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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隱秘之門 九流幇 낙양(洛陽), 삼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주왕조(周王朝) 이래로 구 개 왕조가 도읍했던 곳이다. 중원사경(中原四京) 중 서경(西京)이 낙양인만큼 아직도 낙양의 문화는 중원의 문화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랜 사찰이라는 백마사(白馬寺)를 위시해, 성 남쪽의 용문석굴(龍門石窟) 등은 고래(古來)의 명승고적(名勝古蹟)이며, 죽음의 대명사(代名詞)로 불리는 북망산(北邙山)도 이곳에 있었다. 백마사는 동한시대(東漢時代)에 건설된 가장 오랜 사찰(寺刹)이다. 한(漢)의 명제(明帝)가 천축으로 사람을 보내 두 마리의 백마사에 불경(佛經)을 실어 온것을 기념키 위해 창건(創建)한 곳이었다. 지금도 백마사의 문 좌우에는 돌로 만들어진 두 마리의 석조백마(石造白馬)가 불경을 실은 모습으로 서 있다. 백마사의 위치는 불교 내에서 중요한 것이나, 지금은 매일 줄을 잇는 신도들과 유람객으로 인해 낙양에 오면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가 되어 있다. 특히, 백마사로 들어서는 입구의 너른 광장은 놀이꾼과 떠돌이 의원, 점장이 등 수 많은 장사꾼이 저마다 목청을 돋우는 곳이다. "자! 오늘이 아니면 평생 볼 수 없는 절세의 신기(神技)! 평생 후회치말고 오늘 안계를 넓히십시오!" 재주 꾼이 목청을 돋우나, 내일도 그들은 여기서 그렇게 외칠 것이었다. "자자…… 이리들 오십시오! 단돈 한 냥이 물경 닷냥이 됩니다! 그저 먹기에요…… 그저……" 도뱍패들도 오가는 사람들의 주머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 혼잡한 와중, 휘영청 늘어진 노백(老柏=늙은 잣나무) 에 팻말을 붙여놓고 조는 노인이 있었다.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무불통지(無不通知) 천일신복(天一神卜)' 위로 천문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를 아니 모르고 막히는 것이 없다. 하늘아래 나 혼자 신복이라! 꾀죄죄한 유삼(儒衫)을 걸친 채 조는 노인은 점장이인 모양인데, 그 큰소리는 너무 행색과 걸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산통(算筒)을 벌려놓고 몇 권의 책이 놓인 노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낙양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중년이 된 사람도 자신이 코흘리개였을 때부터 그 노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행방도 알 수 있습니까?" 노인이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얼굴을 꾸벅거리고 있을 때,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팻말을 가리켰다. '上通天文 不達地理 無不通知……' "하하…… 이거 나는 까막눈이라 미처…… 난 또 저 글이 다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지요." 한 사람이 가볍게 웃으면서 그 앞에 앉았다. 그 속에는 은은한 풍자의 뜻이 들어 있는지라 꾸벅거리던 노인의 고개가 멈추어졌다. 노인이 실눈을 거슴츠레 떴다. 백의를 걸친 미공자(美公子)가 보였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 듯한 기이한 힘을 가진 미소를 띄우고 있는 그 백의공자는 마무쌍이었다. "노부는 공자가 별로 마음에 안드는데……" 점장이 노인이 내뱉듯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소. 특히 노인장의 무릎 위의 뱀은 더욱 마음에 안드는 것 같소." 마무쌍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뱀? 으갸! 이게 뭐야?" 고개를 갸우뚱하던 점장이 노인이 혼비백산하여 벌떡 일어났다. 그의 무릎에 맹독(猛毒)을 가진 살무사가 있었던 것이다. 툭! 무릎 위의 살무사가 맥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마무쌍은 그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다가 빙그레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이제보니 이 뱀도 노인장을 닮아 늙어 기운이 없는 모양이구료." 점장이노인은 잡아먹을 듯 마무쌍을 노려 보았다. 그 뱀은 이미 죽은 것이었다. 난데없이 죽은 살무사가 무릎 위에 있다니? 이쯤 되면 그 뱀이 어디서 난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노인은 뱀 따위를 두려워 할 사람은 아니었으나 지난날 뱀에 크게 혼난 적이 있어서 뱀은 질색인 사람이었다. "공자는 노부를 놀리려고 온 것이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뱀이 공자가 갖다놓지 않았으면 어디서 왔단 말이오?" 마무쌍은 웃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장은 내가 갖다놓는 걸 보았소?" "……?" 점장이 노인은 말문이 막혔다. 그도 눈매만은 천하제일이라 자부하는 사람이었으나 마무쌍이 언제 뱀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놓았는지 보지 못한 것이다. 신주팔대마존이 골을 싸매던 마무쌍이었다. 그가 그걸 볼 수 있다면 마무쌍이 아닐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화풀이 하듯 바닥의 뱀을 차던지고 앉았다. 발길에 패인 황진이 뒤를 이어 일었다.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았소?" 그의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후후…… 복수할 생각을 하는 모양이군!' 신주팔대마존이 그 모양을 보았으면 얼마나 가소롭게 생각했으랴. 