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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 주위에 고왕경을 최근에 3천번 읽은 분이 계셨는 데 평소에는 절에만 가면 골이 아플정도로 절을 평소에 가까이 하지는 않았으나 이루고자 하는 원이 있어 2개월 여에 걸쳐 3천번을 수지독송하였습니다.
경의 위력에 대하여는 기존에 나와 있는 것을 다 읽어보셨겠지만 그 위력은 그 분이 결혼이후 20년이상 소원, 소원하셨던 것이 단번에 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라울 뿐입니다. 아무리 박복자라 할지라도 천번을 외워 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경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나다.
저도 이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직장다니면서 시간 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열심히 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소원이 하나 있거든요.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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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관세음보살 몽수경 영험
南無觀世音菩薩 南無佛 南無法 南無僧나무관세음보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與佛有因 與不有緣 佛法相因 常樂我淨여불유인 여불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朝念觀世音 暮念觀世音 念念從心起 念佛(念)不離心조념관세음 모념관세음 염념종심기 염불(념)불리심天羅神 地羅神 人離難 難離身 一切災殃化爲塵천라신 지라신 인리난 난리신 일체재앙화위진南無摩詞般若波羅蜜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 짧은 경문은 관세음보살께서 재난을 당한 사람의 꿈에 나타나 설한 夢授經으로,모든 재앙을 흩어 버리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독송되어 왔습니다.
일제 때 장군을 지낸 김석원(金錫源, 1893~1978) 도 그러한 사람 중 한 분으로,매일 아침저녁으로
<몽수경>을 열심히 염송했습니다.
그런데 1937년의 중일전쟁 때, 산서성(山西城)전투에 참여한 장군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다친 데 한 곳 없이 멀쩡했습니다.
너무나 이상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가슴에 넣고 다닌 관세음보살 호신불(護身佛)에만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이 모두 관세음보살의 보살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장군은, 그 뒤부터 하루에 <몽수경>1백편과 관세음보살을 만번씩 불렀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관세음보살, 전쟁터에서도 관세음보살을 불러, 잠시도 입에서 관세음보살을 뗀 적이 없었다고합니다.
이 김석원장군처럼 깊은 믿음이 생기면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고 믿으면 총알이 빗발처럼 날리는 전쟁터에 나가도 걱정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평화가 언제나 함께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 보시 가운데 최상으로 치는 것은 무외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때, 기도를 통하여 무외를 이룰 수 있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어려운 일에 부딪혀 크게 걱정하는 사람에게,"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가피를 구해 보라."는 한마디를 일러줄 수 있는 불자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하는 사람에게 "불보살께 기도를 해보게,불안은 물론 죽음과도 함께 해 주실테니까." 라고 하면서 기도를 권할 수 있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 기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두려움 없는 세계로 인도하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을 짓는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일타 큰스님저 '기도'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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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출처: 밀교뉴스 (www.milgyonews.net)
회당 손규상 대종사는 그 때까지 김두하가 제공한 포항동 집에서 10여 년 간 살았다. 그리고 이때 본인이 마련한 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대종사는 29세(1930) 때인 음력 9월 포항으로 옮겼다.(호적부에는 1931년 1월 27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이사 후에 호적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 터가 포항면 포항동(남빈동) 487번지이다. 그 일대는 김두하 형제의 땅이 많이 있었다. 대종사는 포항에 이사한지 10년 후 39(1940)세 2월 21일에 새로운 집을 마련하여 이사를 하였다. 그곳이 영일군 포항읍 본정(상원동) 504번지이다. 그것은 사업의 규모가 그 만큼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즈음 대종사는 포목과 제과업을 중심으로 양돈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제과공장에 큰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를 당하여 공장을 다 태웠는데도 주인인 대종사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걱정을 하면서 찾았다. 그런데 대종사는 죽림사 법당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관음정진을 하고 있었다. 제과공장의 큰 화재를 당한 와중에서도 먼저 법당을 찾아서 정진을 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화재를 당하고 재산의 손실 앞에서 법당을 찾아서 자신을 추스르고 주위 사람들을 안심하게 한 것이다. 