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마음가짐 1 고락변화의 당연함
인생무상(人生無常)!
인생무상의 이치에 확연히 깨어 있어야 한다.
인생무상이라는 이치를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치가 뼈 속 깊이까지
사무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치에 대해 의식으로 아는 바와
몸에 와 닿는 느낌이 같아야 한다.
세 시간 결가부좌를 성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인생무상의 이치가 피부로 와 닿는 때가
명상과 선정의 수행 입문이다.
인생무상을 이치로 알고 있다하면서 그것이
피부로 와 닿지 않으면 그것은 지식에 불과한
인생무상의 알음알이이다.
피부로 와 닿기 때문에 몸소 실천 수행에
들어선다.
그래서 세상사를 져버리고 출가수행하지 않는가!
그래서 세상사와 함께 하고 있지만
유마처럼 여법한 정진을 이어가지 않는가!
어떻게 해야 인생무상이 피부로 와 닿는가!
인생무상의 이치를 생명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인생무상의 이치를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인생무상의 이치에 밝게 깨어있다.
인생무상의 이치가 무엇인가?
유마경에서 밝히고 있는 인생무상의 이치를
예로 들어 함께 공부해 보자!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유마가 인생무상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나를 보세요.
재물이 많지만
그 재물이 나의 병을 치유해 줍니까?
예쁜 아내와 자식들이 있지만
나의 병을 대신해 줍니까?
가까운 친척 친구들이 많지만
나의 병을 나누어 덜어줍니까?
누구도 이 병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병이 이어져서 죽게 됩니다.
아, 죽는다!
무엇이 죽는다는 것이죠?
마음?
마음이 죽는다는 말 들어 봤습니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로만 하고 있지 직접 본적 있습니까?
직접 느껴 본적 있습니까?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볼 수 있다거나,
느껴 본다거나, 태어나고 죽는다거나 하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뚱이는 직접 보아온 것처럼
커가는 모습, 늙어가는 모습, 활기찬 모습,
병든 모습, 기뻐하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등 변화무쌍하죠!
이러한 신체의 변화를 인생무상이라 합니다.
사랑, 명예, 자존심 등 모든 의식의 변화 또한
이러한 몸의 변화, 즉 인생무상으로부터
생겨나게 되죠.
인생무상의 틀에서 마음이 자재할 때
태어나고 죽어가는 생사변화를
초월하게 됩니다.
무상은 변화입니다.
마음은 그대로 인데 우리의 육신이
끝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처럼 이렇게 병이 났을 때 또는
사건에 직면했을 때 마음이 몸의 변화에
얽매어 있지 않으면 항상 편안한 마음,
즉 안심(安心)을 유지하게 됩니다.
세 시간 결가부좌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 다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따른다.
어느 땐 10분 간격으로 느껴지다가
어느 땐 순간순간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픈 통증이 반복적으로 지속된다.
1분이 100분처럼 느껴진다.
이때 인생무상의 이치가 뼈 속까지 와 닿아
있으면 그러한 통증으로부터
마음이 자재(自在)하게 된다.
왜 참기 어려운 통증이 느껴지는가?
왜 통증으로부터 참기 어려워지는가?
의식이 고락변화(苦樂變化)의 이치에
역행(逆行)하기 때문이다.
아직 깊은 명상에 몰입하기 이전의 단계에
있는 선지식이 세 시간 결가부좌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앉아 있을 때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세 시간 결가부좌라는 큰 기쁜 즐거움을
얻고자 하기에 그에 상응하는 신체의
큰 고통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고통이 당연히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세 시간 결가부좌를 성취하는 환희는 얻으면서
그에 상응하는 고통은 회피하는 것은
고락변화의 당연한 인생무상의 이치에
밝게 깨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증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이 강해지고,
그러한 회피의식이 강할수록 와 닿는 통증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특히 중 노년의 선지식인 경우 대부분
몸이 이미 적지 않은 부위의 기혈이
막혀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에 비해
와 닿는 통증은 더 크다. 때문에 어떤
큰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세 시간
결가부좌를 성취하겠다는 신명(身命)을 바쳐
혜명(慧命)의 등불을 밝히는 우주처럼
큰마음으로 임해야 된다.
세 가지 마음가짐 2 자리이타의 평등함
세 시간 결가부좌 성취의 목적은
혜명(慧命)의 등불을 밝히는데 있다.
몸의 건강을 위하는 목적이라면
한 시간 결가부좌로 족하다.
세 시간씩 결가부좌 정진을 이어가겠다고
신념을 굳힌 선지식은 이미 살아 있는 동안
세상살이에 초연하면서 생사를 초월한 우주처럼
광대무변한 자재인생을 성취하는데
삶의 목적을 두고 있다.
인생무상의 이치에 밝게 깨이면
공문(空門)에 들어선다.
구마라즙이 유마경 주석에서
“무상(無常)은 공(空)에 들어가는 문(門)이다.”
고 밝힌 것처럼 무상의 변화로 드러나는
세상사에서 차별의 분별상을 초월한
선경(仙境)에 노니는 환희의 즐거움이
세 시간 결가부좌 명상에서 성취된다.
