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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에는 붉은 점으로 뚜렷하게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며 발바닥에는 열세 개의 점이 선명하니라.
(증산도 道典 3:320)
12
상제님께서는 강세 초부터 기골이 장건하시고 기상이 준수하시더니, 차츰 성장하시매 전신에서 후광(後光)을 발하시고 천중천정(天中天庭)이 광대하시며 일월각(日月角)이 풍륭(豊隆) 하시고 봉안(鳳眼)에 안광이 찬연(燦然)하시며 융준용안(隆準龍眼), 학경귀배(鶴頸龜背)시니라. 배면(背面)에 칠성문(七星紋), 우고(右股)에 3 적자(赤子), 좌고(左股)에 72 적자, 두 족장(足掌)에 각각 3 적자가 완연하시고, 장년 후에는 용수(龍鬚) 용조(龍爪)를 지니셨으며 음성은 우레 같은 용성(龍聲)이시니라.
(태극진경 1장)
부처님은 태어날 때,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이 세상에 내 오직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세상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혹은 “나는 세상에 광명을 비추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도다”라고
하셨다고 한문 및 인도 팔리어 경전에 나와 있습니다.
* 칠성(七星)의 3위(位)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증산 상제
서가 자미 대제군 정산 옥황상제
: 성신(星辰)을 주장(主張)하시는 칠성(七星)은 구천상제님을 대행하여 보좌하시는 동방칠성(東方七星)이신 정산 옥황상제(鼎山 玉皇上帝)님과 서방칠성(西方七星)이신 서가여래(釋迦如來) 이십니다.
천상에 다다르니 수 많은 문무 관리가 질서정연하게 도열하여 명을 들을 새, 정제되고 밝으며 성대한 복장으로 앞 뒤와 주변으로 도니 그 모습이 빛나고 질서정연하고, 선명한 옷차림은 오색이 서로 잘 어울려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그치는 것이 우아하고 화기로우며 기쁨에 넘쳐, 그윽하고 밝아 마치 어린아이와 같고, 여러 구부러진 난간마다 상서로운 봉황이 간간이 울음을 울어대고, 푸르고 누른 집 지붕에는 상서로운 용이 때때로 휘감아 돌고, 정원 앞에 있는 빛나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는 좋은 냄새를 뿜어내나니, 아름다운 꽃과 보석같은 풀은 세상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것이오,
진귀한 날짐승과 기이한 길짐승이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혹 노래도 부르고 혹 휘파람도 불며, 신선의 음악이 가지런하고 밝아 맑고 청명하고, 선녀가 신묘한 춤을 추어 가히 신의 경지에 오른듯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층층의 누대마다 그림이 그려진 전각에는 나는 듯이 용마루가 하늘로 솟아 구름속을 꿰뚫은 듯하야, 단청이 너무나 놀라웁고 티끌같은 먼지도 날지 않아 깨끗하고 청결하며 투명하여, 영롱하게 빛나는 빛깔이 완연 유리세계이더라.
한 큰 전각이 있어 현판을 살펴보니 황금으로 된 큰 글씨로 요운전이라고 쓰여있더라. 전각 안으로 들어가보니 용상이 있는데, 황금과 백옥으로 조각하여 놓은 용 봉황 거북 기린과 온갖 진귀한 길짐승과 날짐승이 참으로 아름답더라. 휘황찬란하여 가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더라.
대선생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관이 다 절을 드리더라. 아 그런데 한 선관이 와서 별도로 마련된 의자에 앉으니, 백금조각들로 만들어진 상서로운 관모와 옷이 햇볕에 반사되어, 그 눈부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고, 섬섬옥수는 하얗게 분칠한 것보다 더 순결하고, 곱고 단아한 얼굴은 눈보다도 더 맑더라. 글씨를 쓰는 모습이 참으로 놀라웁고, 안뜰 마당에는 한 큰 죄수가 있어 하늘에 생명을 구하며 그 고통을 호소하니, 신장이 여러 죄를 문책하니 심히 엄하더라.
