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12. 귀신들의 잔치 비류신은 뺨을 어루만지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낭자는 내가 무엇을 희롱했다는 것인가? 나와 인연을 맺은 지 불과 이틀밖에 안되었지 않은가… …’ 홍부용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여자만이 지니고 있는 자존심, 그리고 상대에게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슬픔이 그대로 통곡으로 옮겨졌다. 얼마나 그렇게 울었는지 그녀는 스스로 지쳐 슬그머니 울음을 그치고 비류신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류신이 한마디쯤 위로의 말을 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언제 사라졌는지 비류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울컥 분노가 치솟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때 비류신은 부지런히 공동묘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은연중 홍부용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닥쳐있는 중대한 일을 생각하며 그만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두 사람은 지령보에서 우연히 만나 이틀 동안 같이 행동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비류신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상대를 잊지 못할 정도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홍부용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 그 이틀 사이에 크게 고개를 든 것이었다. 그녀가 비류신을 생각하는 정은 마치 깊숙한 나무뿌리처럼 비류신의 가슴 깊이 뻗어왔다. 그는 그녀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면서도 그녀의 처량한 통곡소리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물이 자신의 눈시울을 적시는 것 같아서 코가 시큰해지는 것이었다. ‘안 된다! 나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부모님의 원수와 은사님의 원수를 갚고 또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부탁만 일도 빨리 이루어야 한다!’ 비류신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사랑의 괴로움에 몇 번이나 도리질을 했다. 그가 조그만 무덤 사이를 빠져 샛길로 나서려는데 돌연 앞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누구냐? 멈춰라!” 비류신은 상대가 어디에 있고 또 누구인지를 분별할 사이도 없이 근처 무덤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러자 몇 장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곧장 날아왔다. 그 그림자는 아마 비류신의 일거일동을 진작부터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림자가 막 샛길을 건너서려는 순간 왼쪽에 있는 버드나무에서 검은 그림자 두 개가 날았다. 두 그림자는 비류신에게 덮쳐오는 그림자 앞에 떡 버티고 섰다. 비류신은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 채 그 밀자(密者)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달려오던 사람은 야윈 체격에 훤칠한 키였다. 달빛이 희미하여 더 자세한 것은 몰랐으나 두 그림자를 보고 히죽 웃을 때 흰 이가 유난히 밝게 보였다. “흥!” 그 사람은 앞을 가로막는 두 그림자에게 코웃음을 던지며 다시 몸을 솟구쳤다. 획! 허공에서 두 그림자를 향해 쏟은 장력은 마치 거미줄같이 조밀한 형체를 이루고 덮쳐갔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두 사나이는 경공을 쓰는 것으로 보아 무공이 고강할 것 같았는데도 상대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다급히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야윈 괴한은 왼쪽으로 피한 사나이에게 비호처럼 날아들었다. 비류신은 허공을 날면서 다리를 곧게 뻗었다. “흑!” 그 사나이는 어디를 채였는지 묵직한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나자빠졌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피한 다른 사나이는 그 모양을 보고 성난 야수처럼 고함을 지르며 야윈 괴한에게 덮쳐 갔다. “죽어라!” 두 사람의 몸이 한데 붙은 것 같더니 이내 삼장의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야윈 괴한은 다시 히죽 웃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른다더니 바로 네놈들을 가리키는 말이로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무에서 내려섰던 사나이는 몸을 휘청거리더니 뒤로 벌렁 넘어졌다. 달빛에 그의 입과 코에서 선혈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류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죽었군… …” 야윈 괴한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쓰러져있는 두 사나이를 등에 걸머메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비류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괴한은 분명 나를 보고 달려들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그냥 돌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나무에서 뛰어내린 두 사나이는 또 누구일까? 