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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묘한 시험(試驗) 작은 다루(茶樓) 안. 단류흔은 능조운이 자신을 찾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극기연검(克己練劍)을 한 인물로서, 어지간한 일로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한데, 지금 그는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석대숭을 만나고 돌아와서 한 주전자의 용정차(龍井茶)를 마시기 시작한 능조운을 향 해 흐트러진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상지회(大商之會)에는 참가하지 않으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왜?" 능조운은 무심한 가운데 감미(甘美)로운 차향을 폐부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구대거상이 소야를 배척하고자 벌써 두 차례에 거쳐 비밀 회합을 가졌다 합니다.""흠." "그들이 소야를 배척하고자 하는 이유는, 소야가 인생 경험이 없고 나이가 젊다는 것입니다. 준비 없이 대상지회로 가시다가는,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단류흔은 불안에 휘감기 어 있었다. 기실, 그는 능조운의 몸 안에 가공스러운 진기의 힘이 스미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 고 있었다. "젊고 경험 부족이라는 이유로 인해 나를 대총사로 섬기지 않겠다, 이 말인가?""그… 그렇습 니다." 단류흔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한데, 능조운의 반응은 단류흔이 생각했던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네." "당연한 일이라니요?"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일세! 그러니, 그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지.""예… 에?" 단류흔의 입이 딱 벌어졌으며. "봄비는 농사에 좋지. 훗훗……!" 능조운은 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며 신비로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대상지회(大商之會). 지난 일 갑자(甲子) 내내 한 번도 개최되지 않은 회의이다. 대상지회는 대륙상가의 존망(存亡)이 걸린 일이 벌어지는 경우와 대륙상가의 후계자가 나타 날 경우에만 개최를 한다. 천하구대거상, 세칭 구대재신(九大財神)은 외부인에게 정체가 노출될 것을 꺼려하여 자신의 거처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한데, 일 갑자 만에 처음으로 대상지회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 이다. 대상지회가 열리는 장소는 도요(陶窯)였다. 청화자기(靑華瓷器)의 산지로 유명한 화옥요(花玉窯)가 바로 구대거상들의 회합 장소였다. 그 곳은 은밀히 뒤덮였으며, 상막(商幕) 소속의 구대위사대(九大衛士隊)가 모두 나타나서 화 옥요로 들고 나는 모든 길을 철두철미하게 차단했다. 그러나 얼핏 둘레를 살펴본다면 아무도 있지 않은 듯, 사방은 적요할 뿐이었다. 추적거리는 빗속, 능조운은 단류흔을 뒤에 세운 채 팔자걸음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빗줄기로 인해 축축이 적시어지고 있었다. 단류흔은 꽤 불안한 눈치였다. 그는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입술을 달싹거려 전음을 보냈다. "옹기 가마 뒤쪽에 다섯이 숨어 있습니다. 필경 단장오화(斷腸五花)라는 자들일 것입니다. 해왕부(海王府) 소속이지요. 칠 년 전, 함께 술을 마신 바 있는 자들입니다. 꽤 강한 자들이 지요. 그러나속하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하니 안심하십시오."단류흔은 가공스러운 무위를 지 니고 있었다. 그는 일대에 머물러 있는 은잠자(隱潛者)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단장오화, 대상막의 일급호법이며 강호계에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석대숭 휘하의 무사 들은 어떠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강호사에 개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은 철저한 비밀로 유지가 되었다. 단장오화는 그들 가운데 속해 있는 비밀 호법들이었다. '단장오화뿐이 아니네. 그들 뒤에는 일곱 명의 노고수가 버티고 있네. 그들은 아마도 음혼칠 로(陰魂七老)라 하는 인물들로, 대상부(隊商府)의 호법들일 걸세. 그리고 뒤쪽 송림(松林)에 머물고 있는 삼십육 인(人)은 철왕부(鐵王府) 소속의 삼십육천강위(三十六天 衛)일 것이며, 도요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검진(無形劍陣)을 펼치는 자들은 야왕부(夜王府)의 백팔 야화위(百八夜花衛)일 것이네.'능조운은 백 장 안을 샅샅이 읽고 있었다. 그가 시전하는 것은 천이통(天耳通) 종류의 무공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육심회통술 (六心廻通術)이었다. 쏴아아… 쏴아아……! 폭우는 더욱더 거칠게 내리닥쳤다. 두 사람은 비에 젖는 가운데, 안배된 장소로 접어들 수 있었다. 