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6QnX3ASnoM?si=_GodSsQ728WM9SNU
16. 범어사에 선원을 시설한 계의서(契誼序)
석가세존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시어 차례로 서로 전하였으니 그 도가 바로 끊음과 원래 오묘하고 아득한 이치가 저 백관의 대신과 만승의 천자와 같아서 가히 삼승의 교법으로 비유할 수 없으나 방편과 공력의 묘리가 갖추어 있음이라 마치 신선의 환단을 쓰면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과 같도다.
만일 능히 착실하게 참구하여 착실하게 깨달아 한 생각의 빛을 돌이키면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니 어찌 삼아승지겁의 공력을 허비하리오.
비록 착실하게 참구하지 못하여 혼침과 망상에 혼돈되더라도 또한 저 인과의 행문에 들어감이 아니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대장교(一代藏敎) 가운데 절반가량 원만하지 못한 것은 방편 설로서 실상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시니 그 반이란 방편설이라 의지할 것이 못 되니 그 이치가 명백하도다.
이제 수행자들을 보건대 모두가 방편설에 미혹되어 일생을 그르치니 슬프다 예전에 고야선인(姑射仙人)이 “그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함에 만물이 병들지 않았다.” 하였고 회남왕안(淮南王安)이 신선이 됨에 닭과 개가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하니 닭과 개도 그 도의 교화를 입었거든 하물며 만물 중에 가장 신령한 자일까 보냐. 신선도 또한 물건으로 병들지 않게 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무상정도(無上正道)일까 보냐.
그러므로 이르기를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를 이룰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사람과 하늘의 복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참계를 시설해서 함께 최상의 인연을 맺어 불생불멸의 나라에 이르게 하노라.
무릇 불생불멸의 나라라 함은 어떠한 곳인가?
“청산은 높이 솟고 백해는 창창하며 조각구름은 떠 있고 솔바람은 소슬하며 어느 것이 자기의 광명 아님이 없어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둘리었으며 예와 이제를 꿰뚫었도다. 비록 묘용(妙用)이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으나 그 경고함도 능히 금강과 같도다.” 하였다.
그래서 고덕이 이르기를 “반야(般若)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성불의 원력이 있는 이는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큰 원력을 발할지니라.
17 해인사 수선사 방함록 서
해인사 수선사의 방암록을 인용하여 글을 쓰는데 방함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뒷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뒷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몸은 물거품과 같고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움이니 무상을 경책하고 부지런히 정진할 줄 아는 것은 누구인가? 법의 성품이 본래 공하고 지혜의 해는 길이 밝아서 능히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또한 누구인가?
뒷사람이 이제 사람을 보는 것이 마치 이제 사람이 옛사람을 보는 것과 같음이요 뒷사람이 뒷사람을 보는 것이 또한 이제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분명히 지적할 수 있음이로다. 슬프다 이 수선사에 안거하는 이는 가히 거울삼아 경계할 진저.
기해년 4월 여름 안거 시작하던 날
호서로 돌아가는 병든 중
경허 성우는 삼과 기록한다
18 방함록ㆍ정법안장 서
규봉선사가 이르기를 “부처님 경전은 대천세계(大千世界) 팔부(八部) 대중을 위하여 활짝 열어놓음이요 선의 게송은 간략히 요점만 잡아 이곳의 선종 기틀에 취향(就向)한 것이다.” 하였다.
대중에게 벌려놓은즉 망망대해 같아서 의지하기 어렵고 기틀에 취향한즉 지적하기가 용이하다. 지적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에 생각과 뜻을 같이한 행염선화(行染禪和)와 함께 서집어록(書集語錄) 10편과 염송(拈頌)가운데 모든 도사(導師)들의 직절법문(直截法門)을 추려 모아서 다섯 권의 한질 책을 엮어서 도에 들어가는 정안(正眼)을 삼을까 한다.
비록 외마디 말이라도 간절히 힘쓰기를 권하고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성불(成佛)하는 길머리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일러줌이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스럽거나 가리움이 없으니 만약 이 글을 연구하고 감상해서 마음 근원을 반조하는 공부를 온전히 정밀하게 한다면 비록 장교(藏敎)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장교가 여기에 있음이니라. 또 그뿐만 아니라 저 수행문(修行門)까지도 지적하여 놓았으니 이것이 망망해서 의지하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저 도에 뜻을 둔 이는 정신 차려 살펴볼지어다.
그러나 베껴쓰는 과정에서 오자와 탈자가 많이 생겼고 또 글귀를 읽음에 토를 잘못 달음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본뜻을 잃게 함이 있으니 재주가 있던 없던 자세히 해야 되겠다. 이것을 베껴서 전할 사람은 마땅히 십분 주의하여 베낀 뒤에 재삼 교정을 보아서 틀리지 않게 하여 저 중생계에 널리 보시하면 광명종자를 맺어서 성불할 수 있는 바른 인연을 잃지 않으리니 깊은 원력은 여기에 있음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