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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 오오! 고로군, 어서와요.
고로 어제, 상해 드래곤 이야기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 천만에요. 자네가 갑자기 태극권은 그만두고 소림권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는 깜짝 놀랐지만, 실은 나도 말이지요, 지금은 태극권 전문이지만 젊었을 때에는 소림권도 했었답니다. 그것을 자네가 이어가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기쁜 일이겠지요.
고로 이전에 태극권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자주 손에 말아 쥔 잡지등으로 머리를 '딱! 딱!' 얻어맞았는데 어제는 그런 일도 없어서 솔직히 말해 정말 즐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 그런 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우후후후...
선생 '그런 식으로 가도 좋겠구나' 하고 나도 생각합니다. 우후후후... 그럼, 어서 자세서기 연습부터 시작해 볼까요?
고로 선생님, 연습은 상해 드래곤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하면 안될까요?
선생 드래곤 이야기는 벌써 끝났잖아요?
고로 또 한사람의, 중요한 드래곤을 잊으시지는 않았습니까?
선생 글쎄?
고로 천진에서 상해로 가 서양레슬러나 일본인 유도가와 싸운 그 드래곤 말입니다.
선생 자네, 혹시 정무문의 곽원갑을 말하는?
고로 그, 그렇습니다. 꼭! 그 이야기를!
선생 그사람은 드래곤이 아닌데요?
고로 엣? 그럼 무엇입니까?
선생 타이거입니다.
고로 설마 타이거마스크?
- 딱! -
고로 끄윽! 서, 서선생님! 또 때리시다니... 게다가 오늘 잡지는 꽤나 두꺼운데요?
선생 오! 이것은 '세계의 거대유적'시리즈였군요. 보통은 '선데이 서울' 정도였습니다만, 하지만 그만큼 손목으로 힘조절을 충분히 했으니까 안심해요. 어디까지나 자네의 머리를 식혀주기 위함이니까요.
고로 선생님, 어째서 곽원갑이 타이거인거지요?
선생 곽원갑은 말이지요, 원래부터 건강이 나빠 안색이 노랬답니다. 그래서 '황면호(黃面虎)'라 불리었지요. 나는 간장계통의 병이 있었지않았나 생각합니다만 기공을 지나치게 해서 '폐병'에 걸렸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고로 선생님, '황면호'라면 직역하면 '옐로 마스크 타이거' 가 됩니다!
선생 과연!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군요.
고로 곽원갑은 너마나 강해서 그 때문에 결국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선생 그 부분은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까, 다음 기회에 합시다.
고로 그럼, 곽원갑은 약했던겁니까?
선생 또 그런 식으로 말하는군요. 곽원갑은 말이죠, 진짜로 강했답니다. 애초에 상해에 불려오게 된 것도 천진시대부터 호걸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천진에서 의화단이 일어났을 때, 중국인 크리스트교도들 이 곽원갑에게 도움을 청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곽원갑은 단신으로 의화단에 쳐들어가 그 수령을 한칼에 쓰러뜨렸지요. 그 뒤로 각지의 영웅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점점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고로 그럼, 역시 너무 강해서 일본인에게 독살된 것입니까?
선생 그러니까 말이죠, 그게 아니예요. 곽원갑은 강했다, 때문에 상해 일본인 구역에 있던 유도가가 그 무명을 듣고 교류를 청해왔다, 곽원갑은 그 요청에 응해 우호적으로 상대를 했다, 그런 것입니다.
고로 그럼 일본인 유도가와 시합을 한 것은 사실이군요?
선생 정무체육회 창립자인 진공철이 기록을 남겼으니까 틀림 없습니다.
고로 엣? 정무문의 창립자는 곽원갑이 아니었나요?
선생 그것도 흔히 오해되는 이야기이지요. 1909년 3월, 곽원갑을 상해로 부른 것은 진공철을 시작으로 하는 상해의 재벌 2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곽원갑을 위해 처음에는 '정무체조학교'를 만들었지만 창립 후 얼마 안있어 곽원갑이 병사했기 때문에, 일단 그 학교형식의 사설도장을 해산하고는, 다시 '정무체육회'를 만들었지요.
고로 그것이 흔히 말하는 정무문입니까?
선생 그래요. 애국자였던 권호, 곽원갑의 정신을 잇는다며, 정면에 그의 사진을 걸어두었지요.
고로 그것은 선생님의 '중국무술사대관'에서 보았습니다. 상당히 강해 보이더군요, 그 사진.
선생 그것이 여기저기로 흘러가 가장 널리 보급된 것입니다만 맨얼굴은 이쪽 것이 더 알아보기 쉬울겁니다.
고로 엣? 이런 사진도 있었나요?
선생 어때요? 중국잡지에 실려있던 것입니다. 인쇄가 선명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지만, 이것이 과연 권호인가 생각될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이지요?
고로 이쪽 곽원갑은 모자를 안쓰고 있네요?
선생 변발차림이지요. 신시대에 싣기에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다지 쓰여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고로 그러고보니 보급사진은 복장도 회화적인 터치가 느껴졌습니다.
