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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二 章 運命의 結合 위지강의 손에 의해 연해월의 상의가 벗겨졌다. 순간 연해월의 늘씬한 교구가 새[鳥]처럼 날아서 위지강의 품에 착 감겨들었다. "당신께 저의 모든 것을 드리겠어요" 연해월의 가녀린 턱이 바르르 떨리며 여인으로서는 차마 하기 힘든 말이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새어 나왔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녀는 부끄러움도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녀의 솔직 담백한 고백에 위지강은 가슴이 마구 진탕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훅! 하고 무엇보다 향기로운 연해월의 육향(肉香)이 위지강의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세상의 그 어떤 용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향기였다. 막아놓았던 봇물이 일시에 터지듯 그들은 격하게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입술과 입술이 몇 번 부딪치자 입술 위로 촉촉한 윤기가 돌았다. "아아, 아으… 음!" 난생처음 사내의 체취를 접한 연해월이 가늘게 떨면서 입에서는 연신 비음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깊고도 달콤하게 이어졌다. 연해월은 숨이 막히는지 세찬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위지강의 끓어오르는 욕정에 기름을 들이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위지강의 입술이 연해월의 귓전을 바람처럼 스쳤다. "아아흑!" 그녀의 교구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퍼드득거리며 진저리를 쳤다. 자르르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엉치뼈까지 전달되었다. 위지강은 한 손을 그녀의 가슴 앞섶으로 집어넣어 옷을 벗겼다. 백옥같이 아름다운 연해월의 나신을 본 위지강은 가슴이 멎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희고 고운 살결에 신이 빚은 듯 오묘한 선을 그린 여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위지강은 떨리는 손으로 젖가리개를 떼어냈다. 탱! 억눌려 있던 젖가슴이 고무공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잘 익은 복숭아를 반으로 쪼개 엎어놓은 것 같은 탱탱한 수밀도였다. 그 정상에는 작은 유실 하나가 잔뜩 긴장한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위지강은 참을 수 없는 욕정에 사로잡혀 와락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한 손에 딱 쥐어지는 알맞은 크기의 젖가슴이었다. 연해월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손바닥 가득히 들어차는 부드러운 충만감에 위지강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위지강은 경직된 그녀를 위해 천천히 부드럽게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이윽고 연해월의 백사같이 흰 팔이 위지강의 목을 강하게 휘어 감았다. 위지강의 행동이 점점 대담해졌다. 입술이 점점 밑으로 내려오더니 그녀의 유실을 살짝 베어 문 것이다. "아흐흑!" 연해월의 양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허리가 뒤쪽으로 활처럼 꺾였다. 위지강은 재빨리 그녀의 나뭇잎 같은 붉은 고의마저 떼어내 버렸다. 위지강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시선이 머문 연해월의 양 허벅지 사이에는 울울창창한 방초로 뒤덮인 비소가 부끄러운 듯이 깊숙이 숨어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빙기옥골의 나신인 연해월. 그녀의 몸은 차라리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위지강은 연해월을 재빨리 안아 조심스럽게 바닥에 뉘였다. 그리고 자신도 서둘러 옷을 벗고 그녀 위에 몸을 실었다. 연해월은 곧 들이닥칠 운명에 흥분과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었다. 위지강의 애무는 서툴지만 뜨거웠다. 연해월은 그 서툰 애무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위지강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아아……!"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희열에 찬 비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한순간, "흐윽!" 연해월이 묘한 신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몸 중심에 닿는 뜨거운 물체를 느낀 것이다. 그 미묘한 느낌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그의 여인이 된다는 기대감까지! 위지강은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감싸쥐었다. 욕정은 극점에 도달해 있었고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아악." 연해월의 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그녀의 섬섬옥수는 위지강의 등에 긴 흔적을 남겼다. 파과의 고통! "으흑!" 잠시 그렇게 매달린 자세로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던 연해월의 입에서 이윽고 몰아 내쉬는 숨이 토해졌다. 위지강은 서서히 허리놀림을 시작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위지강의 율동에 따라 연해월의 나신도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출렁거렸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위지강의 몸놀림이 한결 부드러워지자 연해월의 고통도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간지러움 같은 느낌이 전신에 일면서 종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이 전신을 싸고돌았다. "헉! 