조회가 파함에 대선생께서 형렬을 돌아보시며 "네가 여기에 왔는데,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만나보기를 원하느냐." 형렬이 말씀드리기를 "자손의 도리에 지극한 소원이 조상을 정성스레 만나는 것이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층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문이 스스로 열리더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청수를 모시고 향을 피우며 주문을 읽는 공부를 하고 정성을 드리는 데, 그 얼굴이 화기롭고 기뻐하는 모습일 뿐이요,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
형렬이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대선생께 여쭙기를 "용상아래 별도로 마련된 자리에 앉아, 흰옷을 입고 글을 쓰고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석가불(釋迦佛)이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석가불이 하늘의 조정에서 어떤 직위를 맡고 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대제군(大帝君)의 존경받는 자리요 서방칠성(西方七星)이니,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모시면서 만상을 섭리하고 있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동방칠성은 어찌 자리에 없나이까."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은 신계의 주벽이니, 내 명을 받고 이미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동방칠성이 인간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면, 가히 만나볼 수 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이제 초립동의 나이이니, 인연이 있으면 만날 것이니라. 장차 일을 같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무슨 연고이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척지간에 있으니, 삼가하고 근신하는 모습이 그러하니라. 만약 말에 망령됨이 있어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느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죄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리 엄하게 다스리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안록산이니라." 형렬이 아뢰기를 "안록산의 배은망덕은 이미 천 년이 지난 옛날의 일이거늘, 어찌 지금까지 미결수로 남아있나이까.
"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나라를 잘못되게 큰 죄를 지은 자는 혹 백 년에 한 번씩 신문을 하나니, 이는 묵은 하늘이 나에게 폐해를 남긴 것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111-115)
: 윗글은 김형렬의 천상견문록으로 겉으로는 증산상제님이 김형렬을 위해 잠시 천상 옥경을 보여 주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증산상제님을 보좌하여 천지를 다스리시는 성신(星辰)의 주재자 이신 동방칠성의 자리에 계신 정산 옥황상제(鼎山 玉皇上帝)님과 서방칠성의 자리에 계신 서가여래(釋迦如來) 즉, 서가 자미대제군(釋迦 紫微大帝君)님의 천상 조화정부 신명계 에서의 위상을 알려 주시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 칠성주(七星呪)
七星如來 大帝君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칠성여래 대제군 북두구신 중천대신 상조금궐 하부곤륜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巨門綠存 文曲廉貞 武曲破軍
조리강기 통제건곤 대괴탐랑 거문녹존 문곡염정 무곡파군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際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제 세입미진 하재불멸 하복부진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罡所指 晝夜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원황정기 내합아신 천강소지 주야상륜 속거소인 호도구령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六淳曲生 生我養我 護我身形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육순곡생 생아양아 호아신형
魁𩲃𩵄䰢 魓𩳐魒 尊帝 急急 如律令
괴작관행 필보표 존제 급급 여율령
: 칠성주는 고려 중기부터 민간에서 읽어오기 시작했다는 칠성경(七星經)의 ‘북두주(北斗呪)’를 그 원형으로 합니다.
칠성경이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을 말합니다. 긴 이름의 이 경은 줄여서 ‘연생경’으로도 불리는데, 조선의 도교 의례 주관 관청이었던 소격서(昭格署)의 관리 선발 취재 과목에 들었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습니다.
현재 이 경을 찾아 읽어볼 수 있는 곳은 두 군데인데,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 중인 것이고(<그림 1>), 또 하나는 중국의 도교 경전 모음집 『도장(道藏)』에 수록된 것입니다(<그림 2>)
▲ <그림 1>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칠성경(「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 속의 북두주
▲ <그림 2> 중국 도교의 『도장』에 수록된 칠성경(「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 속의 북두주. 노란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북두주이고, 빨간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은 삼태성을 담당하는 신명들 이름입니다.