대종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먼저 다스려 그 상황을 잘 수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대종사의 관음정진은 '연명관음경'(延命觀音經)을 소의(所依)로 하고 있다. 이 경은 10구 42자의 극히 짧은 경으로서 '관세음(觀世音) 나무불(南無佛)'로 시작한다. '관세음을 부르면 곧 부처님에게 귀명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경전은 "부처님에게 귀명하면 그대로 부처님[불佛]과 부처님의 가르침[법法],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공동체[승僧]와 인연을 맺고 살게 된다. 이처럼 불법승과 인연을 맺고 살면 늘 기쁘게 삶의 의미를 느끼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설한다. 또한 '연명관음경'(延命觀音經)은 '염념종심기(念念從心起) 염념불이심(念念不離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부분이 대종사가 극히 중요하게 여긴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의 바로 앞에는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音)'이라는 구절이 놓여 있다. 이것은 "아침에 관세음을 염(念)하고 저녁에도 관세음을 염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념념종심기'에서 '심'(心)은 '관세음을 염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념념종심기 념념불이심'은 "생각(순간) 생각(순간)이 관세음을 염하는 마음에서 일어나고, 생각(순간) 생각(순간)이 관세음을 염하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관세음을 염하는 것'은 그대로 불법승과 인연을 맺는 것이고, 결국 부처님에게 귀명하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아침에서 저녁까지, 즉 언제 어디서나 일상생활에서 늘 부처님의 마음(불성·佛性, 심인·心印)으로 살게 되고, 부처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제과점의 화재를 당하고 대종사가 법당을 찾아서 '관세음' 정진을 한 까닭을 읽을 수 있다. 관세음을 염하면서 '념념종심기 념념불이심'을 실천한 것이다. 이렇게 대종사는 수행정진을 하면서 불교의 불성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연명관음경'(延命觀音經)에서 그 실천의 길을 찾은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농림촌에서의 '관세음' 정진에서 '육자진언'의 정진으로 심화(深化)하여 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종사는 관세음 염불(念佛)에서 육자진언 염송(念誦)의 수행으로 이득과정(利得過程)을 거친 것이다. 따라서 '연명관음경'(延命觀音經)의 내용에서 '관세음'을 '옴마니반메훔'으로 대치하여 수행하는 길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진각종 기로스승 경정정사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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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설렁탕 한 그릇, 담배 한 개비로 얻은 생명
법조계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공부를 잘해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겠지만,
좋은 판검사는 마음 공부가 잘 되어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각별하게 친분을 나누고 있는 사람중에 이 기태 부장검사가 있다. 중견
검사로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불교 칼럼을 쓸 정도로 불교를
위해 봉사를 아끼지않는 독실한 불교신자라서 교분을 나누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스님, 사람은 착한 일 해야겠더군요.
"아 그래야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스님이 늘 좋은 일을 하고 다니시니까 제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
그의 고향은 진주다. 그의 아버님은 진주에서 경찰서 사찰계 주임형사를
지낸 바 있는데, 그의 아버님 역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믿음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고 있는 불자이다.
해방 후 한국전쟁(6.25 사변)이 발발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진주경찰서 주임형사는 오랫동안 위험한 추적끝에 공산당 두목을 검거하게
되었다. 그 공산당 두목은 숨어다니면서 지치고 허기졌던지 검거되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했다.
이 형사는 악질 공산당 두목이지만 허기져 배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우선 설렁탕집으로 데리고 가 설렁탕을 배불리 먹여주었다.
그 당시 설렁탕은 꽤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입에 물려주자 공산당 두목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만약 이 장면을 누군가가 본다면 형사가 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
하기보다는 형사가 공산당 두목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그럴만큼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스러운 일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되지않아 전쟁이 터지면서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감옥에 갇혔던 공산당들이 탈옥하여 월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었고, 공비들은 진주까지 점령하였다. 어느 고을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공산당들은 그 지역의 유지들과 공무원들, 경찰들을 마구
붙잡아 인민재판을 통해 바로 사형을 집행할 때였다.