마무쌍은 내심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소?" "그렇지 않다면 천일신복(天一神卜)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겠지! 단, 복채는 좀 비싸오." "어느정도요?" "사람의 행방을 묻는다면 좀 싼편이오. 금 백 냥." 금 백 냥이라면 평생 놀고 먹어도 남을 거금이다. 이놈, 놀라봐라. 말하면서 노인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띄웠다. "음…… 과연 싸긴 하군……?" 한데 마무쌍은 오히려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가? '이 자식이 머저린가? 아니면 쓰고 쓸데가 없는 재산을 아주 미친 듯이 가지고 있는 부자인가?' 그때, 마무쌍이 정색을 했다. "내가 찾는 사람은 신산귀유(神算鬼儒)라고 불리는 사람이오.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소?" "신…… 산귀유?" 점장이노인의 눈에 기이한 광채가 스쳐갔다. "공자가 어떻게 해서 그런 이름을 찾는지 모르나 귀(鬼)자는 점괘에서 꺼리는 글자, 백냥으로는 어렵겠소." "얼마를 더 원하오?" "별로, 금 이백 냥이오." 문득 마무쌍이 싱긋 웃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노인장에게 점을 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소?" 점장이 노인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이십 년간 공자가 처음이오." "생계에 지장 있겠소?" 점장이 노인이 껄껄 웃었다. "우리네는 시간이 생명이고 돈이오. 공자는 계속 노부의 시간을 뺏는데, 그렇다면 규정할증금이 안붙을 수 없소." "할증금……? 할증금은 또 얼마요?" "약소하오. 이백 냥, 합이 사백 냥 밖에 안되오." 마무쌍은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잡은 봉인데 어디로 날아가 버릴까 겁나지 않소?" "천일신복은 거저 붙여놓은 것이 아니오." 점장이 노인은 염소수염을 꼬며 태연히 대꾸했다. "좋소, 좋아. 어디 들어 봅시다. 어디 가면 그를 만날 수 있겠오?" 점장이 노인이 처억하니 손을 내밀었다. "우리네는 선금이 원칙이오." 마무쌍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품 속에서 명주(明珠) 하나를 꺼냈다. "금은 없고, 대신 이걸 드리겠소." 노인은 첫눈에 그 명주가 금 오백 냥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음을 알아 보았다. "괜찮소. 사정을 봐 드리지." 마무쌍은 그의 손바닥에 명주를 올려놓고는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노인장의 말이 끝나면 완전히 손을 떼겠소." '이건 또 무슨 꿍꿍이 속인가?' 점장이노인은 내심 찜찔함을 금할 수 없었으나 명주는 틀림없이 금 오백 냥 이상 가는 진품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직하고 빠르게 말했다. "성 동쪽 운염루(雲艶樓) 뒷문으로 오늘밤 삼경에 가 보시오. 운이 있으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외다." "고맙소." 마무쌍은 빠르게 명주에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그는 점장이노인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고는 몸을 돌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갔다. "……" 내심 가슴이 철렁한 점장이 노인은 명주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그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진품이었다. 일순, 갑자기 그의 안색에 괴이한 빛이 나타났다. "설마?" 그는 황급히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안색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없었다. 그의 품 속에 있던 명주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마무쌍의 모습도 이미 사람들 속에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기가막힌 듯 잠시 멍청히 서 있던 점장이 노인이 별안간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아하하하……" 그는 웃고 또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괴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눈물이 흐르도록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천일신복이란 낙양명물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 * 그날 밤 삼경 운염루(雲艶樓). 낙양성 중에서도 손껍히는 고급기원(妓院)이다. 삼원(三院) 팔방(八方)으로 구성된 이곳은 미녀가 구름같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낮도 밤도 모르는 곳이 바로 이 운염루였고, 지분냄새와 술향기가 사람의 넋을 앗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운염루의 후문에 마무쌍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전면의 그 요란함은 다 어디로 가고 너무 조용하여 후문쪽은 오히려 음산하기조차 했다. "공자께선 사람을 찾으시는가요?" 돌연 착 가라앉은 낭랑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담장 그늘 아래 한 여인이 파묻히 듯 서 있었다. 흑의를 걸친데다 복면을 해 아무리 주의해 보아도 잘 알아 볼 수 없었다. 다만 별빛같이 초롱한 눈망울이 여인의 나이가 별로 많지 않음을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마무쌍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안내해 주겠소?"