아아……!" 연해월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교성이 흘러 나왔다. 발가락 끝에서 머리끝까지 피어나는 쾌감은 그녀의 정신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연해월은 몸을 비틀어대며 숨가쁜 신음을 흘려내었다. 위지강은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거칠고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해월은 도리질 치며 해초처럼 요동을 쳤다. 이런 고통일 줄 몰랐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마음의 고통인 줄만 알았더니 그를 안는 것도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하지만 찡그린 상태에서도 연해월은 웃으려 노력했다. 고통의 끝이 달콤할 것임을 믿기에. 남녀가 따로 만났으나 이 육체의 의식을 통해 두 몸이 한 몸이 됨을 직감적으로 알았음에! 비명은 없었다. 슬프지 않으나 눈물이 흐른다. 연해월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본연의 욕망에 휩쓸린 사내. 그 모습조차 정겹게 보인다. 그의 얼굴이 한순간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거친 숨결을 뿜은 그가 무너져 내렸다.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었다. 이게 정사인 모양이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었다. "아아아……! 그녀의 전신이 활처럼 휘어지며 부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생애 최초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합된 합체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뱃길도 먼 하늘가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구름에 쌓인 머나먼 산길 가시밭 황토 길을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구름에 첩첩 쌓인 머나먼 산길 가시밭 황토 길을 그대는 이렇게 찾아왔구려. 아아……. 시름에 겨운 몸 쓸고 또 닦아 멀리 온 그대를 맞이하리니, 나 정녕 여기에 살다, 나 여기에서 죽고 싶어라. 창망하게 그러던 임, 뗏목 저어 오셨으니 삼생을 맹세하여 이제는 보내지 않으리라. 푸른 이끼 가득한 오두막집을 지어 소박한 즐거움에 사랑만을 노래할지니. 아아! 나 정녕 여기에 살다, 나 여기에서 죽고 싶어라. * * * 엄청나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드디어 멈추고 눈부신 햇살이 온 산야를 비추었다. 각종 풀잎과 초목에는 반짝이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여기서 밤을 지샌 것이 틀림없습니다." 간밤에 위지강과 연해월이 묵었던 동굴 안에 사마덕조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남궁사와 수하들이 타고 남은 모닥불의 시커먼 잔재를 만지고 있는 비영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영사는 시커먼 잔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직 훈기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선 놈은 지척지간에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마덕조가 차갑게 명령했다. "추적해라." 비영사는 재빨리 부복했다. "존명!" 비영사와 백팔혈영대가 동굴 밖으로 신형을 날려 분분히 사라졌다. 이제 동굴 안에는 사마덕조와 굳은 얼굴의 남궁사만 남아 있었다. 사마덕조는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쥐새끼 같은 놈!" 그는 동굴 입구를 향해 신형을 홱 틀었다. "누굽니까?" 막 신형을 돌려 동굴을 나서려던 사마덕조는 뒷덜미에 와 닿는 남궁사의 질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연해월에게 남자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남궁사의 말에 사마덕조는 뒤돌아 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가?" 그러나 남궁사는 무표정한 눈길을 허공으로 던지며 사마덕조의 말엔 개의치 않았다. "따라오면서 줄곧 살펴봤지만 강제로 끌려가거나 반항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마덕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납치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라간 겁니다." 남궁사는 시선을 거두며 뒤를 돌아 사마덕조를 똑바로 주시했다. "누구입니까? 그리고 이런 일에 맹주께서 직접 나서야만 했던 이유는 또 뭡니까?" 그러나 굳어진 얼굴의 사마덕조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뒷짐을 진 채 하늘을 바라보던 사마덕조가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과거에 시골구석에서 꽤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고 들었네." 남궁사가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마덕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나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 헌데, 나중에 알고 보니 뜻밖에도 놈은 위지백의 아들놈이지 뭔가?" 남궁사는 흠칫 놀랐다. '위지백……!' 그는 놀란 얼굴로 사마덕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설마 강호일협인 검존무적 위지백을 말하는 겁니까?" "천추군림가가 한줌 잿더미로 변했지만 그자의 자식놈과 총관인 풍천양은 마침 집에 없었지. 그리고 풍천양과 그 어린놈은 지난 십팔 년 간을 용케도 피해 다녔네." 사마덕조의 두 눈에서 뇌전 같은 섬광이 일었다. "천마비록이 그놈의 수중에 있다는 것은 무림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최대의 공공연한 비밀일세!" 사마덕조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알겠나?