선생 모자를 쓴 사진도 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 초상화같은 확대사진은 다소의 손질이 가해졌다고 생각됩니다. 단체 이름도, 사실 '정무문' 같은 옛날식 호칭법을 쓰면 안됩니다. 이 시기는 신해혁명 직전으로 함부로 무술결사를 만들었다가는 정부로부터 감시당했지요. 한편, '체조'나 '체육'은 일본에서 들어온 최신식 유행어였습니다. 때문에 '정무체육회' 라고 하는 명칭을 걸고 전통적인 무술에서 근대적인 스포츠까지 무엇이든 가능하도록 한 것이지요.
고로 스포츠클럽같은 것이었군요?
선생 그래요. 근대적인 스포츠클럽이었던 덕에 정무체육회는 정치적인 격동을 살짝 비껴갈 수 있었지요. 전쟁과 내전으로 박살이 난 중앙국술관과는 그 점에서 운명을 달리한거지요. 정무체육회는 청말에 성립되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중국 유일의 민간조직이 아닐까요?
고로 매우 드문 존재라는 말씀이군요?
선생 그렇지요.
고로 그 창립자의 한사람인 진공철이 남긴 기록이란 어떤 것입니까?
선생 이런 것입니다.
고로 오호, 진공철 '정무회오십년'(홍콩, 중앙정무회)군요? 이 속에 유도가와의 시합이 묘사되어 있겠군요?
선생 일본인은 곽원갑의 명성을 듣고 초대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시합을 하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한다, 저렇게한다 등의 중일무술비교토론을 하는 사이에 결국은,
"그럼, 한 번 보여주십시오."
하게 되버린 것이지요.
고로 실전적인 교류였습니까?
선생 처음에는 문인들끼리 교류를 했습니다. 곽원갑의 문인에서는 유진성이라는 표국출신의 무술가였습니다. 상당히 실전적인 시합경험이 있었던 듯 합니다. 진공철은 '일본인은 먼저 상대를 밀어 상대가 이것에 저항하여 되밀 때 그 힘을 이용해 발을 배에 대고 자기 몸을 뒤쪽으로 쓰러뜨리며 내던지려 했다' 고 기록했습니다.
고로 선생님, 그 기술 혹시 巴投 아닙니까?
선생 그렇습니다. 유도에서 뒤로 낙법하듯이 하면서 하는 기술이죠. 유도를 몰랐던 진공철이 정확하게 유도의 움직임을 표현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선생 유진성은, 상대가 밀 때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끌어당기는 순간에도 딱 자세를 낮추면서 양발로 버텼습니다. 그 때문에 완전히 巴投가 봉쇄되었습니다. 유진성의 승리였지요.
고로 곽원갑은 하지 않았습니까?
선생 다음에 맞붙은 것이 곽원갑과 일본인 사범이었습니다. 우호적인 시합이니까 권법으로 치고받지는 않았고 이것도 바로 맞잡은 솔각형식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이 무렵의 무술가는 권법과 함께 솔각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일본인은 오른발을 곽원갑의 오른발 뒤에 걸고 상반신으로 뒤쪽으로 눌러 원갑을 넘어뜨리려했다'고 써 있습니다.
고로 그 움직임은 大外刈군요, 선생님.
선생 이 때, 일본인이 체중을 거는 것보다 조금 먼저 원갑은 상대를 내던졌습니다. 유도식으로 말하면 大外返입니다. 일본인은 방 밖으로 내던져져 베란다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우호적인 교류를 할 셈이었으나 아쉽게도 부상자가 발생해 유쾌한 결말은 되지 못했다'고 진공철은 안타까와 했습니다.
고로 우음, 그런 것이었습니까? 교류정도라고 하면서 꽤 격렬한 시합이었네요. 그런데, 이 때 패한 복수로 독살했다고 써있지는 않습니까?
선생 없습니다. '지병이 악화되어 중국홍십자회병원에 입원, 2주후 사망했다'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고로 그런데 왜 독살이라는 말이 퍼진걸까요?
선생 한가지는 병사한 것이 시합 후 바로 얼마 뒤였다는 점. 곽원갑은 상해로 나갔으나 반년만에 죽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후에 일본군이 상해를 침략했을 때 정무회 건물이 폭격에 파괴되거나 일본군에게 접수되거나 했습니다. 그 한이 곽원갑의 독살사건이라는 새로운 전설을 탄생시켰던 거지요.
고로 전쟁의 한이 배경이었다면 좀처럼 독살전설도 사라지지 않았겠네요.
선생 나는 일본인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어떻해든 진상을 확인해 알리고 싶어 기회있을 때마다 노력을 하고있습니다만 전설을 뒤집는 것은 상당히 어렵더군요.
