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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ble shows a sample of the many different applications of the 1,260 and 1,290 “year-days” from Joachim of Floris in 1195 to John Aquila Brown in 1823. It would have been easy to extend the table to include expositors after Brown. However, the table ends with him because at this time another interpretation of the Gentile times began to surface, in which the 1,260 years were doubled to 2,520 years. 이 표는 1195년 플로리스의 요아킴에서 1823년 존 아퀼라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1,260년과 1,290년 "하루-일년"의 다양한 적용 사례들을 보여준다. 브라운 다음에 계속해서 다른 해설자의 계산을 포함시켜 이 표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 1,260년의 두배인 2,520년으로 된 이방인의 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표는 여기서 끝냈다. |
John Aquila Brown’s book The Even-Tide (London, 1823), in which the “seven times” of Daniel 4 for the first time were explained to mean 2,520 years. 다니엘 4장의 '일곱 때'가 2520년을 뜻하는 것으로 처음 소개된 존 아퀼라 브라운의 저서는 <저녁 무렵>(런던, 1823년)이다. |
John Aquila Brown
죤 아퀼라 브라운
In the long history of prophetic speculation, John Aquila Brown in England plays a notable role. Although no biographical data on Brown has been found so far, he strongly influenced the apocalyptic thinking of his time. He was the first expositor who applied the supposed 2,300 year-days of Daniel 8:14 so that they ended in 1843 (later 1844).20 This became a key date of the Second Advent movement.21 He was also the first who arrived at a prophetic time period of 2,520 years. Brown’s calculation of 2,520 years was based on his exposition of the “seven times” contained in Nebuchadnezzar’s dream of the chopped-down tree in Daniel, chapter 4. It was first published in 1823 in his two-volume work The Even-Tide; or, Last Triumph of the Blessed and Only Potentate,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22 He specifically states that he was the first to write on the subject: 연대예언해석의 오랜 역사에서, 영국의 존 아퀼라 브라운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브라운에 대한 전기 자료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의 시대의 종말론적 사고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다니엘 8:14의 2,300일에 하루-일년을 적용하여 1843년(나중에는 1844년)에 끝난다는 발표를 한 최초의 해설자였다. 브라운이 계산한 2,520년의 기간은 다니엘 4장에서 느부갓네살의 잘려진 그루터기의 꿈에 포함된 "일곱 때"에 대한 그의 해석에 기초했다. 그것은 1823년에 초판 발행된 그의 두 권의 저서 <저녁 무렵> 또는 <왕중 왕이자 축복받은 유일한 통치자의 마지막 승리>에 나오는 내용이다.22 이 내용에서 일곱 때에 대해 해설한 첫 번째 사람이 존 아퀼라 브라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Although many large and learned volumes have been written on prophetical subjects during a succession of ages; yet, having never seen the subject, on which I am about to offer some remarks, touched upon by any author, I commend it to the attention of the reader, not doubtingly, indeed, but with strong confidence that it will be found still further to corroborate the scale of the prophetical periods, assumed as the basis of the fulfillment of prophecy. 23 비록 여러 시대에 걸쳐 예언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양하고 방대하게 연구된 양의 기록이 있지만, 내가 지금 제공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해설을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나를 감동시킨 저자[하나님, 역자]로 인해, 독자들이 그 주제의 해설에 관심을 돌릴 것을 추천한다, 그 내용에서 더 심도 있는 사실이 발견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예언의 성취의 기초가 된다고 추정되는 연대예언의 기간에 대한 범위를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23 In his interpretation, Brown differed from other later expositors in that he nowhere connects the “seven times” of Nebuchadnezzar’s dream with the “seven times” of prophetic punishment directed against Israel at Leviticus 26:12–28. “Nebuchadnezzar was a type,” Brown wrote, “of the three successive kingdoms which were to arise.” Of the “seven times,” or years, of Nebuchadnezzar’s affliction, he said: 그의 해석에서, 브라운은 느부갓네살의 꿈의 "일곱 때(seven times)"와 레위기의 26:12–28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적 형벌의 "일곱 배(seven times) "를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른 후대 해석자들과는 달랐다. 