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활쏘기의 사법을 묘사, 설명하는 말 중에 이른바 ‘학무(鶴舞)형’ 사법이란 게 있습니다. 학춤을 닮은 사법이라는 뜻이지요. 이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오래전부터 활판에 전해져서 꽤 널리 알려져 있는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아마 전통 사법에 관심 있는 활꾼들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특히 아직도 늘 우리 전통 사법의 종가쯤으로 자처하는 온깍지 사법 문파에서도, 자신들의 사법이 ‘학무형 사법’이라 종종 이야기해 왔지요.
그런데, 이 학무형 사법이 도대체 정말로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고 봅니다. 전통 사법을 구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제가 볼 땐 그다지 타당성 있는 근거 없이) 자기들의 사법과 궁체가 학춤을 닮았다고 얘기들을 하니까요. 그럼 먼저, 이 학춤이란 게 뭔지부터 잠시 살펴 볼까요? 경남 동래 지역에서 발전, 전승되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춤이자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는 학춤 동영상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6L2eIuA
가장 눈에 띄는 게 뭐라고 보셨습니까? 예, 양팔을 크게 위에서 아래로 흔드는 것이지요(특히 시작 부분, 9분30초 전후 클라이막스 대목, 끝나는 부분). 껑충껑충 뛰면서 머리 높이 이상 팔을 들었다가 거의 옆구리까지 내려 붙이는 모습입니다. 물론, 학이 높은 하늘에서 유영(遊泳)을 하면서 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나 땅에 내려 앉아 두리번거리는 모습 등을 형상화한 것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동작은 역시 어깨 위에서 옆구리까지 양팔이 힘차게 내려가는 동작입니다. 아마도 이륙 직후나 착륙 직전의 동작이겠지요. 활쏘기에서 굳이 학춤을 끌어와 사법(궁체)을 묘사한다면 당연히 그 커다랗고 특징적인 동작을 보고 그리하지 않았겠습니까?
자, 그럼 다음 주소에 있는 영상을 한번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gb9xVd9oog
올리신 분이 전통 학무형이라 제목을 붙여 놓았지만, 과연 학춤과 얼마나 닮았는지요? 영상을 보면 쏘고 나서 양팔을 천천히 조금 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인데, 제가 보긴 너무 작위적이네요. 특히 뒷팔은 전형적인 ‘두벌뒤’(<조선의 궁술>에 일종의 활병-잘못된 쏘임-으로 말하고 있는 동작으로, 시위를 놓으면서 동시에가 아니라 먼저 놓고 나서 좀 뒤에 깍지손을 뒤로 뻗는 움직임을 말함)가 아니겠습니까.
이번엔 국궁 전통사법이라는 제목을 붙여 올린 온깍지 문파의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srT1cRV1uA
게시자는 독일에 사시는 열정이 많은 한국인 활꾼으로, 비교적 최근에 (정진명 접장님이 주도하는) 온깍지 활쏘기 학교에서 활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온깍지 사법이야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니 그리 새로울 건 없구요, 가장 큰 특징은 앞손은 (약간 밀거나 바깥쪽으로 빠지는 사례도 있지만) 되도록 고정하고 뒷손을 크게 뿌리는 동작이지요. 깍지손이 충분히 높지 않다 보니 옆으로 휘둘러지는 벗깍지에 가까운 궁체를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분도 그렇지요. 온깍지 쪽에서는 아마도 발시 후에 뒷손이 크게 뿌려지면서 양팔이 펴져 있는 모습(혹은 펴져 있다가 천천히 내리는 모습?)을 두고 학무형이라 주장하시는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학춤과 많이 닮았나요?
학춤 동영상을 보셨으면 단박에 아시겠지만 학춤에서 날개를 형상화한 양팔은 언제나 함께 움직입니다. 그건 실제 새의 움직임을 보아도 그렇지요.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일 때, 땅에 내려 앉기 위해 날개를 접을 때, 언제나 날개는 같은 힘으로 동시에 움직이지요. 한쪽 날개만 움직이는 새 보셨습니까? 한쪽 날개뼈 부러진 새 말구요..^^
온깍지 사법의 동작은 무엇보다 뒷팔만 크게 움직이지요. 저는 이 동작이 실제 학과도, 학의 여러 동작을 형상화한 학춤의 동작과도 비슷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양팔을 뻗친 채로 있다가 함께 천천히 내리면서 본래대로 돌아오는 동작이 학을 닮은 거 아니냐구요? 모든 사법의 핵심은 만작과 발시 동작이지요. 발시 후 천천히 원래 자세로 돌아오는 동작을 두고 사법의 이름과 연관짓는 건 아무래도 근거가 약하지 않겠습니까. 또 학춤의 핵심 동작을 보면 양팔을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지, 천천히 내리진 않지요. 실제 학도 날개를 펄럭이거나 접을 때 그렇게 힘차게 움직이지, 온깍지 사법에서 양팔을 거둘 때처럼 천천히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이제 우리 카페에 있는 한산님의 궁체 동영상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지요. http://cafe.daum.net/CHOSUNarchery/oOfe/3 어떻습니까?