고로 브루스 리의 '드래곤, 분노의 철권' 도 곽원갑이 암살되자 제자인 진진이 복수를 맹세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선생 그 영화, 원제는 바로 '정무문'이었지요. 실은 그 영화덕에 독살전설이 현대중국인 세계에 급속히 흡수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최근 중국에서는 가공의 주인공 진진의 전기까지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고로군, 여기에서 브루스 리의 이름같은 것은 꺼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고로 선생님은 브루스 리의 영화가 싫으십니까? 저로서는 브루스 리를 또 한사람의 드래곤으로서 선생님과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만... 브루스 리는 진년 진시에 태어나 중국예명을 이소룡이라고 합니다. 진짜 드래곤이라구요!
선생 알고 있습니다. 실은 나도 그를 아주 좋아합니다. 브루스 리라고 하면 이야기를 멈출 수 없게 되버립니다. 수련시간이 없어져버린다구요.
고로 웃! 그, 그거 큰일이군요. 그럼 선생님, 이렇게 하죠?
선생 어떻게?
고로 여기에서 브루스 리 퀴즈를 하는겁니다.
선생 퀴즈?
고로 예. 서로 브루스 리에 대해 알고있는것을 질문해 시합하는겁니다. 선생님이 이기면 연습, 제가 이기면 이론연구입니다.
선생 몇 판 승부죠?
고로 시간도 아깝고하니... 선생님, 남자답게 3판승부가 어떻겠습니까? 서로 3개씩만 문제를 내는겁니다.
선생 좋아요. 그럼 시작할까요? 첫 번째 질문을 해보세요.
고로 선생님께 드리는 첫번째 문제! 브루스 리는 몇 살 때 스크린에 등장했을까요? 참고로, 브루스 리는 1940년생입니다.
선생 후후후... 너무 쉽군. 브루스 리의 데뷔작은 분명 '세로상(細路祥)' 이라는 영화로, 6세 때입니다.
고로 땡~ 아깝습니다. 사실은 갓 태어난 생후 3개월 때 영화에 등장했답니다. '금문녀(金門女)', 다시말해 '골든게이트 여자'라는 영화입니다.
선생 우우우... 그렇게 어렸을때라면 쿵푸바지도 입을 수 없었을 텐데...
고로 어머머~ 선생님, 당연히 기저귀지요. 오줌도 쌌구요.
선생 자, 자네는 그러고도 팬인가!
고로 선생님의 첫 번째 질문 부탁합니다.
선생 고로군에게 내는 첫번째 질문! 브루스 리가 창시한 절권도의 극의를 말해보십시오.
고로 선생님, 어려운데요?
선생 후후후... 모르겠죠?
고로 무법을 법으로 하고 무한을 한계로 한다!
선생 우우우... 저, 정답입니다!
고로 선생님께 드리는 두번째 질문! 브루스 리는 몇살 때 죽었습니까?
선생 후후후... 사망한 것은 분명 1973년, 태어난 것은 아까 고로군이 말했지요? 1940년. 그럼 1973 - 1940 = 33세입니다. 어때요? 나의 이 명쾌한 해답!
고로 땡~ 아깝습니다! 브루스 리가 죽은 것은 7월20일, 아직 생일 전이므로 32세입니다! 참고로 생일은 11월 27일입니다.
선생 우우우... 그럼 말이죠, 고로군에게 내는 두번째 질문. 절권도는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정확하게 답해요!
고로 선생님, 어렵다니까요, 문제내는 방식이......
선생 후후후... 자네는 최근 중국어는 좀 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만 영어는 여전한가보죠?
고로 Fist of Intercept(피스트 오브 인터셉트)!
선생 어, 어떻게 그것을!
고로 보다 엄밀히 말하면, 'The way of the Intercepting Fist' 입니다.
선생 우우우......
고로 선생님, 마지막 문제를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절대 답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겁니다만.
선생 무엇입니까?
고로 싱가포르에서는 브루스 리 주연영화 제 2탄, 정무문이 상영전부터 대호평이어서 정가 2달러의 입장권에 터무니없는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 자, 과연 얼마였을까요?
선생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로 선생님, 아무리 게임이지만 성실하게 답해주십시오!
선생 백배인 200달러정도?
고로 싱가폴에서는 70년대 초반의 서민이 보았습니다. 조금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주세요!
선생 대체 얼마였나요?
고로 45달러였습니다.
선생 우우우... 그럼 말이죠, 나도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내지요. 고로군에게 내는 세번째 질문! 브루스 리가 미국으로 혼자 이주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가려하자 아버지가,
"잠깐만, 얘야!"
하고 불렀습니다. 브루스 리가 뒤돌아보자 아버지는,
"아니다. 됐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질문입니다. 아버지는 왜 헤어질 때 불렀던 것일까요?
고로 그야 헤어지는게 아쉬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선생 땡~ 틀렸습니다!
고로 그럼, 정답은?
선생 이때는 말이죠, 자식에게 잠깐 뒤돌아보게 하려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자신의 장례 때 돌아와준다는, 다시 말해 자식이 문에서 뒤돌아 보지않고 떠나면 아버지의 장례식때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미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자면, 아버지 이해천이 죽은 1965년, 브루스 리는 자신의 가족들을 이끌고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로 헤에, 그랬군요? 하지만 퀴즈 결과는 선생님이 1승 2패, 제가 2승 1패입니다. 제가 이겼으니 오늘은 이대로 브루스 리에 대한 이론연구를 하지요?
