(七識)이 선업과 악업을 제8식에 훈습하여 새로운 종자가 생기게 하거나 기존의 종자의 세력을 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집장(執藏, that which is appropriated, appropriated store)은 제7말나식이 항상 제8식(엄밀히는 제8식의 견분)을 자내아(自內我) 즉 자신 내부의 영원한 자아 즉 내면의 '나[我]'로 오인하여 집착한다는 아집(我執)의 뜻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유로 집장을 아애집장(我愛執藏)이라고도 한다.《성유식론》과 《성유식론술기》에 따르면, '아뢰야식' 즉 '장식(藏識)'이라는 명칭은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의 뢰야3위(賴耶三位) 가운데 제1위인 아애집장현행위에서만 사용되는 명칭으로 선악업과위와 상속집지위에서는 아뢰야식 즉 장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집장(執藏)의 의미는 이미 사라졌으므로 사용되지 않으며, 능장(能藏)소장(所藏)의 선업과 악업의 만유의 종자를 보관하고 훈습한다는 의미는 종자식(種子識) 등의 다른 명칭이 대신한다. 그리고 선악업과위와 상속집지위는 보살 10지 가운데 제8지인 부동지 보살 즉 불퇴전 보살부터 부처까지의 계위에 해당하며, 성문연각의 2승의 4향4과에서는 아라한향과 아라한과의 성자와 부처의 계위에 해당한다. 즉, 아나함과 즉 불환과를 증득한 상태 또는 완료한 상태를 말하는데, 부파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불환과는 3계 가운데 욕계를 벗어난 경지이다. 달리 말하면, 욕계의 속박 즉 욕계의 모든 번뇌를 끊은 경지로,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욕계로 의도적으로 윤회하는 경우가 아닌 한 범부와 불환과를 아직 증득하지 못한 성자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욕계로 윤회해야만 하는 상태를 벗어난 경지이다.현장 등의 신역가가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부를 때는 위에 기술된 의미에서의 '장식'을 뜻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집장 즉 '말나식에 의해 집착되는 의식' 또는 아애집장현행위 즉 '욕계에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뜻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이러한 견해는 제8식을 무몰식이라고 의역한 진제 등의 구역가의 견해와는 강조하는 면이 다르다.그리고 장(藏)이라는 한자 대신 '집(house)'을 뜻하는 택(宅)이라는 한자를 써서 아뢰야식을 택식(宅識)이라 하기도 하는데, 택식이 의미하는 아뢰야식의 성격은 장식(藏識)과 동일하다. 이숙식(異熟識,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은 제8식의 다른 명칭 가운데 하나로 음역하여 비파가식(毘播迦識) 또는 비파가비약남(毘播迦毘若南)이라고도 한다. 이숙보식(異熟報識)과보식(果報識) 또는 이숙심(異熟心)이라고도 한다. 이숙식과 비파가식을 간단히 줄여서 이숙(異熟) 또는 비파가(毘播迦)라고도 한다.《성유식론》 제3권에 따르면, 제8식은 능히 생사를 인기(引起)하는 선업불선업이 다르게[異] 익어서[熟] 나타난 이숙과(異熟果)이기 때문에 이숙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숙식이라는 명칭은 여래지(如來地) 즉 불지(佛地) 즉 부처의 지위를 제외한 범부2승보살의 지위에서만 사용된다. 즉, 부처를 제외한 범부와, 유학무학의 성자 즉 4향4과의 성인과, 연각 또는 독각과, 10지의 보살에 대해서만 사용된다. 여래지에 대해서는 이숙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여래지에서는 이숙무기(異熟無記)의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부처의 상태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 즉 신업어업의업의 3업은 생사윤회의 원인인 번뇌에 물든 업(業) 즉 '불선 혹은 유부무기'에 의해 가려진 업(業)이 아니기 때문에 악업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부처의 제8식은 선업과 악업이 다함께 무르익어서 나타나는 총 결과로서의 고수낙수불고불락수의 3수 또는 낙수고수희수우수사수의 5수의 이숙과 즉 이숙식이 아니다. 달리 말해, 부처의 식(識)은 윤회(즉, 원인면에서 보면 번뇌, 장소면에서 보면 3계, 경지면에서 보면 9지 또는 10지)에 속박된 식(識)이 아니다.이숙식(異熟識)으로서의 제8식은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의 뢰야3위에서는 제2위인 선악업과위에 대해 특히 사용되는 명칭이다. 뢰야3위의 제2위로서의 이숙식은 제1위 아애집장현행위의 번뇌장 즉 아집이 단멸된 상태이므로 오직 유부무기의 소지장 즉 법집만이 존재하는 상태로 불선 즉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선과 유부무기만이 존재하는 상태이다. 즉, 선악업과위에서의 '선악업(善惡業)'과 그에 따른 이숙과는 제1위의 아애집장현행위에서의 '선악업(善惡業)'과는 달리 '선과 유부무기의 업'을 말하고 그에 따른 총체적인 과보로서의 이숙과를 말한다. 그리고 이 상태는, 비록 부처의 경지는 아니지만, 보살 10지에서 제8지인 부동지 보살 이상의 상태이며 성문의 4향4과에서 아라한향과 아라한과에 해당하는 높은 경지로, 무공용의 상태이다. 