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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경 陽溪偶呤 이하(李馥,1626~1688)
양계는 <양계집>에 「개령북면향약서」, 「학해지기」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개령현 북면의 대양 부근으로 추정
>한국학중앙연구원간 <양계집>
陽溪偶呤
양계에서 우연히 읊다
1666년(추정) 이하(李馥,1626~1688)
陽溪居士旱休官(양계거사한휴관) 양계거사 드물게 벼슬에서 물러나와 旱▶早
左右圖書屋數間(좌우도서옥수간) 좌우에 도서 둘 서실 몇 칸 지었네.
有水有山吾土美(유수유산오토미) 물이 있고 산이 있는 나의 땅은 아름답고
無榮無辱此身閑(무영무욕차신한)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어 이 몸은 한가하네.
田園每跡依農圃(전원매적의농포) 전원은 언제나 농부에게 의지하고
經傳潛心對孔顔(경전잠심대공안) 경전을 마음에 담고 공자 안자 대하니
俗客不來淸晝靜(속객부래청주정) 세상 손님 오지 않아 화창한 낮 고요하고
晩林飛鳥倦知還(만림비조권지환) 해지는 숲에 새들은 둥지 알고 돌아오네.
1668년경 양계정사 28영 이하(李馥,1626-1688)
陽溪精舍二十八詠
양계정사에서 28가지를 노래하다.
이하(李馥,1626-1688)
用朱子出山口占詩 ‘川原紅綠一時新 暮雨朝晴更可人 書冊埋頭無了日 不如抛却去尋春’ 爲韻次押
주자의 ‘출산도중구점(出山道中口占)’시, “내와 언덕이 붉고 푸르러 일시에 새로워지고, 저녁에 내리던 비 아침에 개니 다시 사람 드나드네. 서책에 파묻혀 무료한 날엔, 책 던져버리고 봄을 찾아가는 것만 못하리.”의 운을 운으로 하여 압운을 잇다.
*주자대전(朱子大全)》권9에 실려있는 〈출산도중구점(出山道中口占)〉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山, 水, 琴, 書, 筆, 墨, 紙, 硯, 弓, 劒, 碁, 杯, 松, 柏, 梅, 菊, 梨, 棗, 桃, 柳, 春, 夏, 秋, 冬, 朝, 暮, 晝, 夜
山(산)
陽峯在屋後(양봉재옥후) 양지바른 봉우리 집 뒤에 있고
好山還其前(호산환기전) 살기 좋은 산이 그 앞에 둘러있어
盤陵勢雖平(반릉세수평) 불룩한 구릉 형세 비록 평평하여도
際海根遙連(제해근요련) 바다에 접해서 근원이 아득히 이어지네.
不險亦不奇(불험역불기) 험하지도 않고 빼어나지도 않아
有名非有仙(유명비유선) 이름은 있으나 신선이 있지 않아
乘閒涉穹巘(승한섭궁헌) 한가하면 하늘 닿은 봉우리 건너
舒嘯臨深川(서소림심천) 깊은 물에 이르러 휘파람 부네.
終能不負吾(종능불부오) 평생토록 나에게 부담없으니
可以樂殘年(가이낙잔년) 남은 생애 즐길 만한 곳이라오.
水(물)
傍村眼開湖(방촌안개호) 마을 곁에 눈을 뜨면 호수가 있어
遶屋溪發源(요옥계발원) 집을 두른 개울이 시작되고
明鏡涵幽洞(명경함유동) 거울 같은 호숫물에 그윽한 마을 비치면
素練分平原(소연분평원) 명주 같은 하얀 구름 들판과 구분되네.
灌漑利農圃(관개이농포) 물 대어 농포에
瑩徹滌昏煩(형철척혼번) 투명하여 흐릿한 번거로움 씻어내니
興來步洲渚(흥래보주저) 흥이 오면 물 건너 섬에 건너가
悠然自忘言(유연자망언) 느긋한 마음속에 스스로 말을 잊네.
淸濁俱可濯(청탁구가탁) 청탁을 모두 씻어주니
何以仲長園(하이중장원) 가이 중장원 이라오.
*중장원(仲長園) : 후한(後漢)의 명사(名士) 중장통(仲長統)의 원림(園林)으로, 오준(吳竣)의 정원을 가리킨다. 중장통이 자기의 원림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심경을 읊은 ‘낙지론(樂志論)’이라는 짧은 글이 유명하다.
琴(거문고)
我有一張琴(아유일장금) 나에게 거문고 하나 있는데
何來嶧陽桐(하래역양동) 어찌 역산 남쪽 오동나무 왔는가.
今人多不彈(금인다불탄) 지금은 사람들 타지 않는 사람 많지만
太古聲在中(태고성재중) 태고엔 소리가 그 속에 있었네.
浪撫時一笑(랑무시일소) 물결치듯 어루만질 때 웃음이 절로 나고
山水情無窮(산수정무궁) 산수의 정취가 끝이 없기에
不辭牙絃斷(불사아현단) 백아의 거문고 끊는 걸 사양하고
肯學齊瑟工(긍학제슬공) 제나라 비파 공부하며 학문을 익히네.
鐘期恐難期(종기공난기) 종기같은 사람 아마 기약하기 힘든데
髮白顔無紅(발백안무홍) 백발에 얼굴은 붉은 빛 없어졌네.
