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요약분, 2024.04.26 마지막 날 일어나는 일 |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다 |
도마복음 38 (제21절)
https://www.youtube.com/watch?v=f_MzVUYAsi0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의식은 곧 출현이 생조일동(生照一同)
- 언제 어디서나, 일체 모든 것이 하나로서 나타남이 출현(出現)
- 출현(出現)은 하나의 의식에서 일어난다.
- 출현(出現)과 의식의 관계, 출현=의식
- 우리의 삶과 죽음도 나타남이고, 동시에 또한 의식
- 별도의 깨달음을 추구 필요 없음은 일체 모든 것이 의식이기 때문
- 의식의 다른 말은 깨달음/자각이기에 생조일동(生照一同)
- 생조일동(生照一同)이란, 나타남과 동시에 비추어 아는 것
- Non Duality 계통의 책들 표현: One and the Same, 하나로 같다
즉, 출현과 의식은 One and the Same, 하나로 같다 .
- 우리가 의식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온통 의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출현 = 나 + 세계
- 주관과 객관. 시공간 물체가 전부 의식으로서 하나로 같다.
2. 단일의식의 일인다역의 연극
- 독립된 별도 개인처럼 느껴짐은, 일심 반야 단일의식의 일인다역의 연극이기 때문.
- 이런 연극을 펼치는 이유는 사랑의 생명 축제를 펼치기 위해서.
3. 도마복음 21절 강독
가) 강독 서론
- 앞선 도마복음 1절부터 20절 까지의 모든 지혜를 중간 총정리 하는 절에 해당.
- 결국, 개인이 어떻게 어떤 체험을 하느냐?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음.
- 일어나는 모든 일= 곧 하나의 의식
- 여러 텍스트에서 편집 된 그러한 절이지만, 일심 반야. 지혜를 관통하고 있음
- 출처가 제1분기 지혜라면 여기저기서 편집됐다 할지라도 하나의 지혜로 읽어낼 수 있다.
나) 강독 전문
-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의 제자들은 누구와 같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땅에 정착한 어린 아이들과 같다.
땅의 주인들이 오면 그들은 우리의 땅을 되찾자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땅을 주인들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인의 현존 안에서 집에서 옷을 벗을 것인데,
그런 연후에야 땅을 그들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를 집주인이 강도가 온다는 것을 알면,
그가 오기 전에 엄한 망보기를 시작할 것이고,
자기 고향집에 침투하여 재물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계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
강도들이 너희에게 올 길을 찾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자기 무장하여야 한다.
너희들이 예상하는 고난들이 십중팔구 구체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 한 명이라도 이 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곡식이 익었을 때 그는 재빨리 낫을 손에 들고서 곡식을 수확하였다.
귀 있는 자들은 잘 듣기 바란다."
- 마리아와 예수 두 명만이 단독으로 대화/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슴.
- 지금 제자 그룹은 다른 장소에 있거나 이 대화에서는 배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슴.
다) 강독 해설
A) “주의 제자들은 누구와 같습니까?”란 말씀
- 제1 분기 지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미스테리 함
- 주의 제자들은 누구와 같습니까? 라고 물음에 선문답처럼 엉뚱한 답변을 하는듯한 뉘앙스.
- 좋게 보면 감추어진 비밀을 말하듯 신비한 말로 들리기도 함.
- 21절을 번역하고 새길 때, 밥통 스피커는 깊은 지혜의 환희 안으로 들어가는 뉘앙스 안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음
- 이 구절은 참조할 신약 정경의 병행 구절은 없지만, 도마복음 37절에 가면 거의 비슷한 취지의 구절이 있음
- 마리아 막달레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거의 1500년, 1700년 이상을
지금의 신약 정경(제2분기 웨스트 전승)에서는 귀신 들린 여자 또는 길거리의 창녀로 굉장히 격하시켜 놓았음
- 그 이유는 정통적인 연구 결과나 제 1분기 지혜 문서 등에 의거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 운동(세례 요한으로부터 그 이전의 에세네파/ 하시딤 경건한 사람들 /
수메르와 이집트, 카메페 전승) 안에서의 이 단일의식, 지혜 운동 안에서의 역할을 보면
당시 예수 그룹에서 제일 제자, 즉, 상수 제자로 평가되기에, 격하하게 된 것.