나무에 숨어 있던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무엇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 그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동쪽에서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렸다. “어느 놈이냐?” 비류신은 깜짝 놀라며 몸을 재빠르게 돌렸다. 약 사오 장 떨어진 곳에서 조금 전 그 야윈 괴한이 그에게 몸을 덮치려고 했던 것이었다. 거리로 보거나 상황으로 보아도 그가 손을 썼더라면 비류신은 꼼짝없이 변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홍부용이 나타나 그를 저지시켰다. 그녀는 외침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신형을 날리며 연속 삼장을 공격했다. 괴한은 돌연한 역습에 흠칫 놀랐으나 곧 몸을 돌렸다. 홍부용은 첫수가 실패하자 약이 올랐는지 냉랭하게 소리를 질렀다. “웬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괴한은 코웃음을 쳤다. “흥! 염라대왕이다.” 홍부용이 쌍장을 교차시켜 반대쪽 어깨를 잡는 것과 같은 시늉을 하더니 전광석화처럼 동시에 앞으로 내뻗었다. 그 순간, 두 줄기의 그윽한 향기가 상대방의 심장으로 날아갔다. 비류신은 벌떡 일어서며 다급히 외쳤다. “홍 낭자, 빨리 매살장력을 거두어들이시오!” 그는 옆에서 매살장력에다 일장을 날렸다. 야윈 괴한은 강호 견식이 풍부했던지 매살장력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안색이 크게 변하며 황망히 뒤로 물러섰다. 펑! 매살장력은 비류신의 장풍을 맞아 옆으로 빗나갔다. 홍부용은 냉소를 쳤다. “흥, 당신은 어째서 흉한을 도와주나요?” “상대를 자세히 알고 난 다음에 손을 써도 늦지 않소.” 비류신은 괴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의 간격이 이 장 정도 되자 얼굴의 윤곽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돌연, 괴한이 놀라움과 동시에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청복! 자네였군, 나일세.” 비류신은 그제 서야 상대의 음성뿐만 아니라 몸집도 몹시 낯익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수형! 이게 웬일이오? 저 낭자는 우리와 같은 뜻을 지닌 사람이니 더 이상 싸우지 마시오.” 홍부용은 날카롭게 눈을 홀기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비류신은 다급히 그녀 앞을 가로막고 섰다. “홍 낭자, 가더라도 조금 있다 가시오.” 홍부용은 코웃음을 쳤다. “흥! 당신은 이제 내 일에 참견할 이유가 없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괴한이 낄낄 웃었다. “저 낭자는 혹시 홍여협이 아니오?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만화신검 말이오.” 그는 홍부용을 빤히 바라보며 호탕한 웃음으로 바꾸었다. “하하하… 어쩐지 경공이나 장력이 날카롭다 했더니… 자칫 잘못 했더라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구려. 홍부용은 사실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류신과 평생을 두고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만의 묘한 자존심으로 인해 짐짓 떠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비류신이 앞을 가로막고 또 고화룡이 싫지 않게 칭찬을 하므로 마지 못하는 척 몸을 돌렸다. “듣자 하니 비 공자와 전부터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대명은 어떻게 되나요?” 비류신이 끼어들었다. “수형, 나는 벌써부터 수형이 강호인물이란 것을 알고 있었소. 그러나 그처럼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 줄은 정말 뜻밖이오.” 괴한은 빙그레 웃었다. “비 노제, 너무 추켜세우지 말게. 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네. 자네의 무공을 보니 얼마 사이에 훨씬 진보된 것 같네.” “그것도 모두가 수형 덕분이오.” 홍부용이 눈을 곱게 홀기며 고화룡에게 다그쳤다. “당신은 어째서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나요?” 괴한은 엉뚱한 대꾸를 했다. “자, 비 노제도 오랜만에 만났고, 또 어여쁜 낭자도 계시니 이런 험지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소? 우리 오랫동안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갑시다. 나도 비 노제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참 이곳에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으니 그것부터 보기로 할까?” 홍부용은 어느덧 괴한의 화술에 말려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황량한 묘지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다는 것인가요? 귀신들이 싸우기라도 한단 말인가요?” 괴한은 엷은 웃음을 띠었다. “홍 낭자께서 잘 맞히셨소. 