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2) 삼형제의 첫 출정
이 무렵, 유주 탁현 대흥산(大興山) 속에는 5만에 달하는 황건적이 들어앉아, 낮이나 밤이나 수시로 출몰하여 양민들을 약탈할 뿐만 아니라,
조만간 관군을 일거에 전멸시키고 탁현 고을을 완전히 황건적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일찍이 태수 유언의 이름으로 의병 모집의 방문이 나붙은 것도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뒤, 황건적의 준동이 크게 염려되어 사전 준비의 일환으로 시행한 것이었다.
유비는 5백 여명의 의병 데리고 훈련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 관우와 장비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모집한 의병의 훈련도 거의 끝나 가니, 황건적과 대항 할 일 만이 남았소. 근자에 듣자하니 연일 출몰하는 도둑떼 때문에 탁현 태수가 고생이 많다고 하오. 그러니 우리가 태수를 찾아가, 보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여 우리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장비가 대뜸 나서며,
"형님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오. 당장 탁현 태수를 찾아가서 관군까지 우리 손에 넣어 황건적을 모조리때려부숩시다!"
하고 침을 튀겨가며 열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관우는 빙긋이 웃으면서,
"아닌게 아니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작정 나설 것이 아니라, 형님의 말씀 대로 탁현 태수를 만나 황건적을 쳐부수는 방향과 목표를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우리 의용 군사들의 전투에 필요한 군수물자 등에 대한 지원도 요청하여 받게 된다면, 우리의 향후 전투력 유지에도 큰?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장비가 손뼉을 치며 신이 나서 다시 말한다.
"듣고 보니 관우 형님의 말씀이 딱 이오. 딱 그야말로 꿩도 잡고 매도 잡는 좋은 계략이오!"
이쯤되니 유비도 웃지않을 수 없었다. 유비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럼 우리 삼형제가 지금 곧 탁현 태수를 찾아 가기로 합시다."
태수 유언은 유비, 관우, 장비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황건적에게 주야로 시달림을 당하고 있던 유언 태수는, 이들 삼형제를 황천에서 구세주를 만난 듯이 반가워하면서,
"유 장군이 그동안 모집한 의병들을 잘 훈련시키고 있다고 들었소. 이제금 우리 관군을 도와 준다면 이처럼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소. 우리는 지금 교위(校尉)인 추정(鄒靖)으로 하여금 관군을 거느리고 황건적들의 소굴인 대흥산으로 가서 그들을 토벌 하려던 중이었소. 그런데 유 장군이 우리를 도와 줄 뜻이 있다고 하니, 이번에 관군의 선봉(先鋒)이 되어 준다면 고맙겠소."
"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가는 대로 군사를 곧 출정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유 태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관우를 돌아 보며,
"장군은 장정(壯丁) 열 사람이 쓰기에도 버겁다는 무기를 사용한다고 들었소. 힘이 대단한 장사(壯士)인 모양이구려."
그러자 관우는 빙긋이 웃으며,
"고마우신 칭찬의 말씀입니다. 무기 말씀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 의용 군사들의 식량을 비롯한 무기와 군수품 조달에 대해, 태수님의 각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잘 알겠소. 전투에 필요한 제반 군수품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겠소이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장비를 돌아 보며 묻는다.
"장군은 황건적 오십 명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일이 있었다고 들었소. 정말 대단한 일이오. 듣건덴, 홍씨 가문에 부장(副將)을 지내며 팔백팔시(八百八屍) 장군으로 불렸던 호걸도 장군이라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부장 시절에 팔백 명의 황건적을 때려 잡은 일이 있습니다."
장비는 자신을 알아 보는 태수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태수는 세 사람을 향하여,
"정말 믿음직스럽소. 세 사람은 어디에 내 놓아도 틀림없는 영웅호걸이오. 일간 황건적 토벌의 출전일을 통보할 것이니, 돌아가기 전에 오늘은 술이나 한잔씩 나누고 가도록 하오."
하면서 곧 주안을 차리도록 시종에게 명했다.
유주 태수 유언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 온 세 사람은 관군과 약속한 날짜에 5백 명의 훈련된 부하들을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대흥산을 향하여 황건적 정도(征道)에 올랐다.
황건적 대방(大方)인 정원지(程遠志)의 휘하에 대흥산에 운집해 있는 5만명의 황건적은 유비, 관우, 장비등 삼인이 선봉군 5백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접근해 오는 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저놈들이 정신 빠진 놈들이 아니냐? 우리 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는 모양이지?"
