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0번째 금강경 10장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於意云何오
如來- 昔在燃燈佛所하야 於法에 有所得不아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在燃燈佛所하사 於法에 實無所得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菩薩이 莊嚴佛土不아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生淸淨心이니
不應住色生心하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요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라
須菩提야 譬如有人이 身如須彌山王하면 於意云何오
是身이 爲大不아
須菩提- 言하사대 甚大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佛說非身을 是名大身이니이다
* 낱자 공부
昔예 석, 燃사를 연, 燈등불 등, 所:바 소, 實:열매 실, 得:얻을 득,
菩:보리 보, 薩:보살 살, 莊풀성할 장, 嚴:엄할 엄, 非:아닐 비,
卽:곧 즉, 則: 곧 즉, 법칙 칙, 諸:모두 제, 摩:갈 마, 訶:꾸짖을 가
應:응할 응, 住:살 주, 色:빛 색, 生:날 생, 聲:소리 성, 香:향기 향,
味:맛 미, 觸닿을 촉, 法:법 법, 而:말 이을 이, 其:그 기, 心:마음 심
譬비유할 비, 如:같을 여, 須:모름지기 수, 彌:두루 미, 널리 미, 甚심할 심,
山:뫼 산, 是:이 시, 옳을 시, 大:큰 대, 王임금 왕, 제후 왕, 說:말씀 설, 名:이름 명
* 단어공부
• 燃燈佛 ~ 석가모니에게 수기를 준 부처
비가 개인 길을 선혜 선인이 깊은 상념에 잠긴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 연등불(然燈佛)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때마침 내린 비로 연등불 앞에는 물이 질퍽한 진창이 있었다.
선혜 선인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서 지체없이 자기의 옷을 벗어 진창에 깔고 머리를 풀어헤쳐서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하니, 연등불이 깊이 감동하여 그에게 내세에 석가모니불로 태어나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
그리하여 선혜 선인은 도솔천에 호명 보살로 태어났다고 한다.
• 須彌山 ~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다는 상상의 산. 황금과 은, 유리,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의 중턱에는 사천왕, 정상에는 제석천이 있다고 한다.
* 해설
• 法에 實無所得
- 無有定法인데 무슨 법을 얻을까?
• 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
菩薩의 장엄 – 보이지 않는 장엄, 영원한 세월의 장엄, 心(마음)의 장엄
凡夫의 장엄 – 보이는 장엄, 영원하지 않은 장엄, 身(환경)의 장엄
• 淸淨心
- 不應住色聲香味觸法生心이요
- 應無所住而生其心이니라
• 身
범부 - 육신 – 수미산 - 心大
불설 - 법신 - 非身 - 大身
※ 육조 혜능(六祖慧能) (638∼713)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느냐??
또 내게서 새삼스레 구하려는 게 무엇이냐?"
"저는 영남사람인데 오직 부처 되는 법을 구하려 합니다."
"너는 영남사람이요,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身是菩提樹 - 몸은 보리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와 같나니
時時勤拂拭 -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 - 티끌과 먼지 앉게끔 말지니라.
"이 게송은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범부들이 이 게송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삼악도에 떨어짐은 면하리라."
菩提本無樹 -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 -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네
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 -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묻으리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방아는 찧은 지가 오래됩니다만 아직 택미(擇米)를 못했습니다.”
오조 대사는 주장자로 방앗대를 세 번 치고는 돌아와 버렸다.
·혜능이 스승 홍인에게 올린 게송
何期自性本自淸淨내 자성이 본래 청정한 줄을 내 어찌 알았으랴.
何期自性本不生滅내 자성이 본래 생멸이 없는 줄을 내 어찌 알았으랴.
何期自性本自具足내 자성이 본래 저절로 구족한 것을 내 어찌 알았으랴.
何期自性本無動搖내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는 줄을 내 어찌 알았으랴.
何期自性能生萬法내 자성에서 능히 모든 것이 생하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
期:기약할 기, 기간 기, 백년 기, 일년 기,
·금강경(金剛經) 4구게 : 4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게송을 말한다.
①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②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③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④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2023년 12월 5일
경계: 사서 주시는 팥
어머니께서는 김장하러 온 자식들에게 당신이 키운 농작물들을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그중에 팥이 있어 조금씩 나누어 가져가라 하신다. 나는 어머니에게 팥도 수확한 거냐고 물었더니 샀다고 하신다. 나는 “사서까지 나누어 줄 필요 있나요? 그냥 필요하면 사서 먹으면 되지요.” 했더니 도시는 비싸니 당신이 싸게 사서 준다는 것이다. “비싸면 얼마나 비싸서요. 다음부턴 굳이 사서까진 주지 마세요.” 하니 어머니는 그런 나의 말에 불편함을 보이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어머니를 간섭하고 가르치려고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저렇게 하면 안 돼요. 앞으론 이렇게 하세요. 등등 어머니는 그런 내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젠 가부턴 내가 당신을 지적하는 말을 하면 경계부터 하시는 것을 조금씩 느꼈었다.
그동안은 그 순간의 경계를 대하여 경계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어머니는 왜 그러실까?’ 하면서 상대에게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어머니를 탓하는 마음으로 지내왔음이 알아진다. 오늘에서야 나는 나의 말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시는 어머니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지금까지 그랬구나. 내가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봐 드리지 못하고 내 표준을 들이대며 원망하고 탓하고 불평한 거였구나. [하라 말라 가르치려고 간섭하는 것은 마음공부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공부만 하면 가르쳐지게 되는 것이다. 순응하여라가 아니고 순응하여지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그동안 어머니의 행동을 간섭하고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려 했던 나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교무의 의견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네요
도시에서 자녀들이 오면 농사지은 곡식을 싸 주시지요
자녀들에게는 시장에 가면 살 수 있기 때문에 별거 아니지요.
