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4/8) 위아래 밭의 경계지점 돌담 위에, 뱀이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2020.6.5.금)
여기 이 자리에 뱀이 가로로 걸쳐 있었어요. 검은 나이롱 그물망 사이에 뱀이 놓여 있었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뱀 허리에 엉켜 붙어 3일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다, 아입니까.
황 시니어는 10여 일이 지난 지금도 못내 안됐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슬픈 얼굴을 지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빨리 구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요, 했다.
지가 좀 놀랐지만, 가까이 가서, “왜 이렇게 있나, 어디로 가든지 가야지!” “빨리 가, 여기 있으면 안 돼!” 하면서 말을 해도 그냥 있었어요. ‘이상도 하다’ 는 생각이 들었지만, 밭 매는 것이 급해, ‘좀 있으면 어디로 가겠지“하면서 일을 했지요.
집에 가려고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어요. “빨리 가야지, 왜 아직도 있어!” “빨리 가!” 말을 걸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요. ‘뱀이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는 데’, 왜 그럴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 왔고, 내일은 갔겠지 하면서 다음날에 가 봤는데도, 맹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내 그랬지, “아직도 안 갔어? 왜 안가여?” 한 소리하고는 밭을 맸고, 그 다음 날 3일 째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대로 있었어요. 정말 이상한 뱀이었어요.
집에 와서 왜 자가 안 가고 그냥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날이 뱀을 본지 꼭 4일 째가 되는 날이거든요. 죽어서 못 가는 게 아닌가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까 죽진 않은 것 같아요. 머리와 꼬리만 밖으로 나와 있고, 가운데는 나이롱 그물망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어요.
가까이 가서 검은 나이롱 그물망을 들쳐봤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몰랐지만, 그랬어요. 들쳐보니까,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굵고 긴 뱀의 허리에 나이롱 망이 엉켜 챙챙 감겨있었고, 허리가 잘록하게 거의 끊어질 정도였어요.
(사진 5/8) 이런 나이롱 그물망은 햇볕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땅꾼은 뱀 잡을 때 쓴다고 한다. 촘촘한 그물이라 통과하지 못한 채, 벗어나려고 움직이다 보니까, 엉켜서 꼼짝도 못하고 3일 동안이나 있었던 모양이다. (2020.6.5.금)
그 뱀이 그물망을 벗어나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으면 허리가 그렇게 됐을까요. 껍질이 벗겨져 상처가 난 게 보였어요. 그땐 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어째든동, 이 뱀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황 시니어의 용기가 대단했다. 보통은 뱀만 봐도 화들짝 놀라 자빠질 텐데, 그리고, 뱀 옆에도 가지 않고, 뱀한테 빨리 가라고 대화도 하진 않을 거고, 그저 안보고 내빼려고만 할 텐데,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뱀 가까이 가서 그 엉킨 나이롱 망을 잘라 내야 하는 데, 뭐 끊을 칼이 없잖아요. 다행히 밭가에 둔 낫과 호미 등 농기구 통이 생각났어요. 낫을 가지고 와서, 마음을 다잡고, 꼬리 쪽 부분부터 한 가닥씩 잘라나가기 시작했지요. 날은 더운데 꾸부려 끙끙 대니까 땀도 나고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꽤 많이 잘랐을 때 뱀이 그 느낌을 알았는지 앞으로 가려고 움직이데요.
아직 더 잘라야 하는데, 안되겠다 싶어, 엉킨 나이롱 망의 다른 부분을 발로 누르고, 머리 쪽 가까이 있는 나이롱을 끊어갔지요. 뱀도 기운이 없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 주데요. 몇 시간을 끊느라고 애를 쓴 보람이 있어 다 끊었어요. 홀가분해진 뱀은 상처 난 채로 스르르 숲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렇게 간 뱀 생각이 집에 가서도 계속 났어요. ‘그 뱀이 죽었으면 어쩌나’, ‘껍질이 다 벗겨지고, 살이 보였는데,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며칠 동안 걱정이 됐어요. 그러면서, 황 시니어는 이런 말씀도 했다.
“말 못하는 뱀이, 꿈속에서라도 구해달라고 현몽했으면, 벌써 구해주었을 텐데, 4일 째가 되어 도와준 것이 못내 미안했어요.”
‘마음씨도 고와라! 이렇게 착한 사람도 다 있구나!’
“아니라요, 할머니 덕분에 그 뱀은 살았어요. 할머니는 복 받을 겁니다. 생명을 살렸는데, 마음을 좋게 쓰시니까 자식들도 다 잘 될 거라고, 칭찬을 해 드렸다.
(사진 6/8) 잡초를 제거한 황 시니어의 도라지 밭이 깔끔하다. (2020.6.5.금)
(사진 7/8) 산비탈의 자갈을 골라내고 만든 밭뙈기에 심은 정구지가 잘 자라고 있다. (2020.6.5.금)
(사진 8/8) 위의 도라지 밭과 아래 정구지 밭이 황 시니어의 밭이다. (2020.6.5.금)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황 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우냐! 생명을 구하려는 그 마음씨가 착하고 예뻐 이렇게라도 소개하고 싶었다. |
끝. 2020.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