이 형사도 면장과 함께 붙들려 골방에 처박혔다. 다음 날이면 인민재판장에서
사형받을 몸이었던 것이다.
살아날 길 없는 그 막막한 순간에 이 형사는 관세음보살 몽수경을 외웠다.
그런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이 모습을 곁에서 보던 면장은 속으로 '이 놈이 미친 놈 아닌가. 이 와중에
코를 골며 자다지'했지만 이 형사의 쏟아지는 졸음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만 잠이 든 사이 꿈을 꾸었는데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셨다.
"왜 이리 나를 부르느냐, 네가 하도 찾아서 왔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내일 아침이면 인민재판장에서 죽습니다."
"죽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방문이 열리더니 인민군들이 "나와!"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결국 이 방을 나서는 순간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면장과 함께 이 형사는 인민재판장에 섰다. 사실 인민재판은 법도 재판형식
도 필요없는 재판이었다. 공산당에 반역하는 곳에서 일한 사람은 모조리
잡아다 죽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판을 진행하는 위원들은 면장과
이 형사의 죄목을 말하고는 형식적이지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이 형사가 그 자리에서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진주경찰서 사찰계 주임 형사 아무개다!"
그러자, 갑자기 부위원장이
"누구라고? 다시 말해봐!"
하는 것이었다.
법도 인정도 없는 자리에서 그냥 죽이면 되는 일만 남았는데 왜 누구냐고
다시 묻는 것일까? 그런데, 재판장이 재차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형사는 조금 전처럼 '진주경찰서 사찰계 주임형사 아무개'라고 거듭 큰 소리
로 말했다.
"너 혹시 예전에 누구에게 설렁탕을 먹여주고 담배를 피우게 해 준 적이
있나?
이것이 무슨 소린가? 알고보니 재판을 집행하는 부위원장은 얼마 전 자신이
검거한 공산당 두목의 아우였다.
그가 도망쳐 다시 이북으로 갈 때 동생에게 어느 형사에게 설렁탕과 담배를
얻어 먹은 적이 있었다며 만약 그를 잡게되면 그 때 진 빚을 갚아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위원장은 이런 사실을 모인 사람들 앞에서 재차 말하면서 비록 형사질을
한 반동분자지만 이 사람은 우리 대장의 은인이니 살려주자고 했다.
결국 면장은 그 자리에서 사형을 당했고, 이 형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부위원장의 그 다음 말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오늘 이 자리의 재판은 원래 내 담당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사형집행을 맡게 되어있었는데 아까부터 자꾸 내가 직접 이 사형을
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 것이다. 아마 이렇게 형님이 진 빚을
갚으라고 그랬나보다."
그 순간 이 형사는 이것이 바로 몽수경을 외운 기도의 가피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은 설렁탕 한 그릇과
담배 한 개비가 아니라 착한 일을 베풀었던 마음을 헤야려주신 자비한
관세음보살님의 거룩한 가피였던 것이다.
그 형사의 아들 이 기태 부장검사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앞장 서온 나를 볼 때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거듭 다지곤 했단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 역시 저절로 "부처님의 은덕이 가이없습니다."가
한없이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기태 검사가 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는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 기태 검사 역시 법조계에서는
자비보살로 통하고 있다.