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듯한 마무쌍의 담담한 태도가 뜻밖인지 여인은 잠시 마무쌍을 주시하더니 몸을 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매우 빠르고 지형과 어둠에 잘 적응하는지라 뒤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마무쌍이 아닌가. 힐끗 뒤를 돌아본 복면여인은 흠칫 하더니 담장 안으로 사라졌다. 이제보니 담장에는 묘하게 은폐된 문이 있었다. 담장 안은 넓은 화원(花園)이고 여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화원을 가로질렀다. 이곳이 운염루의 한 부분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저쪽에서 은은히 주악소리와 교태로운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슥한 곳에 이르자 높다란 담장이 나타났다. 짝--- 짝--- 복면여인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뜻밖에도 담장에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일개 기원에 이런 시설이 있음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담장 안의 통로는 지하로 뻗어있고 그것은 한 가닥이 아니었다. 마무쌍은 적지않은 수의 사람이 이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략 백 장 정도를 지났다고 생갈할 즈음, 눈 앞에 계단이 나타났다. 상당히 가파르게 달려내려간 계단의 수는 제법 많았다. 문이 나타났다. 문 좌우에 두 명의 중년인이 버티고 서 있다가 복면여인을 보고 궁신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내외공을 겸수한 고수급이었다. '이들은 매우 절도가 있다. 여지껏 한 마디도 없고 모두가 무언중에 행해지고 있다……' 마무쌍은 내심 신비한 생각이 듬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제지를 받지 않았지만 자신이 지나온 곳이 기관이 첩첩(疊疊)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 밝은 빛이 비쳐왔다. 그곳은 대청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사면에 모두 창이 나있어 바깥이 한 눈에 보여왔다. <구류대전(九流大殿).> 멋있게 휘갈긴 행서체의 현액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곳은?' 주위를 둘러본 마무쌍은 가볍게 경악했다. 그토록 돌고 돌았는데 그는 결국 운염루의 중앙에 와 있는 것이다. 운염루 사방과 주위 건물이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구류대전이란 이 대청은 운염루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밑에서는 위로 오를 수가 없게 되어있었다. "노부의 점괘가 어떻소?" 그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대청 가운데 한 사람이 의자에 기댄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마무쌍은 싱굿 웃었다. "틀릴 줄 알았다면 금 사백 냥이나 되는 점을 보진 않았을 거요." "으하하하……" 의자에 기댄 사람은 박장대소하며 몸을 돌렸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낮에 마무쌍이 만났던 점장이 노인이 아닌가? "노부는 강호에서 신산귀유라 부르는 사람이오. 공자가 노부를 어떻게 알고 찾았는지 묻고 싶소." 노인, 신산귀유는 깊은 눈으로 마무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기세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틀려져 있었다. 그 꾀죄죄하던 점장이 노인이 이미 아닌 것이다. "사부님께서 강호에 나가면 찾아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오." 신산귀유는 마무쌍의 말투가 평배에게 하는 것이라 내심 언짢았으나 내색치 않았다. 그의 배분이 마무쌍 보다 오히려 낮은 것을 그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영사(令師)께선 뉘시오?" 마무쌍은 담담히 말했다. "성심수명노인이라고 불리십니다." "뭣이! 육노선배?" 신산귀유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의 격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산귀유는 마무쌍의 손을 덥썩 잡았다. "육노선배께서 아직 살아계신단 말이오?" "예, 변함없이 정정하십니다." "오! 그러면 그렇지! 그분께서 무슨 일을 당하셨을 리가? 하하하…… 그분의 제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나를 골탕먹일 수 있겠는가? 그래 지금 어디에 계시오?" 마무쌍은 망설임없이 모든 것을 신산귀유에게 털어놓았다. "……" 신산귀유는 경악이 지나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정말 신주팔대마존이 아직 살아 있단 말이오?" "아직 백 년은 문제 없을 겁니다." "서…… 성심수명노인께서 그…… 그들과 함께 계…… 시고?" "그렇습니다." "고…… 공자께서 저…… 정녕 그들 모두의 무공을 물려 받으셨소?" "대충…… 그분들의 무공은 너무 박대정심해 겨우 이해만 하고 있습니다." "으…… 음…… 공자께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신산귀유는 침음하면서 초조한 듯 마무쌍을 바라보았다. 마무쌍은 빙긋 웃었다. "귀유께선 내가 어떻게 할지 매우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그…… 그렇소. 신주팔대마존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도 천하를 떨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소…… 그런 그들 모두의 능력을 한 몸에 지닌 공자요. 