*역양동(嶧陽桐) : 《서경》 〈우공(禹貢)〉에 “역산 남쪽에 우뚝 자란 오동나무라.〔嶧陽孤桐〕”라고 하였는데, 오동나무는 곧 그 지방의 특산물로서 거문고, 비파를 만들기에 좋은 재목이었다고 한다. *아현(牙絃) : 백아(伯牙)는 옛날에 금(琴)을 잘 탔다고 하는 사람 이름이다. 백아는 금을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소리를 잘 들었는데, 백아가 금을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가 태산(泰山)과 같구나.”라고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가 강하(江河)와 같구나.”라고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제슬(齊瑟) : 제왕(齊王)이 음률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객(客)이 비파[瑟]를 가지고 제왕에게 갔다. 3년을 궐문(闕門)에서 기다렸으나 제왕을 보지 못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제왕은 피리를 좋아하는데 그대가 비파를 가져왔으니 조화될 수 없다고 했다는 고사(《韓非子》). *종기(鍾期) : 춘추 때 초(楚) 나라 사람 종자기(鍾子期)를 가리킨다.
書(책)
家中何所有(가중하소유) 집안에 무엇을 가졌는가
架上書蒿束(가상서호속) 선반 위에 책과 원고 묶여져 있기에
辟蠹卷盡黄(벽두권진황) 좀을 피하고자 책마다 누런 유향 먹이고
整帙籤皆綠(정질첨개녹) 권질별로 정리하여 녹색 장정 하였네.
古今治亂事(고금치난사) 고금의 잘된 일과 어지러운 일들과
纖悉存雞鵠(섬실존계곡) 전요의 닭과 고니 설명 상세하게 나열하여
聖賢勸懲訓(성현권징훈) 성현의 권하고 징계하는 교훈을
分明若龜燭(분명귀구촉) 귀촉처럼 분명하네.
讀之有至樂(독지유지락) 읽을수록 즐거움에 이르니
此外無營欲(차외무형욕) 이 것 외에 욕심내지 않네.
*계고(雞鵠) : 전요(田饒)가 노(魯)나라 애공(哀公)을 섬기다가 연(燕)나라 재상으로 떠나면서 “이제 주군을 떠나 고니처럼 살겠습니다.”라고 하자, 애공이 영문을 몰라 떠나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임금께서는 닭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머리에 관을 이고 있는 것은 문(文)이요, 발 뒤에 며느리발톱이 있는 것은 무(武)요, 적이 앞에 있을 때 과감히 것은 용(勇)이요, 음식을 보면 서로 알리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은 신(信)이니, 닭에게는 이 다섯 가지 덕이 있습니다. 주군이 이런 미덕을 몰라주고 매일 닭을 잡아먹고는 멀리서 날아온 황곡만 귀히 여기니 어찌 섬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韓詩外傳 卷2》 *귀촉(龜燭) :
거북과 촛불을 말한다. 거북은 점을 쳐서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밝히는 것이고, 촛불은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추는 것이다. 즉 깊은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여 분명하고 확실히 알았다는 말이다.
筆(붓)
周官備築氏(주관비축씨) 주나라 관직에 축씨를 갖춘 이래
文猶未變質(문유미변질) 문방구 여전히 변함이 없네.
中間有妙制(중간유묘제) 중간에 묘제가 있었으나
千載稱恬筆(천재칭염필) 천 년 뒤에 염필로 칭하게 되었네.
臨書隨意畫(임서수의화) 글에 임하여 수행하면 뜻대로 그려내고
巨細記一一(거세기일일) 크거나 세밀하거나 하나하나 기록하니
而我事佔畢(이아사점필) 내가 글의 뜻도 모를 때
與之交情密(여지교정밀) 함께하여 사귄 정이 친밀하네.
江淹才不盡(강엄재부진) 감엄의 재주는 없어지지 않으니
相隨期勿失(상수기물실) 서로 따르며 잃지 않길 기약하네.
*축씨(築氏) : 축씨와 야씨는 동관(冬官)에 속한 관직명으로, 모두 금속을 다룬다. 다만 축씨는 주석(朱錫)의 합금 비율이 낮은 금속을 다루고, 야씨는 주석의 합금 비율이 높은 금속을 다룬다. 육제는 주석과 쇠의 합금의 비율에 따라 주조하는 기물을 6개의 분과로 나누어, 주석과 쇠의 비율이 1 : 6인 것은 종과 솥을 만드는 종정제(鍾鼎齊), 1 : 5인 것은 도끼를 만드는 부근제(斧斤齊), 1 : 4인 것은 창을 만드는 과극제(戈戟齊), 1 : 3인 것은 칼을 만드는 대인제(大刃齊), 2 : 5인 것은 화살을 만드는 삭살시제(削殺矢齊), 1 : 1인 것은 부싯돌을 만드는 감수제(鑒燧齊)라고 한다. 《周禮 冬官考工記 築氏, 冶氏》 *염필(恬筆) : 모필(毛筆)의 별칭이다. 진(秦)나라 장군 몽염(蒙恬)이 토끼털을 죽관(竹管)에 묶어서 처음으로 붓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점필(佔畢) : 책을 엿본다는 뜻으로, 책의 글자만 읽을 뿐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 *강엄(江淹) : 남조 양나라의 시인 강엄(江淹)이 꿈속에서 이 붓을 받고는 문명(文名)을 떨치다가, 만년에 다시 꿈속에서 그 붓을 돌려주고 나서는 좋은 시를 짓지 못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墨(먹)
巧匠費玄機(교장비현기) 기교있는 장인이 현묘한 이치 들여서
香煙積以爲(향연적이위) 향기 품은 그을음을 모아서 만드었기에
磨之石硯腹(마지석연복) 돌벼루 가운데에 갈면은
釀色光淋漓(양색광림리) 뒤섞인 색깔이 번져나가네.
