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은 자연(자연-Nature)의 순 우리 말글입니다. 제=스스로,물=빛(깔)을 뜻합니다. 제 스스로 제 빛을 밝힘을 뜻합니다. 우주의 얼과 뜻이 제물(자연)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나무에 풀에 물과 빛-하늘숨(공기)에 그대로 스며있음을 배웠습니다. 겨레의 얼과 뜻이 또한 제물에 그대로 스며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주의 얼과 뜻, 겨레의 얼과 뜻, 하늘과 땅,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길잡이를 모시기 위해서는 태어나기에 앞서부터,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이 되어서 더욱 모두 다 제물살림살이를 배워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연학과 평화학, 그리고 창조학 교육이 열악한 형편입니다. 우리네 살림살이에 제물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움이 깨어지고 말겠지요. 우리네 살림살이에 평화가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서로 넉넉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창조력이 결여되겠지요.
제물(자연)은 평화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네 평화는 제물을 지켜주기 때문에 제물은 더욱 평화롭게 되겠지요.
제물(자연)은 과학의 과학으로서 과학의 바탕입니다. 자연과학의 정수입니다.
제물(자연)은 문학의 문학, 예술의 예술로서 문학예술의 산실입니다. 자연문학예술의 터전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제물(자연)은 종교의 종교로서 발전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행로입니다. 자연종교의 길잡이로 연구되어야 합니다.
제물(자연)은 의학의 의학으로서 의학의 알맹이입니다. 자연의학이 먼저 연구, 개발되어야 합니다.
제물(자연)은 문화의 문화이며, 문명의 문명으로서 문화와 문명의 토대로 자연문화와 자연문명의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제물(자연)은 교육의 교육입니다. 교육의 본보기로서 자연교육이 어느 곳에서나 우선되어야 합니다.
제물(자연)은 예의와 범절, 질서와 조화, 봉사와 섬김, 베품과 나눔 등 인류 역사의 살림살이에 본보기 선생님입니다.
제물(자연)은 인류 문화, 문명 발전에 필요한 자원의 보고입니다. 모든 생명체의 먹이를 지어 내는 바탕입니다. 자연자원은 거듭되는 세기의 고갈되지 않을 먹이의 생산 창고입니다.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어 내야 할 것입니다.
제물(자연)은 의약 치료제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감정,정서,착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익히는 도량입니다. 삼림욕과 등산, 느린 걸음으로 거닐기, 바람목욕이 이루어지는 놀이마당입니다. 흙의 치료 효과, 산야초의 약효는 또 어떠합니까. 이처럼 제물은 인간과의 친교 등 한없는 깊이와 넓이, 높이와 둘레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자연과 교육은 인류 평화의 질서와 조화 구축에 마땅히 시행되어야할 교과목입니다.
제물(자연)은 지친 몸 쉴 수 있는 자리로서는 가장 좋은 쉼터라 여겨집니다. 현대인들은 비껴갈 수 없는 짓눌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고요한 자리가 대거 없어져 버렸습니다. 쉴 수 있는 명상, 기도하는 새로운 생각 등 창조적인 몸으로 전환(재생)할 수 있는 곳은 자연밖에 더 이상 없습니다.
제물(자연)은 아름다움의 보고입니다. 어떠한 가치로도 되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제물은 그 새로운 창조적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날마다 가르쳐주는 본보기 선생님입니다.
제물(자연)은 우리에게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는 창조의 힘입니다. 우리의 몸을 우주의 몸으로 지어 나가시는 창조의 힘입니다. 우리가 결코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 없는 그 힘을 우리 모두에게 다 주시고 계시는 님이 바로 제물입니다.
제물(자연)은 탈이 난 우리 몸을 제 자리의 몸으로 이끌어 주시는 자연 건강의 길잡이입니다. 하늘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땅을 느끼게 하시며, 살아 있는 모든 몸의 숨결을 사랑할 수 있는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을 키워 내시는 자연 건강의 길잡이입니다.
제물(자연)은 느낌(감정-마음)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해주십니다.
제물(자연)은 보는 눈을 넓고 깊게, 높게 해주십니다.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눈의 건강을 지켜주십니다.