공자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천하가 피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오……" 그의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천하를 위하는 마음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귀유께선 내가 누구의 제자라는 것을 잊으셨소?" 마무쌍의 담담한 웃음에 접하자 신산귀유는 비로소 안정을 찾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 그렇군, 성심수명노인이 어떤 분이신데……" 마무쌍이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선 귀유를 찾도록 말씀하셨으나 자세한 말씀은 없었습니다. 한데 지금 보니 귀유께선 대단한 기업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데?" 신산귀유는 희미하게 웃었다. "공자께선 구류방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으시오?" "구류방? 그렇다면 이곳이……? 귀유께선……" "불민하나 노부가 구류방을 맡고 있고 이곳이 구류방의 총단이외다." 구류방(九流 ),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 기이한 단체다. 그 구성원은 광대, 의원, 도박군, 기녀, 심지어 창녀에 이르기까지 최하류의 인물들로 되어있다. 대단한 고수도 없고, 결속력도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정보망은 개방을 능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거지가 없는 곳은 있으나 그들이 없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비로소 마무쌍은 사부가 신산귀유를 찾으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류방을 통하면 강호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구류방이란 곳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귀유께서 구류방주이고 또한 구류방이 이처럼 정돈되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신산귀유는 담담히 웃었다. "지난날 영사의 도움 이후 오십 년 동안 노력 끝에 이제 어느 정도 방파의 기틀을 갖추어 가고 있소이다." 원래 구류방은 유명무실한 방파였다. 밑에 속한 천민의 돈이나 뜯고,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나 팔고 그것으로 남을 협박하는 등 존재할 가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것이 신산귀유가 제오대 방주로 취임하면서 일대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신산귀유는 반대자들의 암산에 걸려 죽어가게 되었다. 그를 구해주고 구류방의 분란을 가라앉혀 준 것이 바로 성심수명노인이라 불리우는 가군자, 그였다. 마무쌍이 그러한 것을 모르는 것은 성심수명노인의 성격이 남을 도와준 것은 일체 입 밖에 내지 않기 때문이다. 신산귀유가 입을 열었다. "영사께서 보잘 것 없는 노부를 맨 처음 찾게 한데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외다. 듣고 싶소." 마무쌍은 빙그레 웃었다. "방주께선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들어 주시겠소?" 신산귀유는 미동도 않았다. "오늘날의 구류방은 영사의 도움 위에 이루어진 것, 신산귀유 위지헌(魏志軒)은 목숨이라도 사양치 않겠소!" 마무쌍이 정색을 했다. "나는 사부님의 후광을 등에 업고 위방주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위방주께서 평생을 바쳐 이룩한 이 기업(基業)을 천하를 위해 내던질 용의(用意)가 있다면 몇가지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의 어조는 이제와는 달리 정중하고 힘이 있었다. 신산귀유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상대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읽어 내려는 듯 두 사람은 서로를 그렇게 마주보았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모르게 신산귀유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고 있었다. '태산같다! 아…… 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신산귀유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마무쌍의 모습이 태산과 같이 거대하게 보임을 느낀 것이다. 무엇인가를 읽어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마무쌍의 깊은 눈 속으로 자신이 빨려드는 것 같기만 하였다. 그것을 느꼈을 때 그는 마무쌍에 비해 형편없이 왜소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와는 비길 수가 없는 그릇이다!' 신산귀유는 신음했다. "천하…… 라고 하셨소?" "……" 마무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오. 노부의 힘이 닿는 것이면 목숨도 사양않으리다!" 신산귀유는 힘 주어 말했다. 마무쌍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피어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토록 엄중한 것이 아닙니다. 금마곡에 아홉 분이 갇히고 난 후 강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당금의 무림정세가 어떠한 지등, 현재의 무림에 관한 모든 지식이 우선 내게 필요합니다." "그거라면 간단하오! 구류대전 지하에 있는 집비전(集秘殿)에는 천하대소사가 모두 기록분류되어 있소." "잘됐군요. 