아타나식(阿陀那識, appropriating consciousness, clinging consciousness)은 산스크리트어 아다나 비즈냐나(ādāna-vijñāna)의 음역어로, 아다나식(阿陀那識)이라고 발음하기도 하고, 타나식(陀那識)이라고도 하고 의역하여 집지식(執持識)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아다나(ādāna)의 번역어인 집지(執持)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붙잡아 유지한다'인데, 《성유식론》 제3권 등에 따르면 아타나식 또는 집지식은 제8식 즉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으로 유루무루의 모든 종자와 신체[色根]를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은 뢰야3위 가운데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이 때의 아타나(阿陀那) 즉 집지(執持)는 오로지 순(純)무루의 종자만을 상속유지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뜻은 오직 불과(佛果) 즉 여래지(如來地) 즉 부처의 경지에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무루청정의 뜻에서는 아타나식은 제8식의 다른 명칭인 무구식(無垢識)과 동의어이다. 한편, 법상종 등의 신역가의 뜻으로 해석하여 아타나식을 제7말나식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다. 또한, 아타나식(阿陀那識)은 상속식(相續識)과 동의어인 것으로도 사용된다. 달리 말해, 상속식은 문맥에 따라 제8식의 동의어로도 또는 제7식의 동의어로도 사용된다. 현장이 번역한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1권에서 세친은 상속식이라는 명칭이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아타나식의 동의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하고 있다.
한편, 아타나식(阿陀那識)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상속식은 《대승기신론》에서 설하는 업식(業識)전식(轉識)현식(現識)지식(智識)상속식(相續識)의 5의(五意) 또는 5식(五識) 가운데 상속식(相續識)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에 관련된 전통적인 권위있는 견해로는 혜원이라는 명칭의 뜻과 매우 유사하지만 제8식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아타나식 즉 집지식과 동의어라고는 해석되는 경우는 없다. 달리 말하면, 5의 가운데 하나로서의 '상속식'이라는 명칭에는 '집지식'이라는 명칭에서 뜻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 또는 성질이 포함되어 있다. 심 심(心, consciousness)은 산스크리트어 치타을 쌓고 일으키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는 심(心)의(意)식(識)이 별도의 법이라고 보아 각각 제8아뢰야식제7말나식제6의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마찬가지로, 《섭대승론석》 제1권과 《성유식론》 제3권에서도 제8식은 갖가지 법으로 인하여 훈습된 종자가 대단히 쌓이고 모인 곳으로 모여진 종자들이 화합하여 하나의 화합상[一合相]을 이루기 때문에 심의 뜻을 종자와 관련시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성유식론》에서는 이러한 집기의 뜻의 심(心)이라는 명칭은 아타나식(阿陀那識)소지의(所知依)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로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처럼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심(心)이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 즉 '종자가 모여진 곳'이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지만, 어떠한 종자가 모여진 곳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 소지의(所知依, basis of acknowledge, basis of the known)는 알아야 할 바의 의지처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깊지만 간략히 말하면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 소지(所知) 즉 알아야 할 바란 염정(染淨), 염(染)과 정(淨), 즉 잡염법과 청정법을 말한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소지을 말한다. 따라서 소지의는 이러한 3가지 성질 또는 모습의 의지처[依] 즉 발동근거로서의 어떤 법, 즉 이들 3가지 모습을 가졌으며 유정의 발전 정도에 따라 이들 3가지 모습 중 어느 하나를 그 유정에게 내보이는 어떤 법을 뜻하고 이것은 곧 제8식이다. 《성유식론》에서는 할 바의 라는 뜻의 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은 아타나식(阿陀那識)심(心)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로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처럼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 즉 할 바의 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지만, 어떠한 앎의 의지처 즉 발동근거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 종자식(種子識)은 제8식이 만유가 발생되어 나오는 씨앗(bīja) 즉 종자(種子)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일체종식(一切種識)일체종자심식(一切種子心識) 또는 일체종(一切種)이라고도 한다. 