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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장 진입(進入), 잠마혈정(潛魔血井) (백마총수(百魔總帥)! 마교백종의 총수가 잠마혈정에 가 있단 말인가?) 뇌마린은 침중한 안색으로 그 말을 되뇌이며 천면제왕의 시신 옆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녠! 역시 살아나왔군 애송이 놈…!" 그때 혈왕 달뢰사야가 입을 쩍 벌리며 뇌마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분명 반갑게 웃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도저히 웃는 것으로 볼 수 없는 흉악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겉모습은 그렇다 할지라도 뇌마린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더할 수 없이 따뜻했다. 뇌마린은 빙글 돌아서 싱긋 웃으며 포권했다. "무고하셨습니까 노야? 유감스럽게도 그 마물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 다." 이어 그는 대충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 듣고난 혈왕 달뢰사야는 뇌마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견한 표정 을 지었다. "그만 해도 잘한 것이다." 그는 내심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긴 제대로 봤군. 그 마물과 싸우며 이 어린아이는 최소한 삼 배 강해졌 다. 이제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이 어린 아이의 적수는 없으리라…! 설사 그 대상이 하늘이라도 말이다.) 혈왕 달뢰사야는 그런 생각이 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 마누라 소식이 궁금하겠지." 느닷없는 혈왕 달뢰사야의 그 말에 뇌마린은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화모(花母)는 잘 있습니까?" 혈왕은 커다란 입을 벌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킬킬…! 그렇다! 그 놈은 처음 네 걱정으로 울며불며 야단을 치다가 며칠 전 한 곳에서 폐관을 시작했다. 폐관을 끝내고 나오면 노부 이상의 강자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노야." 뇌마린은 정중하게 포권해 보였다. 그러자 혈왕 달뢰사야는 히죽 웃으며 문득 천면제왕의 시신에서 한 권의 비 급과 얇은 반투명의 칼(刀)을 꺼내 뇌마린에게 건네 주었다. -천면마경(千面魔經)! -무흔인(無痕刃)! 그것이 두 가지 물건이 이름이었다. 천면마경-! 그것은 마교백종의 마경 중 서열제삼 위의 마경으로, 그 안에는 천면제왕 무명혼(無名魂)의 명성을 날리게 한 천면(千面)의 역용술, 그리고 무흔인 (無痕刃)의 사용법이 적혀 있었다. 혈왕 달뢰사야는 천면마경과 무흔인을 뇌마린의 손에 건네 주었다. "이것을 갖고 혈해(血海)에 가 보아라." "노야께서는…?" 뇌마린은 의아한 눈으로 혈왕 달뢰사야를 바라보자 히죽 웃었다. "흐흣! 마교의 구더기들이 꽤나 잠마혈종에 기어들 것 같으니 그 놈들이나 정리해야겠다." 그는 문득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쪽으로 곧장 가면 혈해(血海)가 나올 것이다. 지금쯤 잠마불사혈강하가 분출을 시작했을 테니 혈해근역에 가기만 하면 잠마혈정의 위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그는 다서 침중한 안색으로 뇌마린을 주시하며 무거운 투로 말했다. "잠마혈정은 모두 구층(九層)으로 세인들은 팔층(八層)까지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 그 마지막 구층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 "…?" 믿도 끝도 없는 혈왕 달뢰사야의 그같은 말에 뇌마린이 의아한 빛을 떠올렸 다. 그러자 혈왕 달뢰사야는 엄중한 음성으로 일축했다. "그곳에는 네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슥…! 말을 마침과 함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잠마혈궁 쪽으로 날아가며 뇌마 린에게 재차 당부했다. "명심해라! 잠마혈정의 제 구층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 혹여 들어가 려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베어 버려라." 허공 중에서 그같은 말이 들려올 뿐 혈왕 달뢰사야의 모습은 순식간에 시야 에서 사라졌다. 뇌마린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혈정 제 구층…!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혈왕같은 인물조차 들어가지 말라 고 하는 것일까?"