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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린도전서 10장 1절로 11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믿음과 생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요즘 제가 하는 설교들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는 설교들입니다. 어떤 원리를 다루는 설교들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혁신적으로 변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어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에 대해서 예를 들자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밥프록터라고 하는 성공학을 가르쳤던 유명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젊었을 때에 누가 어떤 책을 주는 것을 받고 그 책에 가르친 대로 수용해서 따르기 시작했답니다. 젊은 나이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백하기를 “나는 그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했더니, 그 해에 내가 40배나 더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해에 한 번 그걸 깨닫고 그것을 삶의 루틴으로 삼고 움직였더니 부의 상위계층으로 이동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이런 것들도 지금 제가 이렇게 중심적으로, 핵심적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들을 우리들이 잘 깨닫고 내 것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이 혁신적으로 밥프록터처럼, 그 해에 40배 이상의 수입을 거두게 되었던 것처럼 놀라운 어떤 기적을 경험하는 그런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원리들을 잘 이해하고 소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감기 몸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틈을 내서 지난 두 주간 동안 앞에 설교한 것을 원고화 시키고, 원고를 다듬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뚜렷하게 그것의 중요성을 제가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라고 하는 유명한 그 박사가 있는데 그 박사에게 리포터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러더니 슈바이처 박사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거의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고 남이 생각하고 남이 짜놓은 거기 그런 어떤 그 수레바퀴 안에 내 몸을 맡기고 내가 생각해서 굴러가는 게 아니라 걸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남이 짜놓은 그 생각의 틀에 의해서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이 없이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저 자신을 생각을 했어요. 과연 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유튜브나 티빙이라든가 넷플릭스라든가 뭐 이런 드라마들 많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 짜여진 그 드라마 보기도 너무 시간이 촉박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생각하지 않고 남이 생각한 것을 내가 이렇게 보면서 생각이 주입되는 대로 내가 그냥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거죠. 과연 나는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아니면 생각 없이 살아가는가 여러분들이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설교를 하면서 아담이 에덴 동산을 다스렸던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을 받고 에덴 동산을 다스릴 때, 아담이 어떻게 다스렸을까요? 뛰어다니면서 일일이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너 왜 인마 이렇게 했어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했을까요? 아니면 그의 생각만을 가지고 그 모든 일들을 통제하고 다스렸을까요?
제가 이 얘기를 하면서 어떤 예를 드렸는가 하면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겠는가? 직접 현장에 뛰어다니면서 어떤 일들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어떤 일들을 그냥 현실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해 나가셨을까? 아니면 어떤 생각만을 가지고 어떤 말씀을 하시고 그 생각과 말씀을 가지고 어떤 일들을 다 이끌어 가셨을까? 당연히 두 번째가 아니겠어요?
그렇죠.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말씀하심으로써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러면 아담이 어떻게 에덴 동산을 그가 타락하기 전에 다스리게 되었을까? 그는 생각하고 말을 했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기 위해서 생각하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저 좋은 대로 살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이미 어느 정도 어떤 그 삶의 궤도에 오르고 안정적인 수레바퀴를 굴리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게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하루하루 일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생각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주업으로 직장생활도 하지만 부업으로 주식을 한다거나 뭐 또 다른 코인이라든가 뭐 여러 가지 부의 매체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때로 실패하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성공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끔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생각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생각해야 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야 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도 원하지 않는 그런 삶에 끌려다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인가? 생각을 하긴 하더라도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마귀가 원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제가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많은 밑밥을 이렇게 정확하게 깔아놓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얘기죠? 내가 생각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그 말은 나에게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를 1차적으로 검증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왜일까요? 믿음은 뭐예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그랬잖아요.
믿음은 바라는 게 있고, 원하는 게 있다면 일단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거를 생각하는 게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믿음의 뿌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각이 없습니다.