결론은, 빠르고 힘찬 별절 궁체(수직 고자채기)로 이루어진 철전 사법이야말로 바로 진짜 학무형 사법이라는 것입니다. 철전 사법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야 비슷한 궁체를 대충 끼어 맞춰 이런 게 학무형 사법이다, 라고 아무나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옛분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양팔을 크게 위에서 아래로 뿌리는 바로 그 활쏘기와 춤 동작을 연결시켜 ‘학무형 사법’이라 불렀으리라 저는 강력히 추론합니다. 곧, 이른바 별절 궁체 또는 철전 사법이야말로, 조상님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일명 ‘학무형’이라고도 불린 진정한 전통 사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인 것이지요. 다른 활꾼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첫댓글 온깍지 사법을 구사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사법 모양을
학무형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온깍지 사법의 발시 동작은 줌손을 굳건하게 고정하되
깍지손은 시원스럽고 힘차게 뿌리는 발여호미 발시법이지요.
즉 前强後柔(전강후유)의 剛柔兼備(강유겸비)의 사법이라 하겠지요.
학무형이란 아마도 문사(文士) 사예인(射藝人)들이 만들어 낸 고상한 말일 뿐...
아무리 활이 수신을 위한 도구라 말할지라도
활은 <극력견전>이 가장 기본이고,
따라서 힘차고 강인하며 과감한 동작이 그 안에 없으면,
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따라서 학무형이라는 말은 무사의 활쏘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발여호미>나 <극력견전>, <절파절현>과 같은
무예에 합당한 용어가 어울릴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철전사법은 前後雙剛(전후쌍강)을 동시에 하되
內柔(내유)의 氣(기)로 外剛(외강)의 기력을 이끄는 사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즉 內柔外剛(내유외강)의 사법이라고 저는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즉, 내외의 강유를 조화스럽게 이룩한 사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전사법은 매우 귀중한 이치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文士(문사)는 外柔內剛(외유내강)해야 하고,
武士(무사)는 外剛內柔(외강내유)해야 함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지요.
활 또한 이에 부합하게 강함 속에 부드러움이 숨겨져 있음이
곧 무사의 정신과 그 이치를 함께 한다고 보겠습니다.
철전 사법이 바로 外剛內柔(외강내유)의 사법이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 활은 그 쏘임이 아무리 부드럽다고 할지라도
극력견전하여 힘차고 과감하게 발시하는 외면적 동작과 함께
내면적으로 지극히 부드럽고 정밀한 무사의 정신이 없으면 안될 것입니다.
김대표님의 철전사법의 정체성 현양 노력에 응원의 한표를 던집니다.
온깍지문파에서 자신들의 사법을 발여호미 또는 학무형이라고도 하는 것은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온깍지궁사회 옛 카페에서 '학무형'을 검색하면 여러 관련글이 나옵니다).