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검미를 모았으나 시간이 없는지라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그곳에 가보면 알겠지. 어쨌든, 서둘러야 한다. 신강사대군벌 의 네 아이가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을 마녀(魔女)가 되기 전에…!" 슥…! 그는 몸을 날려 남쪽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진 장내에는 천령개를 쳐 자결한 천면제왕의 시신과 역겨운 피비린내만이 어둠속에 떠돌고 있었다. -혈해(血海)! 보이는 것은 온통 핏빛 뿐이었다. 하늘도, 바위도, 땅도, 심지어 간간이 보이는 풀들마저 핏빛이었다. 핏빛의 아득한 대지, 이곳은 바로 신강삼대금역(新疆三大禁域)의 마지막인 혈해였다. 여명 무렵. 핏빛의 황막한 대지가 뿌연 안개 속에 젖어 있었다. 혈해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높은 절벽 위에 한 명의 청년이 우뚝 서 있었 다. "저기가 잠마혈정이군." 그는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먼곳을 주시하는 인물은 바로 뇌마린이었 다. 그는 사해림에서 이틀 밤낮을 달려 이곳 혈해에 이른 것이었다. 지금 그는 멀리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으으…! 지평선 너머 요기로운 핏빛 안개기둥이 지면으로부터 아침하늘로 치솟아 오 르고 있었다. -잠마혈하(潛魔血霞)! 핏빛 안개는 바로 그것이었다. 잠마불사혈강하(潛魔不死血剛霞)가 본격적으로 솟기 전에 나오는 안개가 잠 마혈하다. 잠마혈하는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며 더욱 넓게 퍼지는 것이 머지않아 그것 은 수십 리를 뒤덮을 것이고, 그 중 황금빛을 띤 피안개가 지하만장에서 솟 아 오를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을 탐욕으로 미치게 만드는 잠마불사혈강하가 아니고 무 엇이랴. 뇌마린은 잠마혈하(潛魔血霞)가 솟는 것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아직 잠마불사혈강하가 나올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늦지는 않았다.)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어지간한 뇌마린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특 히 뱃속이 텅 비어 지극한 공복감이 엄습하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어디 가서 무얼 좀 먹고 나서 잠마혈정에 들어가자.) 그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 몸을 움직이려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우…!" 쩌저정…! 돌연 멀리 남서(南西)쪽에서 한 소리 사나운 폭갈이 터지며 삼엄한 검기(劍 氣)가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순간 뇌마린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누군가 싸우고 있군! 보나마나 마교(魔敎)의 무리들과 잠마혈정에 접근하 려는 자들이 충돌하고 있겠지.) 슥…!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발길은 자기도 모르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나의 음침한 계곡-! 핏빛의 바닥을 온통 끈적한 피로 물들이며 두 명의 인물이 쓰러져 있었다. 그 자들은 얼굴이 분을 바른 듯 새하얀 백의인과 반대로 먹물을 칠한 듯 전 신이 시커먼 흑의인이었다. 백의복면인은 목이 반 넘게 끊어진 처참한 형상으로, 아마 둘 중 먼저 죽은 듯 그의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굳어지고 있었다. 반면, 흑면장한은 막 쓰러진 듯 아직 미약한 숨이 남아 있었다. 그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쩍 갈라져 복부 사이로 끊임없이 선혈이 흘러내 려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크으…! 고…고독흔(孤獨渾)! 감히 마교에 대항하고도…무사할 줄 알았느 냐?" 그는 꺼져가는 눈빛으로 전면을 노려보았다. 흑면인의 일 장 앞에서는 한 명의 인물이 막 검갑(劍匣)에 검을 넣고 있었다. 오 척 다섯 치 정도 됨직한 작고 아담한 키에 눈을 제외한 전신을 두터운 마직천으로 휘감은 기이한 인물로 일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실로 기묘했 다. 한없이 고독(孤獨)한 기운이 떠도는가 하면 차갑고 무심(無心)하여 근접할 수 없는 기도가 얼음처럼 투명하게 서려 있었다. 