브라운은 "느부갓네살은 부상했던 세개의 연속적인 왕국들 중 하나의 왕국의 통치자였다"고 기록했다." 느부갓네살이 겪은 고난의 일곱 때, 곧 7년에 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These] would, therefore, be considered as a grand week of years, forming a period of two thousand five hundred and twenty years, and embracing the duration of the four tyrannical monarchies; at the close of which they are to learn, like Nebuchadnezzar, by the “season and time” of the two judgements, that “the Most High ruleth in the kingdom of men, and giveth it to whomsoever he will.” 그러므로 [일곱 때]는 4대 전제군주 왕국의 기간을 포함하는 하루-일년의 7년으로 간주되며 2520년의 기간이 될 것이다. 그들은 느부갓네살과 같이, 심판의 이중적 "계절과 시간"에 의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그들이 알게 하려" 하실 것이다. Brown calculated the 2,520 years as running from the first year of Nebuchadnezzar, 604 B.C.E., to the year 1917, when “the full glory of the kingdom of Israel shall be perfected.”24 브라운은 기원전 604년 느부갓네살 원년부터 1917년까지의 2,520년을 "이스라엘 왕국의 완전한 영광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계산했다.24 Brown did not himself associate this period with the Gentile times of Luke 21:24. Nonetheless his calculation for the 2,520 years, and his having based these on Daniel chapter 4, have since played a key role in certain modern interpretations of those Gentile times. 브라운 자신은 이 시기를 누가 21:24의 "이방인의 때"와 연관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20년 동안의 그의 계산과 다니엘 제4장에 기초한 그의 계산은 그 당시 이방인의 때에 대한 특정한 현대적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Above: The Albury Park residence, near Guildford, south of London, the place of the Albury Park Prophetic Conferences, 1826–1830. At these conferences certain ideas were developed that 50 years later were to become central parts of the message of the Watch Tower Society, viz., the Gentile times as a period of 2,520 years, and the idea of Christ’s second coming as an invisible presence. 위: 런던 남쪽 길드포드 근처에 있는 앨버리 파크(Albury Park) 저택으로, 1826년–1830년 앨버리 파크에 위치한, 예언해석을 위한 모임의 장소이다. 이 회의에서 이루어진 2520년의 기간으로 된 이방인의 때에 관한 해석이, 50년 후 워치 타워 협회(Watch Tower Society, vis.)의 메시지의 중심 부분이 되어, 그리스도의 두 번째 보이지 않는 임재가 1914년에 있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Below: Henry Drummond, owner of Albury Park and host of the conferences, who also published annual reports on the discussions (Dialogues on Prophecy). 아래: 앨버리 공원의 소유주이자 회의의 주최자인 헨리 드러먼드(Henry Drummond)는 토론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The 2,520 years linked with the Gentile times
이방인의 때의 기간이 2520년으로 해석됨
It was not long before other expositors began identifying the new calculation of 2,520 years with the “Gentile times” of Luke 21:24. But, even as with the 1,260 days, they came up with differing results. 이윽고 어떤 해설자들이 누가 21: 24의 "이방인의 때"의 기간을 새롭게 계산된 2,520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260일 해석에서와 같이 그들은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하였다. At the Albury Park Prophetic Conferences (held annually at Albury near Guildford, south of London, England from 1826 to 1830), the “times of the Gentiles” was one of the topics considered. Right from the first discussions in 1826 they were connected with the 2,520 year period by William Cuninghame. He chose as his starting point the year when the ten tribes were carried into captivity by Shalmaneser (which he dated to 728 B.C.E.), thus arriving at 1792 C.E. as their last or termination date, a date that by then was already in the past?25 1826년부터 1830년까지 영국 런던 남부 길드퍼드 인근의 앨버리에서 매년 열리는 앨버리 공원의 예언해석을 위한 모임에서 고려된 주제는 "이방인의 때"에 관한 것이었다. 1826년 첫 토론에서 바로 윌리엄 커닝하임에 의해 2,520년의 기간으로 해석되었다. 