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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기후위기 시대, 핵 발전은 왜 대안이 될 수 없는가ㅡ기후변화가 드러내는 핵 발전소의 취약성
윤순진(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1. 들어가며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인공지능 기술 확산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핵 발전을 다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핵 발전은 발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적고 날씨와 시간에 관계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전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핵 발전을 재생에너지와 함께 활용해야 할 저탄소 전원으로 설명하며 신규 핵 발전소 건설과 기존 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발전원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는 전력 생산이 이루어지는 자연환경과 사회기반시설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다. 기온과 해수온도가 오르고 가뭄과 홍수, 태풍과 산불이 강해지며 해수면이 상승하면 발전소의 안전과 가동 가능성도 영향을 받는다.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려는 발전원이라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달라진 기후조건에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핵 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려면 이 밖에도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방사성폐기물을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부지를 확보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변화하는 에너지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지, 핵 발전보다 위험과 비용이 낮고 더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핵 발전을 둘러싼 안전성과 경제성, 방사성폐기물, 주민 수용성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화된 지금은 한 가지 조건을 더 물어야 한다. 바로 핵 발전소가 기후위기 시대에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가이다. 핵 발전소는 핵반응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냉각수와 취수시설, 외부전력망과 변압기, 비상전원, 접근도로와 통신시설이 함께 기능해야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안전하게 정지할 수 있다. 기후재난은 이 가운데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조건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
우리나라 핵 발전소가 모두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용하므로 하천 유량 감소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해수온도와 해수면 상승, 태풍과 폭풍해일, 높은 파도와 해양생태계 변화에는 직접 노출된다. 여러 호기가 한 부지에 밀집해 있다는 점도 하나의 재난이 여러 발전설비와 전력망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위험을 키울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의 정상 운전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살펴본다. 이어 한국 주변 해역의 수온 상승과 신월성 핵 발전소의 설계해수온도 문제,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및 2022년 울진 산불이 드러낸 복합위험, 해수면 상승과 한빛 부지의 추가 건설 문제를 차례로 검토한다. 그런 다음 프랑스의 최근 사례와 국제기구의 논의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핵 발전소 건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제안한다.
이 글의 핵심 물음은 단순하다. 핵 발전이 저탄소 전원인가만을 물을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자연환경과 복합재난 속에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핵 발전 확대의 명분이기에 앞서 핵 발전소의 취약성을 새롭게 검토하게 하는 조건이다.
2.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핵 발전소의 운영 조건
핵 발전소는 날씨와 무관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원으로 흔히 인식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일사량과 바람의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지만, 핵 발전소는 연료만 공급되면 기상 조건에 관계없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핵 발전을 기후위기 시대의 안정적인 전원으로 내세우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핵 발전소도 자연환경과 분리된 시설이 아니다. 대량의 냉각수와 안정적인 외부 전력, 송전망과 도로를 비롯한 기반시설이 뒷받침되어야 가동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이 조건들을 바꾸면 핵 발전소의 출력과 가동률이 낮아질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안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핵 발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열 발전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 가운데 전기로 전환되는 것은 일부이며, 나머지는 냉각수를 통해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가동을 멈춘 뒤에도 핵연료에서 붕괴열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냉각은 중단할 수 없다. 핵 발전소가 안전하게 운영되려면 충분한 양의 물을 적정한 온도로 확보하고, 냉각계통을 계속 가동할 전력도 공급받아야 한다. 물 부족이나 수온 상승이 핵 발전소의 출력과 안전에 영향을 주는 이유다.
기온이 상승하면 발전소의 열효율이 낮아지고 냉각수의 온도도 높아진다. 하천이나 바다에서 끌어온 물의 온도가 높으면 같은 양의 열을 내보내는 데 더 많은 냉각수가 필요하거나 발전소의 출력을 낮춰야 한다. 취수한 물을 다시 하천이나 바다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방류수 온도가 환경 기준을 넘을 우려가 있으면 출력 감축이나 가동 중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폭염과 가뭄이 겹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전력수요는 냉방 사용으로 크게 늘어나는데, 하천 유량은 줄고 수온은 높아져 핵 발전소가 충분한 출력을 내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폭염과 물 부족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중호우와 홍수는 발전소 부지를 침수시키거나 전력설비와 냉각수 취수시설을 손상시킬 수 있다. 많은 양의 토사와 쓰레기, 해양생물이 취수구로 밀려들면 냉각수 유입이 막힐 수도 있다. 강한 태풍과 폭풍은 송전선로를 끊거나 외부전원을 차단할 수 있으며, 산불은 발전소 주변의 송전망과 도로, 통신시설을 위협한다. 해수면 상승과 폭풍해일은 해안에 자리 잡은 핵 발전소의 침수 위험을 높이고, 장기간에 걸친 해안침식은 부지와 취수·배수시설의 안전 조건을 바꿀 수 있다.
기후위험이 핵 발전소의 운영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종합하면 <그림 1>과 같다. 물 부족과 폭염은 냉각수의 양과 온도에 영향을 주어 냉각 능력과 열효율을 떨어뜨린다. 홍수는 발전소 부지와 기반시설을 침수시키고 취수구를 막을 수 있다. 산불과 강한 폭풍은 발전소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송전망을 비롯한 외부 기반시설을 손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취약성은 발전소의 출력 감소와 가동 중단, 송전망의 전력 수용 능력 저하로 이어지며, 여러 기능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경우 공공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출처: Ahmad, Covatariu, and Ramana(2023)를 바탕으로 재구성.
<그림 1>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의 운영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
여기에서 발전소의 출력 감소나 가동 중단과 핵 사고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높은 수온이나 강한 폭풍에 대비해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추는 것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예방 조치다. 기후재난 때문에 핵 발전소가 멈추었다고 해서 곧바로 사고 위험이 현실화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핵 발전을 기상 조건과 무관하게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원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외부전원이 끊기고 도로와 통신망까지 피해를 입는 등 여러 설비와 안전장벽, 비상대응 체계가 동시에 위협받는 복합재난에서는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실제 자료에서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핵 발전소의 가동 차질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Ahmad(2021)는 세계 핵 발전소의 30여 년간 운영 자료를 분석해 기후 요인으로 발생한 가동 차질의 평균 빈도가 1990년대 원자로 1기당 연평균 0.2회에서 2010년대 1.5회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이러한 가동 차질로 인한 세계 핵 발전량의 연평균 손실은 2046~2065년에 0.8~1.4%, 2081~2100년에는 1.4~2.4%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전체 발전량을 평균한 수치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 폭염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이 집중될 경우 개별 발전소와 지역 전력체계가 받는 영향은 훨씬 클 수 있다.