濡毫落紙上(유호낙지상) 붓에 적셔 종이 위에 떨구어
蛇蚓紛隨時(사인분수시) 졸렬한 필체 어지러이 따라 나갈 때
誰將炭嗜羞(수장탄기수) 누가 장차 석탄을 좋아한다고 바치고
孰使魚出池(숙사어출지) 누가 물고기 더러 연못에서 나가라 하는가.
文房永爲好(문방영위호) 문방을 영원히 좋아하여
用以勗磷緇(용이욱린치) 지조 바꾸지 않고 힘써서 사용하리.
*현기(玄機) : 현묘한 이치. *사인(蛇蚓) : 힘이 빠진 지렁이와 뱀 같다는 말로, 졸렬한 자체(字體)로 옮겨 쓴 글을 가리킨다. 왕희지(王羲之)가 남조 양(梁)의 소자운(蕭子雲)이 쓴 서체(書體)를 보고는, 힘이 없이 유약하기만 할 뿐 장부의 기상이 없다면서 “줄마다 봄날의 지렁이가 엉켜 있는 듯하고, 글자마다 가을날의 뱀들이 뭉쳐 있는 듯하다.[行行若縈春蚓 字字如綰秋蛇]”고 혹평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80 王羲之傳》 *탄기(炭嗜) : 마치 흙이나 석탄 가루를 진수성찬으로 여기는 병자처럼 어처구니없이 행동한다는 말.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내가 일찍이 보건대, 심복에 병이 든 사람이 토탄을 먹고 싶어 하고 식초와 소금을 좋아하였는데, 그것을 얻지 못하면 몹시 슬퍼하곤 하였다. 그래서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아끼는 이들이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한 나머지 그것을 구해서 그에게 주곤 하였는데, 지금 내가 그대의 뜻을 보건대 마치 이와 같은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吾嘗見病心腹人有思啗土炭嗜酸鹹者, 不得則大戚. 其親愛之者, 不忍其戚, 因探而與之, 觀吾子之意, 亦已戚矣.]”는 말이 나온다. 《柳河東集 卷34 報崔黯秀才論爲文書》 *인치(磷緇) : “갈아도 엷어지지 않고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어떠한 역경이나 곤란에 처해도 지조를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論語 陽貨》
紙(종이)
古者冊以竹(고자책이죽) 옛날에는 대나무로 책을 엮어
故見編絶頻(고현편절빈) 빈번히 역은 끈 끊어졌기에
漢倫能運物(한륜능운물) 한나라의 채륜이 물성을 운용하고
奇功造此新(기공조차신) 특별한 공을 들여 이것을 새로 만들었네.
結爲文房友(결위문방우) 문방의 벗으로 묶어
永作儒家珍(영작유가진) 영원히 유가의 보배 되어
惜其性浮薄(석기성부박) 그 성질 가볍고 엷은 게 애석하지만
卷舒常隨人(권서상수인) 말고 펴고 하여서 항상 사람 따르네.
毋徒價索高(무도가색고) 무리들아 가격을 높게 부르지 말라
不可交忘貧(불가교망빈) 가난을 잊고서 사귈 수 없게 되네.
硯(연)
無田食破硯(무전식파연) “밭이 없어 깨진 벼루 먹고 살았는데”라는
每誦坡翁句(매송파옹구) 소동파의 글귀를 매번 외우며
自我得馬肝(자아득마간) 나는 마간석 벼루 얻어
文房幾朝暮(문방기조모) 문방에 두고서 아침 저녁 매만지네.
吾愛其厚重(오애기후중) 그 후중함을 좋아하여
靜中欣相遇(정중흔상우) 조용한 가운데 서로 만나 반기며
休誇右軍洗(휴과우군세) 왕희지가 씻었다고 자랑않고
肯草南窓賦(긍초남창부) 거칠게 남창에서 부를 쓰네.
看渠磨不磷(간거마불린)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 걸 보니
似識君子趣(사식군자취) 군자의 취향을 아는 것 같네.
*무전식파현(無田食破硯) : 송나라 소식(蘇軾)의 〈차운공의보구한이이심우(次韻孔毅甫久旱已而甚雨)〉에 “나는 본래 논밭 없어 깨진 벼루로 먹고 살았는데, 요즈음엔 벼루도 말라 갈아도 먹물 안 나오네.〔我生無田食破硯 爾來硯枯磨不出〕” 하였다. ‘깨진 벼루로 먹고 산다’라는 말은, 문필 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마간(馬肝) : 벼루를 만들기에 알맞은 마간석(馬肝石)의 약칭이다. 소식의 〈손신로기묵(孫莘老寄墨)〉 시에 “계석 벼루는 마간을 쪼아 놓은 듯하고, 섬계의 등지는 옥판을 펴 놓은 듯하네.〔谿石琢馬肝 剡藤開玉版〕”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단주 심계의 돌 가운데 마치 말의 간처럼 자줏빛 나는 것이 상품이다.〔端州深溪之石 其色紫如馬肝者爲上〕”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25》 *우군(右軍) : 진(晉)나라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별칭임
弓(활)
我有騂騂弓(아유성성궁) 나는 모양 갖춘(쏠 수 있는) 활을 가지고 있는데
誰識此意苦(수식차의고) 이 뜻이 어려운 걸 누가 알겠는가.
射於百步外(사어백보외) 백보 밖에서 쏘면은
觀者多如堵(관자다여도) 구경꾼 담장처럼 많아져
乃知男子事(내지남자사) 남자의 할 일을 알게 되니
勝作迂儒腐(승작우유부) 완곡한 유자로 썩는 것보다 낫다오.
