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솔로 4050 남녀공학]
※ 이 글은 일본의 근대 경제사에 관한 글로 제가 이전에 활동하던 카페에서 한 번 게제한 적이 있었던 "역사로부터 알 수 있는 것들"이란 글과 많은 부분이 중복됩니다. 그 때 읽으셨던 분들은 안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병합하기 이전 오래전부터 서방세계에 문호를 개방하였고 자본주의적 요소 및 기술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한 1910년쯤 이미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 공급과잉에 시달릴 정도로 산업이 커져 있었습니다. 이 공급과잉의 문제가 결국에는 수요시장의 확대를 필요로 했고 이는 일본을 서구열강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개척의 대열에 합류하게 만든 이유가 된 것입니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기술적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를 토대로 식민지 확장에 나서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산업의 발전을 구가합니다. 그러나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이의 타개책으로 식민지 확장에 더욱 매진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1931년의 만주침공과 1937년의 중국 침략전쟁인 중·일전쟁의 발발이었던 것입니다.
이 당시 일본과 중국은 경제나 기술발전 수준에서 거의 50년 이상 차이가 날 정도여서 일본은 이 전쟁에서의 빠른 승리를 낙관하였고 실제로 오래 걸리지 않은 기간에 중국의 대부분 도시를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 대립하고 있었던 장개석과 모택동의 그 유명한 '국공합작' 이후 전쟁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전 양상으로 흐르게 되면서 일본의 전쟁기반이 흔들리게 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진쟁 자원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일본은 자원(특히 석유와 목재)의 보고인 인도차이나반도를 칭공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거쳐 가야 하는 필리핀(당시 미국령)을 침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필리핀의 중간 기착점이었던 하와이의 군사시설을 폭격하여 미국 본토로부터 필리핀으로의 지원을 단절시키고자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가미카제(新風)특공대로도 유명한 '진주만공습' 이었습니다. 이 공습후 다음 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의 참여를 전격적으로 선언하는 의회 연설을 하게됩니다.
미국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차여서 일본은 미국의 전격적인 전쟁 참여를 예상치 못했었고, 일본 군부 내에서도 워낙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기에 이를 감행하게 되었는데요. 이 당시만해도 일본은 엄청나게 많은 전투기를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큰 항공모함인 '야마모토함'을 보유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일본의 이런 자신감에 대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수공장 역할을 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봤고, 2차 세계대전에서도 유럽에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하면서 큰 수혜를 누리고 있었기에 구지 전쟁에 참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산업시설의 빠른 군수화 과정을 거쳐 전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해전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을 패퇴시키게 되고, 당시 유럽전선에서의 소련의 영향력 확대로 인한 유럽의 공산화를 경계하여 유럽의 전선에도 곧이어 참전하게 되는데,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하게 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쟁에서 패망하게 된 일본은 많은 산업기반시설이 붕괴되어 경제적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전후 미국은 마샬플랜의 일환으로 유럽의 우방국을 지원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거두어 들이고 있었고. 이는 일본경제를 더욱 옥죄는 형국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산업기반의 붕괴와 투자 자본의 결여로 농업산업국가로 전락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로 일본에게 세번의 엄청난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고 싸워야만 했던 참극이었지만 일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고 3년간의 전쟁을 통해 일본은 군수병참기지 역할로 산업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지 않아 맞게된 두번째 기회인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 군수기지 역할을 통해 제조업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업 기반의 완전한 구축과 제조업 기술의 성장을 달성한 일본에게 세번째의 엄청난 기회가 도래합니다.
이것이 바로 1973년과 1979년의 중동발 오일쇼크입니다. 단기간의 엄청난 유가 상승으로 인해 경기 침체 하에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1970년대말부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고금리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하여 15%를 상회하였고 종국에는 20%대까지 갑니다. 이 인플레 억제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킬 정도의 상황을 연출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제조업부문에서 세계 최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환율마저 오랜 기간 고정환율제도를 운용해왔던 일본은 엄청난 대미수출을 통해 일약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일본의 환율은 1달러당 350엔 대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해왔고 고정환율제 덕에 엄청난 무역흑자 시기에도 엔화의 저평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서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1970년대 이후로 대미 무역흑자를 누적해오고 있던 일본에게 미국은 여러 경로로 압박을 가해 왔었으나 이미 자국 제조업의 붕괴로 인해 기술경쟁력에서 뒤쳐져 있는 상황에서 환율의 조정만이 유일한 타개책이 되어 버렸고 결국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이후 일본의 환율은 단기단에 급격히 하락하게 됩니다.(플라자합의 이후 달러화 가치는 급락하고 엔화의 가치는 급등하기 시작해 이후 10년 동안 엔화는 달러당 240엔 대에서 80엔 대로 초 강세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엔화의 초강세로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성장 역시 둔화되기 시작했기에 일본은행은 엔화강세를 상쇄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유동성 확대를 유도합니다. 워낙 급격한 엔화의 강세로 기업의 실적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실물경기도 상당히 안 좋은 상황이었으나 시장에 유동성은 흘러 넘쳐나게 되었는데, 이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가기 보다는 자산시장으로 몰려들게 되어 일본 자산시장에 엄청난 버블을 형성합니다.
이 당시 일본의 자산투기 광풍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화로 당시 일본 금융기관의 현수막 광고 중에는 "땅을 사세요, 돈을 빌려드립니다. 등기료도 빌려드립니다"라는 것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동경 등 6대 도시의 상업지 가격은 3~4년에 걸쳐 300% 이상 급등하였으며, 일본의 부동산 총액을 합산하면 당시에 2,000조엔에 달했고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Nikkei지수는 38,000포인트를 돌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이로부터 발생할 폐해를 경계한 일본 정부는 총량규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89년 5월 경부터 90년 8월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5%에서 6.0%로 인상하였고 실질적인 신규 부동산 담보대출 금지 조치를 취합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90년대 초반에 자산버블의 붕괴가 시작되어, 이후 장기간에 걸쳐 지가가 87%에 가까운 폭락을 하게 되는 장기불황 국면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후로 일본은 장장 20여년간을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도 광고는 보시고 갈게요~~
싱글 솔로 4050 재혼 결혼 연예 만남 사랑 사교 남여 돌싱 미혼 친구 대화 여행 당일여행 1박2일 여행 해외여행 영화 음악 노래방 뮤지컬 연극 공연 맛집 클럽 댄스 나이트클럽 트레킹 산행 등산 등반 걷기 사진 캘리그라피 스포츠 자전거 베드민턴 당구 탁구 볼링 바베큐 찜질방 나들이 드라이브 벙개(번개) 급벙 먹벙 파티 부페 와인 모임 종로 사당 홍대 신촌 명동 강남 양재 건대 합정 미아 수유 노원 잠실 천호 약수 인천 수원 김포 일산 분당
"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다음카페 싱글 솔로 4050 남녀공학으로 오세요."
싱글 솔로 4050 싱글 솔로
싱글 솔로 4050
4050 싱글 솔로
싱글 솔로
4050
싱글
솔로
첫댓글 요번 회를 마지막으로 '패권과 무역'의 연재글은 마감합니다. 다음으로 연재하려고 했던 '알기쉬운 경제학'과 '경기, 통화량, 금리, 환율, 국제수지, 주가'에 관한 글은 12월말이나 1월초부터 진행 하려는 투자벙개 모임에서 관심있으신 회원님들을 모시고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보니 더 흥미로운데요!?!
고생하셨습니다
네.. 먹벙에서 못뵈니.. 1월 투자벙에서 뵈요... 따뜻한 년말 보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