지하 오십 장 되는 곳에 마련된 거대한 지하 광장. 그 곳이 바로 대륙상가의 본막(本幕)이었 다. 수많은 무사들이 찾고자 했던 대륙상가의 거점은 천하의 대도인 회남부 안에 자리잡고 있었 던 것이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뒤지며, 대륙상가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 백여 년 간 대륙상가를 찾 지 못한 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륙상가 사람들은 늘 기적을 만들어 왔다. 그들이 이토록 능조운을 배척하고자 하는 이유는, 능조운이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 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오고 있소이다! 함께 오는 인물은 단 하나인데, 그는 상막 소속호법 가운데 가장 강하다 는 철혈비룡(鐵血飛龍) 단류흔이오. 그 이외의 인물은 보이지 않소이다. 또한 대상황으로부 터 별 다른 전갈은 없었소이다. 모든 것이 율법(律法)대로 진행이 된다면, 그분이라 하더라 도 어찌하지 못하실 것이오. - 소야, 생각보다는 젊소이다. 그리고 문약(文弱)하기 이를 데 없소. 혹시나, 혹시나 했는 데… 기대 이하요. - 그는 일야(一夜) 안으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물러나게 될 것 이오!석도(石道). 능조운은 안내하는 노파의 등을 보며 석도 끝에 만들어진 철문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노파는 철지모모(鐵指姆姆)라는 인물로서, 벌써 육십 년째 이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 또한 능조운을 너무나도 어리다 여기는 듯, 능조운을 대하는 태도가 공경하는 가운데 불경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노야도 너무하시지. 저런 풋내기에게 우리들의 목줄을 내어 주려 하시다니… 강호가 얼마 나 험악해졌는지 아시는 분이 어이해 그러한 실수를 하셨는지……!'철지모모는 한숨 소리를 억지로 참고 있었다. "소야는 대상지회의 주최자적인 입장으로 회의장에 가시기 이전, 몇 가지 일을 보셔야만 합 니다.""일을?" "노신은 잘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몇 가지의 일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훗 훗……!" 능조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거였다면 모욕을 받는다 여길 경우, 거침없이 뛰쳐나갔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휘하 사람들이 되어 마땅한 재신구벌(財神九閥)이 자신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 을 알고 있음에도 느긋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투덜거리는 쪽은 단류흔이었다. "고약한 나으리들! 이것은 항명(抗命)이오. 어이해 소야를 이런 식으로 접대한단 말이오? 소 야는 의당 정문(正門)으로 들어서야 마땅하거늘, 이러한 개구멍으로 들어서게 하다니……!" 단류흔이 눈썹을 꿈틀거릴 때. "나는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네. 훗훗, 성대하게 환영하는 것보다는 이렇듯 조촐하게 환영 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네."능조운은 조금 헤프게 웃었다. '소야는 모르십니다. 그들이 어떠한 능구렁이들인지를!'단류흔은 답답함을 이길 수 없는 듯, 옷을 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는 아홉 명의 거상들의 힘과 능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듯 착잡해 하는 것 이다. 문 뒤쪽. 능조운을 기다리고 있는 꽤 많은 물건이 있었다. 탁자 하나가 있으며, 그 위에 아홉 권의 두툼한 서적이 한 줄로 쌓여 있었다. 모두 핏빛의 표지에 쌓여 있었으며, 꽤 오랜 연륜을 갖고 있는 듯 빛이 누렇게 탈색되어 있 었다. 탁자 곁에는 대륙상가의 부총관(副總官) 지위에 올라 있는 신산수재(神算秀才) 독고염(獨孤 焰)이라는 자가 머물러 있었다. 그는 능조운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찰나,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속하 신산수재, 소야께서 당도하신다는 전갈을 듣고 이 곳에서 소야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수고가 많네." "최근 급박한 일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강호란 본시 바람이 많은 곳이며, 본 상가에 는 무수한 거래가 진행되기에 늘 바쁘지요. 하나, 요즘같이 바빠 본 날은 없다 할 수 있습니 다.""어떠한 일이기에?" "상가에서 강호인들 모르게 이행하고 있는 구백 가지 거래의 세부사항에 대해 대상황의 결 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분께서 모든 일을 소야에게 미루셨는지라……."느물느물 말하는 신산 수재. 그는 아홉 권의 서적을 가리키며 입술을 떼었다. "저것은 모두 장부입니다. 일단 저것을 보시고 나서! 사실 거래의 세부사항에 대해 모조리 알기 전에는 결정을 하기 힘듭니다."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본시 대륙상가에는 일백(一百) 서기(書記)가 있으며, 그들 가운데 십여 명은 가히 계산하는 기계나 다름이 없는 인물이었다. 