天下兵又動(천하병우동) 천하에 군사가 움직이면
虜箭飛如雨(노전비여우) 노전이 비처럼 날게 될 터이니
何時走天山(하시주천하) 어느 때이고 천산을 달려
載橐清寰宇(재탁청환우) 전대에 맑은 세상 실으리라.
*성성(騂騂) : 1) 붉다. 2)활이 조화된 모양.《시경(詩經)》 소아(小雅) 각궁(角弓)의 “붉은 뿔로 만든 활이 반복을 잘하도다.[騂騂角弓 翩其反矣]”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는 주 나라 유왕(幽王)이 구족(九族)과 친목하지 못하고 반목함을 풍자한 시이다 *노전(虜箭) : 으로, 고대 북방 소수민족이 군대에서 화살을 통해 명령을 전하던 방식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투증가서개부한(投贈哥舒開府翰)〉 시에 “청해에는 전하는 화살 호령이 없고, 천산에는 일찌감치 활을 걸어 두었다네.〔青海無傳箭, 天山早掛弓.〕”라는 구절이 있다. *환우(寰宇) : 천자가 다스리는 영토 전체. 천하
劍(검)
壯哉三尺劍(장재삼척검) 장하구나 삼척검이여
何來橫我腰(하래횡아요) 어찌 내 허리에 걸렸는가.
龍光塵久埋(용광진구매) 용광이 속세에서 오랫동안 묻히니
牛墟氛未消(우허분미소) 두우성 터 재앙이 없어지지 않았네.
秖爲其肝膽(지위기간담) 다만 간담을 씹을 뿐
是非誇雄驍(시비과웅효) 씩씩함 뽐내고자 함이 아니라네
朱雲願一借(주운원일차) 주운이 한 번 빌리기 원하자
佞臣慴不驕(영신습불교) 영신 장우가 두려워 교만하지 못하였듯
正氣自古今(정기자고금) 정기는 스스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으니
匣中鳴達朝(갑중명달조) 칼집에서 울려도 조정에 이른다네.
*용광(龍光) : 황제의 은덕(恩德). 풍성(豐城) 땅에 묻힌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밤마다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발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두우성(斗牛星) : 천자의 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하늘의 은하수와 통해 있는 뱃길로 뗏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를 만나고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博物志 卷10》 *주운(朱雲) : 임금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간(直諫)을 하는 신하라는 말이다. 한(漢)나라 주운이 아첨하는 신하를 죽이라고 성제(成帝)에게 바른말을 하던 중에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아래로 끌려내려가다가 난간을 끝까지 붙잡고 버티는 바람에 난간이 모두 부서져 나갔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卷67 朱雲傳》 한(漢) 나라 주운(朱雲)이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으로 영신(佞臣)인 장우(張禹)의 머리를 베게 해 달라고 청한 고사에서종일 유래한다. 《漢書 朱雲傳》
碁(바둑)
親朋終日來(친명종일래) 친한 벗이 종일토록 와서 머무니
草堂春書晴(초당춘서청) 초당에서 봄에 쓰는 글이 화창하네.
風軒爭小數(풍헌쟁소수) 풍헌에서 흑백을 다투는데
子聲宜丁丁(자성의정정) 바둑알 소리 이어지는데
射鴻懼馳心(사홍구치심) 기러기 떼 쏘면서 두려운 마음 일지만
賭墅元非情(도서원비정) 도박판은 원래 비정하다네.
近成元凱癖(근성원개벽) 근래에 원개처럼 학문에 탐독하여
懶對張華枰(나대장화평) 화려한 바둑판 펼치는게 게을러져
聊以備六一(료이비육일) 구양수 준비하여 귀 기울이며
竊欽居士名(절흠거사명) 거사의 이름을 몰래 반기네.
*소수(小數) : 소수는 음양(陰陽) 등과 관련된 재주를 말하고, 방기(方技)는 의약이나 양생(養生) 등과 관련된 재주를 말한다. *정정(丁丁) : 말쭉을 박는 소리. 바둑돌을 잇따라 두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원개벽(元凱癖) : 학문을 탐독하는 습성. 원개(元凱)는 진(晉) 나라 두예(杜預)의 자. 두예는 《춘추 좌전(春秋左傳)》 주해(註解)에 전력하여 자기 자신이 좌전벽(左傳癖)이 있다고 하였음. 《晉書 杜預傳》 *육일(六一) :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킴.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 시호는 문충(文忠)임.
杯(술잔)
先生樂銜杯(선생락함배) 선생은 술잔 머금기 즐겨하고
業嗜緣豪性(업기연호성) 호방한 성품과 이어지는 걸 좋아하여
自能通大道(자능통대도) 스스로 능히 큰 도에 통했기에
淸濁俱賢聖(청탁구현성) 청탁을 모두 갖춘 어진 성인 이라네.
問月我何停(청탁구현성) 달에게 묻노니 나는 어찌 서 있는가
送別君可更(송별군가갱) 이별하면 자네 다시 뜨는데
顧此家甚貧(고차가심빈) 돌아보니 집은 너무 가난하고
況復身多病(황복신다병) 더군다나 몸에 병이 많다네.
卻恐數斯疎(각공수사소) ‘여러번 하면 소원해진다’는 두려움 물리치면서
竊期久而敬(절기구이경) 오랫동안 공경하기를 몰래 기약하네.