- 심지어는 예수님의 배우자였던 아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바,
그 당시 유대인들은 결혼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장려되었던 사회적 분위기여서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예외적으로 여겨짐.
- 암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반려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제 1분기 지혜와는 별 상관이 없음
-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예수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한 뛰어난 제자의 한 사람이었음.
- 남성 제자들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귀와 가슴을 열고 이해와 믿음에 있어서 훨씬 적극적이고
용기를 내는 그러한 사람이었음.
- “제자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렇게 묻고 있음
- 현대적으로 이야기하면, 제 1분기 지혜, 일심, 반야 단일의식을 공부하고 탐색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혹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됩니까? 라는 얘기임
- 금강경에서 “어찌해야 이 마음을 항복시키고 진정한 지혜에 이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와 같음
- 예수께서의 대답 내용은 동서 막론하고, 제 1분기 지혜의 길에 입문한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와 같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라는 뜻.
(주)" 제자" = 아이 = 임시 가상의 행위 주체 = 개인 = 캐릭터 = 연극 배역
B)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땅에 정착한 어린아이들과 같다”란 말씀
- ‘어린 아이’라는 것은 임시, 가상의 행위 주체인 개인을 이야기 함.
- 이 개인은 실체로서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캐릭터로서 가상의 임시의 행위 주체, 캐릭터로서 연극의 한 배역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정체를 가지고 있다.
- “자기 소유가 아닌 땅”이란 말은,
연극 배역의 역할 하는 무대(=물질세계로서 주객 이원성의 세계)를 가리킴
- 이원성의 세계는 당연히 생멸의 세계고, 대승기신론의 심생멸(心生滅)의 세계고, 생멸 의식 세계다.
- 제 1분기 지혜의 길에 들어선 도반/친구/벗님들은 여태까지 개인으로 실제 하는 줄 알고
자기 자신의 정체를 오직 개인 한 몸에만 한정시켰지만,
이 길에 들어선 뒤에는 바로 진정한 주인, 즉 역할과 이 연극 무대,
즉 개인과 이원성의 세계, 개인과 물질세계의 정체를 알고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 더 이상 개인을 전부로 여기지 않고, 별도의 땅의 주인이 있다 이 말은
개인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의식이 주인이었다.
- 몸과 나와 세계가 별도로 실재하는 줄 알았는데, 모든 출현이 한 통속으로, 하나의 의식이었다.
- 생조일동(生照一同) 이었다라는 이 가리킴 지혜에 귀를 열어 듣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
- 땅의 주인은 하나님/ 일심 반야 단일의식이다.
(주) "자기 소유가 아닌 땅" = 주객 이원성의 세계 = 소위 물질세계 = 생멸 세계 = 심생멸
C) 개인의식(x) /개체의식(x)
- "땅의 주인이 오면" 육체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육체의 마지막 날이다 .
- 우리가 좀 피해야 될 용어중 하나는 “개인의식”이다.
- ‘참 나‘라든가, 불성이 만물 안에 만물 속에 깃들여 있다.
이런 엉터리 같은 말은 안 써야 겠지만,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개인의식, 개체 의식, 이 말은 엉터리 중에 엉터리이고,
은연중에 영혼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옳지 않다.
- 의식은 단일 의식 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식, 개체 의식은 없다.
-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주인이 왔을 때 영혼을 반납한다는 식의 상상을 해서는 안 됨
- 창조주에게 나의 개별 영혼을 개체 의식을 반납한다는 상상은 불가(x).
- 주인이 오면 나의 조그만 영혼이 주인의 큰 영혼에 합일 된다 그런 뜻이 아님.
- 그러니까 하나의 바다 물방울이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비유들이 초기 유치원 시절엔 재밌게 얘기할 수 있지만, 이제는 엉터리다.
- 계속 개인과 개인적 동기를 유지시키기 때문에, 고통과 공포를 지속시킨다.