바라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나온다고, 주일 예배를 지켜야 된다고, 열심히 준비하면서 씻고 또 시간을 기다렸다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주일날 나올 때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왔느냐는 거죠.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뭐가 있어야 돼죠? 소망이 있어야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그들은 소원을 가지고 나갑니다. 제사를 드립니다.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소제를 드리고, 요제를 드리고 여러 가지 제사를 그들이 드립니다. 그런데 그 제사에는 뭐가 있었을까요? 목적이 있지요.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하여 또는 하나님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하여, 또 관계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런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주일날 주님 앞에 나올 때 여러분 스스로가 나는 목적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은혜를 받으면 좋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생각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일생을 말아먹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 어떤 생각에 붙들려서 그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어떤 욕망에 사로잡히는 어떤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난 반드시 이걸 해야 돼. 난 이렇게 반드시 살아야 돼. 이거 안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런데 정작 그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마귀로부터 왔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했을 때 그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을 것입니다. 난 예수를 팔고 만다. 예수를 내가 돈벌이로 삼고 만다.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은 30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그는 예수님께서 가신 행적을 다 이야기하고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예수님을 군중들과 분리되어 있을 때 예수님을 체포해 갑니다.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그 가롯 유다처럼 그가 하는 생각이 바른 생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에 붙들릴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헛된 욕망에 붙들릴 때가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과연 내가 하는 생각이 진짜 바른 생각인가? 바르지 못한 생각인가를 여러분 생각을 살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의 삶을 끌어가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이 계속적으로 광야에서 훈련을 받고 훈련을 받고 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린도전서에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들은 멸망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 경계로 기록이 되어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변화되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생각이 안 바뀐 것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안 바뀐 것 때문입니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도 중요한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생각과 바른 가치관이란 말입니다.
이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서,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지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비투스라고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좀 특이한 말이니까 특이한 단어니까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아비투스. 나의 삶의 아비투스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갓난 아기들은 갓난 아기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초등학생들은 초등학생들만의 자기들의 삶의 방식이 있고,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그 삶의 방식, 삶의 태도, 그것을 아비투스라고 하는데 그 아비투스가 어른들하고 같을 리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것을 하면서 좋아합니다. 근데 어른처럼 하는 거를 원하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하지 못했을 때 막 투정을 부립니다. 그리고 막 땅바닥에 드러눕기도 합니다. 때로 화를 낼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뿔이 나 가지고 씩씩거리기도 합니다. 그는 왜 그럴까요?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죠. 그는 그만의 삶의 방식이 아비투스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이 삶의 아비투스라고 하는 아비투스라고 하는 그 단어 말고 달리 표현하면 요즘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말은 트렌드라는 말하고는 조금 깊이가 좀 다른 것입니다. 트렌드는 잠시 잠깐 유행하는 물결이라고 본다면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 굴곡의 폭이 좀 더 깊고 넓은 것입니다.
내가 삶에 어떤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느냐? 삶의 방식의 전환이 있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삶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능력을 엄청 경험했던 놀라울 정도로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패러다임이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아비투스가 결국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만의 삶의 방식을 그들은 고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예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노예의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고 노예 생활을 찾아 나가려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광야에서 40년을 맴돌면서 다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생각에 물들어 있는 그런 생각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냐? 그래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다 보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라 이제는 패러다임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연 나의 삶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육신의 습관을 따라 사는 그러한 삶의 방식인가 여러분의 생각을 잘 살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생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이 악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악한 것을 보시고 사람들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가 일어납니다.
(창 6:6, 개정)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개정)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보니까 이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행 13:22, 개정)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우리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늘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러분이 생각하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지만, 이제 좀 더 나아가서 과연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정도로 좀 더 전하고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비투스를 가져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아비투스.
그런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어떤 일들을 꿈꾸고 어떤 일들을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가져라.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삶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원하는 것은 한이 없다는 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그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거기에 제한이 없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셨나요? 조건이 뭐냐?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다 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 나는 병들게 살아야 된다. 나는 조금 연약하게 살아야 된다. 조금 부족하게 살아야 된다. 이런 제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고, 하나는 우리가 진짜 잘 되기를 원하고, 하나는 진짜 우리가 만족하며 행복해 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질병도 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런 전제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습니다.
너는 누구의 자손이니까 이거 없어요. 회개하고 돌아서면 끝이에요.
아무리 우리 조상들이 잘못했다 할지라도 그 당사자가 하나님 앞에 그게 잘못된 것인 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섰으면 하나님은 비록 조상의 유전죄가 있다 할지라도 그 유전죄를 그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게 하신다고 에스겔 18장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겔 18:19, 개정)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겔 18:20, 개정)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버지가 잘못을 징계를 받았는데 아들이 왜 또 징계를 받느냐 그게 속성으로 내려와서 그런 죄를 짓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렇게 받는 거지 그렇다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해서 아들도 잘못하는 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나를 잘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마태복음 7장 12절에 7절로 12절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끄트머리에 있는 12절에 있는 그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이 율법이고 선지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구약 성경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여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장에서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런 말씀들을 종합해서 보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될까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여러분이 잘 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잘 되는 사람이다. 나는 잘될 것이다. 나는 성공을 할 수밖에 없다.