그는 10개 부족이 샬마네저(기원전 728년)에 의해 포로가 된 해를 그 출발점으로 선택했고, 따라서 그 기간의 마지막 또는 종료일이 1792년이었으므로, 그때는 이미 과거 시점이 되었다.25 Many biblical commentators counted the “seven times of the Gentiles” from the captivity of Manasseh, which they dated to 677 B .C.E. This was obviously done so that the Gentile times would end at the same time already being assigned to the 2,300 day-years, that is, in 1843 or 1844.26 In 1835, William W. Pym published his work, A Word of Warning in the Last Days, in which he ended the “seven times” in 1847. Interestingly, he builds his calculation of the 2,520 years of Gentile times on the “seven times” mentioned in Leviticus 26 as well as the “seven times” of Daniel 4: 많은 성서 해설자들은 기원전 677년에 있었던 므낫세 포로로부터 "이방인의 때의 일곱 때"를 계수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이방인의 때가, 이미 2,300일에 배정된 때인 1843년 또는 1844년에 동시에 끝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해석된 것이었다.26 1835년, 윌리엄 W. 핌은 그의 작품인 <마지막 날의 경고의 말씀>을 발행했는데, 거기에서 1847년에 "일곱 때"가 끝난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레위기 26장에서 언급된 "7 배(seven times)"와 다니엘 4장의 "7 때(seven times)"를 바탕으로 2,520년이라는 이방인의 때의 기간을 계산하였다: In other words, the judgements threatened by Moses, which should last during the seven times , or 2520 years; and the judgements revealed to Daniel, which should come to an end by the cleansing of the sanctuary after a portion of the greater number 2520. 27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년의 일곱 배, 즉 2520년 동안 지속되어야 할 모세의 율법의 효력 기간과 다니엘에게 계시된 심판의 2300년이 2520년의 한 부분으로, 성소를 정결하게 함으로써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27 Others, however, were looking forward to the year 1836 C.E., a year fixed on entirely different grounds by the German theologian J. A. Bengel (1687–1752), and they tried to end the “seven times” in that same year.28 Illustrating the state of flux existing, Edward Bickersteth (1786- 1850), evangelical rector of Watton, Hartfordshire, tried different starting-points for the “seven times of the Gentiles,” coming up with three different ending dates: 그러나 또 일부의 사람들은, 독일 신학자 J. A. 벤겔 (1687–1752)에 의해, 전혀 다른 근거로 계산된 서기 1836년을 고대했고, 그들은 같은 해에 "일곱 때"가 끝난다는 해석을 시도했다.28 하트퍼드셔 와튼의 복음주의 감독인 에드워드 비커스테스(1786-1850년)는 기존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이방인의 일곱 때"의 다른 출발점을 시도하여 세 가지 다른 종료 시기를 생각해냈다: If we reckon the captivity of Israel as commencing in 727 before Christ, Israel’s first captivity under Salmanezer, it would terminate in 1793, when the French revolution broke out: and if 677 before Christ, their captivity under Esarhaddon (the same period when Manasseh , king of Judah, was carried into captivity,) (2 Kings xvii. 23, 24.2 Chron. xxxiii. 11,) it would terminate in 1843: or, if reckoned from 602 before Christ, which was the final dethronement of Jehoiakim by Nebuchadnezzar, it would terminate in 1918. All these periods may have a reference to corresponding events at their termination, and are worthy of serious attention. 