보이는 것은 천 사이로 드러난 두 눈뿐이었고, 그나마 그 눈빛은 조금의 감 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의인은 스산하고도 무심한 어조로 입을 뗐다. "마교 따위를 두려워했다면 나 고독흔은 동영(東瀛)에게 살아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음성이 다소 날카롭다는 것 외에도 특징이 없이 남녀의 구분조차 되지않 은 목소리였다. -고독혼(孤獨渾)! 이 자가 고독혼이란 말인가? 대막(大漠), 아니 변황제일검파(邊荒第一劍派)라는 대막(大漠) 고독혼(孤獨 渾)의 무서운 기린아(麒麟兒)! 그는 검도의 수업(修業)을 위해 한 자루 검만 지닌 채 대막을 떠났다고 알 려지지 않았던가? 그것이 십 년 전의 일이었다. 혹자는 그가 동영에 가서 동영최고의 무가(武家)인 일월검막(日月劍幕)과 싸우다 죽었다고도 했다. 그런 고독혼이 혈해(血海)에 나타난 것이다. 흑면인은 숨이 턱에 닿은 듯 거칠게 호흡을 헐떡이며 고독혼을 노려보았다. "반드시…후회하게 된다. 고독혼…! 우리, 흑백무상(黑白無常)을 해친 것을 …!" 툭…! 그 말을 끝으로 마침내 그는 절명하였으나 고독혼은 이미 흑면인을 보고 있 지 않았다. "…!" 그의 고독한 시선은 떠오르는 불그레한 일륜을 주시하고 있는 눈가로 두 가 지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는 강렬한 욕정의 빛이었으며, 또 한 가지는 어지러운 갈등의 빛이었 다. (더 이상 참기 어렵다. 본능의 욕화가?…나의 내부를 태우고 있다.) 그는 아주 괴로운 눈빛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 한 가지 극랄한 음독(淫 毒)에 중독된 상태였다. (이대로 간다면, 아무에게나 몸을 던지고 말리라. 그러기 전에 어서… 그 어린아이를 찾아내어 내 몸을 안게 해야 한다.) 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멀었다. 검후(劍后)의 길은 멀고도 험한데, 한갖 욕정 따위를 못 눌러 이 모양이라니…!) 그는 자신의 나약한 마음에 씁쓸한 자책의 고소를 짓고는 몸을 돌렸다. 헌데 돌아서던 그는 흠칫했다. "…!"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그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휘르르르…! 삼십 장 밖 계곡의 절벽 위에 한 명의 마의청년이 옷깃을 펄럭이며 우뚝 서 있었다. 낙뢰가 치는 듯 강렬한 눈빛에 천신이 하강한 듯 장대한 기도를 지닌 청년 …! 뇌마린, 바로 그가 아닌가? (그…아이다.) 뇌마린을 일별한 순간 고독혼은 흠칫 놀랐으며, 충격을 받은 듯 자기도 모 르게 두 걸음 물러섰다. 뇌마린을 바라보는 고독혼 눈빛이 문득 묘하게 변했다.그것은 안도와 원망, 그리고 살기가 뒤섞인 복잡하고 기이한 눈빛이었다. 그는 천으로 가린 자신의 얼굴이 도화빛으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아이가 혈해에 왔으니…! … 이제 당분간 안심할 수 있겠구나.) 스슥…! 그는 마음의 수치를 감추려는 듯 도망치듯 허공으로 몸을 띄워 계곡의 저편 으로 아득히 사라져 버렸다. 실로 경이를 금치 못할 신법이었다. 뇌마린은 고독혼이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대막제일검사라는 저자가 고독혼인가?" 슥…! 그는 날렵하게 계곡으로 날아내려 두 구의 시신, 흑백무상 앞으로 다가섰 다. 헌데 시신을 살펴보던 그의 눈에 감탄의 빛이 어렸다. "대단한 수법이다. 두 사람 다 단 일검(一劍)에 쓰러졌다." 그는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흑면인의 소매 사이로 삐죽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의 죽 패(竹牌)를 발견하고는 형형한 눈을 빛내며 죽패를 집어 들었다. -백종마경(百宗魔經) 제사십이위 흑옥마간(黑玉魔簡)! 죽패의 전면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각인되어 있었다. "백마(百魔)!" 뇌마린은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죽패의 뒤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마공의 구결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마교 의 백종마경 중 하나에 드는 마공구결이었다. 그리고 죽어 있는 흑면인은 마교백종이 인물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되는 것 이었다. 뇌마린은 놀라운 눈빛으로 두 구의 시신을 주시했다. "이 자가 마교백종 서열 사십이위인 흑옥철마(黑玉鐵魔)! 그렇다면 저 자는 흑옥철마와 함께 흑백무상(黑白無常)이라 불리는 서열 사십삼 위의 분면인 마(粉面人魔)겠구나!" 뇌마린은 죽은 두 사람의 신분을 알아보고는 무겁게 침음했다. <흑백무상(黑白無常)!> 그들의 합격술(合擊術)은 마교내에서 단연 제일이었다. 분면인마의 분면쇄심인(紛面碎心印)의 공력은 음유독랄하기 그지없이 상대 의 내부를 박살시키는 무서운 마공이다. 그 반면 흑옥철마의 공력은 패도무쌍하여 닥치는대로 무엇이든 바스러뜨렸 다. 