- 특히 개인의식, 개체의식, 이런 말은 우리 이 제 1분기 지혜의 길에서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주) "땅의 주인" = 하나님 일심 반야 단일의식, 오면 = 육체의 마지막 날
D) 육체의 마지막 날. 일어날 일
- 깨달음이 일어난다.
- 육체를 버리고 윤회를 하는 것 아님
- 개별 영혼, 개체 의식을 전체의식과 합일 시키는 것 아님
- “땅을 주인들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은 개인으로는 죽고, 의식으로 부활한다, 깨닫는다는 말.
- 단 하나의 위대하고 장엄한 사랑 깨달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말.
- 우리의 태어남은 개인 배역으로 깨어나는 거고, 죽는다는 것은 단일의식으로 깨어남.
그러니까 삶과 죽음이 전부 깨어남이다.
- 깨달음이고 의식의 자기 자각, 자기 깨달음이다.
- 더 쉽게 얘기하면 연기를 끝내고 연기자로 깨어난다.
즉 단일의식으로 깨어나는데, 사실은 깨어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이 연기자가 아무리 메소드 연기로서 배역에 몰두 하더라도, 늘 연기자 였슴.
- 나는 못 깨달았나 봐!!~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자기표현.
(주) "땅을 주인들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 개인으로 죽고 의식으로 부활
= 연기를 끝내고 연기자로 깨어남 = 단일의식으로 깨어남
E) 단일의식으로 깨어난다는 말의 참 뜻
- 1인 연기자 단일의식으로 깨어난다는 말은, 개인(개별영혼)으로 깨어나는 게 아니고.
연기자, 즉 단일의식이 자기 스스로로 깨어난다는 말.
- 전체 하나의 의식(하나의 영혼)이 자기 자각을 한다는 말.
그러므로 깨어나는 어떤 주체/행위자도 없고, 깨어나는 대상으로서의 어떤 객체도 없다.
- 오로지 있는 것은 시종일관 깨달음, 깨어남,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밖에 없다.
- 가장 적나라한 가르침은 '반야심경'이지만, 눈치채기가 어려운 핸디캡.
- 반야심경 현대적 번역이 이루어진다면 지은이는 단일의식이 될 것.
F) 죽음은 생명 축제의 하이라이트
- 탄생보다는 죽음이 생명 축제의 하이라이트.
- 엄청난 환희로서 우리는 체험할 수 있는데,
개인적 동기에 기반 한 인류 문명이 생명 축제를 어둡게 만들어 최면을 걸은 상태.
- 그러나 실제로는 배역의 역할을 마치면 누구나 저절로 아무런 노력 없이도
이 단일의식으로 깨어난다.
- 보다 선명하고 좀 스릴 있는 그러한 테마를 더 이상 경험하지 않고 깨어나려면,
선현 선각의 가리킴을 귀를 열고 듣는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G) “옷을 다 벗고, 되돌려 주는 일”이란 말씀
- 주인이 돌아와서 그 땅을 되돌려 달라 할 때에, 되돌려 주는 옷을 다 벗는다 함.
- 옷을 다 벗고, 되돌려 주는 일은 육체가 죽을 때만이 아닌,
언제 어디서든 매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일임
- 즉, 우리는 매 순간 부활하고, 다시 또 탄생하고, 죽고 또 부활 할 수 있다.
죽고 부활하고 탄생하고 또 죽고 부활하고,
- 이러한 생명 축제 안에서 이 단일의식으로 선명하게 깨어나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개인적 체험 내지 개인적 깨달음이 아님.
- 이것이 이원성의 세계 안에서 배역이 주체로서 벌이는 일인 줄만 알았던 것인데,
그 모습 그대로 이것이 단일의식의 생명 축제였구나 라고 이해하는 것,
이것이 매순간 우리가 깨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라는 말.
- 언제 어디서든 매 순간에 개인으로 죽고, 의식으로 부활할 수 있는 것임.
H)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을 것”이란 말씀
- They will undress in their presence in order to let them have back
their field and to give it back to them,
- in their presence는 의식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는다는 말,
- 지옥에서 천국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게 아닌, 언제 어디서나 이 주인 안에 있는 것,
-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그 안에서 옷을 벗는다는 말은 정체성의 올바른 이해, 정견이 일어났다는 말
- They will undress in their presence
의식의 현존 안에서 개인 정체성의 임시성을 깨닫고이해한다는 말.