이곳에서 귀신들이 서로 싸우고 있으며, 아주 악한 귀신들이라 그 싸움이 가관이라오.” 홍부용은 키들키들 웃었다. “아주 재미있겠군요.” 비류신이 정색을 하고 말을 꺼냈다. “홍 낭자, 우리는 벌써 이틀 동안이나 굶었지 않소? 우선 무엇으로도 요기를 해야지 구경할 마음도 생기는 것이 아니요.” 야윈 괴한이 손뼉을 탁 쳤다. “그거 잘 됐네. 귀신들이 벌여 놓은 주석을 가로채면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네.” “뭐라 구요? 귀신들이 연회를 벌인다는 것이오?” “그렇다네. 지금 이곳에서는 천하 무림이 깜짝 놀랄만한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지도 모르네.” “우리는 지령보의 함정에 두 번이나 빠졌다가 나왔소. 지금도 그 두 번째 함정에서 거대한 묘지로 이어져 있는 공기구멍을 통해 탈출한 것이오. 그래서 요 근래에 일어난 일은 전혀 모르고 있소.” 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오. 지금 이곳에서는 무림 인물이라면 한 번쯤은 군침을 흘릴 만한 비밀이 생기고 있네. 잠시 후면 무림 고수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네. 물론 그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벌어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여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우리들이 안전하게 몸을 숨길만한 장소를 찾도록 하세.” 연후에 괴한은 몸을 솟구쳐 왼쪽으로 치달았다. 비류신과 홍부용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비류신은 몸을 날리면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홍 낭자, 미안하오.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과거가 있는 몸이오. 낭자는 내 심정을 이해하여 조금의 오해도 갖지 마시오.” 홍부용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이미 부인이 있는 몸이니 더 뭐라 말하지 않겠어요. 내 운명이 너무 기구하다는 것만 원망할 뿐이에요.” 비류신은 그녀를 힘껏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라면 무슨 일이라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그러나… “홍 낭자, 훗날 낭자는 지금의 내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과 내가 왜 낭자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오. 그때 낭자는 분명 내 운명을 동정할 것이오.” 괴한은 벌써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오시오. 홍 낭자는 비 노제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소.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적에게 발각되지 않을 곳을 찾읍시다.” 홍부용은 얼굴을 붉히며 방긋 웃었다. “적이 두렵다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남아 있으려는 건가요?” 괴한은 눈을 치켜뜨더니 소리 죽여 웃었다. “후후후… 낭자의 말이 맞소. 그럼 좀 더 가 봅시다.” 세 사람은 다시 십여 장 정도를 내달렸다. 홍부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무덤 뿐 이지 않아요? 이곳에서 무슨 연회가 벌어지겠어요? 더군다나 귀신이 싸움을 한다더니 귀신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네요… …” 괴한은 빙그레 웃으며 왼쪽 언덕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는 묘지 하나가 덩그마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저 묘지에 있는 정자에서 연회가 베풀어지지요. 상황을 보니 아직 귀신들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구려.그러나 이미 저곳 주위를 경비하는 인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을 것 이오.” 두 사람은 괴한이 가리키는 정자로 시선을 모았다. 지은 지가 오래 되었는지 낡아 보였고 군데군데 기왓장이 벗겨지거나 부서져 있었다. 삼각형으로 된 정자 안에는 돌로 만든 직사각형의 탁자와 그 양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돌의자가 보였다. 음산하게 부는 미풍 때문에 정자 주위의 버드나무가 흔들리고 있어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비류신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수형, 지금 나와 홍 낭자는 잔뜩 허기에 지쳐 있단 말이오. 이곳에서 음산한 바람이나 마시고 있으면 배가 저절로 불러지나요? 이 상태로는 적들과 싸울 수가 없소. 배가 불러 야… 그리고 귀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무엇을 기다리려는 것이오?” “조금만 참게. 이제 이 경이 가까워 오고 있으니 저들도 곧 연회석을 마련할 것일세. 오늘밤에 저 정자에서 모임을 갖는 인물들은 모두 무림의 고수들이네. 그리고 그것을 훔쳐보려고 이 주위에 숨어 있는 인물들도 상당수가 될 것이네. 우리 뿐 만이 아니지.” “그럼 저기에 모이는 인물들 중에서 제일 우두머리가 누구요?” “지령보의 절대적인 강적이며, 제일 큰 장(莊)인 도장맹(刀將盟)의 소장주 선우철일세. 그 자는 기지가 뛰어나고 음모가 깊어 항상 상대의 허점만 노리지. 그는 지령보와 숙적이지만우리와도 적이 될 수 있네.그러나 우리가 아니라도 오늘 그를 제거하려는 인물이 속속 나설 것이네. 