지금 신산수재가 말하는 사항은 일백 서기들이 이행하는 사항인데, 그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능조운은 그것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달리 거북살스러운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라면 해야지!" "그렇습니다. 지금 즉시 하시어야 합니다!" 신산수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훗훗… 이제 해결되었다. 여러 가지 난관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두 번째 이후의 관문은 쓰 이지도 않을 것이다. 소야는 이 자리에서 적어도 두 달은 쓰게 될 것이다.'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그는 수(數)의 기재(奇才)라 불리는 인물이다. 하나 그라 하더라도 아홉 권의 두꺼운 장부를 모조리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며, 구백 종의 큰 거래의 치밀한 연관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을 써야 한다. "속하,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게." "만에 하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금줄을 당기어 속하를 부리십시오."신산수재는 허공에 내려 진 금빛 비단끈을 가리키며 또다시 웃었다. 그리고 능조운은 그를 바라보며 마주 웃어 주었다. 신산수재는 방 안에서 벌어진 일을 구대거상들에게 세세히 말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석도 를 지나갔고, 능조운은 단류흔이 문가에 서서 투덜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장부책을 들추 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물을 보는 듯, 그는 숫자가 빽빽이 적힌 장부책을 매우 빠른 속도로 넘기기 시작 했다. 마치 백지를 잇따라 넘기듯. "흠, 상당한데? 생각보다도 더한데?" 그는 간혹가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류흔은 그가 하는 양을 바라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리석고 천진스러우신 분! 구대거상 나으리들이 소야를 희롱하고 있다는 것을 어이해 모 르십니까?'그는 낭패감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茶)를 거푸 일곱 잔 마셨고, 능조운은 향 세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을 무렵에야 처음으로 책에서 손을 떼었다. 그는 아홉 권의 장부를 대충 읽은 상태였다. 그는 어깨를 움츠린 채 서 있는 단류흔을 바라보며 진홍(眞紅)의 입술을 떼었다. "줄을 당기게!" "예?" "훗훗… 줄을 당기라니까?" "신산수재를 부르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신산수재는 구대거상들에게 능조운의 인상에 대한 것을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능조운이 자신 을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산수재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훗훗… 아마도 그 일이 지극히 난해한 일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실,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홉 권 장부의 착오를 발견해 낸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 아니겠습니까?"신 산수재의 일생 가운데, 이 순간처럼 자신만만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능조운은 벽에 걸린 산수화 족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아한 아취를 풍기는 산수화. 능조운은 서생이 명화에 눈길을 빼앗긴 듯이 산수화를 보고 있었으며, 신산수재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속하를 찾으셨다고요?" "찾았네." "어이해 찾으셨는지요?" "알아 냈네." "알… 알아 내시다니요?" 신산수재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설마… 구대거상이 소야를 희롱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단 말인가? 그러나 알았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거상이 소야를 시험한다는 것은, 대상황이 정한 율법에 따른 일이니 까. 사실 소야라면, 그 정도의 일은 알고 있어야 한다.'그의 머리 속에서 주산 퉁기는 소리 가 날 때였다. "세 가지 문제가 있었네." "어떠한……?" "첫째, 합비(合肥)에 있는 남화은장(南華銀花) 부분에서 틀렸네. 칠십사만(七十四萬)이라 적 은 것이 잘못되어, 그 뒤의 숫자가 자꾸 틀린 것이네. 본시 그 숫자는 칠백사십만(七百四十 萬)이라 적혀야 했네! 그래서 그 뒤쪽의 합산(合算)이 모조리 틀려 버린 것이네.""흐윽!" 신산수재의 얼굴이 밀랍처럼 희어졌다. 벼락에 맞은 듯, 그는 한동안 얼빠진 표정이 되고 말았다. 기실 아홉 권의 장부는 능조운을 시험하기 위해 조작된 장부로서, 세 군데에 결함이 있었다. 