출처: 박 삼중 스님저 가피 (열매출판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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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잠자리에 막 들려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저멀리 태평양바다건너 미국에서 왔다
<미안합니다 주무시는데 깨워들여서,다름아니구요
지금 한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요 아버님께서 혼수상태로 들어
가셨데요,말씀도 잘못하시고 사람도 잘알아보지 못하신데요>
그녀는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발을 동동구루며 안절부절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나는 순간 나도모르게
그래 내가 다녀올께!! 하고 말을 해놓고 막연했다
그녀의 아버님은 금년65세로 명문대학의 총장으로 재직하고계시며
서울대학을나와 미국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환교수로 일본에도 사셨으며 성품이 온유하고 심성이 착하여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덕높으신분인데
그만 혈액암에걸려 몇년을 고생하시다 이번에 재발되어
서울 어느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중
악화가되어 최악의 상태에 이르른것이다
나는 광명진언을 외우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 공항으로 달려갔다
마침 비행기 좌석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할때까지
광명진언과 관세음보살 몽수경을 계속 외웠다
오늘은 비행기도 여느때보다 20분빨리 도착되었다
출구로 나오니 그녀의 친정 어머니 아버지가 자동차를 갖이고
마중을 나오셨다
그녀의 부모역시 신심이깊은 대단한 불자였다 그러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자란 그녀야말로 세세생생 수행해온 큰보살이었다
큰보살의 자비는 그집안의 빛이되었다
한국 제일의 명문대학을나오고 미국에서도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교수로,총장에 이르렀으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좌상에 꽉차있는 진짜 이부처님을
제도할수있는길은 죽음에 이르르는 병고외엔 없을것같았다
그녀는 진실로 시부모님을 봉양하였고 불심을 심어드렸다
이제 정신이 혼미해져가고 임종이 가까워옴을 느낀 시어머님께서
미국에있는 며느리에게 연락을 했던것이다
병원18층 엘레베타문이 열리자 그녀의 시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포옹을한 채 참을 울었다
업이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병실에들어서니 누워있던환자가 일어나며
일본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왔냐는 것이다
< 며느님의 효성으로 이렇게 왔습니다>하니 환자는 파안대소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것이 아닌가!!
마음한번 바꾸면 극락이 바로 여기요
어둠에서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는것을
며느리의 지극한 효성으로 사지에 이르렀던 시아버님을 일으키었다
나는 저녁비행기로 돌아오며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시공을 초월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출처:다음 나무아미타불카페 묘우아이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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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몽수경과 지월의 삶
지월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입속에서 중얼되어왔던 경이 있었습니다. 출처도, 뜻도, 의미도 모른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경은 어머니를 기억할 수 없는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손자를 위해 지극정성 절에 나가시면서 염송하시고, 사계절따라 마당에 물 한 그릇, 촛불 켜 놓으시고 손바닥 비비시며 염송하시던 경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왔던 할머니의 소리라 자연히 암기가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를 돌면서 힘들고 외로울 때 홀로 산이나 바닷가에서 이 경을 55년동안 독송했지만 지월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지금도 이 경을 장소에 따라 독송하거나 염송합니다.
얼마 전 우리 카페 어느 보살님께서 아드님이 행정고시를 준비하는데, 어머니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려야할 일이지만 사정때문에 집에서 기도를 하려고하니,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구해주십사 원해서 바로 통도사에 들러 두 권을 구해왔습니다.
지월은 이 경이 실린 책에서 평생을 뜻도 알지못하고, 할머니 생각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중얼대었던 경이 관세음보살 몽수경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뜻이 어떠한가를 발견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어린 손자를 위하여 부처님에게 할머니 살아 생전까지 염송하시던 관세음보살 몽수경이었습니다.
지월은 그 날밤을 뜬 눈으로 할머니 생각을 하며 밤을 고스란히 지새며 울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은 55년만에 이 경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지월이 만약 그 보살님의 부탁을 거절했었다면, 영원히 할머니의 사랑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출처: 다음 오이소 친구들 블로그 글쓴이: 오이소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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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십일면 관세음보살께서는 수라도(修羅道) 를 건지는 관음이다.
이 관음은 十신 · 十주 · 十회향 등 三현보살의 지위를 지나서 환희지 · 이구지 · 발광지 · 염해지 · 난승지 · 헌전지 · 원행지 · 부동지 · 선혜지· 법운지를 지나서 등각 (等覺)을 넘어선 十一지보살이라고 한다. 다라니경에보면 이보살에게는 주로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 라는 십자(十字) 진언을 가리키고 있다.
