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해석) 완성은 클리셰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에서 문명이 탄생-성장-쇠퇴-붕괴의 과정을 거쳐 순환한다는 역사 순환설을 주장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영감에 의해 시가 탄생하고 결실을 맺으려 하지만(시에서는 완성이 없으므로) 곧 클리셰가 된다. 그 클리셰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화자가 나이더라도 너의 존재는 대부분 나로 대체하여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서정시는 화살이 항상 자기를 향하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개인의 수양과정, 시의 생성과 소멸, 조직의 생성과 소멸 등 어떤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자기 체험에 비추어 해석하면 된다. 일즉다의 유비이기 때문이다.
2021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시에서는 완성이 없으므로 열매를 맺으려 한다는 것은 거의 절정을 의미한다.나무는 한 세계를 의미)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시의 신이 소각장에 있다. 클리셰를 소각하려는)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낙엽이 다 떨어진 유실수인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유실수인 너와 너에게서 떨어진 잎(클리셰의 파편물)은 같은 존재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미련이 없도록 완전히 눌렀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모래시계는 시간의 덧없음을 상징하고 소각하기 위해 구덩이로 클리셰들을 구덩이에 몰아 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클리셰를 극복하면 낯설어지고 쓸쓸해져서 사용할만할텐데. 내 얘기고 듣지 않는다)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반딧불이를 모아도 올라가지 않는 온도와 올라가는 건물은 헛된 욕망을 상징)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언어는 존재이고 존재는 비어있었던 적이 없다.진공묘유다.이제 파편인 낙엽뿐만 아니라 본체인 나무에도 불이 옮겨 붙어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시를 쓰게 하는 시의 신, 영감, 뮤즈를 오래 알았기 때문에 무화시키는 그의 속성을 잘 안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모든 것은 과거로 사라진다. 결국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는 행위이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몇은 다시 시작하기 위해 땅으로, 몇은 전설 속으로)
[심사평]
이미지가 눈에 생생…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인숙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
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첫댓글 https://youtu.be/DQ5QM58jX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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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GsOd9uV8 2021 당선시 비교
https://naver.me/xvtU0meG 모든 존재는 완결되었을 때 소멸되어간다(화이트 헤드 과정과 실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