능조운은 그 가운데 하나를 정확히 찾아 낸 것이다. "둘째 부분은 다섯 번째 장부 가운데에서 나타났는데, 거기 황금성이라 적힌 것이 잘못되었 네. 황금채(黃金寨)라 적어야 했네. 황금성이란 운남(雲南)에 있는 은장이며, 황금채란 산동 (山東) 제남부(濟南府)에 있는 곡물상이네. 그 이름을 잘못 기록했기에, 그 뒤 스물 다섯 군 데가 잘못 기록되었네.""으으으……!" 신산수재의 얼굴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채(寨)를 성(城)으로 쓴 사람은 바로 신산수재였다. 그는 그것을 찾아 내기에 실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놀라워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해왕부(海王府)의 거래 내역에 있네. 역시 숫자를 잘못 기록하였네. 내가 책장을 접어 두었으니, 찾기 쉬울 것이다."담담히 말하는 능조운. 하나, 그는 이전처럼 작고 젊은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거대한 인물로 보였으며, 신산수재는 저도 모르게 넙죽 절을 할 수밖에 없었 다. 장부의 비밀은 그만이 아는 것이다. 그가 꿈 속에서 능조운을 만나 그러한 말을 한 기억이 없는 한, 세 곳의 틀린 부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신산수재뿐이다. 한데, 능조운은 그것을 정확히 찾아 낸 것이다. 적어도 수(數)에 있어, 능조운을 능가할 사람은 없으리라. 신산수재는 이제야 그것을 알고 존경심에 우러난 절을 하고 마는 것이다. 대상지회는 정확하게 인시(寅時)에 개최가 된다. 만에 하나, 능조운이 인시에 회의장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회의는 자연히 유산되고 말리라. 그렇게 된다면, 그는 구대상맥(九大商脈)을 총관장하는 지위에 올라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재신구벌의 우두머리들은 어떻게 해서든, 능조운이 회의장에 당도하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 었다. 만에 하나, 능조운을 막지 못한다면… 그들은 능조운을 석대숭처럼 경배하여야만 한 다. 그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아니 된다. 나이 이십(二十)에, 인생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풋내기가 어찌 대륙상가를 관장하겠는 가?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대륙상가의 파멸이리라! 신산수재 독고염이 능조운 편이 되었다는 것은 묘한 암운(暗雲)을 만들었다. 한자리에 모여 능조운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구대거상은 하나같이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산수재, 판단력이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변절하다니!""그는 소야가 첫번째 관 문을 능력으로 통과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어불성설이오. 필경 신산수재가 관문 통과를 도왔 을 것이오.""하여간… 만만히 볼 대상은 아닌 듯하오. 사실, 대상황이 그를 소야로 선택한 데에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대상황의 지배를 받기도 꺼려했던 우리들 이 어찌 그러한 풋내기의 지배를 받겠소! 그러한 풋내기는 난세(亂世)의 거상이 될 수 없소. 하물며, 악마동맹이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거늘……."사람들의 눈빛은 한 사람에게 집중이 되 었다. 대리석 원탁 둘레, 체격이 왜소한 노파 하나가 머물러 있었다. 항상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파, 그녀는 매우 검박(儉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일컬어 화상(花商). 그녀는 구대거상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그녀는 북육성(北六省) 남칠성(南七省)에 걸쳐 교방(敎坊)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당세제일의 명기였다. 현재 그녀는 울화림(鬱花林)이라는 쾌활림(快活林)과 더불어 천하쌍화(天下雙花)라 불리우는 향화교방(香花敎坊)을 막후조종하고 있었다. 향화교방의 백화선모(百花仙母). 그녀는 뭇상인들의 눈빛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 "……." "……." "호호… 신산수재가 꾸민 첫번째 지연책은 실패했을지언정, 노신이 맡은 두 번째 관문은 실 패할 리가 없습니다. 호호! 자고로미인계(美人計)란, 지극히 평이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 법이 아니겠습니까?"백화선모의 목소리는 아직도 소녀와 같이 맑고 영롱했다. 그녀는 영롱십팔기(玲瓏十八妓)라 불리우는 천하명기들을 제자로 두고 있다. 그네들은 하나같이 부처를 유혹하고 마룡을 유혹할 정도로 강한 관능미(官能美)를 지니고 있다.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왔지요. 모두 경국지색(傾國之色)입니다. 소야를 상대로 미인계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지금은 자 시(子時)였다. 인시까지는 두 시진이 남아 있다. 