《성유식론》 제3권에서는 세간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지니기[任持] 때문에 제8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유식론》 제2권에서는 "이것[초능변식, 즉 제8식]이 능히 일체법[諸法]의 종자를 유지해서[執持] 잃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일체종(一切種)이라고 이름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법이 능히 두루 일체법[諸法]의 종자를 지닌다[執持]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유식론》에서는 '세간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는 뜻의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은 아타나식(阿陀那識)심(心)소지의(所知依)라는 명칭들과 마찬가지로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뢰야3위와 관련해서는,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처럼 그 계위가 달라지더라도 종자식(種子識)이라는 명칭의 본질적인 뜻 즉 출세간의 여러 종자를 능히 두루 맡아 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지만, 어떠한 종자를 두루 맡아 지니고 있는 상태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그 뜻에 차별이 있게 된다.
한편, 《섭대승론석》 제2권에 따르면 다음 인용문에서와 같은 이유로 일체종자식 즉 아뢰야식(제8식)과 종자는 별개라거나 별개가 아니라고 어느 한쪽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에 있다. 무구식(無垢識)은 산스크리트어 아말라 비즈냐나(amala-vijñāna)의 번역어로 오염이 없는 식이라는 뜻이며, 음역하여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고도 한다. 청정식(淸淨識) 또는 여래식(如來識)이라고도 한다.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 제8식의 청정해진 모습인지 혹은 본래부터 언제나 청정한 별도의 제9식인지에 대해서는 유식유가행파의 소속 분파 또는 종파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데, 구역가(舊譯家)인 섭론종지론종에서는 별도의 제9식으로서의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며 이에 대해 신역가(新譯家)인 법상종에서는 제8식의 청정해진 모습 즉 여래지에서의 모습을 가리켜 무구식 또는 아마라식이라 한다는 견해를 가진다. "구식(九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013년 4월 15일에 확인."구식(九識): 요약: 불교에서 말하는 9가지의 인식작용. 일부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제시된 인식설(認識說)이다.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의 6식에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더한 것을 말한다.
구사종(俱舍宗) 등 소승불교에서는 6식까지만을 주장하는 데 비하여,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의 유식설에서는 인간의 인식작용을 8가지 범주로 설명하는데, 그 중에서 제8식(第八識)인 아뢰야식을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잠재의식[心王]으로 보았다. 그러나 천태종(天台宗)과 화엄종(華嚴宗) 등에서는 거기에 아마라식인 제9식(第九識)을 상정하여 이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의식이라고 설명하였다. 산스크리트의 아말라(amala)는 형용사로서 ‘티없는’ 또는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무구(無垢) ·이구(離垢) ·정(淨) 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아마라식은 곧 무구식(無垢識)으로 일컬어진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아마라식을 따로 이름하여 맑아진 상태라는 의미로 무구식이라고 한다."법상종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의 제3권에서는 무구식은 여래지에서의 제8식을 가리키는 다른 명칭인데, 가장 청정해서 모든 무루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무구식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구식은 '선하고 청정한 상태의 제8식[善淨第八識]'을 말하는 것이며 이 명칭은 오직 부처 즉 여래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즉 제8식이 소우주(小宇宙)로서 개별 유정 등의 우주만유(宇宙萬有)의 근본뿌리토대 또는 '근원적 원인(cause)'이라는 뜻에서의 명칭이다. 초식(初識, , first moment of consciousness)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은 제8식의 다른 명칭인데 처음 찰나의 식이라고도 하며, 여기에는 2가지 뜻이 있다.
