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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아동문학 66호 연간집 원고>
동시 독자, 어린이부터 GAI까지
정 소 금
1. 다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GAI(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생성형 인공지능)가 생성하는 문학 텍스트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그 빅데이터는 인류의 언어 예술 자산이다. 그런데 윤송이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가 「AI와 가장 인간적인 미래」(《과학잡지 에피》, 2023년 가을)에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진화가 지금처럼 계속 가속화되면 머지않아 인터넷에는 인간이 만든 콘텐츠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정보와 콘텐츠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시대, 인간 지능은 다시 한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을 상황에 직면했다. 따라서 인공지능 활용 방법뿐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인류가 인공지능에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제공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어야겠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으로 판사가 언급되고 있지만, 『나는 괜찮은 AI입니다』(오승현, ㈜자음과모음, 2022)에는 인공지능 판사의 객관성이 잘못된 판결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나오는데, 인공지능은 기존 판례를 모아 놓은 데이터를 학습하므로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낼 수 없고, 기존 판례를 답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판결 내용도 달라져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회의 가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이승우 기자가 오픈AI 챗GPT에게 ‘커피’를 주제로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의 시를 써 달라고 해서 얻은 다음 결과(한국경제, 2023/01/2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GAI가 생성한 시는 빅데이터에 의존한 출력물이므로 패턴이 비슷하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지,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이 잘 변별되는지를 별개 문제로 미뤄 두고, ①~⑤와 ①′~⑤′를 견주어 보면 이보다 세련되게 출력되더라도 데이터 기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커피(윤동주 스타일)
오픈AI 챗GPT
커피의 향기가 가득한 카페
내가 앉아 있는 이 테이블 위
나의 시간을 멈추고 있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커피의 미스터리를 즐긴다
커피는 내 삶의 발명품
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고민을 이해해주는 ② 나의 친구
③ 커피와 함께라면 난 힘이 난다.
커피는 내 가슴을 일으키고
④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커피를 마시며 내일을 바라보며 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커피(김소월 스타일)
오픈AI 챗GPT
커피와 함께하며 생각하는 길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길
커피는 ①′ 나의 이야기를 이어주며
우울한 날을 걷히는 따뜻한 밝은 빛
④′ 나의 마음을 어둠에서 구해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밝혀준다
③′ 커피와 함께하면 힘이 생기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
⑤′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커피는 ②′ 나의 친구, 나의 힘
이제 오픈AI 챗GPT가 각각 윤동주 스타일과 김소월 스타일로 쓴 시 「커피」 두 편은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챗GPT 스타일’을 창출할 수 있는가이다. 동시 장르에서도 판례처럼 인공지능 출력물이 다시 데이터로 입력되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인공지능이 생성해 내는 동시는 자기 복제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 주기 어려울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만’ 읽는 장르가 아니라, 1차 독자인 ‘어린이부터’ 전 세대를 아울러 읽는 장르이다. 그리고 이제 동시인은 ‘GAI까지 독자로 삼은’ 창작을 지향해야겠다. 『나는 괜찮은 AI입니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인간이 무엇을 가르치는지가 인공지능에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GAI 시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 낼 만한 동시 작품을 찾아보기로 한다.
2. 시인의 생각, 독자에게 낯설어 즐거운
- 「비 간다」(박승우, 『힘내라 달팽이!』, 상상, 2022)
1672년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지만, 1803년 토머스 영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보였고,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그런데 우리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지만, 입자와 파동을 동시에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처럼 양자역학이 일상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날이 오면, ‘입자이면서 파동’에 해당하는 ‘새로운 낱말이 생겨나서’ 두 성질을 함께 지칭하는 것이 모순처럼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양자역학은 입자와 파동을 함께 일컫는 언어의 출현을 촉구한다.