연생경, 즉 칠성경이 곧바로 칠성주인 것은 아닙니다. 2,464개의 글자 수를 가진 칠성경 가운데 129개 글자 분량의 ‘북두주’가 칠성주의 원형에 해당합니다. 대순진리회가 사용하는 칠성주(㉠),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중인 칠성경의 북두주(㉡), 중국 도교의 『도장』에 실린 북두주(㉢)를 각각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순진리회가 사용하는 칠성주
七星如來 大帝君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照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文曲巨文 祿存廉貞 武曲破軍 高尙玉皇 紫微帝君 大周天際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罡所指 晝夜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 虛精 六旬 曲生 生我 養我 護我 身形 魁𩲃𩵄䰢魓𩳐魒 尊帝 喼喼 如律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칠성경의 북두주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諸乾坤 大魁貪狼 巨門祿存 文曲廉貞 武曲破軍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界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罡所指 晝夜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 虛精 六淳 曲生 生我 養我 護我 身形 魁𩲃𩵄䰢魓𩳐魒 尊帝 急急 如律令 莎婆訶
㉢중국 도교의 「도장」에 수록된 칠성경의 북두주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崐崘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巨門祿存 文曲廉貞 武曲破軍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界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炁 來合我身 天罡所指 晝夜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 虛精 六淳 曲生 生我 養我 護我 身形 魁𩲃𩵄䰢魓𩳐魒 尊帝 急急 如律令
나란히 놓고 보면, 칠성주에서 ‘칠성여래 대제군’이라는 부분이 덧붙여지고 붉은색으로 표시해둔 몇 곳의 글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문곡(文曲)’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칠성경 북두주에서는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이라고 했던 북두칠성의 순서가 칠성주에서는 ‘탐랑 문곡 거문 녹존 염정 무곡 파군’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렇게 ‘문곡’ 위치를 네 번째에서 두 번째로 옮겨놓으신 분은 상제님이십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칠성경의 북두주와 중국 도교의 「도장」에 수록된 칠성경의 북두주에는 없던 칠성여래 대제군(七星如來 大帝君)이라는 글자를 상제님이 덧붙이신 뜻은
이 칠성여래 대제군(七星如來 大帝君)이 칠성주에 나오는 탐랑,문곡,거문,녹존,염정,무곡,파군(貪狼 文曲巨文 祿存廉貞 武曲破軍) 일곱별의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아니라 칠성주(七星呪) 중간에 나오는 성신(星辰)을 주재하시는 자미제군(紫微帝君)이신 서방칠성 서가 자미대제군(釋迦 紫微大帝君)님을 지칭한 명칭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 김형렬의 천상견문록 마지막 문답에서 김형렬이 "용상아래 별도로 마련된 자리에 앉아, 흰옷을 입고 글을 쓰고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석가불(釋迦佛)이니라." 형렬이 여쭙기를 "석가불이 하늘의 조정에서 어떤 직위를 맡고 있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대제군(大帝君)의 존경받는 자리요 서방칠성(西方七星)이니, 항상 내 옆에서 나를 모시면서 만상을 섭리하고 있느니라." 하시며 석가불(釋迦佛)이 천상 조정에서 대제군(大帝君) 즉 칠성주(七星呪) 첫머리에 칠성여래 대제군(七星如來 大帝君)으로 덧붙여진 것입니다.
이중성 선생의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에 나와있는 진법주(眞法呪)를 보면 "구천하감지위 옥황상제하감지위 칠성여래하감지위" 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구천(九天)이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증산상제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甑山上帝)님이시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정산 옥황상제(鼎山 玉皇上帝)님이시며, 마지막 하감지위 이신 칠성여래가 바로 칠성주(七星呪) 첫머리에 덧붙여 칠성여래 대제군(七星如來 大帝君) 즉, 서가 자미대제군(釋迦 紫微大帝君)님 이신 것입니다.
좌선(左旋)
438(四三八) 천지망량(天地魍魎)주장(主張)
951(九五一) 일월조왕(日月竈王)주장(主張)
276(二七六) 성신칠성(星辰七星)주장(主張)
의 276(二七六) 성신칠성(星辰七星)주장(主張)의 성신(星辰)을 주장(主張)하시는 칠성(七星)이 칠성여래 하감지위의 칠성여래(七星如來)이시고, 증산상제님이 정산 옥황상제(鼎山 玉皇上帝)님께 전하신 주문서에 있던 진법주(眞法呪)의 칠성여래가 서가여래로 바뀌어져 있던것과 증산도와 법종교에 내려오던 진법주(眞法呪)에도 서가여래 하감지위로 되어있었던 연유가 모두 진법주(眞法呪) 세번째 성신(星辰)을 주장(主張)하시는 칠성여래 하감지위의 칠성여래(七星如來)가 서가여래(釋迦如來) 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신(星辰)을 주장(主張)하시는 칠성(七星)에 대한 주문인 칠성주(七星呪)에서,
북두구신의 8번째 별인 존성(尊星)인 고상옥황(高上玉皇)은 북두 제8통명 외보성군 北斗 第八洞明 外輔星君 성(姓):정상(精常), 휘(諱):상개(上開) 로 존(尊) 정연(正延) 옥황제존(玉皇帝尊) 원신군(元神君) 제태상황(帝太上皇) 이신데, 이 성군은 하늘 옥제의 별을 가르킵니다.(天之玉帝之星)위로는 구천(九天)을 통괄하고 아래로는 구지(九地)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을 다스리는 선관(仙官)을 영도합니다.