그 때문에 그들의 합공은 강유(强柔)를 겸비한 최강의 위력으로 손꼽혔다. 그런 흑백무상이건만 대막의 외로운 늑대 고독혼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었 다. 뇌마린은 살가화모 사리화가 입수한 마교의 인명부를 숙독한 덕에 그 자들 의 신분을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엇다. "흑백무상을 베다니…! 고독혼이란 그 친구, 소문 이상으로 강한데…!" 뇌마린은 형형한 시선으로 흑백무상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어떤 방법으로든 흑백무상을 죽였다는 것은 고독혼의 지금 실력으로도 뇌마 린 자신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뇌마린은 문득 신비하게 미소지었다. "혈해에 온 보람이 또 한 가지 늘었군. 변황최강의 승부사(勝負士)를 만나 게 되었으니…!" 스스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바람처럼 허공으로 몸을 날려 고독혼이 사라진 곳 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스으으…! 핏빛 석벽 아래 하나의 동굴이 지옥의 입구같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 다. 헌데 괴이하게도 그 동굴은 연신 핏빛 안개의 분수를 토해내고 있었다. <잠마혈정(潛魔血井)!> 그렇다. 이 동굴은 바로 잠마혈정이었다. 잠마혈정이 토해내는 잠마혈하(潛魔血霞)는 점점 많아졌고 그 중에서 은은 한 황금빛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잠마불사혈강하(潛魔不死血剛霞)의 토출(吐出)이 임박했음을 나타내 는 것이었다. "…!" "…!" 욕망과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수많은 눈들이 동굴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대략 천여 명 정도로 마교에서 파견된 최강의 마인들이었다. 마교의 마인들은 한 가지 가공할 진세를 구축하고 있어 외부인들이 잠마혈 정에 접근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스으으…! 그런 마교 고수들의 포위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핏빛 운무에 싸인 채 문득 유령같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한 인영이 있었다. 뇌마린…! 바로 그였다. 그는 태연히 동굴 안으로 들어섰으나 누구도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혼해둔형비(混海遁形飛)! 비마(飛魔)의 최강 은형비기로 주위의 사물에 모습을 감추며 펼쳐지는 경공 비기였다. 따라서 뇌마린보다 내공이 약한 자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게다가 잠 마혈정에서 토해지는 혈무(血霧)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으므로 더욱 더 뇌마 린의 신형을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뇌마린은 몸을 움직여 빠르게 동굴 속으로 사라지며 중얼거렸다. "너무 태만하게 쉬었군. 잠마불사혈강하의 토출이 예상보다 배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기는 수가 있다." 그는 자욱한 혈무에서 싸여 곧 동굴속으로 사라졌다. 헌데, "…!" 언제부터인가 한 인영이 동굴이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 절벽 위에 서서 한 쌍의 음유한 시선을 발하며 뇌마린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는 일신에 걸친 옷은 백의같은 천의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로 드 러난 눈가에는 푸르스름한 광휘가 번뜩이고 있었다. 스으으…! "흐음…! 저놈이었단 말인가? 열화창의 어린 놈…! 너무 무섭게 자라고 있 다." 백의복면인은 낮게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침음하며 뇌마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쫓고 있었다. 뇌마린이 열화창의 후예임을 아는 이 인물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존마야(至尊魔爺)! 그 자는 바로 일전 공룡하(恐龍河)에 나타났던 지존마야라는 그 신비인이었 다. "흠…! 신비마종(神秘魔宗)에 대항하도록 저놈에게 팔왕연합(八王聯合)의 힘을 준 것인데… 실수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군." 일 순간 그의 두 눈이 두건 사이로 아주 강하게 번뜩였다. 