아무 때나 필요하면 구할 수 있는 농작물인데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닌데 싸 주시면 그것 안 싸주셔도 된다는 생각도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국산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싸 주시는 농작물은 순 국산이기에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어머니의 정성입니다. 그것을 가꾸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한 일념으로 농사를 지으신 것입니다. 사랑과 정성의 산물입니다. 시골에서는 수입이 많지 않습니다. 논과 밭에서 나오는 수입은 품삯도 되지 못하는 적은 돈입니다. 도시에서 자녀들이 오면 줄 게 없습니다. 부모님 마음은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데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게 없으면 안타깝지요. 안 주면 서운하고 줄 거는 직접 생산한 농작물밖에 없으니 콩이나 팥을 주게 되지요. 그리고는 자녀에게 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긍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선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먼저 읽으시고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아주시면 어머니는 엄청나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물론 자녀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별거 아니니 안 가져가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농사짓느라 너무 애쓰시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자녀는 부모를 생각하고 부모는 자녀를 생각해서 오가는 대화일 것 같습니다. 말은 어떠했을지 몰라도 마음을 읽으면 정(情)이 오고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3년 12월 4일
경계 : 엄마의 원망하는 말
친정엄마가 화요일 거실에서 넘어져 허리가 골절되어 구급차를 타고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난 놀란 마음에 골반은 다치지 않았냐고 하니 허리만 다치셨다고 한다. 21세기 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리고 여러 가지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린다.
엄마는 짜증을 내신다. 50일 기도하는 동안 건강하게 기원했는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다쳤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밀어서 넘어진 것 같다면서, 귀신이 밀었나,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처음엔 나도 엄마의 말에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기도 안 들어주신 것 같아 속상하지, 누가 밀어서 넘어진 것이 마치 귀신이 민 것 같은 그런 일 일을 수 있어~~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니깐,
다음날도 또 레파토리가 같다. 난, 엄마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골반도 안 다치고 머리도 안 다친 거니 기도하기 잘 하신 거야~~ 엄마가 다리 힘이 약하니 싱크대에 마늘 놓다가 뒤돌아서면서 균형을 못 잡아서 마치 귀신이라도
있어서 민 것처럼 너무 어이없이 넘어지셨나 봐~~,
엄마~~, 내 주변 사람들이 엄마 이야기를 하니,
너 심란하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한테 아니, 난 정말 감사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간호하고 있어. 만약 골반이나 머리를 다쳤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고 무서워,
그런데 허리는 2주 지나고 시술하면, 예전처럼 자유스러운 몸이 되는 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2주 후에는 혼자서 일어서고 일상생활은 조심하면서 가능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서 난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
이렇게 이야기했어.~~~
그러니 엄마도 넘어져서 다친 건 되돌릴 수 없으니, 골반 다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 다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딸이 전주에 살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되뇌면 짜증 나는 마음이 줄어들어야~~ 엄마는 아무 말이 없으시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불평과 짜증을 안 내신다.
교무의 의견
어머니께서 50일 기도를 마치고 넘어지셨네요? 기도 후에 다쳤으니 기도한 보람도 없다고 어머니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이 되면 중심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여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 꼭 귀신이 밀어서 넘어진 것처럼 생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리 중생들은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자기에게서 잘못을 찾기보다는 남에게나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한 것은 그럴 수도 있고 남이 한 것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다음에 고쳐지지도 않고 원망만 늘어나게 됩니다.
어머니께 마음을 돌리는 방법에 대하여 잘 설명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돌리면 편안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잘 알고 어머니는 잘 못 한다는 그런 태도로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좋은 습관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께 제 생각에는 이런 것 같습니다. 라고 하면 어머니께서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23년 12월 5일
경계 : 엄마를 잠깐 문병하고 가는 동생들
동생들이 주말에 엄마를 보러 왔다. 시흥에서 토요일에 내려와서 엄마 면회하고 바로 올라간단다. 나는 내려온다고 해서 일요일 하루는 엄마를 봐 주고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간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왜 오는 거지? 너무하는 거 아니야~~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을 보니, 엄마를 하루 맡기고 쉬고 싶은 내가 있다. 그 마음으로 동생들을 보니 나처럼 하라고 하고 있다. 엄마의 병간호도 엄마를 위하는 거고, 엄마 병문안도 엄마를 위하는 건데, 내 분별심이 발동하니 동생들에게 불평이 나왔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름을 다시 인정한다. 그리고 내 몸이 힘드니 나도 또한 그런 마음이 일어남을 인정한다. 그래서 통합병동을 알아보았다. 다음날 통합병동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 엄마를 통합병동으로 옮겨 내가 잠깐잠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상황은 달라도 하나임을 다시 배운다.
교무의 의견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계셨네요. 객지에 나가 사는 동생들이 온다고 하여 어머니 옆에 하룻밤이라도 같이 있으려나 기대를 했었는데 바로 왔다 간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일어났네요.
동생들이 언니의 애쓰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하루쯤 쉬게 하고 자기들이 어머니를 간호했으면 좋겠지요. 그런데 바로 간다고 하니 여러 생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서 최선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나의 환경은 잘 알지만, 상대방의 환경은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본 상대방의 취사는 내 입장에서 시비를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계를 분석하는 것은 영지와 분별성 주착심이 들어서 그리합니다. 각각 환경이 다르고 분석이 다르니 똑같이 생각하고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맞고 틀림도 없습니다. 만일 누구는 빨간색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노란색을 좋아한다면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은 맞고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은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은 다양하기 때문에 고정된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취사에 대하여 비평을 하는 것은 조심하여야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나의 최선책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