제물(자연)은 몸의 작은 살알주머니(세포)를 열어서 자연의 숨을 내고 들이므로 살주머니를 깨끗하게(정화) 해주십니다. 살갗으로 숨을 잘 쉬게 해주십니다.
제물(자연)은 드러난 우주(한울)이십니다. 우리는 우주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함은 곧 "제물(자연) 안에서 제물과 함께 살아간다. 살아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모든 배움터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회, 사찰, 연구기관, 회사나 군대와 공장까지도 '자연학(자연배우기) 강좌를 의무적으로 개설해야 합니다.
마을회관, 어르신네 쉼터, 어린이집은 말할 것도 없으며, 중앙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물배우기 과목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연의 황폐, 파괴는 인류뮨화 문명의 황폐화요 파괴입니다.
제물(자연)은 한울 아름다움을 드러내시는 살아 계시는 한울 말씀입니다. 눈으로, 비로, 바람으로, 안개로, 이슬로, 서리로, 물보라 휘날리는 연무로, 노을로, 구름으로, 햇빛으로 영롱하게 수놓으시는 창조의 몸짓입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비와 벌들의 날개, 풀과 나무, 피고 지고 피는 꽃들, 헤아릴 수 없는 씨알의 열매.... 이 아름다움이 바로 제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풀이고 나무이며 꽃이고 열매이고 제물입니다.
제물(자연)은 비롯음과 끝맺음으로 '하나'되시는 아름다운 힘=한울입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한 알의 씨, 무릇 모든 씨알은 한울님이시도다. 일종무종일(一終無 終一), 한 씨의 알, 뭄릇 모든 씨알은 한울님이시도다."
우리말 우리글=한글이 우리네 살림살이에 하늘과 뜻과 얼을 가르쳐주고 있다면, 제물(자연)은 우리네 살림살이에 넉넉한=더/덜 없는 '살다와 살리다'의 틀과 꼴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얼과 제물의 틀과 꼴을 잘 살리고 한없이 자라나게 하는 님이 바로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얼과 뜻을, 다시 말해 제물의 틀과 꼴을 받아서 잘 자라게 하고 한없이 크게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선이'입니다. 제물 살림살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넉넉함, 여유, 더불어 함께 사는 길, 평화와 평등, 자유와 창의, 주체와 노력을 가르쳐 주는 참된 삶의 배움터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물은 일터이고 쉼터이며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공동체 삶의 길을 가르쳐주고 한없이 뻗어나가게 해주는 창조의 수련장=한울모심자리(수도장, 자연 수행원)입니다. 더 나아가서 제물이야말로 우리에게 다 주시고, 다 받으시는 온살림살이의 본보기, 생태 학습장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없음도 어떠한 더함도 없이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며 쌓아둠도 없이 꼭 알맞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창조의 역사 학습장이기도 합니다.
제물(자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누구에게나 평온하며, 누구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평화로운 삶의 자리를 제공해주는 생명의 보고입니다. 다 주시고, 다 거두시는 사랑의 연단 장소인 제물은 우리에게 모든 것(피부, 인종, 이념, 경제, 정치, 문화, 예술, 과학, 문명)을 넘어서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다 사랑하라(다사함)는 하늘말씀=창조의 명령=텅 빈 넉넉함 그 자체입니다.
제물(자연)이야말로 살아 계시는=움직이며=새롭게 새롭게 제 몸을 지어 나가시는 온누리 창조의 말씀입니다.
우리말 우리글이 인류에게 전해 주시는 하늘의 말씀이시라면, 제물은 온누리 모든 목숨=생명체에게 가르쳐주시는 참한 땅(마고-에덴)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제물(자연)은 모든 살아 있는 몸의 영성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명상, 묵상, 기도, 반성, 삶의 힘을 내게 하는 북돋음의 성전입니다.
길 닦기/다사함
세찬 비가 내린다
길가를 넘치는
빗물을 받는다
물길을 만든다
나의 길을 만든다'
다사함 꽃길을 닦는다
물길을 만든다
물길이 내 길이고
발길이 내 길이니
살림살이는 내 길을 닦는 일이니
비를 맞으며
길을 맞는다
길이 길을 짓는다.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제 2부 제물 살림살이'에서 )
첫댓글 길 닦기 - 쉽지 않은데 외래어나 한자어가 한 음절도 없네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고향인 제물을 다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