OECD 산하 원자력기구도 홍수와 폭풍, 폭염과 가뭄이 이미 핵 발전소의 운영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냉각수 온도 상승은 열효율을 떨어뜨려 출력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OECD NEA, 2021). 국제원자력기구 역시 핵 발전소의 설계와 안전 여유가 과거의 기상 및 수문 자료에 기초해 설정되어 왔지만, 평균기온 상승과 극한기후의 빈도 증가, 물 이용 가능성의 변화로 기후변화 적응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IAEA, 2026). 핵 발전을 지지하고 확대해 온 국제기구들조차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의 운영 환경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핵 발전소는 건설을 결정한 뒤 폐로를 마칠 때까지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신규 핵 발전소라면 계획과 인허가, 건설에 십수 년이 걸릴 수 있고, 가동을 시작한 뒤에는 60년 이상 운전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도 한다. 이후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관리까지 생각하면 해당 부지와 시설은 한 세기를 훨씬 넘는 기간 동안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과거 수십 년간 관측한 기온과 강수량, 해수면과 태풍을 기준으로 설비를 설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전소가 실제로 운영될 미래의 기후를 고려해야 하며, 발생 가능성은 낮아도 피해가 매우 큰 복합재난까지 검토해야 한다.
물론 기후변화에 맞추어 방벽을 높이고 냉각설비를 보강하며 비상전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취약성을 줄일 수 있다. 기후 전망을 반영해 설계 기준을 수정하고 기상 예측과 운영 절차를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 조치는 핵 발전소가 본래 기후변화에 강한 발전원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설계와 운영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설비 보강에는 추가 비용이 들고, 안전을 위해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추면 전력 생산량과 경제성도 낮아진다. 예상보다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이미 한 차례 보강한 시설을 다시 고쳐야 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가 모든 발전원과 전력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분명하다. 태양광과 풍력, 수력도 폭염과 가뭄, 강풍과 홍수의 영향을 받으며 이에 대비한 설계와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핵 발전소는 단위 설비의 용량이 크고 한 부지에 여러 기가 밀집해 있는 경우가 많다. 가동 중단이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냉각 기능과 외부전원이 동시에 상실될 경우에는 전력공급 차질을 넘어 중대한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발전원을 평가할 때에는 기후재난의 영향을 받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았을 때 피해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복구할 수 있는지, 다른 설비로 대체하기 쉬운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따라서 핵 발전이 저탄소 전원이라는 사실만으로 기후위기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핵 발전소는 냉각수와 외부전원, 송전망과 주변 기반시설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출력 감소와 가동 중단 가능성이 커지고 안전 확보에 필요한 비용도 늘어난다. ‘기후위기 시대 운영 가능성’은 핵 발전을 평가할 때 부차적으로 덧붙일 항목이 아니다. 핵 발전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핵심 조건이다.
3. 기후변화로 뜨거워지는 바다와 냉각의 한계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냉각수는 핵 발전소의 효율과 안전을 좌우하는 기본 조건이다. 핵분열로 발생한 열을 외부로 내보내야 하고, 핵반응로가 정지한 뒤에도 계속 발생하는 붕괴열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냉각수 공급이 불안정해지거나 수온이 높아지면 발전효율과 정상 운전은 물론 안전한 정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냉각수의 양과 온도는 모두 중요하다. 수온이 높아지면 발전소에서 발생한 열을 외부로 내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같은 양의 열을 제거하려면 더 많은 물을 사용하거나 냉각설비를 더 많이 가동해야 하며, 충분한 냉각 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발전소의 출력을 낮추어야 한다. 취수한 물을 하천이나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방류수 온도가 환경기준을 넘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출력 감축이나 가동 중단이 필요할 수 있다. 폭염으로 냉방용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시기에 높은 기온과 수온 때문에 핵 발전소의 출력이 줄어드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하천수를 냉각수로 사용하는 핵 발전소는 폭염과 가뭄에 특히 취약하다. 가뭄으로 하천 유량이 줄면 필요한 냉각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수량이 적은 하천에 온배수를 내보내면 수온이 크게 높아져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프랑스에서는 폭염과 가뭄이 발생할 때 하천의 수온과 유량 때문에 핵 발전소의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잦아질수록 이러한 제약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핵 발전소는 모두 해안에 자리 잡고 바닷물을 냉각에 사용한다. 물의 양만 보면 하천수를 이용하는 발전소보다 가뭄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러나 바다는 무한히 차가운 냉각수 공급원이 아니다. 해수온도가 높아지면 냉각 효율이 떨어지고, 일정한 온도를 넘으면 안전에 필요한 냉각 능력을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해양열파로 높은 수온이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이어지면 핵 발전소의 운영 제약도 길어질 수 있다. 한국의 해안 입지는 가뭄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대신 해수온도 상승과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는 셈이다.
핵 발전소는 설계할 때 안전에 필요한 기기와 계통이 작동할 수 있는 냉각수의 최대 온도를 정한다. 이를 ‘설계해수온도’라고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핵반응로와 안전설비에서 나오는 열을 제거하려면 기기 냉각수의 온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하며, 열교환기를 거쳐 그 열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닷물도 설정된 온도보다 낮아야 한다. 실제 해수온도가 설계해수온도를 넘으면 기존의 안전성 분석이 전제로 한 냉각 능력을 보장하기 어려워지므로 핵반응로를 안전하게 정지해야 한다. 설계해수온도는 단순히 발전 효율을 관리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사고 때 필요한 냉각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 기준이다.