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던 위지백을 일약 천하제일인으로 올려놓은 고금제일의 무학경서인 천마비록을 말하는 것일세." 그는 남궁사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주시하며 말했다. "자네가 내 입장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나?" 남궁사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졌다. '천마비록……! 어쩐지 낌새가 이상하더라니만……!'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위지강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곤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가만……. 그 친구 성이 위씨라고 했는데…….' 그는 사마덕조를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애써 내리누르며 물었다. "혹시 그 친구의 이름이 위지강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사마덕조가 흠칫했다. 그는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남궁사는 자신의 예감이 적중하자 극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안색이 하얗게 탈색된 채 한차례 몸을 휘청거렸다.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이 솟아 있는 원시림, 아름드리 거목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수림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갈래갈래 스며들었다. 위지강은 연해월의 손을 잡고 수림 속을 헤쳐가고 있었다. 치렁치렁 늘어진 넝쿨 따위를 헤쳐 나오는 위지강, 그 뒤를 연해월은 숨을 헐떡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하악……!" 거친 숨을 내쉬는 연해월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위지강은 힘들어하는 연해월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듯 말했다. "힘들면 좀 쉬었다 갑시다." "괜찮아요. 그냥 가요." 그러나 그녀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순간 발목이 푹 빠지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악!" 연해월은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위지강은 놀란 나머지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조심하시오, 연해월!" 연해월은 곧 쓰러질 듯이 위지강의 가슴에 안긴 채 거친 숨을 토했다. "하악! 물, 물을 좀 마셨으면……!" 위지강은 근처 나무에 연해월을 기대 앉혔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시오. 내 물을 구해오겠소." "이런 산 속에 물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위지강은 싱긋 웃었다. "어제 비가 많이 왔으니까 조금만 내려가면 어딘가에 물이 있을 거요." 그는 이내 신형을 날렸다. "금방 다녀올 테니 그곳에서 꼼짝하지 마시오." "그럼 빨리 다녀오세요, 알았죠?" 연해월은 자못 걱정스러운 듯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알았소!" 그러나 이미 위지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만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연해월은 나무기둥에 편안히 기대앉아 달콤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곤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웃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역시 엄마 말이 맞았어.' 수림 사이로 갈래갈래 스며드는 햇살은 오늘따라 더욱 더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그만큼 밝다는 증거였다. '가지고 못 가진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청춘과 부귀영화는 한 줄기 햇살에 녹아드는 아침안개와 같은 것이야.' 연해월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이젠 알 것 같아요, 엄마! 여자가 가장 행복할 때는 많은 것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아이를 등에 업고 사랑하는 남편의 한끼 식사를 준비할 때라는 것을 말이에요.' 바삭! 이때 문득 그녀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연해월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반색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갔다온 거……." 순간 연해월은 할말을 잊은 채 기겁을 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때 저 아래쪽에서 위지강이 물바가지를 받쳐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물을 떠왔소, 연해월!" 말을 하는 사이 위지강은 벌써 연해월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가보니까 운 좋게도 이런 바가지까지 버려져……." 순간 위지강은 눈을 부릅뜨며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은 이내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그들 주위는 백팔혈영대가 둘러싸고 있었고 연해월은 두 명의 무사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연해월 앞에는 사마덕조와 남궁사가 곧 폭발할 듯한 기운을 발산하며 바위처럼 서 있었다. 위지강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물바가지를 떨어뜨렸다. 퍼억! 그의 발 밑에 떨어진 물바가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연해월……!' 이때 연해월이 절박한 음성으로 위지강을 재촉했다. "어, 어서 도망가세요!" 이때 사마덕조의 냉랭한 음성이 공기를 갈랐다. "데려가라." 