어떻게 공문(空門)에 들어갈 수 있는가?
무상(無常)의 이치를 확연히 깨닫는다.
무상의 이치를 어떻게 하면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평등(平等)함을
확연히 깨닫는다.
자리이타의 평등심을 어떻게
발현할 수 있는가?
지금 결가부좌하고 있는 그 자체가
공문에 들어서 있으며,
사리분별의 차별의식이 없고,
더 나아가 결가부좌하고 있다는 의식 또한
놓아버린 마음상태를 유지했을 때
자리이타의 평등심은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자리이타의 평등심이란 의미가 무엇인가?
결가부좌하고 있는 그 자체가
자신의 혜명의식을 향상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비행(慈悲行)이다.
결가부좌 정진으로 지혜를 향상한 다음
그 지혜의 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혜명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결가부좌 정진하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이다.
자리(自利)가 바로 이타(利他)이며,
“이타”가 바로 “자리”인
그리고 그 자리가 이타와 다르지 않고
이타가 자리와 다르지 않은
곧 자리인 이타가 불이(不二)인 마음상태를
자리이타의 평등심이라.
세 가지 마음가짐 3 본래면목의 확연함
혜명의 등불이 밝게 비춰질수록
본래면목은 확연히 발현된다.
신명(身命)의 정진(精進)은
내 몸을 도량으로 삼는다.
혜명(慧命)의 정진(精進)은
내 마음을 도량으로 삼는다.
몸을 도량으로 삼고 정진할 땐
의식이 몸으로 집중한다.
마음을 도량으로 삼아 정진할 땐
의식이 몸을 초월한다.
의식이 “몸으로 집중”과 “몸을 초월”
하는 차이가 무엇인가?
마음이 가는 곳에 기(氣)가 따라가고,
기가 가는 곳에 혈(血)이 따라간다.
이 때 마음이란 의식을 뜻한다.
의식은 생각의 모임이다.
생각들이 모여서 의식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
신명의 정진은 몸의 생명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신명의 정진이 이어지는 동안
의식이 몸에 모인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 몸으로 잘 모일수록
양생효과가 그만큼 크다.
혜명의 정진은 마음의 본성인
본래면목을 깨닫는데 있기에
혜명의 정진이 이어지는 동안
의식이 생(生)과 사(死)의 틀에
제한되어 있는 몸으로부터
초월해야 된다.
“몸의 초월”이란
의식이 몸을 떠난 다른 어느 곳에
노닌다는 뜻이 아니다.
몸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경계(境界)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곧 모든 경계에 자유롭기에 인연(因緣) 따라
자재(自在)한다고 표현하며
이것을 수연자재(隨緣自在)라 일컫는다.
그래서 “도인(道人)의 삶은 수연자재이다.”
고 표현한다.
“무엇을 도량으로 삼아 정진해야 합니까?”
물었을 때
“직심(直心)을 도량(道場)으로 삼아 정진하라!”
고 혜능선사께서 강조 하셨다.
세 시간 결가부좌 정진을 성취하는데
갖추고 있어야할 세 가지 마음가짐:
고락변화의 당연함,
자리이타의 평등함,
본래면목의 확연함,
은 표현상 알기 쉽게 나누어 말했을 뿐
사실 서로 다르지 않다.
곧 불이(不二)이다.
도서출판 ‘선禪’
정암스님 ‘결가부좌 연습’
p.180-188에서 발췌 해서 필사했습니다.
본문 내용을 그대로 필사 했지만
일부 오탈자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첫댓글 다시 말하면 의식이 몸으로 잘 모일수록
양생효과가 그만큼 크다. //
한마디 덧붙여 보겠습니다. 의식이 몸에서 머물지 않을 수 있는 만큼, 비례하여 의식이 몸으로 잘 모인다. 다시, 의식이 몸으로 잘 모이는 만큼 의식이 몸에 잘 머물지 않알 수 있습니다. 무애!
우리 부처님 제자는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야 합니다(성명쌍수). 오취온(유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것에는 분명 ‘명신(수상행식온)’과 함께 ‘색신(색온)’ 또한 포함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도의 과정에 몸의 건강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도라는 거창한 이름 하에 육신의 일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세월을 보낸 후에야 후회해 봐야 늦습니다. 타인에게 짐꾸러미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행자의 자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도 ‘인연’이란 말로 신세가 어디있냐고 피해가 본들 핑계일 뿐이란 사실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왕 지을 인연이면 왜 굳이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까? 나도 구하고 너도 구하고~ 구할 것이 없다마는 꿈이라도 장엄한다는 자세로 나아가야지요.
아들이 없어 관 들어줄 이 없다 한탄말고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자가다비 치루겠단 깡으로 수행합시다.
‘깡’ 하니까 생각나서 ~ 일일일깡 ~ 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8ITi0ilDe4A
PLAY
스타는 스타입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이런 식으로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면 ^^
이런 댓글에 화내지 않고 아내와 재밌게 보고 있다니 대인배의 품격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