문제는 발전소를 설계할 때 설정한 해수온도의 범위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의 관측자료를 토대로 정한 최고 수온이 기후변화로 갱신되고 있으며, 일시적인 고수온 현상이 나타나는 빈도와 지속기간도 달라지고 있다. 설계 당시에는 충분하다고 보았던 냉각설비의 여유가 발전소의 수명이 끝나기 전에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가동하는 핵 발전소라면 건설 당시의 기후가 아니라 실제 가동 기간에 나타날 기후를 기준으로 안전성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 주변 바다의 변화는 이러한 우려가 가정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정선해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4년까지 57년 동안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5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표층 수온 상승폭은 0.74℃였다. 한국 주변 해역의 수온이 전 지구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높아진 것이다. 해역별로는 동해가 2.04℃로 가장 많이 상승했고, 서해는 1.44℃, 남해는 1.27℃ 높아졌다(국립수산과학원, 2025). <그림 2>는 지난 57년 동안 한국 주변 해역에서 나타난 수온 상승폭을 전 지구 평균과 비교해 보여준다. 핵 발전소가 밀집한 동해의 수온 상승폭이 가장 크지만, 서해와 남해의 상승폭도 전 지구 평균을 크게 웃돈다. 이는 한국의 모든 핵 발전소가 냉각수의 장기적인 온도 상승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료: 국립수산과학원(2025: 3)을 바탕으로 경향신문(2025.04.24)이 재구성.
〈그림 2〉 최근 57년간(1968~2024년) 한국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 변화
해수온도 상승은 이미 국내 핵 발전소의 설계 조건을 압박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5년 8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핵 발전소의 설계해수온도는 발전소에 따라 31℃에서 36.1℃ 사이로 설정되어 있다. 2024년에는 신한울 1·2호기를 제외한 핵 발전소에서 주변 해역의 최고 수온이 종전 기록을 넘어섰다. 신월성 1·2호기 주변의 최고 해수온도는 31℃까지 올라 설계해수온도 31.5℃에 가까워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도 상승이 지속된다면 기존 설계 조건으로 가동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남지 않은 셈이다.
한수원은 이전에도 해수온도 상승에 대응해 일부 핵 발전소의 설계해수온도를 상향해 왔다. 냉각설비를 바꾸지 않고 열교환기의 성능 여유를 다시 평가하여 운전을 제한하는 해수온도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설비가 지닌 여유를 정밀하게 재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냉각 능력은 그대로인데 계산상 여유를 활용해 허용 온도만 계속 높인다면 안전 여유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기후변화로 해수온도가 장기간 상승하는 문제를 설계 기준의 수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원안위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한수원에 설비 개선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한수원은 2022년 신월성 1·2호기의 판형 열교환기에 전열판을 추가하여 냉각 성능을 높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설계해수온도의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8월에는 앞으로 냉각설비를 그대로 둔 채 여유도만 재평가하기보다 설비를 개선해 냉각 성능을 실제로 높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원안위에 보고했다. 해수온도 실측값과 상승률을 반영하여 핵 발전소별로 설계해수온도에 도달할 시점을 매년 평가하고, 해수온도 예측체계와 단계별 대응 절차도 마련하기로 했다(원자력안전위원회, 2025).
문제는 신월성 1·2호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수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최근의 수온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신월성 1·2호기가 2030년경 설계해수온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빛 3·4호기는 2031년, 한빛 1·2·5·6호기는 2034년경 제한 온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모두 합하면 10년 안에 여덟 기가 기존 설계 조건으로 가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는 확정된 가동 중단 시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냉각설비를 보강하면 설계해수온도를 높일 수 있고, 실제 수온 상승 추세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가동 중인 발전소의 설계 조건을 기후변화 때문에 다시 평가하고 대규모 설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후위기가 핵 발전소의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
한수원은 한빛 1~6호기의 관형 열교환기를 2029년 상반기까지 교체하고, 다른 핵 발전소도 냉각 성능을 평가해 중장기적으로 설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동시에 핵 발전의 비용과 안정적 공급 능력을 평가할 때 기후변화 적응 비용도 포함해야 함을 보여준다. 해수온도 상승에 맞추어 열교환기와 취수·배수시설을 고치고, 예측과 감시체계를 구축하며, 필요할 때 출력을 줄이거나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면 그에 따른 설비투자비와 발전 손실도 핵 발전의 비용이기 때문이다.
냉각 문제에는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들어 있다. 핵 발전소는 바닷물을 대량으로 취수하고 발전 과정에서 데워진 물을 다시 바다로 내보낸다. 주변 바다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온배수를 받아들이는 해양생태계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고수온이 장기간 이어지는 시기에 대량의 온배수가 더해지면 발전소 주변 해역의 생태계에 미치는 누적 영향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냉각설비 성능을 높여 핵 발전소를 계속 가동할 수 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취수량과 방류수 온도, 온배수의 확산 범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설계해수온도 상향과 냉각설비 보강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해소됐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핵 발전소가 전제로 삼았던 해양환경이 이미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건설할 핵 발전소는 지금보다 더 따뜻해진 바다에서 수십 년 동안 가동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핵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려면, 그 발전소가 미래의 바다에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부터 입증해야 한다.
4. 기후재난과 발전소 바깥의 조건
태풍과 산불 같은 기후재난이 핵 발전소를 위협하는 방식은 핵반응로 건물에 직접 피해를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핵 발전소는 외부전원과 송전선로, 취수시설, 통신망, 접근도로 등 발전소 안팎의 여러 시설이 함께 작동해야 가동할 수 있다. 하나의 재난은 이 연결망의 여러 부분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 핵 발전소의 기후 취약성을 개별 설비의 내구성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핵 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하지만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전기를 사용한다. 핵반응로가 정지한 뒤에도 핵연료에서는 붕괴열이 계속 발생하므로 냉각펌프와 계측장치, 제어장치를 작동해야 한다. 발전소가 정상 운전할 때는 자체 생산 전력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핵반응로가 정지한 뒤에는 외부전원이 냉각설비와 안전설비를 작동시키는 데 중요하다. 외부전원이 끊어지면 비상디젤발전기와 같은 비상전원에 의존한다. 외부전원과 비상전원을 모두 잃으면 냉각 기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에서는 지진해일로 외부전원과 대부분의 비상전원이 끊기면서 핵반응로 냉각 기능이 상실되었다(IAEA, 2015). 핵반응로를 멈추는 것만으로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나라도 기후재난이 여러 핵 발전소의 전력계통을 동시에 흔든 일을 이미 경험했다.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이 고리 핵 발전소 인근을 지날 때 부지에서는 최대 초속 32.2미터의 강풍이 관측되었다.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에서 차례로 외부전원 공급이 끊겨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다. 이 가운데 당시 운전 중이던 고리 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는 가동을 멈췄다. 같은 달 태풍 하이선이 월성 핵 발전소를 통과할 때는 최대 초속 33.1미터의 강풍으로 월성 2·3호기의 터빈과 발전기가 정지했다. 다만 외부전원이 유지되어 핵반응로는 60퍼센트 출력으로 운전되었다.