둘째, 우주만물이 생겨나는 최초 1찰나에 오직 제8식만이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이것은 특히 심생멸문 가운데, 원효와 《종경록》의 견해에 따르면, 무명업상에 해당한다. 무명업상은 줄여서 업상(業相)이라고도 하고 업식(業識)이라고도 한다. 《대승기신론》의 무명업상은 《능가경》에서 설하는 진상(眞相)업상(業相)전상(轉相)의 3상 가운데 업상(業相)에 해당한다. 한편, 초찰나식(初剎那識)이라는 낱말은 후찰나식(後剎那識)에 상대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의 초찰나식은 전찰나(前刹那)의 식 즉 전찰나의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초찰나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초능변식(初能變識) 또는 줄여서 초능변(初能變, , first subjective change)은 제1능변식(第一能變) 또는 제1능변(第一能變)이라고도 하며, 제8식의 다른 명칭이다. 능변(能變)은 산스크리트어 파리나마(pariṇāma)의 번역어로, 파리나마는 다음의 뜻을 가지며, 한자어 능변(能變)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변화시킬 수 있음'이다. 변화(change), 변경(alteration), 변형(transformation), 발달(development), 진화(evolution) 익음(ripeness), 성숙(maturity) 음식의 변질(alteration of food), 소화(digestion) 시듦(withering), (색이) 점점 희미해짐 또는 바램(fading) (시간의) 경과(lapse [of time]) (나이가 들어) 쇠퇴함(decline [of age]), 늙어감(growing old) 결과(result, consequence), 결말(issue, end) 유식학에서는 만법이라 한다. 3능변은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 즉 어떠한 핵심적인 작용을 하는가를 드러내는 명칭을 사용하여 이숙능변(異熟能變)사량능변(思量能變)요경능변(了境能變)이라고 하며, 각각 제1능변제2능변제3능변에 해당한다. 즉, 제1능변인 제8아뢰야식은 이숙(異熟)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식이며, 제2능변인 제7말나식은 사량(思量)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식이며, 제3능변인 전6식은 '대상을 요별[了境]'하는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식이다. 이 가운데 제3능변인 전6식에도 사량의 작용이 있지만, 무상정멸진정 등의 무심(無心) 즉 5위무심(五位無心)의 상태에서는 단절이 있으므로, 전6식이 항상 현행하지는 않기 때문에 핵심적인 작용으로 삼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제8식 즉 초능변은 이숙과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제8식 즉 초능변은 인능변과 과능변의 뜻을 모두 지니며, 제7식과 전6식 즉 제2능변과 제3능변은 과능변의 뜻만을 지닌다.
제1식(第一識, , supreme consciousness, prime mind, supreme mind)은 전5식제6의식제7말나식제8아뢰야식의 순서로 헤아리는 것과는 반대로, 근본[本]에서 지말[末]로 헤아릴 경우 제8아뢰야식이 제일 처음의 식이 되는 것을 말한다. 식주(識主, , mind )는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 식심의 주인[識心之主]을 뜻한다. 식심(識心)은 6식 또는 8식, 즉 심왕(心王)을 말하는데,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는 8식설을 가지므로 대승불교에서 식심(識心)은 8식을 뜻한다. 따라서, 식주(識主)는 8식의 주인[主], 주인공[主] 또는 왕(王)으로서의 제8식을 말한다. 즉, 제8식의 다른 명칭으로서의 심(心) 즉 마음[心, mind]을 말한다. 《종경록》 제47권에 따르면, 식주(識主)는 특히 제8진식(第八眞識), 즉 청정한 상태의 제8식, 즉 전의(轉依)가 성취된 상태의 제8식, 즉 대원경지(大圓鏡智)로서의 제8식, 즉 모든 무루법의 의지처라는 뜻의 무구식(無垢識)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심소법)을 자재(自在)로이 부리는 대왕'이라는 뜻에서의 심왕(心王)을 뜻한다. 즉, 식주(識主)는 선종(禪宗)에서 '평상심이 곧 도이다[平常心是道]'라고 할 때의 평상심(平常心) 즉 마음[心, mind]을 말한다.