그 특유의 악독한 간계로 많은 사람들이 그와 원한을 맺고 있기 때문이네.” 홍부용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오늘 저곳으로 모인다는 고수들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괴한은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알고 있기로 도장맹의 고수들과 흑도의 고수들일 것 같소.그리고 오늘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무림 사대도(四大島)들과 독립되어 있는 몇몇 호걸들도 있을 것이오. 만약 이곳으로 지령보 고수들까지 모인다면 정말 구경할 만한 일이오.” 비류신이 말했다. “수형, 우리 두 사람은 아직도 수형의 대명을 모르고 있소. 그리고 묘지의 비밀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소.” 괴한은 피식 싱거운 웃음을 웃었다. “무림 친구들이 나를 가리켜 풍운류랑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네.” 홍부용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는 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럼 당신이 무림에 명성이 높은 고화룡 대협인가요?” 비류신이 곧 뒷말을 이었다. “마침 잘됐소. 그렇지 않아도 고 대협을 찾으려고 했었소.” 고화룡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를 무엇 때문에 찾으려 했었나?” 비류신과 홍부용은 야위고 허술해 보이는 상대가 무림에서 대명을 날리고 있는 풍운류랑인 고화룡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무림 인물들은 실로 천태만상으로 그들대로의 특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야윈 괴한의 존재를 무시했었던 것이다. 비류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 선배님, 저는 눈을 뜨고도 진실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지령보의 마구간에서 몇 개월을 함께 지내면서도 그것을 몰랐으니… 나는 어떻게 하여 선배님을 다시 찾아뵈올 수 있을까,하고 큰 걱정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쉽게 만났으니 한 가지 짐을 덜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는 지령보의 지하실에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아홉 장문인들의 장렬한 최후와 그들이 부탁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홉 장문인의 절기가 수록되어 있는 비급을 전해주었다. 비류신은 그 동안의 이야기는 다 했지만 현기현청비록과 양기혼원신단이 숨겨져 있는 곳이 표시된 지도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공연한 화의 불씨만 만들 위험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고화룡은 구대문파의 장문인이 지하실에서 십오 년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장렬한 최후를 끝마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 그분들이 실종됐다고 하여도 어디엔가 살아 있으리라 믿었는데… 역시 내 추측대로 지령보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했구나.” 고화룡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대천… 소대천… 그놈은 이미 노부와 철천지 원수지간이네. 비 노제, 나는 기필코 그놈의 목을 베어 모든 사람의 원한을 풀어 줄 결심이네.” 비류신도 따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대천… 나도 그놈과 깊은 원한을 맺고 있습니다. 은사의 원한도 있고 또… …” 고화룡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비 노제, 내가 상대를 과찬하는 것은 아니네. 그러나 소대천은 현재 우리보다 월등한 무공을 지니고 있네.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해 공격한다고 해도 그를 죽일 수는 없다네. 그놈은 지혜가 뛰어나 협공을 받지 않음은 물론 또 무슨 계책을 써서 우리를 함정으로 빠뜨릴지도 모르는 일이네. 자네 은사인 소대호와 같은 절대적 기인도 그놈에게 암습을 당했고, 또 아홉 명이나 되는 장문인들도 그놈에게 당해 비참한 운명을 맞지 않았는가? 그러니 마음 같아서야 지금이라도 당장 그놈의 목을 베고 싶겠지만 좀 더 기회를 보세.” “그렇지만… 은사님은 그놈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진기를 넣어 주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기회만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장 죽더라도 은사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비류신은 여기까지 말을 하는 동안 줄곧 눈물을 흘렸다. 소대호는 그에게 바다보다 깊은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 은덕은 죽음과 비교할 만했다. 고화룡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 노제,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을 가라앉히게. 소대호가 지령보를 다스리고 있을 때, 그의 정의로운 호기에 모든 무림 인물들은 그를 존경 했었네.흑도나 녹림의 무림들까지도 그를 존경했었지. 그 후 소대천이 지령보를 장악한 후로 한시도 태평스런 날이 없었네. 