정부 합동조사 결과, 고리와 월성에서는 강풍에 실려 온 염분이 외부에 노출된 전기설비에 쌓이면서 ‘섬락’이 발생했다. 섬락은 절연되어 있어야 할 설비의 표면을 따라 순간적으로 전기가 흐르며 불꽃이 튀는 현상이다. 신고리 1·2호기에서는 강풍에 흔들린 송전선이 철탑 구조물에 가까워지면서 섬락이 발생했다. 태풍이 핵반응로 건물을 직접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염분과 강풍이 변압기와 송전선로를 교란함으로써 한 부지에 모여 있는 여러 호기의 운전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다(원자력안전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 2020). 태풍의 영향과 이에 따른 대응은 호기마다 달랐다. 두 태풍으로 영향을 받은 호기별 운전 상태와 비상디젤발전기 가동, 외부전원 복구 상황을 〈표 1〉에 정리하였다.
〈표 1〉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당시 핵 발전소 운전 및 전원 상황
| 구분 | 당시 운전 상태 또는 정지 시각 | 비상디젤발전기 기동 | 소외전원 복구 |
| 고리1호기 | 영구정지 상태 | (A) 9월 3일 02:28 (B) 9월 3일 02:23 | (A) 9월 3일 03:35 (B) 9월 3일 08:11 |
| 고리2호기 | 정기검사 중 | (A/B) 9월 3일 02:54 | (A) 9월 3일 04:18 (B) 9월 3일 04:34 |
| 고리3호기 | 9월 3일 02:53 핵반응로 정지 | (A) 9월 4일 00:29 (B) 9월 5일 14:01 | (A) 9월 5일 20:55 (B) 9월 5일 21:30 |
| 고리4호기 | 9월 3일 03:01 핵반응로 정지 | (B) 9월 4일 00:29 | (B) 9월 4일 06:30 |
| 신고리1호기 | 9월 3일 00:59 핵반응로 정지 | (A/B) 9월 3일 00:59 | (A) 9월 3일 07:18 (B) 9월 3일 10:39 |
| 신고리2호기 | 9월 3일 01:12 핵반응로 정지 | (A/B) 9월 3일 01:12 | (A) 9월 3일 10:26 (B) 9월 3일 10:39 |
| 월성2,3호기 | 9월 7일 08:38 및 09:18 (터빈·발전기 정지) | 해당없음 | |
| 주: A와 B는 서로 독립된 비상전원 계열을 가리킨다. 월성 2·3호기는 원자로가 정지한 것이 아니라 터빈·발전기가 정지했으며, 원자로는 60% 출력을 유지했다. 자료: 원자력안전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2020)를 바탕으로 재구성. | |||
이 사건에서 안전설비는 설계된 절차에 따라 작동했고 방사성물질 누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설비 고장이나 ‘태풍 때문에 발전소 몇 기가 멈춘 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고리와 신고리에서는 외부전원이 끊기면서 비상전원에 의존해야 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설비에 남아 있던 염분 때문에 추가로 섬락이 발생했다. 발전소가 재난의 직접 영향권을 벗어난 뒤에도 위험 요인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산불 역시 발전소 바깥에서 시작된 재난이 핵 발전소 부지와 전력망을 함께 위협한 사례다. 2022년 3월 4일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져 7번 국도를 넘어 한울 핵 발전소 방향으로 이동했다. 발전소 울타리 주변까지 불씨가 날아들었고, 소방대와 발전소 자체 진화대가 대응했다. 소방당국은 대용량 방사포까지 현장에 배치했다. 불길이 발전소 설비로 옮겨붙지는 않았지만, 산불 발생 지점에서 발전소까지 재난이 접근하는 데는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이승형, 2022). 한국수력원자력은 산불로 송전망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에 대비해 가동 중이던 한울 1~5호기의 출력을 최대 50퍼센트까지 낮췄다. 발전소 설비에 직접 피해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외부 송전망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권혜진, 2022). 이는 필요한 안전조치였다. 동시에 핵 발전소의 가동 여부가 발전소 내부 설비만이 아니라 주변 산림과 송전망의 상태에도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2년 울진 산불은 다행히 핵발전소까지 확산되지 않아 더 큰 재난으로 진행될 뻔한 위기를 넘겼지만, 한 번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이 다음 재난에서도 안전하리라는 보증은 될 수 없다.
태풍과 산불이 핵 발전소를 위협한 경로는 서로 달랐지만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핵반응로 건물이 직접 파괴되거나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는 않았지만, 발전소 외부에서 시작된 재난이 부지와 송전망을 위협하고 여러 호기의 운전에 영향을 미쳤다. 핵 발전소의 안전은 여러 방어수단이 서로 독립적으로 기능한다는 전제 위에서 유지된다. 그러나 하나의 재난이 여러 설비와 여러 호기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 독립되도록 마련한 방어수단들이 함께 약화될 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원인으로 여러 설비나 호기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일을 ‘공통원인 사건’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는 개별 설비의 고장 가능성만이 아니라 부지 전체와 외부 연결망이 함께 압박받는 공통원인 위험을 키운다.