- 그들의 필드(Field), 땅을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말은 전도(顚倒)되어 있던 것이 정위치를 되찾는다는 말,
- 여기서 필드(Field)는 땅이라기보다 의식의 장(場).
-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배역인 줄 착각하다가 연기자인 것을
다시 기억해내는데, 이 모든 것이 단일의식의 작용임을 이해.
- 옷을 벗는다는 말을 개인 영혼, 개인의 변화, 개인의 정화, 개체 의식이 전체의식과 합일내지 전제 (x),
- 늘 하나의 의식인데, 개인 일때나 배역일 때나 단일의식이었다.
- 옷을 벗고 필드(Field)를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말은 개인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
- 결국 단일의식, 스스로의 자기 이해다.
-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을 것”인데, 이 말은
의식 안에서 의식의 수단인 개인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인데 라는 말이다.
-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비단 육체적인 개인뿐만 아니라, 아스트랄 체도 포함
육체는 비활성화 되고, 본래 활성화 되어 있던 아스트랄체가 전면으로 나타난다.
- 그 다음 아스트랄체가 비활성화 되면, 멘탈체, 멘탈 개인이 전면에 나타난다.
즉, 개인이라 할 때는, 육체 개인, 아스트랄 개인, 멘탈 개인, 세 개가 동시에 작동.
- 이 모든 것이 임시 가상의 의식 수단이다
-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을 것인 바, 분명하고 선명한 이해가 일어나는 것은
육체가 비활성화 될 때, 즉 죽음이 일어날 때에 더욱 선명한 이해가 일어남.
- 물론 미리 이에대한 이해가 있어야 일어남.
- 이런 이해가 가슴에 깊이깊이 간직되어 있다면, 개인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고통과 공포도 임팔라처럼 가볍게 우리가 취급할 수 있게 된다.
- 이때 가볍게 취급하는 행위 주체는 없음에 유의
(주) "주인의 현존 안에서 옷을 벗을 것인데" = 의식 안에서 의식의 수단인 개인(육체 개인,
아스트랄 개인, 멘탈 개인)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인데
I) “그런 연후에야 땅을 그들에게 되돌려줄 것이다”라는 말씀
- 땅을 되돌려준다는 말은, 개인의 정체를 잘 보고 인식한다는 뜻.
- 개인의 정체는 생존과 번식이며, 깨닫는 기능이 없다.
- 중생이 부처로 변하고, 개체 의식이 전체의식과 합일되는 그런 기능이 없다.
- 물론 개체가 전체가 된다라는 연극을 재밌게 할 수는 있지만, 시나리오일 뿐이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님.
- 개인의 한계를 잘 보고 인정한다는 말은 무시한다는 게 아니고,
과기능, 있지도 않은 기능을 상상해선 안 된다는 말
(주) "그런 연후에야 땅을 그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 개인의 정체(생존과 번식)를 잘 보고 인정한 후,
일심 반야에 귀를 열어, 이해와 믿음이 일어날 때, 단일의식 사랑으로 깨어난다. 즉 천국에 태어난다.
J) 일심 반야에 귀를 열어서 이해와 믿음이 일어날 때,
- 단일의식 사랑으로 깨어난다. 즉, 천국에 태어난다는 말
- 우리가 여기 물질세계에 살다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게 아니고,
바로 이 모습 그대로, 이 꼬라지 그대로, 이것이 개인 주체가 아니고
시공간 물질세계로 엄격하게 나누어진 주객의 세계가 아니고,
일심 반야의 임팔라처럼 가벼운 테마파크 생명 축제였구나 라고
귀를 열어 이해하고 이것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 할 때,
우리는 천국에 들어간다, 천국에서 태어난다,
혹은 죽고 천국의 사람으로 거듭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음. - 끝 -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엄한 망보기로 수정완료^^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_()_
삭제된 댓글 입니다.
꼼꼼이 오타까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