그는 간 악하고 흉계가 많아 무림 인물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다네. 그러나 그놈은 자신의 무공만 믿고 무림의 여론에는 코웃음만 치고 있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음성을 조금 낮추었다. “지령보의 내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보 안에서 무엇을 하고 누가 있고, 또 왜 비밀을 지키는지 말이네. 구대문파의 장문인이 돌연 실종됐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소대천의 수작이라고 생각했었네. 그러나 나 혼자만의 힘으로 그놈과 상대할 수 없어 오늘날까지 기회를 엿보았다네. 이제 무림고수들이 많이 모일 것이니까 그들 중 누군가가 소대천에게 도전하기만 기다리는 중이지. 그때는 나도 나서야지.” 홍부용은 너무나 간박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빙그레 웃었다. “염려하지 마세요. 그놈은 머지 많아 천벌을 받을 거예요.” 비류신도 웃음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강호에는 어디까지나 정의가 굳게 뿌리박혀 있습니다. 천리로 따져 보아도 선과 악은 곧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나는 맹세코 그놈의 목을 베어 은사님의 원한은 물론 강호 정의의 본보기로 삼겠습니다. 하늘의 정의가 그놈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 어찌 벗어 날 수 있겠습니까?” 고화룡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강호 무인들은 그놈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놈을 잘못 건드렸다가 당할 후환이 두려워 그놈의 일을 모른 체 한단 말일세.” “조금 전에 도장맹과 지령보는 숙적이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도장맹은 한마디로 정의를 지키는 곳이 아니네. 그리고 선우철도 소대천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네. 도장맹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휘 뿐 이네. 그러나 선우휘가 지령보와 대적관계를 지니고 있었을 때는 소대호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을 때였다네. 지금은 서로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어쩌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을지도 모르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큰 원한이 없어 싸움은 하지 않을 걸세.” 비류신은 어두운 시선으로 물었다. “선우휘와 은사님이 어째서 원한을 맺게 되었는지 고 선배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고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그들은 강호에서 제일 고강한 기인들이었네. 물론 처음에는 사이도 좋았지. 그러나 무엇인지 무림의 보물을 가운데 놓고 싸움을 벌인 것 같네.” 비류신은 내심 크게 놀랐다. ‘그렇다면 그 보물이란 것이 바로 잔금섭혼신편이로구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부용도 그 보물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얽힌 비밀과 또 사랑하는 사람의 수중에 있는 것을 누설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류신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체 물었다. “고 선배님, 어떤 보물인지 알고 계십니까?” 고화룡은 다시 주위를 힐끗 둘러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보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무네. 그러나 나는 진편독자(眞鞭獨子) 탁성군(卓聖君)을 잘 알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윤곽은 알고 있네. 탁성군의 말에 의하면 그 보물은 잔금섭혼신편이라고 하는 채찍이라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오로지 채 찍 하나 때문에 원한을 맺었다고 생각지 않네.그것에는 극히 중대한 비밀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것일세. 물론 소대호가 밀실에 갇혀 죽은 것도 그 비밀 중의 하나지.”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잔금섭혼신편 때문에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소대호가 죽기 전에 몇 마디 했던 것과 당시 그의 표정에서 그럴듯한 추측을 만들어 본 것이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은사의 원한을 풀어드리려면 그 뒤에 얽혀있는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야 되겠는데… 생각보다 비밀이 많고도 복잡하구나.’ 고화룡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 노제, 나는 항상 남의 비밀을 캐묻기를 무엇보다 싫어했네. 그러나 이번 일만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 자네에게 부득이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네.” 비류신은 언뜻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상대를 믿고 또 상대가 자신을 믿는다면 그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이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불안하고 초조에 휩싸였다. 