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가을나들이 다녀왔습니다
창덕궁
창덕궁은 서울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고 조선시대 에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창덕궁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 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한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권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재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이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 부터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후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문안도 하고 정사를 아뢰며 외국의 사신을 접견 등 중요한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쪽으로 임금이 다니던 길인 어도와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을 둔 조정 마당을 두어 국가의 상징 공간으로 삼고, 뒤편에는 인정전 뒷산인 매봉과 맥이 이어지도록 계단식 정원을 마련하였다. 조정 마당을 둘러싼 내행각에는 호위대 주둔소와 창고 등을 두었으나 현재는 비어있다. 인정문 앞 외행각의 사다리꼴 마당은 불규칙한 지형과 규칙적인 궁궐형식을 절묘하게 융합한 공간으로, 세종 때의 건축가 박자청이 설계한 것이다. 외행각과 진선문, 숙장문은 199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