만에 하나, 그 어떠한 일이든 간에 능조운이 그 일에 빠져들어 인시에 회의장을 찾지 못하 게 된다면… 대상지회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구대거상은 훌훌 떠나 버릴 것이고, 그러할 경우 적어도 십 년이 있어야 그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 구대거상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일이었다. "아홍(雅紅), 취취(翠翠), 그리고 백예! 이 세 아이면 될 것입니다."환락도(歡樂道)의 삼대명 기들. 백화선모에게 온갖 교방비예(敎坊秘藝)를 전수받은 미녀들이다. "소야는 그 아이들로 인해, 적어도 닷새는 주야(晝夜)를 분간하지 못한 채 극락경을 헤매이 게 될 것입니다!" 세 여인. 하나같이 음화(淫畵)에서 막 튀어나온 듯이 선정적(煽情的)이다. 몸에 꽈악 달라붙은 홍장을 걸치고, 머리를 구름처럼 틀어 올린 날렵한 체구의 미녀 아홍 (雅紅)이 오른쪽에 서 있다. 가슴에는 비파(琵琶)를 안고 있으며, 눈꼬리를 가늘게 쳐들며 능조운을 바라보는 모습이 뇌 쇄적이다. 그녀 곁에는 취취(翠翠)가 있는데, 그녀는 옷가슴에 장미 한 송이가 수놓아진 녹색 궁장을 걸치고 있었다. 발이 어찌나 작은지 손바닥 위에 두 발이 모두 올라갈 정도이다. 또한 걸치고 있는 옷이 반 투명한지라, 속살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터질 듯 팽만한 앞가슴. 까아만 유실(乳實) 두 개가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가슴의 골짜기가 유독 깊어 보이는 이유는, 가슴이 너무나도 높고 풍만한 봉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소녀, 취취입니다." 취취는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수(憂愁). 그것 또한 가공스러운 관능(官能)이다. 슬픈 표정은 장부(丈夫)의 심금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은 본능(本能)의 옥화를 일깨우게 하기도 한다. 막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취취. 악마동맹에서 이룩한 울화림의 무사들이 그녀를 울화림에 끌어들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 고 있을 정도로 그녀의 애절한 아름다움은 남북강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또 하나의 여인, 이름하여 백예라고 불린다. 피부빛이 실로 희며, 머리카락은 까만 빛깔이 아니라 금빛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황금빛의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가 들여다보이는 푸른 눈. 물론 그녀는 한어(漢語)에 익숙하되, 그녀의 부(父)는 머나먼 서역(西域)에서 중원으로 온 인물이었다. "소녀 백예, 소야의 목욕 시중을 들고자 왔습니다. 회의장에 참가하시기 위해서는 몸을 깨끗 이 씻어야만 하십니다!"세 여인은 능조운을 천천히 포위해 들어갔다. "목욕을 하라고?" 능조운은 힐끔 얼굴을 쳐들었다. 그는 천하지리가 세세히 적힌 한 권의 서적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구대거상이 꾸미는 음모에 대해 알지 못한 듯, 실로 태평스러웠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밀랍처럼 파리한 얼굴. 깊은 심연(深淵)처럼 가라앉아 맑고 투명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암울하고 혼탁해 보이는 눈빛. 얼굴의 윤곽은 선명한 편이되, 봉두난발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인해 그의 외모는 쉽게 엿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몹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데, 세 명의 미녀를 보고 있는 단류흔은 괜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마른침을 삼키지 않는가. "소야! 헛헛, 구대거상 나으리들이 이제야 소야를 진정한 소주인으로 인정하시는가 봅니다." 단류흔은 무공 이외의 일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구대거상과 능조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대거상, 감히 나를 능멸하고자 한다.' 능조운은 세 명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몹시 유연했다. '세 여인 모두 미혼술을 쓰고 있다. 눈빛이 정신을 흐리게 한다. 구대거상은 내가 저 여인들 에게 빠져 회의에 참가하지 않기를 바라리라.'묘한 눈빛이다. 빛이 없으되, 강한 의미를 던 지고 있다. '몹시 아름다운 눈빛이다.' '기이한 마력(魔力)이 스민 눈빛이다.' '아, 수많은 대장부들을 만났으되… 저렇듯 감미로운 눈빛을 지닌 남자는 보지 못했다.'아홍, 취취, 백예,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예법에 따르는 일이라면, 내가 설사 목욕하기 싫어한다 하더라도 감히 거절할 수는 없겠 지."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대륙상가의 지하(地下) 성(城)에는 천 인이 십 년 내내 폐쇄된 상태로 지낼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식수(食水)가 있으며, 식량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온천(溫泉)이 흘러 나오는 동혈도 하나 있었다. 