『삼국유사』(일연, 이재호 옮김, 『삼국유사』, 솔출판사, 1997) 기이편에 따르면, 환웅 천왕은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거느리는데, 바람 · 비 · 구름을 주관하는 주술사를 이른 말로, 모두 농사에 대한 자연조건이다. 또 우리말에서 ‘가물다’는 “비가 ‘오지’ 않다”라는 뜻이고,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가뭄’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우제’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비가 내리는 일은 ‘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힘내라 달팽이!』에 실린 동시 「비 간다」라는 제목은 낯설다. “비는 왜 / 온다고만 할까?”라는 1연은 관점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 중심주의 관점을 강화하는 ‘온다’ 대신 2연에서는 “내리는” 비가 되었다가, 3연에서 “풀에게 / 나무에게 가고 싶”은 주체가 된 비는 4연에서 드디어 “간다”. 시인은 ‘비’를 바라보는 주체를 인간에서 자연, 다시 말해서 ‘비’로 바꾸어 놓으며 ‘비’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비가 풀과 나무, 곧 생산자의 생존에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비는 왜
온다고만 할까?
가뭄에 내리는
저 비
풀에게
나무에게
가고 싶을 텐데
비 간다
또닥또닥
목마른 것들
살리려고
- 「비 간다」 전문
박승우가 이 시를 쓰기 전에, GAI에게 ‘비’나 ‘가다’를 소재로 동시를 요구하더라도 「비 간다」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빅데이터를 학습해서 예술품을 창작해 내는 인공지능은 스스로 「비 간다」 같은 말을 만들기 어렵다.
권영민은 『이상 시 전집』(민음사, 2022)에서 「오감도」 연작시가 “특이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해 시인으로서의 이상의 문단적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킨 화제작”이 되었는데, 이상이 파자 방식을 시적으로 변용하여 ‘오감도’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박승우는 ‘비 가다’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냈다. 「비 간다」가 언어의 사회성을 획득하면 우리는 ‘비 온다’보다 ‘비 간다’라는 말을 더 많이 쓸 수도 있겠다.
시인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해서 “별처럼 빛나”(『힘내라 달팽이!』 시인의 말)는 생각을 시에 담았다. 동시인이 발견하고, 발명한 시가 낯설어서 독자는 즐겁다.
그리고 이제 동시 「비 간다」는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3. 시인의 마음, 독자를 다독이고 북돋울
-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최춘해, 『말 잘 듣는 아이』, 브로콜리숲, 2022)
최춘해는 《아동문학평론》 2023 봄호, 〈내 시의 모티브〉 꼭지에 실린 「‘흙’ 연작시를 쓰는 이유」에서 “흙은 뿌리, 어머니, 고향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기도 하며, “흙이라고 한 것은 흙 한 가지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인데,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흙이란 뜻”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흙은 식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시인이 ‘흙’의 연장선으로 내놓았을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는 1967년에 등단한 시인의 시력(詩歷)과 상관없이 이 한 편만으로 기억되어도 좋을 만큼 돋보인다. 이 동시는 발상의 전환을 잘 보여 준다. 식물은 발이 없어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어서 굳이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에 종이책 『말 잘 듣는 아이』에서 적어도 한 편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는 1차 독자인 어느 어린이 마음을 다독이고 북돋울 것이다. 이 동시에는 “그늘진 곳에 있는 어린이들도 기죽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당당해지기를 바라는”(『말 잘 듣는 아이』 시인의 말)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자리에 있어도
햇살이 찾아주고
목마르면
비 내려주고
뿌리가 있어
배고프지 않다.
애타게 먹이 찾아 헤매는
날개 달린 참새, 까치
발 달린 노루, 멧돼지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
-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 전문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는 말은 『사피엔스』(김영사, 2015)에서 주장한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만큼 놀랍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여서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를 읽으니 정말로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라고 해야겠다.
실제로 『식물학 산책』(이일하, 궁리출판, 2022)에는 각 생물종이 지구생태계의 바이오매스에 기여하는 정도를 계량화했을 때, 전체 바이오매스 중 식물이 차지하는 기여도는 82퍼센트에 이른다고 나온다(2018년 론 마일로 박사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논문). 바이오매스란 생물 총량, 말하자면 무게를 의미하므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생물종이 지구생태계의 지배자라면 그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인 셈이다. 먹이 피라미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산자인 식물이 없으면 식물에서 에너지를 얻는 동물들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에서 식물이 동물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날짐승, 길짐승에게 뿌리가 없다고 놀리거나 잘난 체하는 모습이 아니다. 지구의 주인인 식물의 ‘불편’한 눈길에서는 걱정과 안쓰러움이 엿보인다.