중국 불교의 지론종(地論宗)은 북위(北魏)의 선무제의 명에 따라 늑나마제(勒那摩提)보리류지(菩提流支)불타선다(佛陀扇多)가 508년부터 512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한, 세친의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소의 논서로 하여 성립된 종파이다. 종파의 성립 후 늑나마제의 제자와 보리류지의 제자간에 견해 차이가 생겨서 상주남도파이 이끌었는데, 남도파가 지론종의 정통파가 되었으며 비록 북도파도 일정 정도 융성했지만 남도파가 북도파에 비해 훨씬 더 융성하였다. 지론종이 남도파와 북도파로 나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8아리야식이라고 보았다.보다 구체적으로는, 남도파와 북도파의 견해 차이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학설에는 크게 다음의 2가지가 있다.첫 번째 학설에 따르면, 남도파는 진여의지설(眞如依持說)을 가졌고 북도파는 리야의지설(梨耶依持說)을 가졌다. 즉, 남도파는 제8아리야식을 진여라고 보았으며 진여로서의 제8아리야식을 근거로 하여 현상이 연기한다는 진여연기설(眞如緣起說)을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북도파는 제8아리야식을 망식(妄識)이라고 보았으며 망식으로서의 제8아리야식을 근거로 하여 현상이 연기한다는 리야연기설(梨耶緣起說)을 주장하였다.두 번째 학설에 따르면, 남도파는 8식건립설(八識建立說)을 가졌고 북도파는 9식건립설(九識建立說)을 가졌다. 즉, 남도파는 제8아리야식을 청정식[淨識]으로 보는 8식의 체계를 세웠으며, 북도파는 제8아리야식을 망식(妄識)으로 보고 별도로 청정식[淨識] 즉 진여로서의 제9식을 세운 진망화합의 9식(眞妄和合之九識)을 세웠다. 그러나 북도파는 제9식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직 제9식을 아마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이라고 칭하지는 않은 상태였다.이상의 두 학설 모두의 경우에서, 북도파의 교학은 이후에 나타난 섭론종의 교학과 매우 유사하여 북도파와 섭론종은 서로 쉽게 화합되면서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 수나라 시대 초기에 북도파는 사라지고 섭론종만이 남게 되었고, 지론종으로는 남도파만이 남게 되었다. 그 후 남도파는 당나라 시대 초기에 세력 약화와 교학의 유사성으로 인해 섭론종과 화엄종에 흡수되었다. 미륵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과를 구별하였다." 섭론종은 진제 등의 공역본이 있는데, 섭론종은 진제의 번역을 바른 소의 논서로 삼는다.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섭론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섭론종: 攝論宗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代乘論)>을 연구·강술하는 학파인데 실제로는 이에 덧붙여 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 의한 것이다. 더욱이 상기한 양론은 적어도 3회 이상이나 한역되었는데 섭론종(攝論宗)으로서의 진체(眞諦)의 번역에 바탕은 둔 것이다. 즉 <섭대승론>은 불타선다(佛陀扇多)가 한 번 번역한 일이 있으나, 역(譯)의 난해와 석(釋)이 서로 맞지 아니한 까닭에 유행하지 못하다가 진체(眞諦)가 이를 번역하게 되자 갑자기 일파를 이루게 되었다. 진체(眞諦, 499∼569)는 원명을 파라마르타(Paramartha)라고 하며, 서북 인도의 브라만 출신이었는데 548년 다수의 범어불전(梵語佛典)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서 건강(建康:南京)에 상륙하여 양(梁)나라 말기 전란(戰亂)의 와중에서 각지로 전전하면서 563년 <섭대승론> 3권, <섭대승론석> 15권을 번역하고, <의소(義疏)> 8권을 만들어 인도 유식파(唯識派)의 무착(無着)·세친(世親)의 학설을 체계화하여 수입·소개하였다. 특히 이 종(宗)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순정(純淨)한 곳을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 칭하고, 제9식(第九識)을 세운 곳에 특징이 있다.