이 다라니만을 많이 외우면 영험기적이 현저하게 많다.
어느 주문이나 어떤 다라니든지 관세음보살의 주문이면 무수한 영험이 있는 것이지마는 이 十一면 관세음보살 수원즉득다라니 "옴마하가로니가 사바하" 는 더욱이 신통묘력이 현저하다. 그래서 나는 이다라니경을 수천 권이나 인쇄하여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있는데 이 다라니경을 읽고 주문을 정성으로 외워가지고 죽을병이 나았고 실패했던 살림이 복구되고 낙망 · 실망에 빠졌던 사람이 희망을 얻고 갱생한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나서 기적적으로 많은 성과를 보았다.
이 주문은 원을 세우고 지극정성으로 외우면 단시일내로 소망이 성취되는 것이 특색이다. 이 다라니는 천수다라니를 외우는 공덕과 같다고 이야기되어진다.
출처: 월간 불광 (www.bulkwang.org) 1978년 미타사 조실 김 대은 스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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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출처: 월간 불광 1992년 6월호
어두움 속에 하나의 등불이
1992년 06월 통권 212호
신진욱/7393부대 호국청원사 군법사 1
지리하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노라면 시샘이라도 하듯 흰눈이
활짝핀 꽃을 민망하게하는 철원의 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북녘 땅에 자비의 빛을 전하는 점등식 행사준비로 바쁜 발길을
철책선 관측소로 옮기다 문득 밝음과 어둠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털털거리는 트럭 창문 밖으로는 비포장길의 뿌연 흙먼지가 날리고 웅웅 거리는 대남 방송이
귓전을 울리는, 조금은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전방길을 나와 부처님전에 나아가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어둠과 밝음은 실체가 있는것이 아니다. 밝음이 가까이 가면 어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다. 마음속의 어둠을 등불로써 몰아내자.'
나는 부대에서 마음이 어둡고 무거운 헌병대 수감자 장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야전가방(부처님, 촛대,향로)과 정성스레 만든 연꽃등을 가지고 차에 올랐다.
두껍게 잠겨진 철문을 열고 또 열고 들어선 수감자들의 방은 봄을 느끼기에는 너무
무겁고 침침했으며 머리를 푹 숙인 장병들 마음속의 어둠을 느끼기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밝게 합장을 하고 부처님을 모시고 방마다 연등을 밝힌 후 법회를 시작했다.
서투른 삼귀의, 찬불가, ........를 마치고 입정에 들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들에게 희망을, 또한 마음속의 어둠을 자비의 빛으로 밝혀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법석에서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와같이 내가 듣사오니 한때에 부처님께서 보타락가산에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을 하셨다.
그때에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저에게 신비한 주문이 있사오니
만약 중생이 수지하여 외우는 자가 있으면 일체의 병환과 병고를 물리치고
일체의 악업과 번뇌를 소멸하고
신(身), 구(口), 의(意)삼업이 모두 청정하여 마음 가운데 백천만억 어려운 일을
성취하지 아니함이 없사오리다. ......
누구든지 이 경을 매일 108번씩만 외우게 되면 만병이 소멸하고 수명이 장원하여 항상
시방세계부처님의 호념하는 바가 되어서 재물과 의식에 그리울 것이 없고 여러 사람의
공경과 사랑을 받으며 다시 일체의 재앙인 귀사(뱀, 독사), 도장(칼,옥살이), 독약, 저주,
원적(원한의적), 수화의 피해를 받지 아니하고 두려움을 멀리여의고 평안함을 얻어서 마침내
생명이 다할 때에는
시방의 부처님을 뵈옵고 극락세계로 왕생하여 다시 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오리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되 '장하도다 어진 사람이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주문을 외우라.
