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대학자인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신숙주(1417~1475)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438년 (세종 20년) 21세의 나이에 사마 양시에 동시 합격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 해 진시문과, 1447년에는 중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세종 대에는 주로 집현전과 삼사에서 활동하며 학문연구와 한글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세조가 주도한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동덕좌익공신이 되었고 이후에도 익대공신 좌라공신 등 연거푸 공신의 칭호를 받으며 영의정, 좌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청북면 고잔리의 사당 고잔묘에는 보한재 신숙주와 성종의 부마였던 신항중종의 부마였던 신의의 위패를 모셨다.
이곳에 모셔진 영정은 1890년 사당을 옮기며 충북 구봉영당의 것을 베껴 그린 것이다
조선전기의 대학자인 보한재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 및 감실주독이 모셔져 있는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 소재 고령신씨사당을 둘러 보았다. 신숙주는 조선 세종21년(1439년)에 친시문과에 급제했으며, 뛰어난 학식으로 정치·외교·군사 지도력까지 갖춘 문무를 겸비한 정치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감실주독이란:신주를 모셔두는 감실과 신주를 넣어두는 궤를 말한다.
신숙주 영정 및 감실주독
위치:평택시 청북면 고잔3리 905
지정:평택시 향토유적 제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