이 동시에는 날짐승 참새와 까치, 길짐승 노루와 멧돼지가 나오지만 뿌리는 어느 식물의 뿌리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활엽수, 침엽수, 관목, 교목 어느 식물이어도 좋다. 심지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동시집 『힘내라 달팽이!』 표제시 「힘내라 달팽이!」에서 달팽이를 격려해 주는 개망초처럼 한해살이풀이라도 괜찮다.
그리고 「대단한 무화과나무」도 같이 실려 있는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와 시적 정서가 닮았다. 이 동시에서 제목과 내용의 조화는 원로 시인이 자기만의 삶을 사는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는 지지를 증폭 시킨다. 내용만 읽으면 자칫 부정적으로 읽힐 수 있지만, 제목과 같이 읽을 때 무화과나무에 보내는 시인의 응원을 알아차리게 된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안 핀다.
다른 나무가 다 피어도
안 핀다.
- 「대단한 무화과나무」 전문
하지만 GAI에게 ‘흙’을 소재로 최춘해 스타일 동시를 쓰라고 명령하더라도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나 「대단한 무화과나무」를 얻을 수 있을까?
시인은 고운 체에 말을 거르고 걸러서, 독자에게 가닿도록 마음을 담아 더하고 빼고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기꺼이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어린 독자의 마음을 다독이고 북돋울 시 한 편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제 동시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는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4. GAI 시대, 동시인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GAI가 시를 쓴다고 시인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기가 발명되어도 화가는 여전히 건재하고, 텔레비전이 발명되었다고 라디오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았듯이.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편』(교보문고, 2023)을 읽으면, 렘브란트 판레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나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1642) 같은 단체사진식 집단초상화는 “1839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백내장을 앓은 후에도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인상을 그리는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와 “본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대로 그린” 파블로 피카소(1881~1973)를 출현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기술 등장으로 인상파와 입체파가 생겨난 것처럼, GAI 등장은 문학에서 다양한 실험을 요구한다.
GAI 시대에 동시인이 설 자리를 찾는 새롭고 다채로운 시도는 동시인들 몫이다. 독자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물할 시인의 생각, 독자를 다독이고 북돋울 시인의 마음 들로 출현시킬 작품들을 기다린다.
윤송이는 앞글에서 창의성을 ‘전문적 창의성’과 ‘일상적 창의성’으로 나누고, “불후의 명곡을 남긴 베토벤이나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들의 창의성”을 이르는 전자와 대비되는 ‘일상적 창의성’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행동을 아우르는 개념이자, 남들과 다르게 사물이나 현상, 문제를 바라보는 독창성과 비판적 사고 역량”으로 본다. GAI 출력물이 빠른 속도로 축적되는 시대, 시인에게는 일상적 창의성이 요구된다. 인공지능은 저장된 빅데이터 없이 창작이 어렵고, 작가들은 바로 지금 이 시각에도 새로운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입력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동시인들의 실험적 시도는 벌써 시작되었다. 권영상은 《동시 먹는 달팽이》 2023년 봄호부터 겨울호까지 「그림자를 바꾸세요」, 「오늘을 수선해 주세요」, 「웃음 몰」 등 동시 스무 편을 연재하였다. “‘상상 동시 가게’가 취급하는 상품은 일반 가게가 취급하는 상품과 조금 다”르다는 시인의 말처럼, 조금 결이 다른 서사적 상상을 보여 주는 이 동시들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산물”(《동시 먹는 달팽이》, 2023년 봄호)이라고 말하였는데, 인공지능과 맞닥뜨린 지금 상황에서 그 몸부림은 더 절실하다.
어떤 그림자를 갖고 싶으시나요.