제석궁안에 있는 자기옥루의 중앙에서 삽니다 (上總九天, 下領九地, 五嶽, 四瀆之仙官. 居帝席宮內, 紫炁玉樓之中), 외보(外補)는 온갖 일을 맡아 총괄하고 천하만국의 구주(九州)를 사찰(伺察)하는 임무와 대신들의 죄(罪)와 복(福)과 공과(功過)를 책임지는 권한을 지닙니다.
외보성(外補星)이 개양성(闓陽星)에 의지하여 북두칠성이 성공하도록 돕는 까닭으로 승상(丞相)을 상징합니다(斗中外輔, 總承衆事. 司察天下萬國九州.執政代身罪福功過.... 比輔星기乎闓陽. 所以佑斗成功. 丞相之象也)
고상옥황은 북두칠성중 尊星입니다(斗中尊星也)
구진의 체(體)로서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존귀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위대한 존칭입니다. (고(故)구(九)진(辰)체(體)乎高上之玉皇之尊也)
북두구신의 9번째 별인 제성(帝星)인 자미제군(紫微帝君)은 북두 제9은광 내필성군 北斗 第九隱光 內弼星君 성(姓):幽空 휘(諱):冥陽暉 으로 제(帝) 유요(幽蓼) 옥황제(玉皇帝) 원신군(元晨君) 변영상황(變靈上皇) 이신데, 이성군은 하늘의 대제(大帝)의 별을 가르킵니다(天之大帝之星)
대제(大帝)는 변화를 주재하는데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선인(仙人)과 진인(眞人)과 공과(功過)를 가리지 않습니다. 상존궁 안에 있는 자관옥루에서 삽니다(主變化, 無方. 善眞功過. 居上尊宮內, 紫館玉樓之中)
內弼星(내필성)은 온갖 일을 맡아 총괄하고 천하만국의 구주(九州)를 主察(주찰)하는 임무와 대신들의 죄와 복과 공과를 책임지는 권한을 지닙니다. (斗中內弼,總承衆事.主察天下萬民九州執政大臣罪福功過)
紫薇帝君(자미제군)은 북두의 제성(帝星)이며 또한 태미제군(太微帝君)이라 부릅니다.(斗中帝星也, 又號太微帝君)
자미제군은 북두의 주재이고
뭇별의임금(君父)입니다 (紫微帝君者. 乃北斗之主宰. 衆星之君父也)
따라서 자미제군은 북두구진과 삼태성의 수장(首長)입니다(所以引紫薇爲九辰三台之首也)
상제님을 보좌하시는 븍두구신 중 존성(尊星)이신 8번째 별인 외보성 고상옥황 동방칠성이 바로 정산 옥황상제(鼎山 玉皇上帝)님 이시고, 북두구신 중 제성(帝星)이신 9번째 별인 내필성 자미제군 서방칠성이 바로 서가여래(釋迦如來) 즉, 서가 자미제군(釋迦 紫微帝君)님 이신 것입니다.
4 상제님께서 그 글을 공우와 광찬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5 “금산사 미륵전 앞에 대장전(大藏殿)이 있어 불편하니 너희 두 사람은 이 물목기(物目記)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6 대장전 석가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종이를 불사르라.” 하시니
7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8 그 뒤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대장전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우니 비로소 미륵전 앞이 넓어지니라.