이러한 위험은 소수의 해안 부지에 여러 기의 핵반응로가 밀집한 우리나라에서 더욱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5개 발전본부에 총 26기의 핵반응로가 가동 중에 있으며 4기가 건설 중에 있다. 부산시 기장군에 고리2,3,4호기와 신고리1,2호기, 총5기. 여기에 영구정지되었지만 2037년 완료를 목표로 2026년 4월부터 해체 작업을 겨우 시작한 고리1호기까지 합하면 6기.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새울본부에 가동 중인 핵반응로는 새울1,2호기로 2기지만 건설 중인 새울3,4호기가 완공되면 4기 경북 경주시에는 월성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 총 다섯 기가 가동 중이고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입지해 있다. 경북 울진군의 한울본부에는 한울1~6호기와 신한울1,2호기 등 총8기가 가동 중이고 건설 중인 신한울3,4호기가 ㅇ한공되면 총 10기가 된다. 전남 영광군에 한빛1~6호기가 가동 중에 있다. 26기가 가동 중인 현재도 우리나라의 면적 대비 핵발전 시설용량, 즉 핵발전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4기가 완공되어 30기가 되면 핵밀집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고리, 월성, 영광(현 한빛), 울진(현 한울)에서는 모두 체르노빌 사고 이전에 첫 호기가 착공되었다. 당시에는 핵 발전의 위험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 주민은 핵 발전소를 ‘전기 만드는 공장’이나 지역개발의 계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최초 입지를 둘러싼 반대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윤순진, 2015: 85-86).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 등을 거치며 핵 발전의 위험성이 알려진 뒤에는 새로운 지역에서 입지 반대가 커졌다. 그 결과 새로운 부지를 찾기보다 기존 핵 발전소 부지에 핵반응로를 거듭 추가하는 방식이 이어졌다(윤순진, 2015: 88-90).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다수호기 부지는 결과적으로 기존 기반시설과 운영조직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관리와 운영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발전단가를 낮추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비용 절감에 유리한 이러한 밀집 구조는 안전 측면에서는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기후위험은 재난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노출된 시설이 얼마나 민감한지, 재난에 대응하고 복구할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다수호기 입지가 태풍이나 산불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 자체를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재난에 노출되는 핵반응로와 부대시설의 수를 늘린다. 여러 호기가 외부전원과 송전망, 접근도로 같은 공통된 취약요인에 의존하면 부지 전체의 민감성이 커지고, 여러 호기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한정된 인력과 장비를 나누어 투입해야 하므로 대응 역량도 떨어질 수 있다. 각 호기의 고장 가능성을 서로 독립된 것으로 보고 따로 계산하는 방식만으로는 같은 재난이 여러 호기에 한꺼번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 만일 둘 이상의 핵반응로에서 사고가 동시에 발생하면 방사성물질의 방출 규모가 커질 수 있고 사고 대응의 부담도 훨씬 무거워진다. 중대사고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여러 호기가 동시에 멈추거나 출력을 낮추면 전력계통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줄어든 대규모 발전량을 다른 전원으로 보충해야 한다. 운영비와 발전단가를 낮추는 데 유리한 밀집 구조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안전 위험을 키우는 구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20년의 태풍이나 2022년의 울진 산불을 기후변화가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별 재난과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려면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핵 발전소의 기후위험을 검토할 때 중요한 질문은 특정 사건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돌릴 수 있는가에만 있지 않다. 기후변화로 태풍과 폭우, 폭염, 가뭄, 산불의 발생 양상이 달라질 때 기존의 입지와 설계, 비상대응 체계가 앞으로도 유효한지를 물어야 한다. OECD 원자력기구도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상이 핵 발전소의 운전뿐 아니라 전력계통 전체에 위험을 일으키며,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발전소 운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OECD NEA, 2021).
2020년 태풍 이후 정부는 외부에 노출된 변압기 관련 설비를 밀폐하고 염분에 강한 애자로 교체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태풍의 영향 범위를 고려해 발전소 출력을 미리 낮추거나 예방 차원에서 가동을 멈추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치는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예방적 감발이나 가동 중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핵 발전이 날씨와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한 전력을 공급한다는 주장에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안전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비 보강과 비상대응 훈련으로 위험을 낮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새로운 방호설비와 대체전원, 송전망 보강에는 비용이 들며, 변화하는 기후에 맞추어 설계기준도 계속 수정해야 한다. 더구나 대형 재난은 발전소와 송전망만을 위협하지 않는다. 도로와 통신이 끊기고 지역 전체가 정전되거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상황에서는 인력과 장비를 제때 투입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는 개별 설비를 보강하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위험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발전원은 평상시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재난이 닥쳤을 때도 안전을 지키면서 전력계통을 떠받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경험한 태풍과 산불은 핵 발전소의 안전과 가동이 기상조건과 외부전원, 송전망, 접근도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재난이 심해질수록 개별 설비뿐 아니라 이러한 연결망 전체의 취약성과 복구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신규 핵 발전소 건설 여부를 판단할 때는 한 호기의 설계 안전성만이 아니라 기존 호기와 기반시설이 같은 재난에 함께 노출되는 부지 전체의 위험을 검토해야 한다.
5. 해수면 상승과 해안 핵 발전소
우리나라의 핵 발전소는 모두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의 내륙 핵 발전소처럼 하천수를 냉각에 이용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가뭄으로 강물의 양이 줄거나 수온이 높아져 발전소 출력을 낮춰야 하는 위험은 상대적으로 작다. 얼핏 보면 바다는 마르지 않는 거대한 냉각수 공급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안에 있다는 것은 하천의 가뭄 위험을 피하는 대신 해수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 폭풍해일, 높은 파도, 해안 침식이라는 다른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이미 해수면 상승이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이 전국 21개 조위관측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89년부터 2024년까지 36년 동안 우리나라 연안의 평균 해수면은 해마다 3.17밀리미터씩, 모두 약 11.5센티미터 높아졌다. 같은 기간 해역별 평균 상승률은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안이 연 3.53밀리미터, 서해안이 3.32밀리미터, 제주를 포함한 남해안이 2.85밀리미터였다. 다만 울릉도를 제외하면 동해안 평균은 연 3.12밀리미터로 서해안보다 낮았다. 어느 지역의 상승 속도가 더 빠른지는 섬 지역을 포함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셈이다.