선생 그러지요. 실은 말이죠, 고로군. 연습회에서는 내가 쿵푸영화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답니다.
고로 그렇죠? M군은 브루스 리의 중국명조차 모른다니까요.
선생 그랬군요, 그녀석.
고로 선생님, 브루스 리는 배우로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만 무술가로서는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 무술가로서도 일류였다고 생각해요.
고로 그럼 세계에서 제일 셌다는 말씀?
선생 아니오. 그 점은 뭐라 단언할 수가 없어요. 일류라는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니까요. 일류 무술가는 홍콩에도, 미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브루스 리가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영화에 등장하기 전부터 브루스 리는 무술가로서 자립했었고 무술가로서 유명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아무리 소년시절에 홍콩에서 영화에 출연했다고는 해도 미국에서 중국인인 자신이 은막의 스타가 되리라고는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을겁니다.
고로 1964년 롱비치의 가라테대회에 초대되어 거기서 보인 시범이 계기가되어 영화에 스카우트 되었다지요?
선생 맞습니다.
고로 그런데 선생님, 절권도란 무슨 뜻입니까?
선생 어라? 아까 직접 인터셉트라고 대답했잖아요?
고로 단어 자체는 번역할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까지는 잘 모르거든요.
선생 미국의 무술전문지인 '블랙벨트'의 기자가 인터뷰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했었요. 린다부인의 회상록 중에서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고로 린다부인의 회상록이라면...?
선생 '브루스 리, 나만이 알던 남자'('BRUCE LEE : THE MAN ONLY I KNEW' WARNER BOOKS 1975)말입니다.
고로 무엇이라 답했나요?
선생 브루스 리가 자기 지갑을 던진 이야기이지요. 모르나요?
고로 아아, 그 이야기라면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 지갑 속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있었을까요?
- 딱! -
고로 끄으!
선생 그 때의 대화는 말이죠, 하나의 훌륭한 선문답(禪問答)이었다고 봐도 좋을겁니다. 브루스 리는 '절권도(截拳道)'의 한자 설명부터 시작했지만, 전체문답의 결말만 요약해 말해보지요.
고로 예, 가장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 주십시오.
선생 '블랙벨트'지 기자, 맥스웰 플러드가 물었습니다.
"피스트 오브 인터셉트란 무엇입니까?"
그 말이 나온 순간, 브루스 리는 '휙!' 자기 지갑을 던졌습니다. 플러드는 무의식적으로 그 지갑을 양손으로 받았지요.
"그 움직임이 절권도입니다!"
브루스 리는 쓸데없는 움직임이나 보이기 위한 형식을 싫어했지요. '단순하고 직접적인 움직임', 그것이 절권도의 극의입니다.
고로 사전에 '인터셉트란 도중에 저지하는 것을 말한다'고 나와있습니다. 한마디로 차단한다는 뜻이겠지요? 이것이 가장 이해가 안갑니다.
선생 또 한 개의 군사용어가 나와있을겁니다. 이 사전을 보세요.
고로 군사용어? 아, 혹시 이것 말씀이십니까? '요격기'라고 나와있는데요?
선생 예를 들어, 상대국에서 적기가 나타나 수도를 노릴 경우 가장 먼저 기지를 날아올라 직격하는 것이 인터셉트입니다. 무술적으로 말하면 기선을 제압해 가장 필요한 것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이루도록 하는 것이지요.
고로 듣고보니 단순한 것이었네요.
선생 극의라는 것은 단순한 것입니다. 그러나, 브루스 리는 그것을 언제나 자기 몸으로 표현했지요. 이것이 다른 무술가들과의 차이점입니다.
고로 아까 퀴즈에서 답했던 '무법을 법으로 하고 무한을 한계로 한다' 도 절권도 마크에 새겨져 있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하니까 단어 자체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브루스 리의 생각까지는 잘 파악이 안됩니다.
선생 브루스 리는 일찍이 도장 현관 밖에 묘비 스타일의 간판을 내걸었답니다. 원문은 잊어버렸지만 분명, '옛것에 얽매여 괴로워한 어제의 나여, 안녕' 이란 의미였습니다.
고로 유명한 말이라 영어 원문을 노트해 둔 것이 있습니다. 여기, 보여드릴께요.
선생 이것과 같은 의미예요. 다시 말해, '무법을 법으로 한다'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같은 자질구레한 법칙은 없다. 법칙이 없다는 것이 나의 법칙이다'라는 뜻이지요.
고로 간단히 말해, '법칙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는 뜻인가요?
선생 그렇지요.
고로 '무한을 한계로 한다'는요?
선생 이것은 앞의 말과 같은 종류로 이해하면 될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제한이 없다는 것을 우리의 제한으로 하자' 는 것이지요. '이 세상 모든 것은 규칙도 제한도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입장에서 '없다' 고 이해했을 때 비로서그 본질을 붙잡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무(無)도 유(有)로 화(化)한다' 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고로 한계는 없으나 기필코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은 안될까요?