적장 정원지는 어이가없다는 듯이 내뱉으며, 말을 타고 몸소 일선으로 나왔다.
유비는 정원지를 보자, 채찍으로 그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이놈! 나라를 거역하고 백성을 탈취하는 역적이자 천하에 둘도 없는 도둑놈아!이 유현덕 앞에 당장 항복하지 못할까!"
정원지는 유비로부터, 역적에 도둑놈이란 소리를 듣자, 화를 발끈내면서, 부장 등무(鄧茂)에게 명한다.
"저 애송이 같은 놈의 목을 당장 베어 오라!"
등무는 말을 타고 신바람 나게 유비를 향하여 달려나왔다.
장비는 그 모양을 보고 벼락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맞서 나가, 등무가 미처 손을 써 볼 사이도 없이 그의 가슴 한복판을 창으로 찔러버렸다.
등무는 장비의 일격지하에 <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정원지는 그것을 보고 크게 노하며, 이번에는 자기 자신이 쌍검을 휘두르며 말을 제쳐 나왔다.
장비가 다시 몸을 날려 그의 가슴을 찌르려 할 때, 이번에는 관우가 비호같이 달려 나오며 청룡언월도를 한 번 <번쩍> 휘두르니, 정원지의 머리가 땅바닥에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와아~!"
장비와 관우가 단 일격에 황건적 도당의 부장과 대방을 처치해 버리자, 5백 명의 뒤따르는 의용군과 그 뒤를 받치고 있던 관군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적의 무리는 어느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비, 관우, 장비등 세 장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휘몰아쳐 도망치는 놈들의 뒤를 추격했다.
군대란 지휘관이 없으면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황건적 무리들은 어떤 이념과 사명감도 없이 오직 이해타산 으로만 모여 들었던 무리인 만큼,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그들은 제각기 창검을 내던지고 사방으로 달아나기 바빴던 것이다.
"하하하, 쥐새끼만도 못한 놈들이로다!"
장비는 적의 무리를 추격하다 말고 숨을 돌리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서 관우를 보고 말했다.
"형님!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다면 천하의 황건적을 석 달도 못 가서 죄다 없애 버릴 수 있겠구려 !"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라. 오늘은 어쩌다가 쉽게 이겼지만, 전쟁이 언제나 오늘처럼 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쉽게만 생각해도 안 될 일이다."
관우는 점잖게 장비를 나무랐다.
첫 출정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세 사람은, 황건적 무리의 1만 여명의 목을 베고 3천 여명의 포로를 잡아, 유주 고을로 개선의 길에 올랐다.
태수 유언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현덕을 개선장군으로 맞이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많은 악인(樂人)을 동원하여 성문 앞에서부터 풍악을 울리게 하고, 태수가 몸소 성문 밖까지 나와 유비와 그의 군사들을 융숭히 영접하였다.
"유 장군 덕택에 오늘 밤부터는 내가 다리를 뻗고 자게 되었소. 5백 명의 적은 군사만을 가지고 5만 명의 대군을 쳐부순 것은 일찍이 전쟁사에 없던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오!"
"이렇게 융숭한 영접을 받아 황송합니다. 오늘의 승리는 용감한 두 아우와 충성스러운 우리 병사들의 덕택이었습니다."
유비는 승리의 공로를 두 아우와 부하들에게 돌렸다.
이날 밤, 탁현 태수 유언은 유비와 그의 병사들에게 개선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그러나 그 연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이웃 고을인 청주 태수 공경에게서 유 태수에게 급보가 날아들었다.
<근자에 황건적 무리가 각지에서 출몰하던 중, 이번에는 청주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금방이라도 들이칠 기세를 보이고 있어 관군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으니, 원컨데 급히 지원군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청주 태수 공경>
유언은 급보문을 즉시 유비에게 내보였다.
"청주에서 우리에게 급히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하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유비는 급보문을 두 아우에게 돌려 읽힌 뒤에,
"우리 삼형제가 가서 청주성을 구하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말했다.
"부탁하오!괴로운 대로 다시 한번 수고를 해주시오."
유 태수는 유비에게 간곡히 부탁을 한다.
이리하여 유비, 관우, 장비 등 삼형제는 승전의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다음날 아침 유주에서 서남방인 청주성( 산동반도 인근)을 향하여 머나먼 원정길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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