29 만약 우리가 이스라엘의 첫 번째 포로가 된 기원전 727년에 살만네저의 통치하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포로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1793년에 종결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기원전 677년에 그들이 에사르하돈(유다의 왕 므낫세가 포로가 되었던 같은 해)하의 포로가 되었다면(왕하 17:23,24 역대하 33:11), 그 해는 1843년에 끝난다: 또는 기원전 602년부터 네부갓네살(Nebuchadnezzar)에 의해 여호야김이 마지막으로 폐위된 것으로 추정할 경우, 1918년에 끝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기간은, 끝나는 해에 중요한 사건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심각한 주의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29 One of the best known and most learned millenarians of the 19th century was Edward Bishop Elliott (1793–1875), incumbent of St. Mark’s Church in Brighton, England. With him, the date of 1914 first receives mention. In his monumental treatise Horae Apocalypticae (”Hours with the Apocalypse”) he first reckoned the 2,520 years from 727 B.C.E. to 1793 C.E., but added: 19세기에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학식있다고 정평 있는 밀레니언 중 한 사람은 영국 브라이튼에 있는 성 마르크[마가] 교회의 재직자였던 에드워드 주교 엘리엇(1793년–1875년)이다. 그에 의해서, 1914년이라는 연대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는 그의 기념비적인 논문 <종말의 시간>(호래 아포칼립티케)에서 기원전 727년부터 1793년까지의 2,520년을 처음으로 추정했지만,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Of course if calculated from Nebuchadnezzar’s own accession and invasion of Judah, B.C. 606, the end is much later, being A.D. 1914; just one half century, or jubilean period, from our probable date of the opening of the Millennium [which he had fixed to “about A.D.1862”].30 물론 기원전 606년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즉위와 유다를 침공하여 함락시킨 때로부터 계산한다면, 그 종료시기는 훨씬 늦은 서기 1914년이 될 것이며; 이는 그가[ "약 서기 1862년"으로 확정한] 천년기의 시작되는 해로부터 불과 반세기, 즉 희년의 기간에 불과하다.30 One factor that should be noted here is that in Elliott’s chronology 606 B.C.E. was the accession-year of Nebuchadnezzar, while in the later chronology of Nelson H. Barbour and Charles T. Russell 606 B.C.E. was the date assigned for Nebuchadnezzar’s destruction of Jerusalem in his 18th year.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요인은, 엘리엇의 연대기에는 기원전 606년은 느부갓네살의 즉위연도이고, 넬슨 H. 바버와 찰스 T. 럿셀의 후기 연대기에는, 기원전 606 년이 네부갓네살이 즉위 18번째 해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날로 지정된 것이라는 점이다. |
20 Brown first published his chronology in an article in the London monthly The Christian Observer of November 1810. According to his understanding of the Gentile times, the “trampling Gentiles” were the Mohammedans (or Muslims), and he therefore regarded the 1,260 years so widely commented on as Mohammedan lunar years, corresponding to 1,222 solar years. He reckoned this period from 622 C.E. (the first year of the Mohammedan Hegira era) to 1844, when he expected the coming of Christ and the restoration of the Jewish nation in Palestine.—J. A. Brown, The Even-Tide, Vol. 1 (1823), pp. vii, xi, 1–60.
20 브라운은 1810년 11월호 런던 월간지 크리스천 옵서버에 연대기사를 처음 게재했다. 이방인의 때에 대한 그의 이해에 따르면, "짓밟는 이방인"은 모하메드(또는 이슬람교도)였고, 따라서 그는 1,260년을 모하메드 음력으로서, 태양력 1,222년에 해당하는 해로 간주했다. 그는 이 시기를 기원전 622년(모하마드 헤기라 시대 원년)부터 1844년까지로 계산했는데, 이때 그는 그리스도의 도래와 팔레스타인의 유태인 국가 복원이 기대되었다.—브라운의 <저녁무렵> 제1권 (1823년), 페이지 vi, xi, 1-60.
21 The second advent was expected to occur during the year 1843/44, counted from Spring to Spring as was done in the Jewish calendar. It has been maintained that expositors in the United States arrived at the 1843 date as the end of the 2,300 years independently of Brown. Although that may be true, it cannot be proved, and interestingly, the London, England, Christian Observer, a periodical founded in 1802 which frequently dealt with prophecy, also had an American edition published at Boston which ran article for article with the British edition. So Brown’s article on the 2,300 years could have been read by many in the United States as early as 1810. Soon afterwards, the 1843 date began to appear in American prophetic expositions.