온천수는 석관(石管)에 의해 하나의 둥그런 대리석 욕조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물빛에 무 슨 약물이 타여 있는지 빛이 암청색이었다. 능조운은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욕조 곁에 서야 했다. 세 여인은 비릿하고 달콤한 비음을 흘리며 그를 시중 드는데, 가끔가다가는 풍만히 부풀어 오른 앞가슴을 능조운의 등에 비벼 댔다. 녹아 버릴 듯 미끄러운 여신(女身)이다. 세 명의 여인에게 포위된다는 것은 과히 나쁘지 않 은 일이었다. 아홍은 능조운의 상의를 벗기기 시작했으며, 백예는 능조운의 머리에서 문사건(文士巾)을 벗 겨 냈다. 그 사이 취취는 목욕 준비를 점검했으며, 능조운은 석상처럼 뻣뻣이 서서 입술만 질겅 깨물 뿐이었다. '하나의 여인이 일만(一萬) 무사(武士)보다도 무섭군.'능조운은 성숙한 여인의 체향(體香)에 볼을 붉게 달여야만 했다. 만에 하나, 독이 발린 검의 날(刃)이 그의 목젖에 닿았다 하더라도… 그는 조금도 놀라워하 지 않을 것이다. 하나, 그가 흥분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이답지 않게 녹이 많이 슨 가슴을 갖고 있지. 잠룡비전의 악마십팔 무관(惡魔十八武關) 가운데에는 색관(色關)이라는 것이 있지. 그 안에서는 온갖 체위(體位) 방중술(房中術)을 전수해 주었지. 남자 아이들은 나이 겨우 열다섯 살 때, 의무적으로 색 (色)을 혐오하도록 완성되었지. 훗훗……!'슷-! 옷자락이 흘러내린다. 능조운의 옷이 천천히 벗겨질 때, 세 명의 미녀들 가운데 아홍을 제외한 두 명의 여인은 매 미가 허물을 벗듯이 일제히 옷을 벗어 버렸다. 백예, 그녀의 가슴은 너무나도 높게 솟아올랐다. 대리석 같은 다리는 완전한 미학(美學)을 이루고 있었으며, 풍만하게 발달된 둔부가 터질 듯 하다. 반면, 취취는 작고 아담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담스러운 젖가슴은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백예의 젖가슴과는 또 다른 유혹을 일으키고 있었다. 옴폭한 배꼽과 울울한 해초의 숲. 모든 것이 완연히 드러났으며, 능조운은 묘한 시선으로 자기 앞에 선 나체를 물끄러미 바라 봤다. 두 여인 모두 자신들의 벗은 모습에는 상당한 자신을 지니고 있기에,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깊이 빨아들이고 머리카락을 어깨 뒤쪽으로 빗어 넘기어, 몸의 앞 부분이 능조 운 쪽으로 완전히 드러나게 했다. "소야, 무엇을 하시든 상관없으십니다." "호호… 이 곳은 설사 화약이 터진다 하더라도, 외부에서는 알지 못하게끔 안배되어 있습니 다."배시시 웃는 요화(妖花)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유혹적이고, 고혹적(蠱惑的)이다. 능조운은 그네들의 나신을 보는 가운데, 나신이 되어 갔다. 세 여인 모두 능조운의 하반신에 눈길을 두고 있었으며… 정작 능조운의 하반신이 완전히 나타났을 때에는 경이로움이 반, 실망이 반, 엇갈린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것은 완벽했으되, 세 여인이 옷을 홀랑 벗는 대가를 치룬 것은 무색하게 만들 지경으로 별다른 것이 없었다. 하여간, 능조운은 세 여인과 더불어 욕탕 안으로 들어서야 했다. 실로 놀라운 기변은 그 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쏴아아… 쏴아아……! 뜨거운 물에서 증기가 치솟아 오른다. 능조운은 매우 편안한 표정으로 물 속에 들어서는데… 물이 그의 등판과 가슴, 얼굴에 조용 히 끼얹어지는 가운데 그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제까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감추어졌던 그의 얼굴이 나타날 때. "아……!" 돌연, 한 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푸른 눈의 요화 백예, 그녀가 갑자기 능조운의 가슴 때를 가벼운 손길로 밀어 주다 말고 문 득 손짓을 멈추는 것이다. 눈이 커다랗게 확대가 되고, 그녀의 가슴 꼭지가 단단하게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완벽(完璧)하다.' 백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능조운의 성숙한 얼굴을 처음 정면에서 바라본 희대의 행운녀였다. 예술적인 눈썹의 선과 기개로 치솟아 오른 준령(峻嶺)의 콧날, 한 일자로 다물려 있는 짙붉 은 입술……. 이제까지 혼탁해 보이던 두 개의 눈빛과 얼굴의 다른 부위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예술을 완성시켰다. 백예는 자신이 능조운을 유혹해 타락시켜야만 하는 처지라는 것도 잊어버리는, 넋 나간 얼 굴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랴? 취취 또한 능조운의 얼굴을 보고는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사내가 있을 줄이야.' 취취는 오만한 기녀(妓女)이다. 사내에게 웃음을 팔망정, 마음을 팔지는 않았었다. 또한 그녀는 이제까지 정조를 지키고 있었으며, 팔뚝에 찍힌 정조의 표식 수궁사(守宮砂)의 짙붉은 점(點)을 명예로 여기고 있었다. 어떠한 사내에게도 허물어뜨리지 않았던 마음의 성. 한데 그 도도하고 견고하던 성이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미인계를 쓰고자 했던 취취는 섭백미심술(攝魄迷心術)을 사용하다 말고, 섭백미심술의 구결 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디 그녀뿐이랴? 