더 주목할 것은 최근의 변화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 동안의 해수면 상승률은 서해안이 연 6.9밀리미터로 가장 높았고, 남해안은 4.0밀리미터, 동해안은 2.9밀리미터였다. 국립해양조사원은 해수면 상승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해역에 따라 달라지며, 최근에는 서해안과 제주 부근을 중심으로 높은 상승률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2025). 이는 한빛 핵 발전소가 자리한 서해안의 해수면 변화를 더욱 면밀하게 살펴야 할 이유가 된다. 다만 개별 시설의 침수 위험은 해수면 상승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지의 높이와 조차, 폭풍해일과 파랑, 지반의 움직임, 방벽과 배수시설의 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해역별 차이와 최근의 변화를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2025), 「최근 36년 동안 우리나라 해수면 약 11.5cm 높아졌다」.
〈그림 3〉 최근 36년간(1989~2024년) 해수면 상승률(21개소)
지난 36년 동안 우리나라 연안의 해수면이 약 11.5센티미터 높아졌지만 앞으로의 상승 폭은 훨씬 커질 수 있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은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하여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변화를 전망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잘 이루어지는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도 해수면은 2050년까지 약 20센티미터, 2100년까지 약 47센티미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온실가스 배출이 높은 수준으로 지속되는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상승 폭이 2050년 25센티미터, 2100년 82센티미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10년의 관측자료에서는 서해안의 상승 속도가 가장 빨랐지만, 미래 전망에서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동해의 상승 폭과 상승률이 서해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해수면의 변화가 시기와 해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만큼, 전국 평균이나 최근의 상승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발전소가 들어서는 해역과 부지의 조건을 따로 분석해야 한다(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2023, 2025).
지금 새 핵 발전소를 계획해 건설한다면 실제 가동은 2030년대 후반이나 그 이후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고, 수십 년에 이르는 운전기간은 21세기 후반까지 이어진다. 가동을 마친 뒤에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계속된다. 따라서 신규 핵 발전소의 안전성을 검토할 때는 2024년까지의 관측자료뿐 아니라 운전과 해체가 계속될 기간의 해수면 상승, 폭풍해일과 파랑의 변화까지 반영해야 한다. 과거의 해수면과 태풍 기록만으로 새로운 핵 발전소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해수면 상승은 어느 날 갑자기 발전소를 덮치는 하나의 재난이라기보다 다른 해안재난의 출발 수위를 높이는 변화다. 평균 해수면이 높아진 상태에서 만조와 폭풍해일, 높은 파도와 집중호우가 겹치면 과거와 같은 강도의 태풍도 더 높은 침수위를 만들 수 있다. 방벽을 넘은 바닷물뿐 아니라 배수구를 통한 역류와 부지 내부의 침수도 고려해야 한다. 취수시설이나 전기설비, 외부전원과 접근도로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복합상황도 검토 대상이다. 해안 침식과 방파제 주변의 지형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존 방호시설의 여유를 줄일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2호기 앞의 해안방벽을 7.5미터에서 10미터로 높였다. 당시 한수원은 이를 다른 국내 핵 발전소의 부지 높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한국수력원자력, 2012). 이러한 보강은 필요하지만 방벽 높이 하나만으로 미래의 안전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 높이가 어떤 기준해수면을 바탕으로 정해졌는지, 만조와 폭풍해일 및 파랑이 동시에 발생할 때 월파를 막을 수 있는지, 해수면 상승과 극한강수까지 반영해 충분한 여유를 확보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유일하게 서해안에 입지한 한빛 핵 발전소가 동해안의 발전소보다 낮고 더 위험한지도 같은 방식으로 살펴야 한다. 우리 국토가 동고서저라는 사실만으로 개별 발전소 부지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핵 발전소 부지는 자연지형 그대로가 아니라 성토와 절토를 거쳐 조성되고, 주요 시설마다 표고와 방호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공개된 개괄 자료만으로는 한빛의 안전 관련 시설별 표고, 설계 침수위, 해수면 상승을 고려한 안전 여유를 종합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한빛 부지의 폭풍해일 위험을 분석한 2025년 연구를 보더라도 이곳이 특별히 안전하다거나 취약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연구는 33개의 가상 태풍을 분석한 결과, 발전소 남서쪽의 여러 섬이 가까이 지나가는 태풍의 폭풍해일을 일부 약화해 한빛 부지가 서해안의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발전소에서 다소 떨어진 경로의 태풍이 오히려 더 오랫동안 많은 해수를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결과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파랑과 조석의 상호작용, 해수면 상승, 월파와 침수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Kim et al., 2025). 이는 한빛이 반드시 취약하다는 주장도, 현재의 방호시설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서해의 얕은 수심과 큰 조차는 냉각수와 온배수 문제도 복잡하게 만든다. 조차가 크다는 사실이 곧 냉각수 부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취수시설은 낮은 조위에서도 필요한 물을 공급하도록 설계된다. 다만 조류의 방향과 속도가 크게 달라지고 부유물과 퇴적물의 이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취수 조건과 온배수 확산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한빛 핵 발전소 주변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인근 해역의 평균 수심은 약 10미터이고, 대조기에는 초속 1미터가 넘는 강한 조류가 발생한다. 당시 여섯 기에서 초당 약 355세제곱미터의 냉각수가 주변 해수보다 평균 7.6도 높은 상태로 방류됐으며, 온배수는 조석에 따른 물의 왕복 범위를 넘어 넓게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Suh, 2014). 여기에 두 기를 추가한다면 냉각수 취수와 폐열 방류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누적 영향도 새로 평가해야 한다.