21 두 번째 강림은 유태인 달력에서와 같이 봄에서 봄으로 계산되는 1843/44년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의 해설자들은 브라운과는 별개로 2300년이 지난 1843년에 도착했다고 한다.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증명될 수는 없으며, 흥미롭게도, 1802년에 창설되어, 예언을 자주 다룬 잡지인 영국 런던 <크리스챤 옵저버>도 영국판 기사를 위해 보스턴에서 발행된 미국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300년에 대한 브라운의 기사는 이르면 1810년에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다. 곧, 1843년이란 연대가 미국의 예언 설명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2 Published in London; the pertinent material is found in Vol. II, pp. 130–152.
22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관련 자료는 II권, 130~152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3 Perhaps some may be inclined to object to this statement on account of the table on pages 404 and 405 of Froom’s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ume IV. It is true that this table seems to show James Hatley Frere as the first to write on the 2,520 years in 1813. But the part of the table farthest to the right on page 405 entitled, “Dating of other time periods,” does not have any close connection with the “Publication date” column on page 404. It simply states the author’s general position on other time periods. Besides, Frere never held the times of the Gentiles (or the “seven times”) to be a period of 2,520 years. In his first book on prophecy, A Combined View of the Prophecies of Daniel, Esdras, and St. John (London, 1815), he does not comment on Daniel 4 or Luke 21:24. The “holy city” of Revelation 11:2 he explains to be “the visible church of Christ” and “during the period of 1260 years, the whole of this city is trodden under foot of the Gentiles, excepting the interior courts of its temple.” (Page 87) Many years later Frere calculated the Gentile times to be a period of 2,450 years from 603 B .C.E. to 1847 C.E. See, for example, his book, The Great Continental Revolution, Marking the Expiration of the Times of the Gentiles AD. 1847–8 (London, 1848). Note especially pages 66–78. John A. Brown, of course, was well acquainted with the many contemporary writings on prophecy, and Frere was one of the best known expositors in England. So there seems to be no reason to doubt Brown’s own statement of priority with respect to the 2,520 years.
23 프룸의 <예언에 관한 조상들의 믿음>, 제4권의 404, 405면의 표 때문에 아마도 일부 사람들은 이 진술에 반대할 것이다. 이 표는 제임스 해틀리 프레어가 1813년 2520년에 처음으로 쓴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기간의 연대"라는 제목이 붙은 405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표의 한 부분은 404면의 "발행 시기" 열과 특별한 관련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시기에 대한 작가의 일반적인 입장을 말한다. 게다가 프레어는 이방인의 때 (또는 "일곱 때")를 2,520년의 기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예언에 관한 첫 번째 책, 다니엘, 에스드라,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의 예언에 대한 종합된 견해에서. 존 (1815년 런던)은 다니엘 4장이나 누가 21:24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1장 2절의 "거룩한 도시"는 "그리스도의 눈에 보이는 교회"이며 "1260년 동안 이 도시 전체가 성전의 안뜰을 제외하고 이방인의 발 아래 짓밟히고 있다."(87면) 수년 후 프레리는 기원전 603년부터 서기 1847년까지 2,450년의 기간으로 계산했다. 예를 들어, 그의 저서 <위대한 대륙 혁명> 기원 1847–8 (런던, 1848)년을 이방인의 때의 만료시점으로 구별했다. 특히 66-78면을 주의깊이 읽어 보라. 물론, 존 A 브라운은 예언에 관한 당대의 많은 저술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프레리는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해설자들 중 한 명이었다. 따라서 2,520년에 관한 브라운 자신의 우선순위 발언을 의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24 The Even-Tide, Vol. II, pp. 134, 135; Vol. I, pp. XLIII, XLIV.