선생 그런 의미도 있을겁니다. 브루스 리의 독서력을 보면 나폴레옹 힐같은 자기계발(自己啓發)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장래의 꿈을 단어로 해서 문자로 써 나타내는 것도 했습니다. 미국식 자기개발법이나 소망실현법 등, 흔히 말하는 '성공철학' 을 실천해 갔다는 이야기지요.
고로 왠지 권법의 극의가 아니라 인생철학에 가깝네요.
선생 바로 그렇습니다. 브루스 리는 말이죠,
"자신의 형만을 모방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절권도의 사고방식을 먼저 이해했으면 한다. 절권도란 우리를 해방시키는 방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창조적인 개체이다. 때문에, 창조성은 과거에 규정된 어떠한 스타일이나 시스템보다도 소중하다."
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고로 '부르스 리 짓쿤도'(복창당 1995년)를 읽어보면 제자인 댄 이노센트가 '절권도는 콘셉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것을 '절권도에서는 기술 하나하나보다 발상법 쪽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선생 그 책은 브루스 리의 무술에 초점을 둔 아주 좋은 책이지요. 절권도의 발상법이 먼저 있기에 절권도의 기술이 있다, 때문에 아무리 영화 속의 브루스 리 흉내를 낸다해도 절권도의 극의에 가까워 질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영화는 허구가 대거 섞여있지요.
고로 말하자면, 절권도의 발상법을 터득하면 어떤 기술이라도 절권도가 된다?
선생 그래요. 댄 이노센트는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브루스 리에게 역영향을 주었을 정도의 무술친구입니다. 절권도 성립에도 중요한 열쇠가 된 당사자이니까 우리들처럼 바깥에서부터의 이해가 아닌 절권도를 원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좋겠지요.
고로 절권도는 전통적인 중국무술과는 전혀 다르지요?
선생 절권도는 말이죠, 내가 보기에는 미국무술입니다. 브루스 리가 그때까지 갖고있던 동양적 교양과 무술이 미국의 대륙문화, 그리고 자유로운 풍토와 만나 꽃을 핀 거지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로 그러고보니, 아까 '브루스 리 지쿤도'에 나온 에피소드 말입니다만 절권도를 확립했을즈음, 댄 이노센트가 절권도의 광동어 발음인 '짓쿤도' 를 미국풍으로 'J.K.D' 라고 요약하자 브루스 리는 그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 항상 'J.K.D, J.K.D' 라 했다고 합니다. 그 쪽이 단순한 무술을 넘어선 콘셉트에 어울리는 호칭법이라는 이야기겠지요?
선생 과연 그렇군요.
고로 이렇게 보고나니 브루스 리의 무술적 사상은 꽤 높은 레벨이었던 것같네요. 하지만 선생님, 일단 사상성은 무시하고, 이번에는 브루스 리의 무술을 말이지요, 기술적으로 분석 안해보시겠습니까?
선생 오오, 바라는 바입니다.
고로 브루스 리의 무술적 기초는 영춘권이지요?
선생 네. 남파 소림권 중에서도 전형적인 단타이지요. 검도로 치자면 소도 즉, 작은 칼로 싸우는 유파입니다. 투로 즉, 연습용 형은 단 3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동작이 단순해 보기에도 재미가 없어요. 나중에는 영춘권 독특의 목인상을 상대로 파고들기, 이동과 함께 찌르기를 단련합니다. 그리고 사람끼리 단련하는 대련이 많습니다. 좁은 간격에서도 쳐 넣는 꽤 실전적인 권법입니다.
고로 최소의 움직임으로 싸운다는 절권도의 원칙은 바로 영춘권에서 비롯된 것이군요?
선생 절권도의 원류는 분명 영춘권입니다. 그러나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오클랜드로 가 도장을 열었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났지요. 그것을 계기로 브루스 리의 무술은 완전히 변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그 시점에서부터 브루스 리의 영춘권은 영춘권이 아니게 되었다고 봐도 좋겠지요.
고로 선생님, 그 사건이라는 것이 소문의 그 타류시합입니까? 브루스 리가 중국의 비술을 외국인에게 가르친다며 그것에 반발한 차이나타운 무술계가 도전장을 보냈다는...
선생 글세요, 차이나타운 무술계 전체의 뜻같은 것은 아니었을겁니다. 나는 그 당시인 60년대 후반에 잠시 미국을 방랑하며 각지의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차이나타운 내 YMCA에 머무른 것 뿐으로 무술도장을 들러본 적은 없었습니다만 LA에서는 차이나타운의 소림권도장을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인들도 함께 화기애애하게 수련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입구에서 서서 견학을 하고 있어도 조금도 뭐라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에게는 가르치지 마!'라고 해도 오히려 자신들이 외국인인걸요.
고로 그럼 타류시합은 없었다?
선생 아니, 전형적인 타류시합이었지요. 도전장을 갖고 와 브루스 리를 협박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뭐, 말하자면 일종의 구역다툼이었지요. 브루스 리가 도장을 열자 자신들이 곤란하게 되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던게 아닐까요?