나도 또한 받아 가질 터이니 그대가 속히설하라' 하시니 그 때에 관세음보살이
곧 주문을 말씀하셨는데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
이 주문을 일심으로 외우라는 끝이야기로 법문을 마치고 무거운 발길을 법당으로
향했다.
얼마후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한 장병이 법당으로 들어와서
서투른 합장을 하며 말을 건네왔다.
자기는 얼마전 헌병대 수감자로 있었는데 법사님의 설법을 듣고 처음에는 의심을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 를 외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신비하게도 마음속에 솟아나는 희망과 확신이 굳어져 가는
환희심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후 그는 신심돈독한 불자가 되었고 또한 열심히 군부대에 다니며 부처님법을
전하는 훌륭한 포교사로 일선에서 뛰고 있다.
나는 수감자에서 포교사로 변신한 그를 보면서 한 생명이 부처님의 가피로
새롭게 태어나는기쁨을 느꼈다.
큰 일을 생각하고 정성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까이 우리 주변의 그늘진
부분을 발견하여 우리의 할 일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좋은 일이었다.
다시 한번 나는 우리 모두 보살의 대원력을 실천하는 참불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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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기도의 가피, 염불의 공덕
오늘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드리고픈 말씀이 많네요.
저 역시 기도로 인해서 많은 소원을 성취했고, 신기한 경험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이겠지요..
그런 경험도 많아서 몇 개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힘들게 회사를 입사하면, 한 1년정도 지나서 회사들이 재정난을 겪다가,
직원들의 월급을 몇달씩 체납을 하고 결국은 폐업을, 들어가는 회사마다
똑같이 한 3-4번을 연달아 겪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월급을 몇 달씩 못받다가 나가는 직원들의 모습도, 회사 짐을 정리하시는 사장님들의 모습도,그리고 계속 또다시 입사준비를 해야 하는 저의 모습도 그렇고, 그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참회기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월급을 5달까지도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도, 제 월급은 한달도 밀리지 않았었고, 미뤄진다고 해도 1주일정도 미뤄지다 바로, 받고 받고 하였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저희 팀장님께 저의 생활형편을 사실대로 말씀드렸었었는데,
팀장님께서 회사에 작은 자금이라도 들어오면 제 월급부터 챙겨 놓았기 때문이었지요.
물론, 저희 팀이 자금관리하는 팀이기도 했고, 팀장님께 제 사정을 말씀 드렸다고는 해도, 더 중요한 일에 쓸거 있다고 제 월급도 미루면 저도 어쩔수 없이 다른 직원들처럼 못받는 거였는데, 그토록 신경을 써주시니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을 팀장님으로 모시고 있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부처님께 기도하는 제 모습을 아주 고마워 했습니다. 이게 바로 명훈가피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번엔 몽중가피에 대한 경험담을 적어봅니다.
위에 얘기처럼 회사가 자꾸 문을 닫으니, 자꾸 입사를 해야했고, 퇴사에서 입사까지 거의 2달에서 3달정도의 쉬는 기간이 생길때마다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좋은 인연의 직장을 만나기 위해서...그 쉬는 기간 기도를 열심히 할 때였습니다...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그 모습만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꿈 속이었습니다.
제가 저희 절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단에 앉아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일어나시더니 불단을 계단삼아 제가 앉아 있는 바닥으로 내려오십니다.
내려오신후 제 옆에 나란히 서시더니 연꽃을 아미타부처님께 올리시고는 아미타부처님께 절을 드립니다.
그러시더니 저를 돌아보시며, 아미타부처님께 말씀드립니다...
"이 아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
그 때 내려오실 때 키가 얼마나 크셨던지. 그 불상의 움직이지 않던 옷들이 관세음보살님의 움직임따라 금빛의 일렁거림등이 마치 살아계신 부처님을 뵙는 느낌이었지요.
"이 아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찡했는지...
나는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관세음보살님께서 절을 하시게끔 만드는 상황을 만드나 싶은게 감사하면서도 너무 죄송해서 꿈에서 깨고난 후 눈물을 많이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너무 죄송해서....