24 <저녁무렵>, II권, 134, 135면; Vol. I권, 페이지 43, 44면
25 Henry Drummond, Dialogues on Prophecy (London, 1827), Vol. I, pp. 33, 34. In this report from the discussions at Albury, the participants are given fictitious names. Cuninghame (”Sophron”) arrives at the 2,520 years by doubling the 1,260 years, not by referring to the “seven times” of Daniel 4 or Leviticus 26. In support of this he refers to the authority of Joseph Mede, an expositor living in the seventeenth century. Although Mede had suggested that the times of the Gentiles might refer to the four kingdoms beginning with Babylon, he never stated the period to be 2,520 years. (Mede, The Works, London, 1664, Book 4, pp. 908–910, 920.) In a later conversation “Anastasius” (Henry Drummond) connects the 2,520 years with the “seven times” of Leviticus 26 and, “correcting” the starting-point of Cuninghame from 728 to 722 B .C., he arrives at 1798 C.E. as the terminal date. (Dialogues, Vol. I, pp. 324, 325)
25 헨리 드러먼드의 <예언에 관한 대화> (런던, 1827), 1권 33, 34면. 앨버리 공원에서의 회의에서 나온 이 보고서에서,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이름이 주어진다. 쿠닝하메("Sophron")는 다니엘 4장이나 레위기 26장의 "7 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1,260년의 두 배로 2,520년에 도달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17세기에 살았던 해설자 요셉 메드의 권위를 언급한다. 메데는 이방인의 때가 바빌론을 시작으로 하는 4개의 왕국을 가리킬지도 모른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그 기간을 2,520년으로 말하지 않았다. (메데, 작품, 1664, 런던, 4권, 908–910, 920면) 나중에 나눈 대화에서 아나스타시우스(헨리 드러먼드)는 2,520년을 레위기 26장의 "7배"와 연결하고 기원전 728년을 722년으로 쿠닝하메의 출발점을 "수정하여", 서기 1798년이 만료시기라 보았다( <예언에 관한 대화> 1권 324, 325면).
26 John Fry (1775–1849) was among those doing this, in his Unfulfilled Prophecies of Scripture, published in 1835.
26 존 프라이(1775–1849)는 1835년에 그의 저서 <성서에 나오는 미완성 예언들>을 발행함으로써 이런 일에 종사하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27 Found on page 48 of his work. Quoted in Froom, Vol. Ill, p. 576.
27 그의 작품 48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룸의 저서 III권 576면에서 인용했다.
28 So did W. A. Holmes, chancellor of Cashel, in his book The Time of the End which was published in 1833. He dated the captivity of Manasseh under Esarhaddon to 685 B CE., and counting the 2,520 years from that year, he ended the “seven times” in 1835–1836.
28 1833년에 출판된 그의 책 <종말의 때>에서 카셀의 수상인 W.A.홀미스도 그러하였다. 그는 엣살하돈의 지배하에 있던 므낫세 포로의 시대를 기원전 685년으로 잡았고, 그 해로부터 2,520년 동안, 1835ㅡ1836년에 이르기까지 "일곱 때"를 계수하였다.
29 Edward Bickersteth, A Scripture Help, first edited in 1815. After 1832 Bickersteth began to preach on the prophecies , which also influenced later editions of A Scripture Help. The quotation is taken from the 20th edition (London, 1850), p. 235.
29 에드워드 비커스테스의 <성경도우미>가 1815년에 처음 편집되었다. 1832년이 지나, 비커스테스는 예언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또한 <성경 도우미>의 후기 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용문은 제20판 (런던, 1850년) 235면에서 인용한 것이다.
첫댓글 가장 마지막 부분의 글이 요점인 것 같습니다.
엘리엇의 연대는 기원전 606년이 느부갓네살의 즉위 연도이고
넬슨바버와 럿셀의 연대기는 기원전 606년이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함락 연도라는 점인데 함락은 느부갓네살 제위 18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