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凡 金九先生 靈前에
義雨洽足 三千里彊土하고
德雨薰薰 三千萬同胞하도다.
嗚呼萬年大計 不歸虛이니
伏願兜率天宮 魂淸飛어라
* 낱자 공부
洽젖을 흡, 윤택할 흡, 두루 흡, 疆굳셀 강, 힘쓸 강, 薰향기 훈, 훈훈할 훈
嗚탄식할 오, 呼부를 호, 兜투구 두, 魂넋 혼,
踏밟을 답, 胡오랑캐 호, 亂어지러울 난, 跡자취 적, 遂드디어 수, 이룰 수,
程법 정, 길 정
* 해 석
의로운 비는 삼천리 강토에 흡족하고
덕스러운 비는 삼천만 동포에 훈훈히 적시우도다
오호라 만년 대계가 헛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원하옵건데 도솔천궁에 머무시어 혼을 청정하게 날리소서.
* 참고 자료
踏雪野中去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
이 좌우명은 서산대사(1520~1604)의 선시(禪詩)에서
유래된 것인데,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경우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호 백범(白凡), 아명 창암(昌岩), 본명 창수(昌洙)였으나 구(九)로 개명, 법명 원종(圓宗), 초호 연하(蓮下)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15세 때 한학자 정문재(鄭文哉)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893년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접주(接主)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八峯都所接主)에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이듬해 귀국,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 쓰치다[土田讓亮]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다. 복역 중 1898년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승려가 되었다가 이듬해 환속(還俗), 1903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