고화룡은 비류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자네 혹시… 잔금섭혼신편을 수중에 넣은 것이 아닌가?”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고 선배님께서만 알고 계시고 누설하지 마십시오.” 고화룡은 빙그레 웃었다. “염려하지 말게. 그것이 소대호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시 그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과 소대천, 소대풍, 그리고 무림칠절, 지금은 고인이 된 구대문파의 장문인들 뿐이네. 천하 무림에서 오직 이들만 알고 있을 뿐이지. 나도 사실은 탁성군에게서 들었네. 그러나 자네가 그런 보물을 수중에 지니고 있는 동안 꼭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네.” 그는 비류신의 왼쪽 겨드랑이 깨가 조금 불룩한 것에 자꾸만 눈길을 던졌다. “그 채찍에는 많은 사건이 들어 있네. 만약 피맺힌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안다면 자네는 말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되네. 한시도 끊이질 않는 적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지.” 그는 홍부용에게 눈길을 돌렸다. “자네와 홍 낭자는 지령보로 뛰어들어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이 기적적인 탈출을 하기까지 많은 비밀을 알았을 것이네. 그 중에서도 잔금섭혼신편을 자네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네와 홍 낭자를 잡으려고 날뛸 것일세. 그러니 되도록이면 그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고, 또 채찍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도 말게. 지금은 나와 소대천, 소대풍 이렇게 세 사람만 알고 있으니… …” 비류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닙니다. 그놈들이 나를 찾아온다면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들어가기 어려운 지령보까지 애써 가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네. 상대는 지혜가 특출한 놈이야. 그리고 강호 구석구석마다 흉수가 기다리고 있으니 처신을 잘 하라는 것일세.” 홍부용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비 공자는 무공이 고강해요. 만약 상대가 소대천이라 하더라도 고대협과 제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거예요.” 비류신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의 무공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정말 저들의 도움을 받으면 소대천을 물리칠 수 있을까? 그리고 고화룡도 물리칠… …’ 사실 비류신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의 무공으로 소대풍까지도 제압시킬 수 있었다. 고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을 것이오. 우리들 세 사람이 일시에 뭉친다면 어느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비류신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고 선배님께서는 잔금섭혼신편에 얽혀 있는 비밀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그것에는 피맺힌 원한보다 무림을 요동시킬 사건이 숨겨져 있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때-- 죽은 듯이 고묘한 침묵만 흐르던 묘지에서 괴이한 부르짖음이 들렸다. 고화룡은 재빨리 몸을 낮추었다. “왔네, 왔어. 귀신들이 왔어.” 홍부용이 빙그레 웃었다. “그들 귀신이 제발 먹을 것이나 많이 갖고 오기를 바라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저와 비 공자는 굶어 죽게 될 테니까 말이에요.” “그건 염려 마시오. 저들이 괴상한 부르짖음을 낸 것은 아마 내 손에 죽은 두 사나이를 찾는 것인가 보오. 머지 많아 그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경계를 강화할 것이니 어서 몸을 숨기시오.” 비류신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엎드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타난 놈들도 조금 전에 나무에 숨어 있던 놈들과 같다면 무엇이 두렵습니까?” “비 노제, 너무 얕잡아 보면 안 되네. 나무에 숨어 있던 사나이들은 삼류에 끼는 인물이고 지금 소리 지르는 인물들은 아마 이류쯤 될 것이네. 그리고 그들 뒤에 진짜 고수가 도사리고 있을 걸세. 선우철 같은 인물들이 말일세.” 그의 말이 끝났을 때 건너편 어둠 속에서 두 사나이가 옆구리에 큰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곧장 정자 안으로 들어가 돌로 된 탁자 위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홍부용이 손뼉을 쳤다. “아, 이제야 음식을 갖고 왔나 보군요.” 정자 안의 두 사나이는 술잔, 접시, 술병, 그리고 푸짐한 음식을 보기 좋게 차려 놓았다. 홍부용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손을 써서 저 음식을 빼앗아 먹어요. 조금 있으면 선우철 일행이 올 것인데 그때면 힘들잖아요?” 