성공하게 되어져 있다. 성공을 마음속에 이미 받아들이고 성공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 앞에 상담하러 왔던 그 어느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딸의 잘못된 행실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고 있었습니다.
“딸 때문에 목사님 너무너무 속상해요. 그렇게 기도를 해도 이 딸년은 돌아올 생각도 안 합니다. 그러면서 원망 어린 마음을 가지고 상담을 하는데 내 기도를 하나님이 안 들어줘요. 그런데 조 목사님이 그걸 듣더니 따님이 좀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따님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모습을 생각을 하십시오. 신앙생활 잘하고 참으로 기뻐하는 딸의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딸의 모습을 생각을 하시고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내가 얼마 후에 그게 되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집에 들어가서 안 되는데 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딸 생각을 하면 그냥 나쁜 생각이 들지만 나쁜 생각을 접어버리고 조 목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딸의 아름다운 이미지, 딸의 좋은 이미지만을 생각을 하고 바라보며 하나님께 하나님 그렇게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임 어머니 기도하는 어머니 마음속에 딸이 진짜 변화된 것처럼 마음에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조 목사님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이제 내가 딸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딸이 돌아온 것을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 때의 일화를 기록한 내용을 책에 기록된대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하나님께서 왜 자매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지를 분명히 알겠습니다. 자매님은 그동안 항상 잘못된 청사진을 하나님께 제시하셨습니다. 자매님은 딸의 행동 때문에 항상 딸을 창녀처럼 생각하고 계셨지요? 하나님께 딸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면서도 자매님은 언제나 딸을 부정적이고 자매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짓만 하는 나쁜 딸로 생각하고 계셨지요?”
“네, 그래요. 그러나 그 애는 사실 창녀나 다름없어요.”
“그렇지만 진정으로 부인께서 딸이 변하는 걸 보고 싶으면 지금과 전혀 다른 마음의 청사진을 하나님께 제시해야 합니다. 자매님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지금의 딸의 영상을 깨끗이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딸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딸의 모습을 새로 그리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애는 더럽고 추하며 천박해요.”
나는 그 부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용서해야 된다고 권면했습니다.
“자매님.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자, 딸의 모습을 새로 그립시다. 여기 무릎을 꿇으세요. 저도 당신과 함께 무릎을 꿇겠어요. 갈보리 십자가의 주님 발 앞에 나아갑시다. 두 손을 드세요.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기시고 피 흘리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바로 자매님의 딸 때문입니다. 딸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뒤에 두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딸의 변화될 모습을 쳐다보십시오. 자매님은 딸이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받고 깨끗하게 되어 성령 충만 받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 안 보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흘리신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제 예수님이 흘리신 용서의 보혈로 딸이 영원히 새롭게 된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까?”
“네, 목사님. 할 수 있습니다.”하고 그 부인은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딸을 다르게 생각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딸에 대한 저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지금부터 자매님의 딸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립시다. 그런 다음 새롭게 변화된 딸의 분명한 그림을 날마다 마음속에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간직하십시오. 바로 그 모습은 성령께서 보시는 모습이기 때문에 자매님의 딸은 그대로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비전은 바로 성령과 대화하는 언어입니다. 딸이 깨끗하게 되고 거듭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긍정적인 비전입니다. 그 모습이 성령께서 지금 자매님의 딸을 바라보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믿음으로 성령께서 보시는 그대로 딸의 그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깨끗하게 하시고 변화시킨 그 딸의 모습을 지금 바라봅니다. 성령이시여,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잉태케 하신 새 이미지와 새 비전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넘치게 역사하시옵소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 비전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옵소서.”
(조용기 『4차원의 영적세계』 서울: 서울말씀사, 1996. pp. 77-79)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방탕한 아들을 두고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찾아왔던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아들은 열다섯 살인데요. 저는 남편과 사별했고, 아들에게 도대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들을 교회에 데리고 갈 수도 없습니다. 아이는 불량배들과 어울리는데, 그 애들이 마약을 할까봐 걱정이에요. 아들은 새벽 3시나 4시까지 밖에 나가 있습니다. 저는 밤마다 뜬눈으로 아이가 감옥에 잡혔다는 전화가 올까봐 기다리고 있답니다.”
나는 그녀가 아들의 나쁜 상황에 대해 더 말하기 전에 그녀를 제지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약속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그 말에 놀랐습니다.