(증산도 道典 5:282)
: 석가불을 모신 대장전(大藏殿)을 미륵전 서편으로 옮겨 세우신 뜻은 석가불이 바로 구천상제님을 보좌하시는 서방칠성 이심을 구천상제님을 모신 미륵전 서편으로 옮기시며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도주님이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천상 옥경에서 동방칠성이신 옥황상제 이셨던 것처럼 석가불도 네팔국경 카필라 성 왕자로 태어나기 전 천상 신명계에서 이미 서방칠성이신 자미제군의 신위(神位)로 계셨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석가불의 원래 원신(原神)은 서방칠성이신 자미제군 이셨던 것입니다. 이 분이 구천상제님의 명을 받아 삼천년 전에 고타마(Gautama:瞿曇)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 로 불교를 창교할 임무를 맡고 인간으로 오셨다가 천상 신명계로 다시 복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조정산 도주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50년 공부(1909~1958) 공덕으로 화천하신 후 옥황상제 위에 오르신 것이 아니라 원래 동방칠성이신 옥황상제의 위(位)에 계셨던 분이라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제삼장 第三章 선도신정(仙道神政)
104. 어느날 공사에서 고후비님이 말씀하시니 이러하더라
금산사 미륵전의 남방에 시립하고 있는 시녀불은 삼십 삼천 내원궁 법륜보살로서 자씨부인이요
이 세상에 와서는 고씨로 되었구나
그리고 북방에 시립하고 있는 시녀불은 천상 요운전 묘향보살인바 이 세상에 와서는 김형렬의 딸이었느니라
: 위 법륜 고후비님 말씀처럼 일월조왕 이신 법륜 고후비님과 묘향 김후비님이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삼십 삼천 내원궁 법륜보살과 천상 요운전 묘향보살 이셨던 것과 동일하게 조정산 도주님과 석가불도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이미 신명계에서 성신칠성이신 옥황상제와 자미제군 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분은 또한번 구천상제님의 명을 받아 서양에서 근대문명을 일으키는 데 역사하시기도 했는데, 동방칠성이신 옥황상제님은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 성사로 서방칠성 이신 자미제군님은 진묵대사로 각각 태어나 이마두 성사는 동양의 문명신들을 이끌고, 진묵대사는 도통신들을 이끌고 서양으로 넘어가 지금의 현대문명의 초석을 이루는 근대문명의 혁명을 주도 하셨습니다.
형렬이 여쭙기를 "동방칠성은 어찌 자리에 없나이까."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은 신계의 주벽이니, 내 명을 받고 이미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1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2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 위 두 구절을 보면 증산 상제님이 동방칠성도 신계의 주벽이요, 이마두 성사도 신명계의 주벽이라 하신 것에서 동방칠성의 화신이 바로 이마두 성사 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 위 구절에서 이마두 성사를 상제봉조에 장사 지내신 연유도 이마두 성사가 원래 천상 신명계 동방칠성이신 옥황상제 이셨다는 것을 보여 주신것이고, 일개 카톨릭 신부가 아무리 지상천국을 만들 일심을 가졌다 하여 동양의 문명신들이 모두 서양의 카톨릭 신부 명을 받들 명분이 없으니 이는 이마두 성사의 원신(原神)이 이 문명신들에게 영을 내릴 수 있는 옥황상제의 위(位)에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11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 위 말씀도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타와 보살들을 이끌고 구천에 하소연 할 수 있는 신명계의 주벽이신 옥황상제의 위에 계신 분이라고 이해 해야 위 구절이 이해가 가는 것이니 아무리 신명계에서 큰 공덕을 쌓았다 하여도 모든 천지신명들이 일개 천주교 신부를 따를 명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 분이 동방칧성이신 옥황상제님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이 분의 말씀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이라 봐야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 진묵의 전기에,
① 스님은 1562년생으로, 7세에 전주 봉서사(鳳棲寺)에 출가하여 내외 제전을 배웠는데, 머리가 하도 총명하여 하나를 들으면 1,000을 깨달았다(一 聞一得千).
한번은 절에서 행사가 있어 그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진묵에게 깨끗한 계행이 있다고 여겨, 그에게 불단 옆을 지키며 향 올리는 소임을 맡겼는데, 허나 얼마 안 되어 밀적금강(密迹金剛 : 은밀히 부처를 수호하는 신장)이 그 일을 주관하는 스님의 몽중에 나타나, “ 이곳 우리 모든 신들은 다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기(神祇 : 천신과 지신, 祇 : 땅 귀신 기)들인데, 어찌 도로 부처님의 절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 향 받드는 분을 바꾸어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케 하여주시오.” 하였다.
② 또 하루는, 스님이 시자와 함께 시냇가를 거닐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시자에게 “ 저것은 석가불의 그림자이니라.” 하니, 시자가 “ 아닙니다! 저것은 스님의 그림자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스님 왈 “ 너는 다만 스님인 나의 가짜만 알고, 석가불인 진짜는 모르는구나! ” 하였다.