"성락인 선생의 궁체 역시 그의 선친과 마찬가지로 학이 날갯짓을 하는 것과 같은 발여호미형 궁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귓볼에 걸린 살대의 높이하며 적당히 엎어진 중구미, 그리고 줌을 움켜쥔 손가락의 모양까지 학무형의 완벽한 모습이다. 숯불을 집은 듯이 뿌리는 뒷손의 마지막 처리까지도 "조선의 궁술"에 나온 설명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서울 황학정의 정통 궁체이다." - 온깍지 궁사회 카페, '성낙인'에 대한 글 중에서
"실제로 온깍지 궁체를 학이 춤춘다는 뜻의 학무형이라고도 합니다. 학의 우아한 모습을 닮으려고 한 한량들의 바람이 투영된 것입니다." - 정진명, <활쏘기의 지름길>(2018), 177쪽
이 학무형이란 말이 언제부터 쓰인 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통사법을 표현하는 말로 종종 쓰이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철전사법을 굳이 꼭 학무형으로 연결시켜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고문님 말씀처럼 철전사법은 외강내유한 무장들의 사법이라 할 수 있으니
야리야리한(?) 학의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주목한 부분은, 진짜 학춤을 닮은 사법이라면 온깍지처럼 한쪽 팔만 휘두르는 동작이나 펼쳐진 양팔을 천천히 거두는 동작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학춤의 가장 특징적인 동작 곧 양팔을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동작과 비슷한 별절 궁체(철전사법)야말로 그것이 아니겠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고문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철전사법에는 아무래도 <발여호미>나 <극력견전>, <절파절현>과 같은 용어가 훨씬 어울릴 것이란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학무형'을 전통사법을 가리키는 대표적 이미지(용어)로 설정하여, 진짜 학춤과도 별로 닮지 않은 온깍지 사법을 전통사법이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깊이 있고 애정 어린 의견 댓글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한 말씀만 덧붙입니다. 제가 어린 학생들에게 가끔 활쏘기를 가르칠 기회가 있을 때, 우리 활쏘기를 하는 가장 큰 세 가지 목표(의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부드럽게' '강하게' 단련하기 위함이라구요..^^
좋습니다.
우리의 국궁 사법에 학무형이라는 말을 올리는 것 자체에 대해서
나는 탐탁하지가 않습니다.
학무형 운운 하는 것은 무사의 사예가 아닌 문사들의 어줍잖은 말장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문사가 무의 지경에 들어와 무의 정신을 희롱하는 거라 보는 것이지요.
다시금 중언부언하지마는 활이 비록 수신의 도로 사용된다고 할지라도
극력견전은 기본입니다.
활을 가지고 거문고를 타는 짓을 하거나, 학춤을 추는 짓을 하는 것으로
활쏘기를 미화하는 것은 무의 정신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극력견전>의 의미는
<있는 힘을 다하여 화살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화살을 보내는 데 뜻이 있어야지
어찌 학이 춤추는 짓거리 따위를 논한다는 말입니까?
활을 가지고 학춤을 추느니 무용학원에 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학은 문의 상징이고 호랑이는 무의 상징입니다.
어찌 활쏘기에 문의 상징인 학을 끌어다가 이상적 표준으로 삼는단 말입니까?
이는 절대 안될 말입니다.
어줍잖은 문생들이 활터에 기생을 불러다 춤을 추게 하면서
무의 대명사인 활쏘기를 장난감으로 희롱했던 것을 준열히 통박하지 않으면,
활을 생명으로 삼아 민족을 지켰던 선배 국궁 무사들께
참으로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문생들이 술먹고 과녁에 화살을 날리면 간신히 과녁 앞에 가는 것도 장한 일이니,
기생이 과녁 앞에 있다가 과녁에 못미치는 화살을 부채로 쳐서 과녁에 맞게 하고서는
<관중이요..> 하고 춤을 추었던 짓거리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철전 사법은 아녀자들이나 유약한 문생들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사법입니다.
오늘날은 국궁을 한다면서 양궁의 사법으로 고단자가 되어 명궁의 칭호를 받는 웃기는 세상입니다.
이런 때에 옛날 문사들이 무를 희롱했던 과정에서 나온 학무형이라는 말을
목숨을 걸고 무를 수련했던 무사의 사예를 이은 철전사법 회원들은
결코 써서는 안될 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좀 과격한 말이지만 철전사법은 유약한 문생의 사법이 아니라
무장, 무인의 정통 사법이라고 보기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문님의 뜻을 십분 이해하였습니다. 위 댓글에서 이미 저도 말씀드린대로, 우리 철전사법을 굳이 학무형이라 말하는 건 되도록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철전사법은 무엇보다 조선의 무장들 사이에서 전승된 사법이고, 우리 활쏘기 전통에서 가장 최고봉에 있는 사법이니 우아하고 야리야리한 '학'과 연결하는 건 역시 어색하겠네요. 온깍지 문파에서 우리 활쏘기가 거의 쇠퇴해 가던 시대의 구사들 만나본 이야기만을 근거로, 제대로 된 문헌적 실증적 근거도 없이 걸핏하면 본인들 것만 전통사법이라 주장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보니, 위와 같은 글을 쓰게 된 거 같습니다. 고문님의 귀한 조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