*함배(銜杯) : 두보의 〈취시가(醉時歌)〉에, “유술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공구와 도척이 다 먼지가 되고 말았는 걸. 굳이 이 노래 듣고 슬퍼할 필요 없으니, 생전에 지기가 서로 만나 술이나 마셔보세.[儒術於我何有哉 孔丘盜跖俱塵埃 不須聞此意慘愴 生前相遇且銜杯]” 한 데서 온 말이다. *업기(業嗜) : ‘性豪業嗜’이다.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성품이 호방하여 술을 즐기고, 나쁜 사람 미워하는 강직한 마음을 품었네.〔性豪業嗜酒 嫉惡懷剛腸〕”라는 시구에서 앞 구를 절취(節取)하여 사용하되 ‘酒’를 생략한 표현이다. 《杜甫全詩集 卷7 壯游》 *사소(斯疎) : 자유(子游)가 말하기를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하고, 붕우 간에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지는 것이다.〔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라고 하였다. 《論語 里仁》 *구이경(久而敬)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안평중(晏平仲)은 사람들과 잘 사귀도다.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는구려.[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한 데서 온 말이다.《論語 公冶長》
松(소나무)
手種一盤松(수종일반송) 손수 반송 한 그루 심어두고
軒牕常對坐(헌창상대좌) 창 너머 마주보며 항상 앉으니
欲保歲寒姿(욕보세한자) 세한의 자세를 지키고자 하는데
愛護無物我(애호무물아) 사랑하고 지키는 것 너와 내가 없다네.
尤憐渠龍鍾(우련거롱종) 개울가의 용종을 더욱 더 연민하여
恰似吾坎坷(흡사오감가) 흡사 나의 순탄치 않은 삶과 같아
盡日撫盤桓(진일무반환) 하루 종일 서성이며 어루만지며
心期寧小隨(심기녕소수) 마음은 편안히 작은 일을 따르네.
大廈棟方降(대하동방강) 큰 집의 기둥으로 베어와도
不材棄亦可(부재기역가) 재목이 아니면 버리는 것이 가하다.
*용종(龍鍾) : 용종은 용종죽(龍鍾竹)으로 대나무의 별칭이며, 낭간은 경옥(硬玉)의 하나로 짙은 녹색 또는 청백색을 띠는데 여기서는 대나무의 푸른 빛깔을 가리킨다. 사람이 늙어서 대나무 가지와 잎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형용한 말로도 사용. *감가(坎坷) : 행로(行路)가 평탄하지 못한 것을 이름. 전하여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말함.
栢(잣나무)
栢生在空谷(백생재공곡) 외진 골에 살던 잣나무
移栽今幾春(이재금기춘) 옮겨 심어 이제 몇 해지났건만
尙帶傷根容(상대상근용) 상처난 뿌리는 여전히 띠를 두르고
未挺參天身(미정參天身) 몸은 하늘로 뻗치지 못하네.
疎枝不盈尺(소지불영척) 드문 가지 한 자도 못 채우고
短葉纔易新(단엽재역신) 짧은 잎 겨우 새 잎으로 바뀌는데
幾時回萬牛(기시회만우) 어느 시절 큰 재목 되어
何虛愁佳人(하허수가인) 가인의 시름을 어찌 비워 주리오.
大材當晩成(대재당만성) 큰 재목 당연히 늦게 이루어지니
要須保性眞(요수보성진) 모름지기 참된 성품 보전하네.
*삼천(參天) :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에 “옛날 성인이 역(易)을 만들 때에……하늘의 수를 3으로 하고 땅의 수를 2로 하여 수를 세웠다.[參天兩地而倚數]”라고 하였다. *회만우(回萬牛) :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에 “가령 고대광실이 기울어져 들보와 기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언덕이나 산처럼 무거운 이 나무를 끌고 가려면 일만 마리의 소도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 것이다.[大廈如傾要梁棟 萬牛回首丘山重]”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5 古柏行》
梅(매화)
自愛新梅好(자애신매호) 새로 핀 매화를 스스로 사랑하여
手種依庭除(수종의정제) 정원 섬돌 가에 손수 심으니
牕外雪盈枝(창외설영지) 창밖에는 가지마다 눈처럼 쌓이고
床前香透書(상전향투서) 책상 앞엔 책을 뚫고 향기가 전해지네.
冬深北陵日(동심북릉일) 겨울에는 북릉에 기대 햇빛 쬐다가
春滿西湖居(춘만서호거) 봄이 오면 서호에서 사는 듯하오.
風過落蘂飄(풍과낙예표) 바람불면 떨어지는 꽃잎 흩날리고
月移寒影疎(월이한영소) 달이 뜨면 달그림자 비치네.
悠然對朝暮(유연대조모) 아침저녁 유유롭게 마주하니
淸興復何如(청흥복하여) 맑은 흥 도 어떠하리오.
菊(국화)
種菊東籬下(종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에 국화 심어
匝畹依松柏(잡원의송백) 송백에 의지하여 1원정도 둘러쌓네.
風尙搖落時(풍상요락시) 찬서리에 낙엽질 무렵
喜見花滿宅(희견화만택) 반가운 곷들이 집을 가득 채우네.
英泛盃中醪(영범배중료) 잔 속에 꽃을 띄워 술을 거르니
香凝丌上冊(향응기상책) 책상에 엉긴 향기 책문을 올리는데
評賞有餘情(평상유여정) 칭찬하고 남을 만큼 정이 있기에
愛玩無閑屐(애완무한극) 사랑하는 발걸음 쉬지를 않네.
陶公不可作(도공불가작) 도공은 지금 만들 수 없지만
後視今如昔(후시금여석) 지금을 옛날처럼 후인들 보게되리.
*잡원(잡원) : 1원(畹)은 12묘(畝)이다.
