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간 나오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는 대책을 서둘렀지만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하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당시 정부자문으로 참여한 에구치 타쿠미 등 전문가들은 지하 오염수를 가장 우려했다. 지하수가 오염되면 더 이상 핵오염 확산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었다. 이 문제는 NHK가 2022년 4월 23일자 ‘후쿠시마 : 지하수의 저주(Fukushima : The Curse of Groundwater)’에서 집중 방송한 바 있다.
에구치 씨가 지하수 문제를 언급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원전의 물웅덩이에서 400mSv/h의 방사선 준위가 보고되었다. 이 수치는 매우 높은 방사능 수치로, 지하가 오염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일일 지하수가 원전 밑으로 하루 1000톤이 흐르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수 차단용 콘크리트 담을 지하 30m 이상의 깊이로 둘러쌓는 것이 권고 되었지만, 3개월 동안의 치열한 논의 끝에 무산되었다. 사고로 재정 압박이 컸던 사업자 측의 비용문제 때문이었다. 지하오염수는 계속 배출되었고 한참 지난 2017년에 가서야 원전 주변에 동토벽을 둘러 설치한다.
동토벽 설치로 그나마 줄어든 지하오염수
동토벽은 지하수가 원전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된 것이지만 설치 당시 지하의 여러 구조물이 방해되어 냉매 배관을 설치하기 어려운 빈 공간이 발생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약 340억 엔을 투입하여 강행한 결과 지금은 일일 발생 오염수가 100톤 전후로 줄어든 상태이이다. 이렇게 발생한 지하오염수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제염 처리된 뒤 부지에 보관된 것이 130여만 톤이 넘는다. 현재 저장 오염수는 재차 제염, 희석하여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동토차수벽 그림
동토차수벽이 원자로 건물의 지하수 유입을 막는 그림
동토차수벽 냉매배관이 땅속으로 들어가다 장애물을 만나면 그 하부가 가려져서 방수벽에 구멍이 발생하는 모습
ALPS는 장비가 불완전하여 많은 핵종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삼중수소와 탄소14처럼 근본적으로 제거가 불가능한 원소는 물론이고 장기 반감기 핵종조차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배출하면 반감기가 긴 핵종들은 그대로 환경에 축적되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원자력기구(IAEA)는 장기적인 생태환경 영향평가를 검토도 하지 않고 졸속으로 배출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낸 최종보고서를 7월 4일 일본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이러한 오염수 처리정책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도쿄전력은 30년 동안 860조 Bq의 저장된 핵오염수를 충분히 제염, 희석하여 버리겠다고 하지만 지하에 있는 핵연료가 녹은 데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는 지하수 침투로 인해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발생하게 된다. 지금처럼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하면 30년 뒤에 또 다른 97만 톤(일일 90톤 발생되는 경우)의 오염수가 발생되어 배출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출정책은 데브리가 제거되지 않는 한 30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배출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의 핵오염수 저장탱크들 모습. 2023.08.24. EPA 지지통신 연합뉴스
오염수의 해양방류를 결정한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24일 첫 방류 이후 현재까지 3차 방류를 마치고 4차 방류를 앞두고 있다.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염수 방류를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초기부터 오염수를 차단하는 방법이 여러 번 제안되었다. 최우선적이고 최종적인 오염수 대책은 지하에 녹아 떨어진 880톤의 데브리 제거이지만 고방사선으로 인한 현장 접근 불가로 사고 후 13년이 다 되었어도 1g도 제거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동토벽이 오염수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쉽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선택되었지만 구멍 난 동토벽은 누수가 발생하므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가 없다.
더 넓고 더 깊은 차수벽이 유일한 지하오염수 방지책
일본의 지하수문제 연구단체인 지학단체연구회의 2022년 보고서에서는 후쿠시마 원전부지 지층이 투수층과 난투수층이 존재하는 지층구조인데, 원자로 건물이 하부 투수층까지 건물기초가 설치되어 하부 투수층과 상부 지층의 투수층으로 지하수의 건물 유입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차단해야 하므로 원전 주위 3.7km를 두르는 광역방수벽을 30~50m 깊이로 설치하여 원전 뒷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부터 차단시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동시에 상류 측에 집수정을 설치하여 여기에 지하수를 모아서 제거함으로써 원전으로 가는 지하수 유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자는 것이다.
기존에 설치된 약 1.5km의 동토벽은 그대로 운영하되 추가로 광역 차수벽을 설치하면 지하수는 근본적으로 차단되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오염수 발생은 억제될 것이다. 이후 기존의 오염수는 오일 저장탱크처럼 15만~20만 톤의 거대 저장탱크를 활용하여 장기 저장하는 방안도 아울러 제안하고 있다. 지학단체연구회의 연구에 따르면 광역 차수벽은 3년의 조사관측설계 기간을 두고 시공하면 6년 안에 동토벽 건설비의 절반 예산으로 충분히 시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경우 2천억 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오염수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 억제,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버릴 생각만 하는 것은 지구환경을 핵으로 오염시키는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일본의 잘못된 정책에 동조하며 오염수 배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6년 간 3조 원의 오염수 대책예산을 잡은 것은 미봉책으로 국민을 기망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안전을 생각한다면, 해양 방출을 결정한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 대책의 허구성을 지금이라도 따져야 하며, 전 세계적 재앙이 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의 근본문제를 국제 공동협력으로 조기에 효율적·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