: 윗 글을 통해 진묵대사가 서방칠성이신 석가불의 후신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마두 성사와 진묵대사는 동방칠성이신 옥황상제님과 서방칠성이신 석가불의 화신 이시며,
이마두 성사가 1552년 생이고, 진묵대사는 조선 명종 17년 1562년 생이셔서 두 분의 나이 차이가 10년 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일월 조왕 이신 법륜 고후비님이 1880년 경진생 이시고, 묘향 김후비님이 1890년 경인생 이셔서 두 분의 나이차이가 동일하게 10년 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신을 주재하시는 칠성의 화신 이셨던 이마두 성사와 진묵대사의 나이차이와 일월을 주재하시는 조왕의 화신 이셨던 법륜 고후비님과 묘향 김후비님의 나이 차이가 10년으로 동일 한 것에서 이 네 분이 일월성신을 주재하시는 분 들이고, 천지망량 이신 구천상제님과 태을천 상원군님의 명을 받아 선천 문명을 후천 선경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인간세상에 화육하여 역사하신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주이신 조정산 옥황상제님의 바로 전 화신이 이마두 성사 이신 것이고,
12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 위 증산 상제님 말씀처럼 조정산 도주님은 전생에 이마두 성사로 진멸지경에 이른 선천세상의 구제를 위해 신명계의 모든 신성과 불타, 보살들을 이끌고 구천상제님께 호소하여 구천상제님을 직접 모시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하다가 상제님이 먼저 1871년 신미년에 인간으로 화육하신 후 24년 뒤인 1895년 을미년에 인간세상에 태어 나신 것입니다.
<천지개벽경 1903년 7장> - 조정산 당시 나이 9세 였습니다.
형렬이 세상에 내려와 기쁨을 말로 다하지 못하며 여쭈기를, 옥좌 아래 자리에 흰 옷에 붓을 쥔 분은 어떤 분이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라 하시니라.
석가불이 천조(天朝)에 무슨 직분을 맡았나이까? 하고 여쭈니, 대제군의 존귀한 자리로서 서방칠성이니, 언제나 내 옆에 모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말씀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동방칠성은 어찌하여 자리에 없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이 신명계의 주벽인데, 내 명을 받들어 이미 세상에 내려왔노라 하시니라.
여쭈기를 동방칠성이 인간 세상에 있으면 만나볼 수 없나이까? 하니말씀하시기를,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 인연이 있으므로 만날 것이요, 앞으로 한 집 사람이 되리라 하시니라.
<천지개벽경 정미년(1907년) 8장> - 조정산 13세
一日(일일)에 在大興(재대흥)하시더니, 弟子(제자)이 命(명)으로 買來草笠(매래초립)하야 備置(비치)하니라. 曰(왈), 布我德者(포아덕자)난 今(금)에 草笠童年也(초립동년야)니라.
<해석> 하루는 대흥리에 계시더니, 제자가 명을 받고 삿갓을 사와서 비치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1907년 당시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1. 선도교 고수부 : 본명은 고판례로 1907년 당시 28세
2. 김수부 : 본명은 김말순으로 1907년 당시 15세
3. 천지개벽경 저자 이중성은 1907년 당시 11세
3. 대순전경 저자 이상호 선생은 1888년 생으로 1907년 당시 20세
3. 증산도 안운산:본명은 안세찬이며 임술(1922)년생으로 1907년 당시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4. 태극도 조정산 : 본명은 조철제로 1907년 당시 13세 이셨습니다.
초립동(草笠童)은 초립(草笠)을 쓴 사내아이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인물 중에서 누가 초립동년일까요?
** 그러면 위의 인물들 중에서 조정산께서 증산상제님께 법통을 받아 덕을 펼칠 그 초립동으로 동방칠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도진경 5장에는,
77. 1903년 어느 날은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는 자리에서 문득 가라사대 나의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딘고 하시거늘 종도들이 여쭈어 가로되 무엇이 그렇게 더디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을 찾아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이 이렇듯 더디도다 하시거늘, 종도들이 가로되 말씀을 듣자온 즉 우리들은 다 무용지물이며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따랐나이다. 가라사대 時有其時며 人有其人이라 부디 마음을 조급히 가지지 말고 열심히 닦을지어다.