梨(배나무)
誅茅卜幽居(주모복유거) 띠를 베어 살 집을 정하고
種梨傍小齊(종이방소제) 작은 서재 곁에다 배나무 심네.
結顆覺霜甜(결과각상첨) 열매는 서리 뒤에 단맛이 나고
開花看雪埋(개화간설매) 꽃 피면 눈 덮힌 듯 보이는데
幸勤爲漑根(행근위개근) 다행히 열심히 물주고 가꾸니
果食其實佳(과식기실가) 먹게 되는 과실 참으로 맛나네.
王戎悔李鑽(왕융회이찬) 왕융은 유감스럽게도 오얏씨를 뚫어 팔고
陸績慚橘懷(육적참귤회) 육척은 부끄럽게도 귤을 품에 감췄지만
野人有芹誠(야인유근성) 농부는 임금에게 충성심 있어
欲獻奈無階(욕헌내무계) 바치고 싶지만 오를 길 없네.
*왕융찬핵(王戎鑽核) : 왕융이 씨를 뚫는 일. 곧 지나치게 인색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왕융은 진(晉)나라 사람으로 완적(阮籍)과 함께 죽림 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데, 사람이 너무 인색하여 자기 집에 있는 오얏[李]을 저자에 내다 팔 때 그 오얏씨를 송곳으로 뚫은 뒤에 팔았다 한다. 이것은 그 오얏 종자가 매우 좋은 것이어서 남들이 취종(取種)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이다.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 *육적귤회(陸績橘懷) : 삼국 시대 때 사람인 육적(陸績)이 6세 때 구강(九江)에서 원술(袁術)을 만났는데 원술이 귤을 내놓았다. 육적이 귤 3개를 품 안에 넣었는데, 떠날 때 절을 하다가 귤이 땅에 떨어졌다. 원술이 “손님으로 온 육랑이 품 안에 귤을 넣었단 말인가.”라고 하니, 육적이 꿇어앉아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三國志 吳書 陸績傳》 * 근성(芹誠) :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뜻한다. 에 나오는 말로, 송(宋)나라 사람이 봄철의 따스한 햇볕과 맛있는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치려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열자( 列子)》 〈양주(楊朱)〉
棗(대추)
弊廬有棗林(폐려유조림) 쓰러져가는 여막에 대추나무 숲 있어
高下堯屋頭(고하요옥두) 높고 낮은 가지 지붕 위에 드리우네.
旣將充庭實(기장충정실) 마당에 열매 가득 채워도
亦足當園收(역족당원수) 역시 정원의 수입으로 그치고
嚼破甘我口(작파감아구) 씹으면 입이 달고
咽來爽我喉(인래상아후) 삼키면 목구멍 상쾌하네.
任土載於燕(임토재어연) 토지에 맞게 잔치에 실리고
登籩制自周(등변제자주) 제사에 올리는 제도는 주나라에서 시작되었지만
鮮能知此味(선능지차미) 이 맛을 아는 이 흔치 않으니(또렷히 하면 이 맛을 알 수 있으니)
莫向仙翁求(막향선옹구) 신선에게 구하고자 향하지 마시오.
*선능지미(鮮能知味) : 《중용장구》 제4장 2절에서 “사람은 모두 음식을 먹지만 능히 맛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人莫不飮食而鮮能知味]”라고 하였는데, 이 2절이 바로 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桃(복숭아나무)
桃有花有實(도유화유실) 복숭아는 꽃도 있고 열매도 있으니
奇絶天下無(기절천하무) 천하에 없는 기이한 절경이네.
艶惱仙妃妬(염뇌선비투) 요염한 자태에 선녀가 질투하고
誕笑王母愚(탄소왕모우) 서왕모의 우화에 웃음 짓는데
太勝黃金橘(태승황금귤) 노란 귤보다 훨씬 좋고
休誇清水芙(휴과청수부) 청수한 부용도 움추려 드네.
幽人寄幽賞(유인기유상) 유인은 그윽한 감상 부치며
自詑成别區(자이성별구) 별천지 만든 것을 스스로 자랑하지만
不貴荒唐說(불귀황당설) 황당한 이야기 귀하게 여기지 않아
莫傳南宮圖(막전남궁도) 남궁에게 도원도 보내지 않네.
*왕모우(王母愚) : 서왕모의 생일날에는 8명의 신선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자 서왕모는 이들을 위해 대연회를 베풀고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는데, 곰 발바닥, 원숭이 입술, 용의 간 등을 대접했고, 맨 마지막으로 복숭아를를 내놓았다는 우화를 말하는 듯 *남궁도(南宮圖) : 무릉태수로 부임한 두상이 ‘도원도’를 그려 제목을 붙인 후 남궁선생 노정 보냈다는 한유의 도원도(桃源圖)의 구절을 말하는 듯
柳(버드나무)
宅邊有柳樹(택변유류수) 집 부근에 버드나무 숲이 있어 / 집 건너 냇가에 버드나무 자라나
綠陰長堤繞(녹음장제요) 녹음이 긴 방천 감싸고 있네. / 짙은 녹음 드리우며 방천을 둘렀네.
枝垂拂去馬(지수불거마) 늘어진 가지 속을 말이 스쳐 지나가고
葉茂爭倦鳥(엽무쟁권조) 무성한 잎속에는 새들이 쉬고 있네.
靖節立傳意(정절입전의) 정절 선생(도연명) 전기 지은 뜻을
前後誰其紹(전후수기소) 전후에 그 누가 이어가리오.
明道過川興(명도과천흥) 명도 선생(정호) 내를 지날 때의 흥을
古今知者少(고금지자소) 고금에 아는 이 드물다네.