“약속해 주지 않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부인. 약속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드님을 위해 절대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우선, 제가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부인께서 잘못된 믿음과 말을 통해 저의 기도를 무효화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인께서 아드님에게 너는 아무것도 안 될 거고 소년원과 감방에서 인생이 끝장날 거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더라도 아드님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겁니다.”
그녀의 눈이 커졌습니다.
“제가 우리 애한테 그렇게 말하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말의 산물
내가 말했습니다.
“아드님이 그 엉망인 삶 가운데 머물도록 하려면, 부인께서 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말의 산물입니다. 자녀들도 말의 산물입니다. 말이 아이로 하여금 훈육을 사랑하게 합니다. 말이 아이로 하여금 교회에 가고 싶게 하거나, 아니면 계속 교회 밖에 있게 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여성이 물었습니다.
“우선 부인께서는 그 동안 너무 오래 부정적인 말을 하셨는데, 이제 아드님도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드님은 당신이 뭔가 말하거나 말하려고 할 때 분노할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아이에게 설교하지 마시고, 잔소리도 하지 마십시오.”
나는 계속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의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십시오. 심지어 아들의 행방을 모를 때에도 집에서 ‘나는 내 아들을 믿음으로 감싼다’라고 말하십시오. 당신은 지금까지 아드님을 의심으로 감싸왔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아드님을 감싸주십시오. 처음에는 심령에서 믿어지지 않더라도, 입 밖으로 말해 내십시오. 일단 그것이 심령에 새겨지면 당신은 믿기 시작하게 될 겁니다.
‘나는 내 아들이 소년원에 가게 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내 아들이 교도소에 갈 거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믿는다. 나는아들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그 믿는 바를 말하십시오.”
그녀가 말했습니다.
“노력해 볼게요.”
“그건 역사하지 않을 거에요. 노력해서는(try)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인께서 그렇게 하신다면(do)역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말한 것은 무엇이든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회는 8월에 있었습니다.
순복음 남성 실업인들은 14개월 후인 이듬해 10월에 그 도시에서 또 대회를 개회하였고, 나는 돌아와서 다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후 집회 후에, 한 여성이 내게 와서 말했습니다.
“해긴 목사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아니오, 저는 매우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정말 기억이 안나네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일 년 전 여기에 오셨을 때를 기억해 보세요, 제가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그렇게 못해주겠다고 하셔서 제가 충격을 받았었잖아요?”
좋은 보고
그 여인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말씀해 주신 것들이 역사하고 있어요! 사실 보기에는 역사할 것 같지가 않았어요. 제 아들은 더 심해졌답니다. 그래도 계속 입을 닫고 있기란 평생 가장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매일 밤낮으로 ‘나는 믿음과 사랑으로 내 아들을 감싼다. 나는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믿는다. 나는 아들의 삶의 모든 것들이 올바르게 전개될 것을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소년원에 가지 않을 것을 믿는다’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아들이 어울리는 패거리를 보면서, 제 머리는 아들이 소년원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내 아들은 소년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감방에서 인생을 끝내지 않을 것을 믿는다’라고 심령으로부터 말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일 년 동안 그렇게 보냈습니다.”
(케네스 E. 해긴 · 케네스 해긴 Jr. 『가족을 섬기는 법』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12. pp. 41-48.)
위에 기록된 간증문이 해긴 목사님의 다른 책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 「믿음이 흔들리고 패배한 것 같을 때 승리를 얻는 법」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08. pp.75-83.)
이게 무엇을 얘기를 하는 겁니까? 우리들이 믿음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해긴 목사님의 책에 보면 어느 목사님이 전도 집회를 그렇게 잘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혜긴 목사님이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길래 목사님이 집회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와서 변화가 됩니까?”