멋을 아시는 분을 위해,
아니 검정 그림자 사용에 지친 분을 위해
색깔 그림자를 준비했습니다.
사이좋은 친구와
깨끗한 길을 나란히 걸을 때
그때, 산뜻한 연둣빛 그림자 어떠세요.
은빛 흰 그림자에 돋을무늬를 새겨넣은
품위 있는 그림자도 마련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바람에 펄럭이는 당신의 멋진 초록 그림자,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원하신다면 지금 입고 있는 옷 빛깔과
동일한 맞춤 그림자도 가능합니다.
갑자기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여
사람들을 이크! 놀라게 하는
투명 그림자는 어떠세요.
당신의 검정 그림자,
이제는 바꾸실 때가 되었습니다.
- 「그림자를 바꾸세요」 전문
이보다 앞서 출간된 『맛있는 수학 파이』(바람의 아이들, 2018)에 실린 동시 제목은 ‘∞, π, 관성의 법칙, 광합성, 블랙홀, 빅뱅, 상대성 이론…’처럼 마흔다섯 편 모두 수학과 과학 용어이다. 오은영은 “융합 학문 시대의 주인공이 될 우리 친구들에게 시를 맛보면서 동시에 과학과 수학도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내 키가 몽당연필이라고요?
아니죠, 종태가 키다리 전봇대죠
내가 가진 딱지가 눈곱 만큼이라고?
아니죠, 종태가 너무 많이 가졌죠
내 수학 점수가 겨우 60점이라고요?
아니죠, 20점 올라 대단한 60점인걸요.
10점 떨어진 종태 점수가 겨우 90점이겠죠.
목성에서 보면 지구 시간이 빠르고
지구에서 보면 목성 시간이 느리듯
내 인생의 기준은
나예요.
- 「상대성 이론」 전문
이제 “상상 동시 가게” 동시 스무 편과 『맛있는 수학 파이』에 실린 동시 마흔다섯 편은 GAI에 데이터가 되었다.
5. 새로운 콜럼버스의 달걀
이일하는 『식물학 산책』에서 “대략 인간과 인간 간에는 0.1퍼센트 정도의 염기서열 차이가 존재한다. 한편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 침팬지와는 대략 1.3퍼센트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숫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염기서열 정보의 0.1퍼센트와 1.3퍼센트의 차이 사이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생물학적 조건들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 얼마나 사소한 차이인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차이로 침팬지는 침팬지이고, 사피엔스는 사피엔스이다. 그러므로 인간 지능은 인간 지능이고,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뿌리가 없어 불편하겠다」와 「상대성 이론」에는 독자를 다독이고 북돋우려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고, 「비 간다」와 「그림자를 바꾸세요」에서 시인의 생각이 낯설어 독자는 즐겁다. 그러므로 동시인들이 1차 독자인 어린이뿐 아니라 GAI에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고 시인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 동시를 쓸 필요가 있겠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GAI 생성물은 빅데이터를 사람보다 빠르게 찾아 섞어서 도출하는 데 불과하고, 『나는 괜찮은 AI입니다』에서 말했듯이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은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지적인 모험이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리고 『AI 이후의 세계』(헨리 A. 키신저, 에릭 슈밋, 대니얼 허튼로커, 김고명 옮김, ㈜월북, 2023)에서는 “AI는 예측하고, 결정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만 자의식은 없다. 즉, 이 세상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을 사유하는 능력은 없다. AI는 의도도, 동기도, 양심도, 감정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확률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이 자기 복제를 거듭하면서 관성에 젖어 비슷한 패턴의 작품들을 생산할 때, 인간 지능은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더라도 아무나 처음 생각할 수 없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작품을 창작할 것이다. 실제로 달걀을 깨서 세운 것은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건축한 필리포 부르넬레스키라고 하고, 깨뜨리지 않고도 달걀을 세우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지만.
늘 그렇듯이 위기는 기회이다. 다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GAI 시대, 동시인들은 달걀을 어떻게 세울까?
정소금 2021 《어린이와 문학》 신인평론가상 수상.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비평활동지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