隨爾立春風(수이입춘풍) 너를 따라 봄바람 일어나니
欲語還未了(욕어환미료) 하고픈 말 마치지 않고 돌아오리.
春(봄)
斗柄回東躔(두병회동전) 북두성 자락이 동쪽 자리에 돌아오고
暘谷賓出日(양곡빈출일) 양곡에서 공손히 해를 맞아
陽和滿乾坤(양화만건곤) 햇살이 하늘과 땅에 가득한데
麗景誰難悉(려경수난실) 아름다운 풍경을 ‘다 보기 어렵다’고 누가 말하는가.
無邊藹生意(무변애생의) 끝없이 생명의지 왕성하니
自家心與一(자가심여일) 자연과 집이 마음으로 하나 되고
眼看物向榮(안간물향영) 만물이 생기 도는 걸 눈으로 보면서
欣然開我室(흔연개아실) 흔연히 방문을 열어두네.
花鳥莫深愁(화조막심수) 화조야 깊은 시름 짓지 마라
漫興非神筆(만흥비신필) 부질없는 흥취는 신필이 아니구나.
*빈일(賓日) : 돋는 해를 공경히 맞는 것으로《서경(書經)》요전(堯典) *자가심여일(自家心與一) : 송(宋)나라 때 주염계(周濂溪)가 창 앞의 풀을 뽑지 않고 그냥 두자 어떤 사람이 물으니 “저 풀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와 똑같다.[與自家意思一般]”고 말한 일화가 있다 《宋元學案 卷12 濂溪學案下 附錄》 *화조막심수(花鳥莫深愁) : 두보의 〈강상치수여해세요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시에 의하면 “나는 성질이 아름다운 시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마지않는데, 늘그막의 시편은 다 부질없는 흥취일 뿐이니, 봄이 오매 꽃과 새들은 너무 시름하지 말거라.〔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謾興 春來花鳥莫深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10》
夏(여름)
盛夏日可畏(성하일가외) 더운 여름날은 두렵기만 하여
人皆苦蒸鬱(인개고증울) 사람들은 모두 찜통더위에 고생하는데
我獨北窓下(아독북창하) 홀로이 북창 아래서
擧扇時蔽拂(거선시폐불) 부채 들고 더위 떨치네.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멀리 남산 바라보며
終朝對薈蔚(종조대회울) 아침이 다 되도록 무성한 숲 마주하면서
閒來讀古書(한래독고서) 틈이 나면 고서를 읽으니
服中無一物(복중무일물) 뱃속 물욕이 없어지네.
江山自淸爽(강산자청상) 맑고 깨끗한 강산이 있기에
誓換三公不(서환삼공부)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으리.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꽃을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나옴 *회울조제(薈蔚朝隮) : 소인들이 위세를 부리며 기염을 토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후인(候人)〉에 “울창하고 무성한 남산에 아침에 구름 기운이 피어오르도다. 어리고 예쁜 소녀가 이에 굶주리도다.〔薈兮蔚兮 南山朝隮 婉兮孌兮 季女斯飢〕”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침에 운무(雲霧)와 같은 구름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은 소인들이 득세하여 부귀를 누리는 것을 비유하고, 소녀가 굶주리는 것은 현자(賢者)가 버려져서 작록(爵祿)을 받지 못함을 비유.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 : 송(宋)나라 대복고(戴復古)가 후한(後漢)의 은사(隱士) 엄광(嚴光)의 고사를 소재로 읊은 〈조대(釣臺)〉 시에 “어떤 일에도 마음 없이 오직 하나의 낚싯대뿐, 삼공의 자리 준대도 이 강산과 안 바꾸리. 평소 유문숙을 잘못 알고 지낸 탓에, 허명만 세상 가득 야기했을 뿐.〔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 平生誤識劉文叔 惹起虛名滿世間〕”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石屛詩集 卷6》 문숙(文叔)은 광무제의 자이다.
秋(가을)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 가을 바람 어디에서 오는가
天晴雁賓初(천청안빈초) 맑은 하늘에 기러기 날아오네.
淸霜肅蘭蕙(청상숙난혜) 찬 서리 난초잎 움츠리고
幽興生郊墟(유흥생교허) 빈 들판엔 그윽한 정취 생기네.
色多淵明菊(색다연명국) 연명의 국화보니 화려하게 피어나고
味鮮張翰魚(미선장한어) 장한의 농어보니 생선회 맛 떠올리며
依林拾新螢(의림습신형) 숲에서 새 반딧물 모아다가
照床讀古書(조상독고서) 책상을 비추며 고서를 읽네.
此樂世孰知(차락세숙지) 이러한 즐거움 세상에서 누가 알리
古人秤莫知(고인칭막지) 고인이라 칭하지만 알지를 못하네.
*장한어(張翰魚) : 진(晉)나라 때 장한(張翰)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 생각이 나서 곧장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을 했다. 《世說新語 識鑑》
冬(겨울)
冬至氣閉塞(동지기폐색) 겨울되면 기운이 막혀
懍慄寒折膠(늠률한절교) 매서운 추위에 아교풀 끊어지네.
死瓦覆山谷(사와복산곡) 잿빛이 다시 산곡을 덮고
凍雪封林梢(동설봉림초) 언 눈이 나뭇가지 막아버리네.
幽人喜夜長(유인희야장) 유인은 긴 밤을 반기어
看書睫不交(간서첩불교) 서책 보느라 눈 붙힐 틈 없고
平生五車業(평생오거업) 평생을 많은 책 읽는 게 업인데
肯向三餘抛(긍향삼여포) 어찌 삼여를 포기하리오.