그랬더니 나는 집회를 했는데 첫날에 사람들이 많이 안 나오고 영접 기도를 많이 안 하면 믿음을 씁니다. 기도를 많이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기도보다는 나는 믿음을 더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집회를 하고 초청을 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해긴 목사님의 책에 기록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고향집 근처에서 목회를 하셨던 목사님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시골 목사였던 그분은 한 번도 큰 교회의 목회를 해 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담임한 교회들은 대부분 작은 규모의 지역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상황도 달라졌겠지만 고등학교 졸업이 그의 학력의 전부였기 때문에 교단 내에서는 성공의 기회를 더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은 영혼을 건지는 데 탁월했기 때문에 부흥 집회 요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거나 오랫동안 구원받는 이들이 없는 교회로 가서 은혜가 넘치는 부흥 집회를 이끌었고, 많은 이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왜 그가 계속해서 집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가 60대 초반이었을 때 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는 여전히 많은 영혼들을 건지며 계속해서 성공적인 부흥의 행진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옛날 오순절 교단에서처럼 그의 교회에는 제단의 섬김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 성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비결이 뭐냐고 묻습니다. 사실은 정말로 간단한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는 어떤 부분이나 치유의 영역에서 믿음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건지는 영역에서도 믿음을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의심이 생기려고 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합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죠.”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많은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히 기도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나의 성공은 이 한 가지 핵심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내게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담대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믿음의 눈으로 사람들이 예배에 나오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제단이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들로 꽉 찬 모습을 바라봅니다. 집회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사람들이 다른 때처럼 주님을 영접하려고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꼭 그것과 관련해 기도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하나님을 더 찾지는 않습니다. 다만 믿음을 더 훈련할 뿐입니다. 회심의 시간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을 그려보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나옵니다.”
(캐네스 E. 해긴 『성경적 기도』 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4. pp. 355-356.)
이 목사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습니까?
믿음을 쓰는 것을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게 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내가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겁니다. 내가 치유된 모습을 바라보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된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더 나은 조건에서 우리 가족들 모두가 다 같이 더욱더 건강하고 더욱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그런 모습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을 때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현대인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했던 리포터에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처럼,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생각 없이 교회 오고 생각 없이 그냥 갑니다. 한 주간을 또 삽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아무런 결과물 없는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결국에는 광야로 가나안 땅에 가지 못하고 조금만 더 가면 가나안 땅인데 그 길을 가지 못하고 광야로 돌아가서 40년을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생각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바르고 합당한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의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온갖 기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각이 변화되기를 그들은 거부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생각만을 가지고 그냥 버텼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좋을 때는 좋다고 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이고 왜 우리를 여기까지 불러내서 우리를 죽일 곳이 없어서 이 고생을 시키냐고 불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우리들은 과연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얻지 못하고 되지 못한 그런 것들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견디면서 혹독한 세월을 여러분이 지금 보내고 있는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패러다임이,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여러분의 삶을 대하는 그 삶의 아비투스가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그저 트렌드로 잠깐 왔다가 믿음 생활에 잠깐 왔다가 사라져버리는 그런 거 말고,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트렌드 말고, 믿음의 패러다임이 여러분의 삶에 장착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장착이 되어지면 지금은 여러분이 거룩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온전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약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믿음이 작을지 모르지만, 이대로 살아가면 여러분의 믿음은 장성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더욱더 강력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어떤 일들을 이루는 그날이 오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여러분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원수 마귀가 끄는 대로 여러분의 생각이 다 생각을 팔아먹지 말고, 여러분도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좀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을 하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의욕이 넘쳐나고 활력이 넘쳐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믿음 안에서의 자유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 창조하신 다음에 에덴 동산에 생명나무를 만들어 두셨지만 뿐만 아니라 선악과도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2:16, 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개정)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을까요? 생명나무만 두면 아담은 영원히 타락하지도 않고 잘 살아갔을 텐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택할 수도 있고 선악을 택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어두셨을까요?
우리는 로보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그러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 두신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과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선악과를 따먹고 그 선악과의 생각 속에서 붙잡혀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게끔 계속 유혹하고 그들을 망가뜨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수 마귀의 생각에 끌려다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성령에 이끌려서 생명나무를 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여러분이 더 나은 삶을 계획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여러분이 더 큰 일들을 꿈꾸고 나아가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주간을 지나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러분 꿈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적으로 그것을 꿈꾸고 소망하면서 바라보고 말을 하게 되어진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삶 속에 나타나는 것을 속히 나타나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게 되어 질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 살아 있을 때 설교를 들어보면 이와 같은 내용들을 자주자주 언급하며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몇십 년 동안 전하고 또 은혜 받은 그 목사님이 핵심적으로 전했던 말씀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꾸 생각하고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생각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말을 하고 하나님께 그 일을 통하여 감사드리고 찬송하며 나아가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의 원리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가면 여러분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이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믿음이냐 자유냐, 믿음과 자유 사이에서 우리들이 방황하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믿음을 선택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더 큰 일들을 계획하고 소망 속에 살아나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더 큰 일들을 이루어내는 이룰 수 있다고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말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이루어내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말의 능력자, 믿음의 능력자, 생각의 능력자들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원하시는 생각만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큰 역사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누리고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 홀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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