2026년 7월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영광 한빛 부지에 핵 발전소 두 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동시에 부지가 있다고 곧바로 건설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헤럴드경제, 2026). 바로 이 구분이 중요하다. 발전소 건물이 들어설 물리적 공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곳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적합한 부지라는 뜻이 아니다. 추가 건설을 검토하려면 안전 관련 건물과 설비의 정확한 표고, 현재의 설계 폭풍해일과 설계 파랑, 2050년과 2100년의 해수면 상승 전망, 만조·폭풍해일·파랑·집중호우가 겹치는 경우의 침수위, 배수 역류와 월파 가능성을 공개해야 한다. 가장 낮은 조위에서의 냉각수 취수 능력, 해수온 상승과 퇴적물 및 해양생물 유입에 따른 취수 장애, 기존 여섯 기와 신규 두 기의 온배수 누적 영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진해일 위험을 일본 태평양 연안과 똑같다고 볼 필요는 없다. 지진해일은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현상도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규모 피해가 드물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해안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핵 발전소처럼 사고의 결과가 크고 가동기간이 긴 시설은 발생 가능성이 낮더라도 결과가 중대한 위험까지 살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지금 이곳에 지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변화하는 바다와 더 강해지는 복합재난 속에서도 이 시설을 가동하고 안전하게 멈출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6. 기후위기 시대의 핵발전소 건설 판단 기준
앞에서 살펴본 사례와 전망은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 바깥에서 일어나지만 그 영향은 발전소 부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핵반응로 건물만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서 발전소 전체가 안전하게 운전되는 것은 아니다. 핵 발전소가 안전하게 가동되고 정지하려면 냉각수 취·배수시설과 변압기, 송전선로, 비상전원, 접근도로와 통신망이 함께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나 태풍과 홍수, 산불, 폭염과 해수면 상승은 이러한 설비 가운데 어느 하나만 골라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나의 재난이 여러 설비와 여러 호기를 동시에 압박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에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2022년 여름 세 차례의 폭염이 이어지고 강물의 수온이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거나 이를 넘어섰으며, 여러 하천의 유량도 매우 낮아졌다. 이에 따라 뷔제, 골페슈, 생알방, 트리카스탱 핵 발전소에서는 전력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온배수 배출기준을 한시적으로 조정해야 했다. 환경 조건 때문에 줄어든 발전량은 약 0.5테라와트시로 프랑스 연간 핵 발전량의 0.2퍼센트보다 적었다(EDF, 2022). 그러나 이러한 운영 제약은 2022년에 그치지 않았다. 2025년 8월에도 론강 수온 상승으로 뷔제 3호기의 출력을 500메가와트 낮추는 조치가 발표됐다(Reuters, 2025). 2026년 6월부터 8월까지는 가론강과 센강, 론강의 수온 상승과 뫼즈강의 유량 감소로 골페슈, 노장쉬르센, 뷔제, 생알방, 쇼 핵 발전소에서 호기를 정지하거나 출력을 낮추는 일이 잇따랐다(EDF, 2026a, 2026b, 2026c, 2026d). 이 조치들은 핵반응로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온배수와 하천수 이용에 관한 환경기준을 지키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전체의 전력 공급에도 당장 차질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폭염과 가뭄이 심해지는 시기에 핵 발전소 역시 출력을 줄이거나 멈춰야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해안에 자리 잡은 핵 발전소도 자연조건의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5년 8월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 핵 발전소에서는 해파리가 해수 취수시설로 대량 유입되어 여과설비를 막으면서 2·3·4·6호기가 차례로 자동 정지했다. 나머지 두 호기는 이미 정비를 위해 멈춰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부지 전체에서 발전이 중단됐다(EDF, 2026e). 2026년 8월에도 같은 발전소에서 해파리 대량 유입이 되풀이되어 3·4호기가 자동 정지했고, 2호기는 예방 차원에서 정지했으며, 1호기는 출력을 절반으로 낮췄다(EDF, 2026f). 두 사건 모두 안전과 환경에 직접적인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또한 개별 해파리 발생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곧바로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같은 해안 부지에서 취수 장애가 연이어 발생했다는 사실은 해수온과 해류,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냉각수 취수 위험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원자력기구도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가 운영되는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존 핵 발전소의 설계 여유도는 주로 과거의 기상·수문 자료와 경험에 기초해 정해졌지만, 평균기온 상승과 극한기상의 강화, 물 이용 가능성의 변화로 인해 미래를 내다본 적응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기상과 환경의 변화는 출력 감축을 불러오고 때로는 발전소를 정지시킬 수도 있다(IAEA, 2026).
따라서 핵 발전소 건설 여부를 판단하는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환경 논의는 주로 핵 발전소가 기후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핵연료 채굴에서 해체에 이르는 전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 냉각수 사용과 온배수 방류, 해양생태계 교란, 방사성폐기물과 중대사고의 위험을 살펴보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계속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기후와 자연이 핵 발전소의 안전과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는 기업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만이 아니라 기업이 자연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으며, 자연의 변화로 인해 어떤 위험에 놓이는지도 함께 파악하도록 요구한다. 기업의 정보공개 틀을 핵 발전소 안전규제에 그대로 적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달라진 자연이 인간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핀다는 문제의식은 핵 발전소 건설 판단에도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검토해야 할 질문을 〈표 2〉에 정리하였다.
〈표 2〉 기후위기 시대 핵발전소 건설 판단에서 추가해야 할 질문
| 이제까지 주로 검토한 사항 | 기후위기 시대에 추가해야 할 질문 |
| 핵발전소가 기후와 자연에 미치는 영향 | 달라진 기후와 자연이 핵발전소의 안전과 가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
| 과거 관측자료와 최대 기록에 기초한 설계 | 운전기간 동안 예상되는 기후와 해양 변화, 전망의 불확실성과 최악의 경우를 반영했는가 |
| 개별 재난과 개별 호기의 안전성 | 여러 재난의 복합·연쇄 발생과 한 부지의 여러 호기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검토했는가 |
| 핵반응로와 부지 내부 안전설비 | 취·배수시설, 외부전력망, 비상전원, 접근도로, 통신망과 지역 재난 대응체계까지 검토했는가 |
| 건설과 정상 운전기간 | 입지 결정부터 건설·운전·해체·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이르는 전체 기간을 살폈는가 |
| 안전기준 충족 여부 | 출력 감축과 강제정지, 설비 보강, 예비전력 확보에 드는 비용까지 평가했는가 |
| 해당 부지에 건설할 수 있는가 | 같은 비용과 시간으로 마련할 수 있는 다른 발전원보다 안전하고 유연하며 기후재난에 강한가 |
| 전문가와 행정기관의 판단 | 가정과 전망, 잔여 위험과 비용을 공개하고 시민이 선택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
| 자료: TNFD(2023), IAEA(2024), IAEA(2026)을 바탕으로 작성. | |
무엇보다 평가의 시간 범위를 달리해야 한다. 지금 계획하는 핵 발전소는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실제 가동은 2030년대 후반이나 그 이후에 시작될 수 있다. 수십 년의 운전을 마친 뒤에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계속된다. 따라서 부지의 안전성을 판단할 때는 과거 수십 년의 기상 기록만이 아니라 21세기 후반까지 예상되는 해수온과 해수면, 태풍과 폭풍해일, 집중호우와 산불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평균적인 전망뿐 아니라 전망 범위의 상단과 여러 위험이 겹치는 경우도 살펴야 한다.