69. 도주께서 1909년 4월 28일에 종도 수명을 데리시고 기차 철로 주변에 가셔서 가라사대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혼자 말씀을 하시며 멀리 바라보고 무한히 기다리시는 표정이라. 종도들이 이상하여 여쭈어 가로되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나이까. 上帝께서 아무런 대답도 않으시고 멀리 바라만 보시는데 마침 이때 저쪽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무척 반기시며 철로 가까이 닥아 가셔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시더니 무릎을 치시며 가라사대 이제 나의 일은 다 되었도다. 남아 十五세면 호패를 찬다더니 무슨 일을 못하리오. 하시며 기차가 멀리 사라지도록까지 바라보시다가 종도들을 데리시고 돌아오시니라.
1903에 9세였으니 을미생이고, 기유에 15세가 되니, 모두 동방칠성 한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908년에는 상제님께서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글을 지으셨는데 그 내용 중에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 ○○”(공사 3장 41절)이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12월 26일 만도를 채우시는 12월 4일 탄강으로 법통은 초립동인 도주님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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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 신앙 교단>
1.증산도(강증산-고수부-차경석,이치복-안병욱-안운산-안경전)
2.대순진리회(강증산-조정산-박우당-박성구)
3.증산법종교(강증산-화은당강순임-구암김병철-이환우-김대수)
4.증산참신앙(강증산-고수부-안병욱-안운산-노상균-이석남)
5.김제용화동증산교(강증산-고수부-이상호,이정립-?)
6.태극도(강증산-조정산-도주님 부인-도주님 아들)
7.대한불교법상종(강증산-김형렬-유제봉-최선혜-?)
8.진혜원해원정사(강증산-호봉장기동,김자현-유일장보만-호산장영주-유산장영준)
9.태을도(강증산-고수부-안운산-이훈오)
10.오성산교단(강증산-고수부-고민환-?)
11.태을선도(강증산-고수부-배승환)
(증산도 도전 구판 5편 천지공사 104절)
4월 28일에 김보경, 등 몇명의 성도를 거느리시고 태전역 근처의 철도주변에 가시어 동서남북으로 오가시며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계시니라
성도들이 이상히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하니 아무말씀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이때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男兒) 15세면 호패(號牌)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하시고 한참동안 서 계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하략
(태극진경 1장 39절)
(옥황)상제님께서 4월 28일 창원역을 출발하신 후 ....미시(未時)경, 대전부근에 임하셔서는 정신이 상쾌해지고 ...이때 홀연히 일광(日光)같은 용안에 황금색 용포의 신인(神人) 한 분이 현현(顯現)하셔서 우레같은 음성으로 하명하시기를 "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眞主)니 이는 막중한 천기(天機)라 그대가 나의 도통(道統)을 이어 치천하도수(治天下度數)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의 대공사를 성취하되 내 명교(命敎)를 받들어 태극의 진법을 용(用)하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광구삼계(廣救三界) 하리라.
그대의 호는 정산(鼎山)이니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며 이도일체(爾一體)니라
나는 구천의 천존상제니라" 하시니라.....하략
(증산도 도전 구판)
▶ 구천상제님과 도주(조정산)님 간의 종맥전수가 타 교단에서 보면 굉장히 인정하기가 힘들겁니다.
그것은 두 분께서는 실제 만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의 경전을 보면 어떻게 맥이 이어졌는지 알 수가 있죠.
대순전경과 무극진경에 보면 1909년 4월 28일에 옥황상제께서 만주로 가셨다고 나와 있으며, 하물며 증산도 도전에도 적혀있듯 4월 28일은 구천상제께서 대전역에 가셔서 기차를 기다리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거기서 남아 15세를 말씀하시니 당시 15세셨던 분은 도주 조정산님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없었습니다. 당시 종도들은 대부분 상제님 보다 나이가 많았죠.
그리고 진인의 나이를 알아보신 때도 1903년 입니다. 그때가 9살이니 1909년이면 6년이 지난후로 15세가 되니 여합부절입니다.
위 구절을 가지고 증산도 창시자인 안운산의 고향이 대전이라는 것을 꿰 맞추려고 했으나, 도주님(조정산으로 당시 15세)이 만주로 가시며 그 시각에 대전역에 도착하신 것 외에는 그 어떤 해석을 할 수 없기에 신판을 발행하면서 이 구절을 빼 버립니다. 그러니 지금 증산도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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