수(隋)에서 초당(初唐)에 걸쳐 화북(華北)에서 유통했으나, 현장(玄奬)의 법상종(法相宗)이 일어나 그의 유식설(唯識說)이 비판되었기 때문에 급속히 쇠퇴했다." 섭론종에서는 제8식을 망식(妄識) 즉 번뇌망상(煩惱妄想)에 의해 더럽혀진 식(識)이라고 보았다.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 불교의 종파 > 지론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지론종: 地論宗 화엄부의 법상종이 일어나 섭론종의 유식설이 비판되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외계의 일체를 식의 현현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과를 구별하였다." 《성유식론》은 이 계통의 교학을 위주로 편찬된 논서이다.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일곱 가지 식)이 생기며, 이것이 주관과 객관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하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되고 있는 상태를 아뢰야식 연기(阿賴耶識緣起) 또는 아뢰야 연기(阿賴耶緣起)라고 한다.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인도 불교의 유식학의 총 3기 가운제 제2기의 논사인 세친의 《유식삼십송》가운데 초능변식(初能變識)으로서의 아뢰야식의 상(相) 즉 초능변식으로서의 제8식의 본질 또는 성질을 밝히는 게송으로 아래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제2 4송이 있다.《성유식론》은 인도 불교의 유식학의 제3기를 이루는 논사들인 유식 10대 논사들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들을 현장의 학설을 위주로 하여 번역편찬한 것인데, 《성유식론》에서는 이 게송들을 제2 4권에 걸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해석체계를 전통적으로 8단 10의문(八段十義門)이라고 한다. 따라서 8단 10의문에 의한 해석은 인도 불교 유식학의 제3기의 유식 10대 논사들이 아뢰야식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였는가를 보여주는데, 특히 호법 계통의 유상유식파의 견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유식파의 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유식파의 계보: 唯識派-系譜 유식설>과 함께 훗날 불교 연구의 기초학으로서 중시되었다."8단 10의문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 3상문(三相門) ① 자상문(自相門) ② 과상문(果相門) ③ 인상문(因相門) 제2단: 소연행상문(所緣行相門) ④ 소연문(所緣門) ⑤ 행상문(行相門) 제3단: ⑥ 상응문(相應門) 제4단: ⑦ 수구문(受俱門) 제5단: ⑧ 3성문(三性門) 제6단: 심소례동문(心所例同門) 제7단: ⑨ 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 제8단: ⑩ 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 유가행파 유식설 여래장 사상 여래장 연기 8식과 아뢰야식 뢰야3상: 자상과상인상 3성: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 말나식의 4번뇌: 아치아견아만아애 번뇌장과 소지장 아집과 법집 아공와 법공, 인무아와 법무아 3계 9지 부파불교의 수행계위 3도: 견도수도무학도 5위: 자량위가행위견도위수도위무학위 9지 대승불교의 수행계위 인위와 과위 뢰야3위: 아애집장현행위선악업과위상속집지위 5위: 자량위가행위통달위수습위구경위 10지
<반야심경>
반야경전의 중심사상을 270자로 함축하여 서술한 불교경전. | 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그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심(心)’은 일반적으로 심장(心臟)으로 번역되는데, 이 경전이 크고 넓은 반야계(般若系) 여러 경전의 정수를 뽑아내어 응축한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반야심경』은 수백 년에 걸쳐서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7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儀式) 때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 『반야심경』의 중심 사상은 공(空)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주체·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현장(玄奘)의 것이 가장 많이 읽힌다.
원효성사 眞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