마침내 연해월은 두 명의 무사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싫어! 놔! 놓으란 말야. 난 안 갈 거야!" 연해월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그런 연해월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궁사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빨리 도망치지 않고 뭘 해요, 바보……. 이 사람들은 당신을 죽일 거란 말이에요!" 연해월의 처절한 외침이 이어질수록 남궁사의 안색도 더욱 더 차가워졌다. 우두둑! 마침내 남궁사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주먹을 말아 쥐면서 전신을 경련했다. 사마덕조는 발버둥치는 연해월을 돌아보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지금까지 애비를 망신시킨 것만 해도 파문(破門)감이란 것을 명심해라, 연해월!" 사마덕조의 말에 연해월은 끌려가면서도 발악하듯 외쳤다. "아버지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어요."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연해월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다른 사람들과 작당을 해서 천추군림가를 무너뜨렸으면 됐지 왜 이렇게 악착같이 저 사람을 못살게 구냔 말이에요." 순간 사마덕조와 위지강의 얼굴이 동시에 경직되었다. "싫어요! 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퍼억! 순간 그녀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사마덕조가 손을 쓴 것이다. 그는 손을 거두며 수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데려가!" 두 명의 수하는 양팔을 붙잡힌 채 고개가 뒤로 젖혀진 연해월을 질질 끌다시피 데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위지강은 안색을 굳힌 채 어금니를 꾸욱 깨물었다. 이윽고 연해월은 두 무사에 이끌려 멀리 사라져 버렸다. 휘이이이잉! 한차례 강풍이 불어와 백팔혈영대에 포위된 위지강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만들었다. 그의 맞은편, 사마덕조의 옆에 서 있던 남궁사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지독한 악연(惡緣)이군, 안 그런가?" 위지강도 무표정한 안색으로 남궁사를 똑바로 주시했다. "더 이상 몰아세운다면 화를 내게 될지도 모르겠네." 남궁사의 두 눈에서 강렬한 신광이 폭사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마음속에 다른 사내가 들어 있다는 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할 수 없네." 남궁사는 한 손을 앞으로 척 내밀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손아귀에 쥐어진 검의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제안을 하나 할까? 남궁사는 검극을 위지강에게 겨누었다. 단지 겨누기만 했을 뿐이건만 검에서는 예리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로 미루어 보아 남궁사는 극상승의 초절정 검법을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바에야 이긴 자가 원하는 걸 가지는 조건이라면 공평할 것 같네만." 사마덕조가 당황한 듯 흠칫하며 만류하려고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남궁사는 사마덕조의 말허리를 자르며 진중하게 말했다. "나에게 맡겨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의 안색은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했다. "……!" 사마덕조의 얼굴이 일순 경직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남궁사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뒷짐을 지며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를 믿네, 남궁사!" 남궁사는 검을 위지강에게 겨눈 채 차갑게 말했다. "둘 중 이긴 자가 그녀를 차지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겠지?" 위지강도 검의 손잡이를 엄지로 밀어 올렸다. 딸깍! "멋진 제안이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위지강의 신형이 섬광처럼 남궁사를 향해 폭사되었다. 슈파앗! 위지강은 빛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크게 외쳤다. "자넨 그 결정을 죽어서도 후회할 것이다!" 슈슈슈슈슉! 정면으로 무섭게 쏘아져오는 위지강을 바라보며 남궁사는 흠칫했다. '시작부터 이렇게 무모하게……?' 그러나 망설이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위지강의 공세가 바로 코앞으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카강캉! 캉캉캉! 파란 불똥이 사정없이 튀어 올랐다. 남궁사는 위지강의 검세를 냉정하게 모조리 봉쇄했다. 후아아앙! 그는 자신의 검을 무섭게 내리쳤다. "본격적으로 싸우기에 앞서 몸을 풀겠다는 건가, 아니면 장난을 치겠다는 건가!" 이번에는 남궁사가 펼쳐낸 검세가 위지강을 향해 밀어닥쳤다. 쩌쩡! 쩌쩌쩡! 폭풍처럼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검세를 모두 막아내며 위지강의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스쳤다. 팟! 다급히 피하는 그의 가슴 어림을 남궁사의 검 끝이 살짝 베었다. 베어진 위지강의 가슴에서 실같은 핏줄기가 배어 나왔다. 위지강은 뒤쪽으로 신형을 날려 멀찌감치 내려섰다. 그리고 나풀거리는 자신의 앞섶자락을 내려다보았다. '빠르고 강하다!' 남궁사의 검법은 그가 지금까지 겨루었던 그 누구의 검학보다도 무섭고 위력적이었다. 상대의 무학에 단 한 번도 놀란 적이 없는 위지강이 최초로 놀란 남궁사의 검법이었다. 남궁사는 처음의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주지육림에 파묻혀 보낸 세월이 적지 않지만 단 하루도 손에서 검을 놓아 본 적은 없다." 파앗! 