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 먹는 아침
참으로 묘하고도 웃음이 나오는 일이다. 어쩌면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는 콩밥을 했다. 게다가 현미를 절반도 넘게 섞은 밥은 마치 보리밥처럼이나 깔깔했다. 가끔씩 그 콩은 감자나 고구마로 대체되기도 한다. 아이들과 나는 거의 매일 은근히 그것이 탐탁하지 않은 내색을 하건만 아내의 의지는 단호하다. 이른바 가족을 위한 정성어린 건강식이기 때문이란다.
나와 아내. 나와 다르게 아내는 어릴 적에 그런 밥들을 먹어보지 못한 대도시 태생이다.
결혼 초 언젠가 보리밥집에서 외식을 한 적이 있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판에 적힌 ‘보리밥’이라는 이름에 대한 일종의 막연한 향수 같은 것이 나를 이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는 보리밥집에 가지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솔직히 참으로 맛이 없었다. 이미 내 자신도 그 유년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도피해있구나 하는 씁쓸함이 고 다글다글한 보리 알갱이처럼 깔깔하게 씹혔다. 더구나 마지못해 겨우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어떻게 이런 걸 먹고 살았느냐는 식의 뜨악한 표정으로 깨작거리던 아내의 모습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대 차이를 느낄 만큼 나이가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제적 환경의 차이가 컸던 것이 탓이라면 탓이다. 연령으로는 비슷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태일 정도로 우리의 성장 환경 차이는 컸다.
얼마 전 개봉되어 수많은 관객들을 감동시킨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 도시 소년과 시골 외할머니와의 심리적 거리만큼이나 정서적으로는 우리 사이도 멀다면 먼 사이다. 아내는 그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 위에 역설적으로 포개어지던 노년기 삶의 쓸쓸함에 대한 동정심을 추스르느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나는 군데군데 널장 빠져 주저앉은 툇마루 아래 덩그마니 놓인 검정고무신 속에 지금도 온전히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유년의 마알간 햇살이 불현듯 그리워져 콧날이 찡해왔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또래들의 평균적인 환경에 비해 내 유년의 시골 고향은 좀 유별나게 궁핍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내게 신기해하는 것이 많다. 요즘 시쳇말로 한다면 당시에는 최고 유명메이커(상표)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 왕자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일이며, 큰 보자기에 책과 필통과 도시락을 가지런히 포개어 둘둘 말아 싸가지고 한쪽 어깨에서 겨드랑 밑으로 비스듬히 걸쳐 둘러메고 다니던 책보며, 거무스름한 보리밥에 삶은 감자나 고구마를 으깨어 섞은 감자밥과 고구마밥 등의 얘기를 아내는 신기해한다. 특히, 생일이 되면 보리밥을 하는 가마솥 한 귀퉁이에 쌀 한줌을 안쳐 어머니께서 사발에 고봉으로 퍼주신 쌀밥을 다른 형제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아침에 절반을 먹고 나머지는 다시 가마솥에 넣어두었다가 점심에 꺼내 먹던 이야기는 아내가 가장 신기해하는 일이다(아, 동생의 그 어느 생일이었던가. 나는 참지 못하고 기어이 점심밥 도둑질을 했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아내가 신기해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저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에 대하여 내가 세세히 반갑게 아는 체를 할 때마다 아내는 무척 신기해한다. 멀리서도 그것이 보리밭인지 감자밭인지, 배꽃인지 복숭아꽃인지, 아카시아나무인지 참나무인지 등을 어찌 아느냐는 것이다. 어찌 알다니, 그냥 척 보면 아는 것이지. 내 대답은 항상 그렇게 심드렁한 듯 했지만, 모처럼 아내에게 기를 펴고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신기함은 사실 동정에 가까운 측은함의 다른 표현일 것이지만, 이 후자의 경우만큼은 확실히 동경과 부러움에서 비롯된 신기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아내가 시골에서 그곳을 다닌 내게 유일하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결국은 아내를 설득할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종종 이른바 ‘도시 교육’에 대한 ‘시골 교육’의 우월성을 신념처럼 내세우곤 한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최소한 초등학교만이라도 시골에서 다니게 하고 싶다.
요즘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이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는 인스턴트식품과 육류의 유해성을 최근 어느 지인 의사에게서 들은 아내는 부랴부랴 ‘생협’에 가입하고 채소와 곡류 위주의 식단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다. 각종 성인병이 아이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특히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터이지만,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의 변화에는 왠지 웃음이 나온다. 지금 아내가 끼니마다 어렵게 구해 소중히 밥상에 올리는 이른바 건강식품이라는 것들은 이미 내가 유년기에 질리도록 먹었던 음식들이다. 요즘 무공해 채소니 유기농 잡곡이니 해서 일반 것들보다 거의 갑절이나 비싸 서민들이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든 그것들은 변변히 먹을 게 없던 시절에 마지못해 먹던 가난한 이들의 양식이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에도 콩밥과 김치가 싫은 아이들이 투정을 한다. 나 또한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투정을 부리다가 혼이 나곤 했던 어릴 적 내 모습을 팍팍하게 씹는다.
- (『삶이 보이는 창』, 2003. 8․9월호. 통권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