비류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으면 그들의 비밀 대화를 한마디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저 정자 지붕 위로 올라가서 자세히 들어보기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홍부용이 대뜸 찬성했다. “좋아요. 음식을 훔쳐 먹을 기회도 있을 거에요.” 고화룡은 빙그레 웃었다. “홍 낭자는 오직 먹을 것만 생각하나 보구려. 정자 위로 올라간다면 그들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은 각오해야 될 것인데, 그래도 좋소?” 홍부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왕에 저들의 일에 간섭하려면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더 좋을 거에요.” “그럼 할 수 없구료. 낭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비 노제가 반대할 리도 없고… …” 고화룡은 비류신을 힐끗 바라다보았다. 비류신은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철이 묘지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탐내고 있다면 틀림없이 오늘 저녁에 손을 쓸 것이오.묘지의 비밀은 선우철만 알고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알려면 정자 위로 숨어 들어가는 모험도 기꺼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홍부용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보물이기에 많은 무림 고수들이 이곳까지 멀다 않고 달려올까요?” “그것은 잠시 후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그보다 행동을 하려면 지금이라도 움직이시오. 내가 이곳에서 소리를 질러 저 네 사나이를 유인할 테니 그 사이 지붕으로 숨으시오.” 비류신과 홍부용은 즉시 밑으로 몸을 날렸다. 무덤과 무덤 사이의 엄폐물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정자 가까이 다다를 수가 있었다. 그들이 잠시 주위 동정을 살피고 있을 즈음 고화룡이 있는 언덕 위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 고양이치고는 조금 엉성했다. 정자 안에서 음식을 차려 놓던 두 사나이와 주위를 돌고 있던 두 사나이가 모두 언덕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정자 주위를 순찰하던 두 사나이가 등에 있는 검을 뽑아 들고 언덕으로 치달았다. 그들이 언덕의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고양이 울음소리는 뚝 끊겼다. 두 사나이는 잠깐 주춤하더니 천천히 앞으로 전진을 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뒤쪽에서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두 사나이가 언덕 위까지 다다랐을 때 검은 그림자가 쓱 스치는 것 같더니 윽 하는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거의 일시에 들렸다. 그러자 정자 안에 있던 두 사나이가 언덕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틈을 이용하여 비류신과 홍부용은 미끄러지듯 정자 가까이 다가갔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모두 뛰어난 경공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옷 스치는 소리도 내지 않고 정자 바로 밑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둘은 서로 눈짓을 보내고 몸을 솟구쳐 정자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순간, 그들이 사나이 몸을 스치는 것과 함께 두 사나이는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낭자는 여기서 지키고 있으시오.” 비류신은 양쪽 겨드랑이에 두 사나이를 끼고 고화룡이 있는 언덕으로 달려갔다. 고화룡은 이미 두 사나이를 한쪽 구석에 치워 놓고 있었다. 그는 비류신이 끼고 있는 다른 두 사나이를 받아 구석진 곳에다 같이 감추고 앞장서서 정자로 내려갔다. 홍부용은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힐끗 바라 볼 뿐 열심히 무엇인가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바구니에 담겨 있던 고기만두와 과일들이었다. 고화룡은 홍부용의 행동에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음식을 먹을 귀신들이 와서 음식이 없어진 것을 안다면 필시 우리들의 배를 가르려고 덤벼들 것이네.” 그 사이 홍부용은 세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담아 가지고 정자를 나왔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자리를 잡자마자 큰 고기만두를 한입에 집어넣으며 마주보고 웃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고화룡도 그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에 그저 웃음을 띨 뿐이었다. 잠시 후 먼 곳에서부터 날카롭고 기이한 부르짖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한 소리가 아니라 연이어 네 가지 소리로 이어졌다. 세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그 소리가 들린 곳을 주시했다. 멀리 무덤들 사이로 네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