고로 그 때, 도전자의 이름이 왕걸문이었다죠?
선생 린다부인의 회상록에는 그렇게 나옵니다만 한자로는 황걸문(黃傑文)인지 왕걸문(王傑文)인지 모릅니다. 황(黃)과 왕(王)은 북경어로는 발음이 명확하게 틀리지만 광동어로는 똑같거든요?
고로 백학문의 달인이라던가...
선생 홍콩에서 온 백학권 청년이라고 씌어져 있지요.
고로 홍콩 백학문이라면 선생님이 좋아하는 유파가 아닙니까?
선생 그래서 말이지요, 유파명칭은 꺼내고 싶지 않습니다. 진짜로 백학문이었는지 아닌 지는 소문이었을 뿐 확인된 적은 없으니까요.
고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 때의 싸움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재현해 보고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선생 음. 좋지요. 내가 브루스 리, 자네가 왕걸문을 하세요.
고로 ...선생님, 오늘은 꼭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선생 웃, 뭡니까?
고로 오늘만큼은 꼭! 제게 브루스 리를 시켜주십시오!
선생 그러지요, 뭐.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고로 그럼 제가 브루스 리, 선생님이 왕걸문입니다.
선생 나는 그 장소에 있었던 산증인, 린다 리 부인입니다.
고로 그런 법이~!!!
선생 그 때 린다부인은 임신 8개월, 뱃속에는 드래곤 2세 브랜든이 있었습니다. 브랜든은 자네도 알다시피 영화촬영 중 공포탄과 바뀐 실탄에 맞아 최후를 마쳤습니다. 드래곤 주니어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 드래곤의 타류시합에 참석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시작한거지요. 그러나 아직 젊고 남편을 신뢰했던 린다부인은 이제부터 싸움이나 다름없는 시합이 시작하는데도 조금도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은 듯 합니다. 대단하지요? 때문에 내가 이미지하고픈 여성입니다.
고로 하~, 마음대로 하세요.
- 딱! -
고로 끄윽!
선생 빨리 집중하지 못하겠나~! 왕걸문이 자세를 잡고있잖은가~!
고로 옛! 저는 먼저 영춘권 특유의 자세입니다. 양손을 내밀어 가슴 앞에두고 팔꿈치를 낮추며 옆구리를 조이고 눈을 번쩍이며 상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도전장을 보자 오랫만에 머리 속에 피가 치솟아 그냥은 절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
선생 음. 이렇게 되면 선수필승(先手必勝)이지! 팍팍 찔러나가요!
고로 옛! '퍽퍽' 하며 2~3발, 짧은 연속찌르기입니다. 어, 선생님! 상대가 곧장 물러나버리는데요?
선생 그거야! 그걸 놓치지 말고 쫓아들어가!
- 딱! -
고로 끄으!
선생 어서 한발, 쳐!
고로 치려고는 합니다만 상대가 도망만 치는 탓에 좀처럼 찌르기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오히려 안타까운 지경입니다.
선생 상대가 도망치는 것보다 더 빨리 쫓아가면 되잖아! 어서 찔러넣어!
고로 앗, 드디어 상대가 뒤를 보이며 완전히 도망치고 있습니다!
선생 이제 기술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붙잡는거다!
고로 옛! 와락 달려들어 잡고 넘어뜨려 제가 상대의 배 위에 올라타고 앉았습니다.
선생 그거다! 얼굴에다 한발 먹여!
고로 선생님, 상대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제 승리입니다.
선생 시끄러워! 기회니까 마구 갈겨!!
고로 하지만, 홍콩을 떠나게 된 최후의 타류시합에서도 이렇게 마구 갈기고 발로 차서 결국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홍콩에서 도망치듯 미국에 건너온게 아닙니까?
선생 음, 그랬지요. 미국에서 경찰이 개입되면 큰 곤욕이지요.
고로 예, 그래서 저는 걸문의 얼굴에 주먹을 내밀고,
"어때? 졌지?"
하고 물었습니다.
선생 음, 그쯤에서 그만하길 원한거겠죠? 그런데, 걸문이 '졌다' 고 말했을까요?
고로 예! 2번이나 확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30초내로 끝낼 셈이었는데 2, 3분이나 걸리고 말았습니다.
선생 헉헉대며 숨도 헐떡이고 있구요.
고로 제 스스로도 정말 안타깝습니다.
선생 그런 식으로 자네의 움직임은 린다부인의 회상록 그대로입니다. 그때 남편(브루스 리)은 자신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고 써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대결은 상대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을 노려 기술을 거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크게 움직여 피할 때, 도망갈 때, 가만히 서서 단타를 내지르는 영춘권으로는 전혀 맞출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영춘권 스타일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고로 브루스 리는 그 때 영춘권을 부정하고 자유롭게 된거군요?
선생 부정하고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니라 뛰어넘어 자유롭게 된 것이지요. 때문에 손기술은 그대로 영춘권의 정수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고전적인 영춘권이 아닌 브루스 리 독자의 단타, 바로 절권도의 일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말이죠, 브루스 리 자신의 권법교본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영춘권 스타일 그대로 연무한 초기 설명사진과 후에 댄 이노센트를 상대로 연무하는 사진입니다. 이렇게 대조해 본 내 연구노트를 보세요.