한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뇌마린이 팔왕불 사번(八王不死幡)을 얻은 것이 신비마종에 맞서 싸우도록 그 자 지존마야가 계획한 것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존마야는 두 눈에 섬뜩한 광휘를 번뜩이며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후훗…! 어쨌든 좋다. 네놈이 과연 신비마종에 맞서 싸울만큼 강해졌는지 보자." 스슥…! 그는 연기처럼 신형을 날려 잠마혈정의 입구로 날아들어갔다. "네 명의 어린 마녀(魔女)들이 네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네 명 어 린 계집들의 손에서 살아나온다면 신비마종과 맞서 싸워도 부족함이 없겠 지." 음침한 중얼거림과 함께 곧 그는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동굴 끝. 수평(水平)의 동굴이 끝나고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수직(垂直) 동굴이 전 면에 나타났다. "여기가 잠마혈정이로군." 뇌마린은 눈을 빛내며 수직동물을 내려다보았다. 동굴의 넓이는 반경 오십 장 정도로 지옥의 입구같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 고 있었다. 한데, 오륙십 장 아래로 돌출되어 나온 암반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아 래로는 계속 매 오륙십 장 마다 암반이 돌출되어 있는데 모두 여덟 개 였 다. 뇌마린은 그 암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마혈정이 모두 구층(九層)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저것을 의미하는 것이 군." 그는 팔짱을 끼고 잠마혈정을 내려다보며 염두를 굴렸다. (백마총수라는 자가 네 명의 어린아이들을 혈마녀(血魔女)로 만들 생각이라 면 이곳의 알려진 맨 아래층인 제 팔층에 내려보냈을 것이다.) 그는 내심 그렇게 추측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츠츠츠…! 잠마혈정의 깊은 곳에서 핏빛이 서린 황금빛 광휘가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잠마불사혈강하(潛魔不死血剛霞)! 황금빛 광휘는 바로 그것이었다. 잠마불사강하는 잠마혈정에서 급격히 번져나와 삽시에 팔층까지 이르렀다. 헌데 팔층에 이르자 잠마불사혈강하는 무엇엔가 스며들 듯 급격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아차…! 늦었다.) 슈하아악…! 뇌마린은 그대로 잠마혈정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오십 장 아래의 혈반으로 내려서며 연이어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태도였다. 삽시에 그는 여덟 번째의 암반으로 내려섰다. 암반의 끝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하나의 석실(石室)이 있었다. 석실 안에는 네 개의 좌대(座臺)가 놓여져 있었으며, 좌대 위에는 네 명의 어린 소녀들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앉아 있었다. 각기 십 세에서 십육 세 정도의 나이에 이른 어린소녀들…! 그녀들이 다름아닌 신강사대군벌의 후계자들이었다. -금시선자(金翅仙子) 철운혜(鐵雲慧)! -고독상아(孤獨孀娥)! -화사정(花蛇精) 음아랑(陰娥郞)! -유사공녀(流砂公女) 사옥분(沙玉粉)! 그것이 그녀들의 이름이었다. 금시선자 철은혜…! 그녀는 네 명의 소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방년 십육 세로 천산조왕(天産鳥 王)이 뒤늦게 얻은 딸이었다. 기이하게도 그녀는 겨드랑이 밑에 황금빛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금시천익(金翅天翼)-! 천산(天山) 조인맹(鳥人盟) 최고의 비전지보가 바로 그것으로, 금시천익을 달고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허공에 언제까지 머무를 수가 있었다. 금시선자 철운혜는 어렸을 때부터 금시천익을 달고 있었다. 따라서 작금에 는 부친 천산조왕 철익상을 능가하는 경공의 조예를 지닌 그녀였다. 고독상아…! 대막(大漠) 고독혼의 종사인 대막고검의 손녀. 나이는 십오 세로 흑단같이 탐스러운 머리결을 늘어뜨려 살포시 부푼 젖무 덤과 허벅지 사이의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었다. 희고 창백한 안색에 우울한 우수가 서린 용모의 미소녀였다. 화사정 음아랑…! 사왕모 음유향의 조카로 나이는 방년 십이 세…! 나이는 비록 어리나 오히려 금시선자나 고독성아를 압도하는 성숙함과 요사 한 분위기를 지닌 소녀였다. 발가벗은 나신은 탱탱하게 물이 올라 보기만 해도 탐스러워 보이는 나신 위에는 은은한 뱀비늘(蛇鱗) 모양의 무늬가 떠 올라 있었다. 그것은 음아랑이 천산(天山) 사왕혈궁(蛇王血宮)에서 천 년 만에 나타나는 사왕지체(蛇王之體)를 타고났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사공녀 사옥분…! 