맨 마지막으로 능조운의 모든 것을 보게 된 아홍 또한,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한숨을 나직이 토하는 것이 아닌가?'소야, 철부지이고 행운아라고만 여기고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이 곳에 들어왔는데… 아아, 저러한 절세미남(絶世美男)일 줄이야! 게다가 소야는 우리들에 게 유혹당하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여인들에게는 직감이 있다. 그것은 여인 특유한 본능에서 우러난 것으로, 병법에 뛰어난 사람들의 판단력보다도 정확할 때가 허다하다. 지금, 세파에 닳고닳은 세 명의 기녀들은 능조운의 전신에서 한 마리 거대한 천룡(天龍)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실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심연의 눈빛에서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거 해(巨海)가 느끼어졌다. 또한 그의 미소에서는 따뜻한 정이 느끼어졌다. 세 여인은 자신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는 나신이라는 것을 도리어 부끄럽게 여 길 정도가 되었다. '감히… 안길 자신이 없다.' '저 눈빛에 닿으니, 내 모습이 추악하게 느껴지는 듯하다.''이러한 분의 하수인이 된다는 것 은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다.'세 여인 모두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목욕은 일각(一刻) 안에 끝이 났으며, 능조운은 옥침상에 누워 향유를 전신에 발라야만 했 다. 본래 세 여인은 그 과정에서 차례차례 능조운과 살을 섞기로 안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 여인은 능조운의 몸에 매향(梅香)이 풍기는 향유(香油)를 발라 주면서도 감히 욕정을 일 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들은 능조운이 자신들에게 눕기를 명령하기를 바랄 정도로 능조운에게 간절한 눈빛을 던지게 되었다. 능조운은 축시(丑時)가 되기도 전에 자삼(紫衫)을 걸친 차림새로 뒤바뀌어 욕실을 빠져 나 왔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헌헌(軒軒)한지라, 이제까지 문 뒤를 지키고 있던 단류흔은 처음에 그가 바로 능조운임을 알지 못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검을 뽑아 그를 베어 버리는 실수를 범할 뻔했다. "정녕 소야이십니까?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핫핫… 이 사람아, 나를 마치 괴물 보듯 보다니…….""아, 소야가 이러한 미남인지 몰랐습니다. 늘 추레한 옷차림에, 세수 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니… 속하가 어찌 소야가 이러한 절세미남자인 줄 알겠습니까?""지금 걸치고 있는 의복은 예복(禮服)일 뿐이야." 능조운은 환히 웃었다. 그 뒤쪽, 그의 목욕 시중을 들었던 세 여인이 옷을 걸친 채 뒤따라 나오는데… 셋 모두 생 긋 웃고 있었다. 미인계가 실패했다는 것은 곧 전해졌다. 그 소식을 제일 먼저 접수한 사람은 화상(花商) 백화선모. 그녀는 애제자들이 실패했다는 데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장 만 바라봤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군. 소야가… 거세(去勢)된 남자가 아닌 이상, 그러한 일이 벌 어질 수는 없는데…….'그녀가 넋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였다. 제일거상 축융부(祝融夫), 그가 실로 오랜만에 입술을 떼었다. "하는 수 없소. 이제는 힘으로 막을 수밖에 없소. 다분히 불경스러운 일이나, 대세를 위해서 는 불경스러운 일이라도 감수해야 하오. 소야를… 천금부(天禁府)로 들여보내시오.""천금 부……!" "으음, 그것은 마지막 수단인데……." "하는 수 없는 일이오. 천금부의 기관(機關)과 매복(埋伏)을 이용해서라도, 소야가 회의장에 오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것이오."장내의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았다. 모두 큰 죄를 지은 표정들. 그리고 자신들이 실패하리라 여기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천금부, 그 곳이 대체 어떠한 곳이기에……? 향(香)이 타오른다. 능조운은 그윽한 시선으로 연청색의 향연이 허공에 풀리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려한 자색 예복을 걸치고 있었기에, 그의 외모는 이전에 비할 수 없이 출중하고 헌헌해 보였다. 가히, 절세의 미장부(美丈夫). 북풍(北風)의 계절을 겪으며 그는 가공스러운 의지력을 지닌 대장부로 자라난 것이다. 구대거상의 친서(親書)를 갖고 온 호법, 철포은검(鐵袍銀劍) 거패천(巨覇天)이라는 자는 능 조운의 외모에서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그는 구대거상 가운데 제일거상인 축융부의 가신(家臣)이었기에, 애써 그러한 인상을 부정하고자 노력하는 눈치였다. "구공(九公)은 대상지회에서 소야를 뵙길 바라십니다.""훗훗… 나 또한 마찬가지요." "그리고 그분들께서는 회의가 시작되기 이전, 소야께서 그분들이 가져오신 예물들을 보시기 를 바라십니다. 