欲見天地心(욕견천지심) 하늘의 이치를 보고자 하면
地雷琓初爻(지뢰완초효) 지뢰가 초효를 희롱하네.
*절교(折膠) : 소식(蘇軾)의 〈옥석게(玉石偈)〉의 “추위가 지극하면 아교가 꺾이고, 더위가 심하면 쇠가 녹아 흐른다.〔寒至折膠熱流金〕”라는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오거(五車) : 오거서(五車書)의 준말로 많은 서책을 뜻함. *삼여(三餘) : 한 해의 나머지인 겨울과 하루의 나머지인 밤과 때[時]의 나머지인 흐리고 비오는 시간을 말한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 이 나머지 시간만 이용해도 충분하리라는 것이다. 《魏志 王肅傳》 *지뢰(地雷) : 지뢰복괘(地雷復卦) 에는 ‘관문(關門)을 닫고 사방을 시찰하지 않았다.’라고 함. *초효(初爻) :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동지(冬至)가 되면 오음(五陰)의 아래 초효(初爻)에서 미세하게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나 자라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루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1년 12개월의 운행을 음양(陰陽)의 원리로 설명하는 기본 틀.
朝(아침)
水箭停金壺(수전정금호) 물시계의 수전이 무멈추고
火輪升大壑(화륜승대학) 불덩이가 큰 골에서 오르면
天地暗復明(천지암복명) 천지가 암흑에서 다시 밝아지고
人物息而作(인물식이작) 사람과 만물이 쉬다가 일어나네.
夙興整衣中(숙흥정의중) 일찍이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는 중
淸明夜氣廓(청명야기곽) 청명한 밤기운 감싸오네.
朝朝自如是(조조자여시) 아침마다 이와 같으니
明日今爲作(명일금위작) 내일이 오늘은 어제가 되네.
梏亡斯可畏(곡망사가외) 양심잃고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圖前步戒却(도전보계각) 앞걸음 경계하고자 도모하네.
*금호(金壺) : 물시계 *곡망(梏亡) : 곡(梏)은 형틀이다. 사람이 사물과 접촉함으로 해서 본연의 양심(良心)을 잃는 것을 형틀로 속박당하여 자유를 잃은 것에 비유하였다. 《孟子 告子上》
暮(저녁)
一刻行千里(일각행천리) 일각씩 천리를 가니
西山藏日馭(서산장일어) 해를 몰아 서산에 감추니
暝色來依依(명색래의의) 어둠이 내려와 은은하고
煙光飛處處(연광비처처) 연기가 곳곳에 날리네.
羣林鳥雀喧(군림조작훤) 숲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西鄰桑麻語(서린상마어) 서쪽 이웃들 봉과 삼을 이야기하는데
靜觀倚南囱(정관의남창) 남창에 기대어 조용히 살펴보니
何思復何慮(하사복하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但覺年光催(단각년광최) 다만 세월 재촉하는 것 깨닫는데
暗來明己去(암래명기거) 어둠이 내려오자 밝은 빛 이미 갔네.
*일어(日馭) : 태양의 별칭이다. 고대의 신화 가운데 “희화가 해를 몰고 다닌다.〔羲和爲日馭.〕”라는 말이 있으므로 그렇게 일컫는다.
晝(낮)
明發睹萬物(명발도만물) 햇살이 만물을 구별하고
太陽中天臨(태양중천림) 태양이 중천에 임하는데
長繩係無術(장승계무술) 새끼줄로 묶어 둘 기술 없어
居然成古今(거연성고금) 어느새 옛일이 되어 버렸네.
可愛孝子日(가애효자일) 효자는 하루 해 사랑하고
當惜聖人陰(당석성인음) 성인은 촌음을 애석해 하는데
糞土戒惰氣(분토계타기) 게으른 사람이 게으름을 경계하고
博奕警無心(박혁경무심) 바둑 장기 두는 사람은 무심을 경계하네.
人欲不自棄(인욕불자기) 사람이 스스로 버리지 못하면
須從這裏尋(수종저리심) 모름지기 이 속에서 찾으리.
*분토(糞土) : 뜻이 흐리고 게으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낮잠을 자는 재여(宰予)에게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糞土之牆 不可杇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公冶長》 *박혁(博奕) : 장기와 바둑.
夜(밤)
卯酉苦不留(묘유고불유) 동서에 힘들게 머물지 않고
晝夜乃相因(주야내상인) 주야가 반복하여 서로 이어져
白日光己黑(백일광기흑) 한낮의 햇빛이 이미 어두워지고
爭頭事星辰(쟁두사성진) 별들이 다투어 나타나네.
萬籟寂沈沈(만뢰적침침) 수만 가지 소리들이 고요히 가라앉으니
何苦坐鄕晨(하고좌향신) 앉아서 새벽 맞는 건 어떠한 고민인가.
韓膏怕繼晷(한고파계구) 한유는 등불 태우며 햇빛 이어가는 걸 부끄러워 하고
沈夢忘頣神(담몽망신신) 심휴문(沈休文)은 꿈 속에서 정신 수양 잊었네
樂此不爲疲(락차불위피) 이같이 즐기면 피로하지 않으니
從今復幾春(종금복기춘) 지금부터 다시금 몇 해를 다시 하리.
*묘유(卯酉) : 묘는 정동이고 유는 정서이다. *향신(鄕晨) : 새벽에 가까워지다. *계구(繼晷)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독서와 저술을 하느라고 “등잔불을 밝혀 낮을 이으면서 항상 오똑 앉아 세월을 보내곤 하였다.〔焚膏油以繼晷 恒兀兀以窮年〕”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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