고로 상황도 기법도 똑같은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군요? 복장까지도 초기 것은 구식 쿵푸 스타일입니다만 후기 사진에서는 오히려 복싱같은 맛이 납니다.
선생 같은 기술이라도 고전적인 형에서 해방 되어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지요. 걸문과의 결투 후, 남편(브루스 리)은 무엇이든지 급속히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린다부인은 회상했습니다.
고로 그럼 절권도를 기술적으로 볼 때 한마디로 뭐라하면 좋을까요?
선생 손기술은 소가식(小架式), 발기술은 대가식(大架式)이라 할 수 있겠지요.
고로 손기술은 영춘권을 기본으로 하면서 거기에 복싱 등을 가미한 듯 보입니다만 발기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선생 중국의 북파 소림권,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 등입니다.
고로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어딘가에 쓰셨던 것 중에 선생님의 사조부께서 브루스 리에게 발기술형(型)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었지요?
선생 나의 소림권 사조부인 소한생이라는 분은 말이죠, 광주 정무회의 대선배로 홍콩으로 가 무협스타가 되었습니다. 영화 '정무문'에서 악역을 한 석견(石堅)의 사형이지요. 브루스 리는 이 두사람을 '작은 아버지'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을 때 소한생 선생에게 차차차 스탭과의 교환지도로 '절권(節拳)'이라는 발차기 중심의 화려한 소림권 형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정무문의 기본형이지요. 나도 좋아하는 형으로 한 때는 열심히 연습했답니다. 이전, '소림권입문(일동서원 1979년)' 을 통해 소개도 했지요.
고로 그럼 브루스 리는 진짜로 정무문의 소림권을 배웠으며 선생님과도 연줄이 있다?
선생 연줄이 아주 없지는 않지요. 브루스 리는 몇년 뒤, 홍콩에 돌아왔을 때 소한생 선생에게 '아직도 하고 있답니다' 라며 절권을 연무해 보였다고 합니다. 브루스 리의 유품사진에서도 절권을 연무하고 있는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고로 그럼 발기술의 원류는 절권입니까?
선생 사권의 '삼불락지(三不落地)'라는 삼연속 차기법에도 능숙했지요. 이것은 한발로 톡톡 스탭을 뛰면서 공중에서 연속적으로 3번 차는 연습법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절권도 삼불락지도 부루스 리에게는 연습법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요. 절권도의 무술적 발기술은 '뛰어들어가며 옆차기', '뒤돌려차기'가 주체로 직접적으로는 태권도의 호쾌한 실전적 발차기를 차입한 것이라 봐야겠지요.
고로 다시 말해 절권(節拳)도, 사권도 부정하고 태권도로 간 것이군요?
선생 아니오. 호쾌한 발차기 사이사이에 보이는 스마트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속에 절권과 삼불락지의 에센스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마치, 손기술에 영춘권의 에센스가 남아있듯이 말이지요. 때문에 이 경우도 옛것을 부정하고 자유로이 된 것이 아니라 옛것을 승화시켜 자유로이 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고로 다시 한 번 절권도를 정리해보면 '손은 작게 쓰고 발은 크게 쓴다', 혹은 '손은 예리하게 발은 호쾌하게' 라는 것이 될까요?
선생 한마디로 소가(小架)와 대가(大架), 단타(短打)와 장타(長打)를 겸비한 종합권법이 된 것이지요. 게다가 임기응변, 형에 얽매이지 않는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임에 틀림 없음!
고로 선생님! 너무 멋져요!
선생 그런데 브루스 고로군, 자네 아까 홍콩 최후의 타류시합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분명 브루스 리의 인생을 좌우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고로 그 시합에서 상대의 이빨 한 개를 부러뜨렸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선생 린다부인의 회상록에요. 그 날 브루스 리의 일기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그러한 내용이 적혀 있지요.
고로 엣? 그런 일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적혀있나요?
선생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1958년 5월 2일.
상대 : 용지중(龍志中)의 문인(수련경력 4년).
결과 : 승리(그녀석은 기절했고 이가 한 개 빠졌다. 그러나, 나도 얼굴에 한방 맞아서 눈주위가 까맣게 되었다).
장소 : 연합도(聯合道)(구룡성).'
고로 우와아! 1958년이라면 18세때군요?
선생 아직 생일 전이니까 17세가 아닌가요? 우후후후...
고로 아, 그런가? 선생님도 꽤 날카로와지셨는데요? 쿠후후후... 그런데, 선생님, 웃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격렬히 치고받은 시합이었다는 소리 아닙니까?
선생 브루스 리의 동생이 한 증언에 따르면 이 시합은 구룡성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서 벌어졌습니다. 거기에는 농구코트가 있어서 지면에는 사각의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타격은 실제로는 목표 바로 앞에서 멈추는 흔히 말하는 노콘택트 승부였습니다. 그리고 상대에 쫓겨 흰 선 밖으로 밀려나게되면 진 것으로 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주먹이 한방 브루스 리의 얼굴에 적중하고 말았습니다. 자아, 이렇게 되면 그 다음이 어찌 되었을지 브루스 고로군이라면 짐작이 가겠지요?