또 한번은, 역시 꿈속인데..길을 잃고 헤매다 벼랑으로 떨어지려는 찰나에 갑자기 나무 뒤에서 어떤 손이 나오더군요.
그 손을 덥썩 잡고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보니 지장보살님 이십니다...
감사하다고 계속 머리를 조아리는 제게 빙그레 웃으시며..."되었다..." 하시더군요.
이런게 모두 그 기간 열심히 부처님을 부른 덕에 받은 몽중가피일것입니다.
처음엔 부처님의 어떤 신통한 힘으로 소원을 성취하고, 가피력으로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해서 부처님께, 그리고 기도를 드리게 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처님께 복을 구하려는 마음은 생활속에서 꾸준히 기도를 하다보면, 저절로 부처님의 가피로 항상 보살핌을 받고, 원하는 일들이 잘 풀려나갑니다.
따로 부처님께 이것 되게 해주세요, 저것 되게 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리시지 않아도,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는 순간, 아미타불 하고 부르는순간 부처님께서 제 마음을 이미 다 아신다고 하세요.
더 많이 부르면, 더 많이 부처님께서 저의 마음을 알아 주시지 않을까요?
그럼 이제 마음을 넓게 가지세요....우리 남편 승진, 우리 아이 합격에서 벗어나서, 마음을 아주 넓게 우리 동네, 우리나라 사람, 인간들, 그러다 모든 일체중생의 행복과 성불을 빌어주세요.
그렇게 마음 넓은 곳에 모든 일체중생을 위하는 자비로운 마음 담으셨다면, 이제는 받으려고 하는 마음에서 드리려는 마음을 가지세요.
꽃도 한송이 드리고, 기쁜 일 있어서 기쁜마음도 드리고, 속상한 일 있어서 속상한 마음도 드리고....내 것을 만들지 마시고, 부처님께 드려서 내 마음을 비워두세요...그렇게 비워가다 보면 반드시 내 안의 부처님을 만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모두 성불하세요.
출처: blog.daum.net/igguil 모두 미래의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미소님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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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80년대 초반으로 생각이 된다.
어머니께서는 자식인 본인(카페필명 사천왕)의 하는 일이 잘 되라고 멀리 수안보의 덕주사에 불공을 드리러 다니시곤 하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주지스님을 모시고 충주에 사는 사촌 여동생과 함께 덕주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왔는데, 동문(東門)옆의 개울을 건너려고하자 물이 불어서 허벅지 이상 차고, 물살이 매우 거세었다.
스님과 어머니는 겨우 개울을 건넜는데, 이모는 개울에서 넘어져 그만 물에 쓸려 떠내려가게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기막힌 일이라, 어머니는 울면서 스님과 함께 냇물을 따라 내려갔다.
오직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1km 이상 내려가서 입구 화장실이 있는 곳 부근에 다다랐을 때, 천만 다행으로 이모는 얼굴만 약간 긁혔을 뿐, 다치지않고 나무뿌리를 잡은 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머니와 스님은 이모를 구하여 무사히 절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모는 빠른 물살에 발을 헛디뎌서 떠내려가게 된 것이다. 골짜기 물은 경사도 심하고 물살이 몹시 빠르며 바닥에 바윗덩어리가 수없이 돌출되어 있어서, 이같이 떠내려가게 되면 흔히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부서져서 살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모님이 물에 떠내려 갈 때 누군가 떠내려가는 이모님을 꽉 붙들어서 껴안더라는 것이다. 이 껴안은 분은 계속 껴안은 채 떠내려가다가 갑자기 이모님을 물의 갓 쪽으로 밀쳐 내었다. 갑자기 갓 쪽으로 밀쳐내자 이모는 개울가에 있는 나무뿌리를 웅켜 쥐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면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아마도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에 큰 물에 떠내려가도 보살님을 염하면 보살님이 얕은 곳을 얻게 한다는 경전 말씀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출처: 산림불교(cafe.naver.com/buddhistforest)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