유사천리황(流砂千里皇)과 망혼관음(亡魂觀音)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그녀는 유사망혼정(流沙忘魂亭)의 단 한 명 후계자인 까닭에 유사망혼정의 일만 살수들은 그녀의 종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고오오…! 츠츠츠…! 황금빛을 띤 피빛의 광휘가 어린 잠마불사혈강하는 마른 솜에 물이 빨려들 듯 네 소녀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소녀들의 백옥같이 하얗던 전신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 었다. 뇌마린은 그 광경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늦었다!" 그는 안색이 무겁게 변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어 수중의 모니천강주(牟尼天 剛珠)를 번쩍 쳐들었다. "돌아가랏, 저주스런 잠마불사혈강하…!" 콰쾅…! 쩌렁한 폭갈이 동굴 안을 뒤흔듬과 동시에 뇌음개벽천강(雷音開闢天剛)을 일으켜 네 소녀들에게 흘러드는 잠마불사혈강하를 차단시켰다. 콰릉릉…! 벽락치는 듯한 뇌성이 일며 잠마불사혈강하가 뚝 잘려졌다. 이어 뇌마린은 뇌음개벽천강의 항마법력으로 천만 근의 힘을 일으켜 잠마불 사혈강하를 무저갱(無底坑)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황금빛을 띤 혈무는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 지존마야는 칠층 암반 위에 우뚝 선 채 뇌마린이 잠마불사혈강하를 무저갱 으로 밀어 넣는 것을 지켜보며 내심 신음성을 발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광경에 그는 무엇인가 확증을 얻은 듯 두 눈에 시퍼런 살기를 떠올렸다. (무서운 놈…! 역시 저놈이었다. 공룡하에서 적신마모(赤身魔母)의 마법(魔 法)을 파괴한 놈이…!) 그의 마안(魔眼)에서 번쩍 살광이 작렬했다. (저놈은 신비마종(神秘魔宗)보다 오히려 위험한 놈이다. 제거해야 한다! 더 크기 전에…) 지존마야는 이를 악물며 결심했다. 삐이이…! 이어 그는 가늘게 입술을 모아 음파(音波)를 토해냈다. 그 음파는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강력한 마력이 담긴 것으로 특이한 방법에 의해 전달 된다. "…!" 번쩍…! 음파에 접한 네 명의 소녀는 뭔가에 홀린 듯 한 차례 교구를 경련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런 그녀들의 시선에는 이미 초점이 없어 보였다. 초점없이 텅 빈 눈에는 사악한 마기가 가득한 것이 그녀들이 모종의 섭심마 공(攝心魔功)에 심령이 제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죽여랏! 너희 앞에 있는 놈은 너희들의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를 능욕한 원 수다! 지존마야가 토해 낸 사악한 사념(思念)은 네 소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스으으…! 네 소녀는 일제히 우수를 쳐들었다. 그런 그녀들의 우수는 모두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혈해마강(血海魔剛)! 그것은 네 소녀들이 잠마불사혈강하를 쳔수하여 생긴 최강의 강공지력이었 다. -죽여랏! 사악하고 독랄한 지존마야의 사념은 다시 한번 네 소녀의 전신을 강타했다. 빠직…! 쩌정…! 네 소녀들의 손끝에서 핏빛 낙뢰가 번쩍 튀며 뇌마린의 배심에 작렬했다. 콰쾅…! "크흑…!" 불의의 일격에 뇌마린의 등은 온통 피투성이로 변했다. 네 소녀가 일으킨 혈해마강은 놀랍게도 뇌마린의 뇌음개벽철강의 호신법력을 바스러뜨려 버린 것이었다. 쿵쿵…! 뇌마린은 쓰러질 듯 앞으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그는 암반 아래 로 떨어질 뻔했다. "흐흐흣." "카앗!" 네 소녀는 날카로운 괴성을 토하며 좌대에서 붕 떠올라 그대로 뇌마린을 덮 쳐왔다. "너희들이…!" 뇌마린은 홱 돌아섰다. 헌데 돌아선 그의 눈이 찢어질 듯이 치떠졌다. 소녀들은 발가벗은 채 한껏 다리를 벌리고 뛰어올라 그를 덮쳐들고 있었고, 그 때문에 뇌마린은 본의 아니게 네 소녀의 부끄러운 곳을 직시하고 말았다. 아직 다 성숙하지도 않은, 그래서 방초도 제대로 나지 않아 백옥같이 미끈 덩한 소녀들의 야릇한 부분이 한눈에 들어오자 뇌마린은 순간적으로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물러서랏." 콰르릉…! 그는 한 소리 폭갈을 내지름과 함께 모니천강주로 뇌음개벽천강을 일으켜 네 소녀를 쳐냈다. 쿠쿵…! "악…!" 뇌음개벽천강에 부딪친 네 소녀는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졌다. 그녀들은 아직 잠마불사혈강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정심막 강한 뇌음개벽천강을 꿰뚫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나, 뇌마린이 받은 타격도 실로 커서 뇌음개벽천강이 무너질 듯 흔들린 것이었다. 