그의 신형이 위지강을 향해 폭사되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간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후회는 자네 차지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 남궁사는 위지강을 향해 검을 맹렬히 휘돌리다 앞으로 쭉 내뻗었다. "천의무상검결(天衣無相劍訣) 제일로(第一路) 뇌뢰교굉(雷雷交轟)!" 쿠쿠쿠쿠쿠! 검 끝에서 용수철 형태의 검기가 급속히 확대되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는 너무나 가공했다. 무표정하게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사마덕조의 뒤에서 비영사가 경악성을 발했다. "천의무상검결이라면 잠영공(潛影公) 남궁린이 천마검법을 꺾기 위해 삼십 년 고련 끝에 창안했다는 남궁세가의 비전검학(秘傳劍學)이 아닙니까?" 그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사마덕조는 희미하게 웃으며 비영사에게 일침을 가했다. "신비에 가려진 남궁세가의 독문무학을 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잡음 넣지 말고 구경이나 하도록 해!" 쿠쿠쿠쿠쿠! 엄청난 기세로 덮쳐오는 용수철 형태의 검기를 주시하며 위지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검기 속에서 짙은 살기를 감지한 것이다.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예 목숨을 노리겠다는 건가?' 검을 눈썹 높이로 치켜든 위지강의 성목에서 강렬한 신광이 폭사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펼칠 수밖에!' 추아악! 그는 검을 허공에다 내뻗었다. "천마검법 제일초, 용― 형― 뢰!" 위지강의 입에서 용음이 터져 나오며 검에서는 무서운 검영들이 발출되었다. 츠파파파팟! 발출된 검영들은 순식간에 수십 개로 늘어났다. 늘어난 검영들은 또다시 수백 개로 나뉘어졌다. 쩌쩌쩌쩡! 서로 상이한 검기와 검기가 충돌하면서 태양이 폭발하듯 눈부신 광채가 주위를 감쌌다. 쿠콰콰콰쾅! 엄청난 대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검영들과 용수철 형태의 검기. 지면이 통째로 뒤집혀 날아올랐다. "으아악!" "와악!" "모두 멀찌감치 피해라!" 지면은 지진을 만난 듯 쩍쩍 갈라지며 마구 터져 나갔고 거목들은 무더기로 허리가 부러졌다. 부러진 나무둥지에 부딪쳐 죽거나 사방으로 몸을 피하는 백팔혈영대로 인해 장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콰우우우우!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낙진 속에서 사마덕조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비영사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비영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대경성을 발했다. "정말 굉장하군요! 말로만 듣던 천마검법과 천의무상검결의 위력이 설마 이렇게까지 가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마덕조의 귀에는 비영사의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굳은 시선으로 위지강과 남궁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후환이 될 수 있는 싹수들이다!' 파아아앗! 이때 미친 듯이 휘날리는 낙진 속에서 위지강과 남궁사의 신형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남궁사는 허공으로 계속 치솟아 오르며 낭랑한 대소를 터트렸다. "와하하하! 멋진 솜씨다, 친구!" 그는 돌연 몸을 직각으로 꺾으며 두 손으로 모아 쥔 검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간다! 천의무상검결 제이로(第二路) 벽력도전(霹靂到轉)!" 우렁찬 기합을 터트리며 남궁사의 신형이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자세로 팽이처럼 휘돌았다. 휘류류류류!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위이이이잉! 회전력이 빨라지면서 남궁사의 신형은 아예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송곳 형태로 형성된 회전강기가 위지강을 향해 쏘아져갔다. 위지강은 자신을 일거에 꿰뚫어버릴 듯 쏘아져오는 회전강기를 강렬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그는 연해월과의 뜨겁고 격렬했던 정사를 떠올렸다.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한다, 연해월!' 위지강은 검을 천중세로 치켜든 뒤 장엄한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천마검법 제이초(第二招) 겁륜풍(劫輪風)!" 쿠쿠쿠쿠쿠! 위지강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그의 모습은 일시에 사라지며 흡사 용권풍 같은 회오리 강기가 맹렬히 휘돌아 쳤다. 회오리바람은 지상의 모든 물체를 허공으로 말아 올리며 장엄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쿠쿠쿠쿠쿠! 남궁사가 발출해낸 송곳 형태의 강기가 회오리바람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부딪쳐갔다. 주위는 그야말로 강기의 여파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마덕조와 그의 수하들은 눈을 부릅뜬 채 이들의 가공한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쿠콰콰콰쾅! 콰콰쾅!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주위의 거목들은 뿌리째 뽑혀나갔고 거대한 바윗덩이들은 산산조각 나며 허공을 가득 메웠다. 흡사 지진을 만난 듯 주위의 땅거죽은 쩍쩍 갈라지고 터지며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그 와중에 사마덕조의 수하들 중 몇 명이 뒤집힌 땅거죽과 함께 휩쓸려 날아갔다. 사마덕조의 안면에 놀란 기색이 가득 떠올랐다. 두 사람의 무위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몇 배나 강했던 것이다. 이때 비영사가 미친 듯이 휘날리는 낙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악성을 토했다. "이, 이게 도대체… 말도 안되는……!" 콰아아아아! 낙진의 폭풍 속에서 백의자락이 마구 찢어진 남궁사가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쿠쿠쿠쿵! 