그것은 하나의 밀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천금부(天禁府)라는 곳 입니다." 천금부! 그 말에 한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단류흔. 그는 천금부라는 말에 주먹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세게 거머쥐었다. "천금부라니? 그 곳은 절세고수(絶世高手)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어느 틈엔가 손을 검자루에 대었다. 만에 하나, 능조운이 소매를 휘젓지 않았더라면… 그는 검을 끌어내어 금강옥형검(金剛玉形 劍)으로 철포은검의 목젖을 베고자 했을 것이다. "류흔, 노호법에게 무례하면 아니 되네." 그의 말은 지극히 나직했다. 그러나 상당한 힘이 실리어 있었기에, 단류흔은 치밀어오르는 살기를 사그러뜨릴 수밖에 없 었다. 하여간 능조운은 철포은검의 안내를 받으며 제삼의 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단류흔은 아무래도 불안한 듯 능조운을 따라다니는데,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 은 마른 하늘의 번갯불처럼 강렬했다. 능조운이 천금부를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 천 보(步) 정도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구대거상 들은 그 소식을 즉시 전해 듣고 만감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었다. 착잡스러운 가운데, 후련하다는 표정들. 이들은 천금부의 위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천금부는 만에 하나 벌어질지 모르는 위급사에 대비하여 건축된 곳으로, 안에서 밖으로 나 오지 못하도록 기관장치가 되어 있는 곳이다. 신(神)이라도 탈출하지 못할 절대의 금지. 축융부는 착잡한 표정 가운데 눈을 스르르 감았다. '용서하시기 바라오, 소야. 훗날, 이 일에 대해 해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오. 그리고 지금은 아무리 해명한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실 것이오. 강호(江湖)란… 실로 모진 곳이외다. 그 리고 당세는 악마무후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소이다. 그와 싸워 이기기 위 해서는, 어쩔 수밖에 없는 것이외다.'그는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능조운이 구대거상을 구대봉공으로 거느리는 제이대 대상황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도 없이, 그림자도 흘리지 않고 수많은 고수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의 지점을 향해 다가서는 무사들. 이들은 구대상인 세력의 주축 무사들로서 구대거상과 더불어 대륙상가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이들은 하나의 장소를 중심으로 하여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쳤으며, 그러한 가운데 그 곳은 뿌연 안개가 뒤덮이기 시작했다. 바로 천금부(天禁府). 신을 잡아 가둔다는 금지이다. 능조운은 백치(白痴)같이 웃으면서 그 안으로 접어들었다. 능조운이 늘 기침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하는 것을 보아 온 단류흔인지라, 능조운과는 정반대 로 경직된 표정이 되어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릉-! 지하에서 우레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쇠사슬들이 긁히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 왔다. 기관이 작동되는 듯 둔중한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려 왔다. 단류흔은 그 때마다 장탄식을 토해 냈다. 능조운은 자욱한 안개에 묻히기 시작하였으며, 단류흔은 차츰차츰 그의 뒷모습이 뿌얘진다 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보다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소야, 제게서 삼 보 이상 떨어지지 마십시오." 슷-! 그가 비서무영보(飛恕無影步)로 몸을 날리는데…….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방에서 해일(海溢)이 몰려들고, 돌연 안개의 하늘이 먹물처럼 검게 물들면서 시야를 가로 막는 것이 아닌가?먹물이 대기를 가득 채우는 듯, 단류흔은 찰나적으로 인체의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문진세를 발동시키다니… 우라질!" 단류흔은 세게 소리치며 검을 끌어냈다. 용의 울음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허공으로 길게 치솟아 올랐다. 단류흔은 난파풍검(亂破風劍) 칠십이 식(式)을 잇따라 시전해 내어 안개를 떨치고자 하는데, 그것은 허사였다. 그는 찰나적으로 진세에 휘말려 버렸으며, 능조운과는 멀리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2권에서 계속됩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