그는 전신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들이 잠마불사혈강하를 제대로 소하하여 혈해마강을 완성한다면 나 의 힘으로도 두 명 이상은 막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실로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뇌마린은 또한 그녀들이 누군가의 사념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 다. "들어랏." 콰릉…! 그는 모니천강주의 절기 중 대사자후(大獅子吼)의 공력으로 쩌렁한 일갈을 토해 내었다. 우르르릉…! 그러자 가공하게도 잠마혈정 전체가 뇌마린의 대사자후의 공력에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너희들은 신강사대군벌의 자랑스런 후예임을 잊었느냐?" 콰릉…! 뇌마린의 폭갈은 재차 터져나와 사위를 진동시켰다. 그의 일갈에는 모두 사 악한 힘을 깨뜨리는 쇄마지력(碎魔之力)이 실려 있었다. "흐윽…!" 다시 뇌마린을 덮쳐들던 네 소녀는 비명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들의 초점없이 흐릿한 눈에는 공포의 빛이 떠올라 있었으며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뇌마린을 바라보며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뇌마린은 내심 침중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무서운 섭심마법(攝心魔法)에 이지를 제압당한 상태다. 두 번의 대사자후 로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러나 한 번만 더 타격을 가하면 깨어나게 할 수 있다.) 그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재차 대사자후를 토해내려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후훗…! 그러면 안 된다. 열화창의 어린 놈…!" 돌연 한 줄기 음산한 음성이 뇌마린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뇌마린은 흠칫하며 급히 위를 올려다 보았다. 바로 그의 머리 위, 칠층의 암반에서 지존마야가 뇌마린을 노려보고 있었 다. 그를 일별한 순간 뇌마린은 짙은 눈썹을 꿈틀했다. "그대가 백마총수(百魔總帥)?" 지존마야는 마안(魔眼)을 번쩍 작렬하며 음험하게 웃었다. "후하핫! 그렇다. 본좌가 바로 백마의 총수인 지존마야시다." 쩡…! 말과 동시에 그는 오십 장 위쪽에서 일지(一指)를 찍어내는 시늉을 보였다. 그런 그자의 모습에 뇌마린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미친 작자! 오십 장 밖에서 공격하다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발했다. 칠층과 팔층의 거리는 무려 오십여 장 …! 그 정도 거리를 가늘게 응축된 지풍으로 쏘아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헌데 뇌마린이 실소를 발한 직후였다. 빠직…! 지존마야의 손끝에서 새파란 불꽃이 작렬하지 않는가? 그의 손끝에서 거짓 말처럼 일어 뇌마린의 정수리에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헉…!" 그 일련의 광경에 뇌마린은 아연실색하며 번개같이 신형을 흐트렸다. 그러나 예의 새파란 불꽃은 어김없이 그의 어깨에 작렬했다. 순간적으로 뇌 마린은 어깨에서 등까지 강력한 마강(魔강)에 관통당한 것이었다. 후드득…! "크아아악…!" 어깨를 관통당한 뇌마린은 피를 뿌리며 팔층의 암반으로 아득한 무저갱 속 으로 사라졌다. "후하핫! 보았느냐? 이것이 백종마경의 서열일위 천강마경(天剛魔經) 중의 천강쇄심인(天剛碎心印)이다." 지존마야는 뇌마린이 떨어진 무저갱을 내려다보며 득의의 광소를 터뜨렸다. 그의 쩌렁쩌렁한 광소는 오랫동안 잠마혈정을 뒤흔들었다. 이윽고 광소를 그친 지존마야는 잔혹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까운 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살려두었다가는 훗일 나를 물려고 할 테니…! " 그는 입꼬리를 말려 음산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후훗…! 저놈을 잃었으나 대신 네 명의 혈마녀(血魔女)를 잘 기르면 신비 마종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스으으…! 그는 유령같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네 소녀를 향해 가볍게 손짓해 보였다. "하핫 가자. 나의 귀여운 어린 마녀들아." 쐐액! 그의 신형은 그대로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그 뒤로 네 명의 소녀들이 아무 말없이 발가벗은 채 날아올랐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