몇 그루의 나무를 꺾으며 계속 날아간 남궁사는 마침내 거대한 암벽에 부딪치며 처참한 모습으로 퉁겨 나왔다. 그는 무릎꿇은 자세로 검을 지면 깊숙이 쑤셔 박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울컥! 마침내 그의 입에서 한 움큼의 선혈이 토해졌다. "허억……!" 남궁사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백의자락은 여기저기 찢어진 채 자신이 흘린 선혈로 인해 앞가슴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처참한 몰골의 남궁사 앞에 위지강이 척 다가섰다. 자신의 코앞에 서 있는 위지강의 발을 보고 남궁사는 흠칫했다. 남궁사는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위지강은 우뚝 서서 검을 늘어뜨린 채 남궁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영사가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놀란 얼굴로 쳐다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공자가……!" 그러나 그는 차마 남궁사가 패했다는 말을 입에 담지는 못했다. 어쨌든 남궁사는 사마덕조의 사위가 될 사람이 아닌가! 괜한 소리로 사마덕조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였다. 사마덕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공력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밀릴 수밖에 없지!" "더 이상 쳐다보고만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사마덕조는 저만치에서 절벽을 등진 채 남궁사의 앞에 서 있는 위지강을 매섭게 응시했다. "처음부터 살기(殺氣) 따윈 배제된 싸움이었다." 그는 묵직한 음성으로 비영사의 조바심을 눌러버렸다. "좀더 지켜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아!" 위지강은 바위에 기대앉아 숨을 헐떡이는 남궁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제안은 유효한 건가?" 남궁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씁쓸한 고소를 지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되고 보니 일전에 자네를 구해준 일이 후회막급이네." 순간 위지강이 흠칫했다. 남궁사의 말에 매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사실 잔결사흉과 싸울 당시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쩌면 관노의 자전뇌구에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자전뇌구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건데 말이야!" 남궁사가 헉헉거리며 힘겹게 말했다. 위지강은 그런 남궁사를 내려다보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시선을 들어 허공으로 던졌다. '그런가……! 끝내 신(神)은 날더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는가……!' 쉬이익! 이때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음향이 들렸다. 위지강은 일순 흠칫했다. 검을 치켜든 남궁사가 필생의 힘을 다해 갑자기 위지강에게 쇄도해들었다. 갑작스런 남궁사의 공격에 위지강의 동공은 더할 수 없이 확대되었다. 푸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위지강이 허공에 피분수를 확 뿌리며 뒤쪽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의 왼쪽 눈자위로는 짙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뒤쪽은 천장단애, 위지강은 왼쪽 눈을 감싸쥔 채 몸은 이미 절벽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사마덕조와 비영사가 놀란 듯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비스듬히 검을 내리그은 자세로 서 있는 남궁사를 쳐다보며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위지강이 놀란 음색으로 말했다. "남궁사……! 자네가……?" 남궁사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뇌에 찬 눈빛을 보였다. "나를 용서하게, 친구……!"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위지강의 놀란 모습이 이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빠르게 추락해 버렸다. 절벽 밑은 칼날 같은 암초들이 여기저기 솟아나 있었고 거대한 급류가 흐리고 있었다. 위지강의 신형은 이내 급류에 휩쓸려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콰르르르릉! 위지강을 집어삼킨 급류는 굉음을 토하며 빠르게 흘러갔다. 쿠쿠쿠쿠! 흘러가다 암초에 부딪친 급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무섭게 굽이쳤다. 휘이이이잉! 절벽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궁사의 너덜거리는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 참담한 모습이었다. 본인도 무인으로서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 양심의 가책이 된 것이다. 그는 우울한 시선을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부디 나를 용서하시오. 친구여……!' 이때 누군가 남궁사의 어깨를 턱 잡았다. 사마덕조였다. 그는 남궁사의 어깨에 그대로 손을 얹어 놓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결과적으로 난 천마비록과 자네를 맞바꾼 셈이 됐군!" 남궁사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마덕조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마가의 식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남궁사!" ― 남궁세가의 후계자 남궁사와 북파무림맹의 천금인 연해월이 혼인을 한 것은 그로부터 석 달 뒤였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