한데 지금 무림을 지배하는 문파가 있습니까?" "지배? 그런 힘을 가진 문파는 없소……" 신주팔대마존이 나타나 천하를 휩쓸고 사라진 지 백 오십 년, 무림인들은 그 처참한 기억에 몸서리를 치면서 제각기 문을 닫아걸고 폐관잠수(閉關潛修), 오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전 무림이 최강성기(最强盛期)를 맞고 있었다. 신주팔대마존의 충격파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듣기 어떨지 모르나 아마 백 오십 년 전 무림의 힘이 지금과 같았다면 신주팔대마존의 위명도 조금은 감해졌을 것이오." 마무쌍은 빙긋 웃으며 그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 중 강력한 힘을 가진 문파는?" "아무래도 정파쪽에는 구파일방이 뚜렷하고 그 중에서도 소림, 무당, 곤륜이 가장 강성하오. 그리고는 남궁세가와 검성문, 당가(唐家) 벽력장(霹靂莊) 등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오……. 그리고 사파쪽은 마왕전(魔王殿)과 독황곡(毒荒谷), 사령교(邪靈敎), 칠절방(七絶 ) 등의 사대세력(四大勢力)이 강하고 염혼사루(艶魂死樓), 천랑단과, 사혼방, 마검문(魔劍門) 등이 모두 무시할 수 없소……" "그 외에는?" "정사를 추측키 곤란한 일월보(日月堡)가 있으나 그들은 전혀 강호활동을 안하는 편이오." 마무쌍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주께선 천령제궁이란 단체를 모르시오?" "천령제궁?" 신산귀유의 태도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구류방의 이목으로도 그들의 움직임조차 발각치 못할 정도군……' 마무쌍은 내심 탄식하며 자신이 알아낸 바를 설명했다. 신산귀유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랬었군…… 이즈음의 무림에 흐르는 기이한 암류(暗流)의 정체가 그들이던가? 그렇다면 당금의 정세로 보아 상황은 매우 심각한데……" 유래없는 최강성기를 맞은 무림이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무림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폭풍전야의 고요와도 같았다. 거기에 하나의 기폭제(起爆濟)가 던져진다면…… 천하는 곧 무서운 아비규환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될런지도 몰랐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이 당금 무림의 어떤 변수를 주는 존재 정도가 아닐 것 같군요. 어쩌면 막후에서 대국(大局)을 주지하고 있을지도……" 마무쌍이 조용히 말했다. 신산귀유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그들이 아홉 분을 함정에 빠뜨린……?" "속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이번 황상의 납치 기도는 그들이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는 암시일 수도 있고……" "조, 조사 시키겠소! 구류방의 전 힘을 경주(傾注)해서……" 신산귀유는 가공스러운 결과에 생각이 미친 듯 말까지 더듬었다. 그는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신산이란 외호를 얻었으랴. 만에 하나, 신주팔대마존을 함정에 빠뜨린 자가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거라면…… '그렇다면 그것을 막을 능력의 소유자는 이 사람 뿐이다!' 신산귀유 위지헌은 품속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옥패의 전면에는 아홉 줄기의 물줄기가 모이고 갈라지는 모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본 방의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구류옥령(九流玉令)이오. 정제자 만 일천, 기명제자 오만 삼천이 모두 명을 받들 것이오!" 신산귀유는 옥패를 마무쌍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마무쌍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동안만 구류옥령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옥패를 집어들던 마무쌍은 눈에서 기광(奇光)을 쏟아냈다. 천심지기가 발동한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소?" 신산귀유의 물음에 마무쌍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옥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마무쌍과 옥패를 번갈아 보던 신산귀유의 몸에 진동이 일었다. '설마?' 그때, 마무쌍의 눈에서 뻗쳐나오던 맑은빛이 사라지며 마무쌍이 고개를 들었다. "이 옥패는 원래 구류방의 물건입니까?" "그렇소. 본 방의 조사이신 구류신군(九流神君)께서 남기신 신물이오. 전설에는 절세신공이 거기 담겨 있다고 했으나 조사이래 아무도 그것을……" "그것은 전설이 아닙니다. 이 옥패에는 확실히 한 가지 신공과 한 가지의 장법이 담겨 있습니다." 마무쌍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 "구류귀원신공(九流歸元神功)! 구류혼원장(九流混元掌)! 이…… 이럴 수가? 어, 어떻게 이런……?" 이어지는 마무쌍의 설명에 신산귀유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 부릅뜬 두 눈이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절세의 총명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자기가 수십 년을 노심초사해도 풀지 못했던 비밀, 그것을 단 한 번에 풀어내다니 이걸 어찌 믿으란 말인가! 하나 그가 어찌 알겠는가! 마무쌍의 눈에서 천심지기가 쏟아져 나오면 그 어떤 난제라도 풀어지고마는 것을…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