평가의 공간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 특히 한국의 핵 발전소는 한 부지에 여러 호기가 모여 있다. 여러 호기가 취수시설이나 외부전력망, 접근도로와 방재체계를 공유할수록 하나의 재난이 부지 전체의 안전 여유를 줄일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도 강풍과 외부 침수가 한 부지에 있는 안전 관련 구조물과 계통, 기기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개별 설비가 아니라 부지 전체를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 발전소 자체만이 아니라 주변 전력망과 교통망, 지역의 재난 대응 역량까지 안전성 평가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따로 떼어 보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후재난으로 핵반응로가 안전하게 정지하고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았다면 안전설비는 일단 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폭염이나 태풍으로 전력 수요가 높거나 전력망이 불안정한 시기에 여러 호기가 동시에 정지한다면 전력계통에는 또 다른 부담이 된다. 방벽을 높이고 취수설비와 전기설비를 보강하며 비상전원과 예비전력을 추가로 확보하는 비용도 결국 핵 발전의 비용이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앞으로 들어갈 비용과 출력 감소, 강제정지 가능성을 제외한 경제성 평가는 온전한 평가라고 하기 어렵다.
현재의 허가기준을 충족한다거나 부지에 핵반응로 두 기를 더 지을 물리적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건설의 타당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후전망을 적용했는지, 해수면 상승과 폭풍해일이 함께 일어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취수구가 막히거나 외부전원이 끊기고 접근도로까지 사용할 수 없을 때 여러 호기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필요한 보강 비용과 사고 뒤에 남는 위험까지 밝히고, 같은 시간과 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는 다른 대안과 비교해야 한다.
핵 발전이 저탄소 발전원이라는 사실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필요한 시간 안에 건설할 수 있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며,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변화하는 전력계통에서도 다른 발전원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제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분명히 추가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동안에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발전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7. 맺으며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핵 발전은 저탄소 전원이라는 이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적다는 사실만으로 핵 발전이 기후위기 대응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핵 발전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라는 익숙한 질문을 뒤집어, 기후변화가 핵 발전소의 안전과 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다.
핵 발전소는 막대한 양의 냉각수와 안정적인 외부환경을 필요로 한다. 기온과 수온이 오르면 발전효율이 떨어지고 출력 감축이나 가동 중단이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수온이 전 지구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일부 핵 발전소에서 설계해수온도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핵 발전소는 모두 바닷가에 있어 하천 유량 감소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 대신 해수온도와 해수면 상승, 태풍과 폭풍해일, 높은 파도와 해안 침식, 해양생태계 변화에 직접 노출된다.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2022년 울진 산불은 핵 발전소의 안전이 발전소 내부 설비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냈다. 태풍으로 외부전원이 끊기고 여러 호기가 동시에 정지했으며, 산불이 송전망을 위협하자 한울 핵 발전소 여러 호기의 출력을 낮춰야 했다. 두 사건 모두 중대사고나 방사성물질 누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핵 발전소의 안전과 가동이 외부전원과 송전선로, 주변 산림과 접근도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위험은 소수의 부지에 여러 핵반응로가 밀집한 우리나라에서 더욱 커진다. 기후위험은 재난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만이 아니라 노출 정도와 시설의 민감성, 대응하고 복구할 수 있는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다수호기 입지가 태풍이나 산불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를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재난에 동시에 노출되는 핵반응로와 부대시설의 수를 늘린다. 여러 호기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면 한정된 인력과 장비를 나누어 투입해야 하므로 대응도 어려워진다. 기존 기반시설과 운영조직을 함께 활용해 비용을 낮추는 데 유리한 밀집 구조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안전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핵 발전소의 기후위험을 호기별로 따로 평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여러 호기와 외부 기반시설을 포함한 부지 전체의 위험을 함께 살펴야 한다.
프랑스에서 폭염과 높은 하천 수온, 해파리의 대량 유입 때문에 핵 발전소 출력을 낮추거나 여러 호기를 정지한 사례도 핵 발전소의 안정적인 가동이 자연조건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들이 모두 중대사고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변화한 기상과 수문, 해양생태계의 조건에 맞추어 발전소의 출력과 운영방식을 조정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기후변화에 취약하지 않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
핵 발전소 건설은 수년의 계획과 건설기간, 수십 년의 가동기간을 거쳐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결정이다. 지금 계획하는 핵 발전소는 21세기 후반의 기후조건에서도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안전성 평가를 과거의 기상과 해양 관측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기후변화 전망과 복합재난, 여러 호기가 한 부지에 집중되면서 생기는 위험, 외부 기반시설의 취약성, 기후적응과 복구에 필요한 비용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핵 발전소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만이 아니라, 변화한 자연환경이 핵 발전소의 안전과 가동에 미치는 영향도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평가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어떤 기후전망을 적용해 설계기준을 정했는지, 기후변화로 출력 감축과 가동 중단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 안전설비와 해안 방호시설을 보강하는 데 얼마가 드는지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같은 비용과 시간으로 에너지 효율 향상과 수요관리,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저장장치에 투자할 경우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교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핵 발전 확대의 명분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핵 발전소가 달라진 자연조건 속에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이전보다 훨씬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정책은 저탄소라는 하나의 속성만이 아니라 안전성과 회복력, 경제성, 건설에 필요한 시간과 더 나은 대안의 존재를 함께 살펴야 한다. 핵 발전소를 더 짓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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