고로 '울컥!' 했겠지요. 상대가 약속을 깨고 실제가격을 했다는 것만도 열받는 일인데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겠지요?
선생 그래요. 브루스 리는 무서운 기세로 반격을 개시했습니다. 이렇게되면 기술이고 뭐고 없지요.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상대는 그대로 지면에 쓰러졌습니다. 그것을 다시 덮쳐, 얼굴에 '퍽! 퍽!' 하고 발차기를 2번 차넣었습니다.
고로 그래서 상대는 이가 빠지고 기절한 것이로군요?
선생 상대의 부모는 바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경찰을 통해 부모끼리 합의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지요. 전에도 퇴학을 당해 전학을 간 전과가 있었으니까요. 아버지는 브루스 리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너는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이 있다. 그러나 이제 곧 18세. 가을까지 미국에 건너가지 않으면 그것을 잃게된다. 이대로 미국에 이주해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가거라."
고 말하며 배 표를 준비하고 100달러를 건네주었답니다.
고로 왠지 아버님보다 어머님쪽이 더 냉정했네요.
선생 평소에는 어머니가 부드럽고 아버지가 엄했지요. 그러나 이 때는 어머니쪽이 장래의 일까지 생각해 결연했던 것이겠지요.
고로 브루스 리는 종종 타류시합이나 싸움을 했다던데 복싱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이 때 무렵 아닙니까?
선생 그렇습니다. 그 날 일기도 여기에 나와있지요.
"1958년 3월 29일. 학생대회에서 승리(챔피언).
상대 : 3년 연속 챔피언, 게리 엘름.
장소 : 세인트 조지 고교."
라고 씌어있습니다.
고로 분명, 상대를 1라운드에 쓰러뜨렸다죠?
선생 네. 린다부인도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3년 연속 챔피언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상당히 힘든 시합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고보니 나는 당시의 시합을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답니다. 잠깐 이것을 좀 보세요.
고로 캑! 이 선수, 코너에 몰려 필사적인 모습이네요? 이것이 브루스 리인가요?
선생 아쉽지만,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고로 그런데, 이 사진, 어디서 입수하셨습니까?
선생 홍콩의 헌책방에서 입수한 잡지에 실려있던 것입니다. 브루스 리의 일생을 앨범식으로 특집한 것이지요. 이 사진의 해설에 따르면,
"복싱 룰에 익숙하지 않았던 브루스 리에게는 괴로운 시합이었다. 종종 코너에 몰렸다. 그러나 힘을 내,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 해설은 사진에 맞춰 편집자가 나중에 마음대로 상상해서 쓴 것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요.
고로 아무튼, 지기를 싫어했고 구석에 몰리면 폭발하는 경향이 있었군요? 분명히 그 당시, 영춘문에는 두 사람의 사형이 있었고 브루스 리와 함께 셋이서 자주 타류시합에 나갔다지요?
선생 황순량(黃淳樑)과 장탁경(張卓慶)입니다. 후에 황순량은 홍콩 영춘문의 유력한 지도자가 되며 장탁경은 호주로 이주해 국제적인 권법가로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두 사람은 브루스 리를 데리고 다니며 타류시합에 뛰어들었답니다. 특히 황순량은 맏형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그 타류시합은 '영춘 40번 승부' 로 유명합니다.
고로 40번 승부! 그렇게나 많이 했습니까? 선생님, 기왕 말을 꺼낸 김에 그 형님 드래곤들의 승부도 하나하나 자세히 검증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선생 나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고로 그렇게 간단히 포기하지 좀 말아주세요. 린다부인의 회상록에는 안나와있습니까?
선생 '세 사람은 종종 타류시합을 했다. 당시 홍콩에는 150개의 파벌이 있었다' 는 정도만 씌어있습니다.
고로 150개나 되는 파벌과 상대했습니까?
선생 아니, 도장은 많이 있었지만 유파의 수는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지요. 게다가 영춘권의 상대는 채리불파인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고로 채리불이란 한 개의 문파입니까?
선생 남파 소림권이라 불리는 것들 중 하나로 청말 사람인 진향(陳享)이 일으킨 총합권법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자세가 낮고 팔을 길게 휘두르는 단타주의인 영춘권과는 대조적인 권법이지요.
고로 그래서 사이가 나빴나요?
선생 예. 어느 쪽의 스타일이 실전적인가 툭 하면 비교론을 벌이곤 했으니까요. 영춘권의 기본은 방(膀), 탄( ), 복(伏)의 3수(三手)입니다. 한 편, 채리불은 괘(掛), 소( ), 삽( )의 3수(三手)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채리불파는 '괘소삽, 우리가 극의, 영춘권은 쓰레기다!' 라고 떠들었습니다.
고로 쓰레기라니 너무 심한 악담이네요? 영춘권도 입다물고 있지만은 않았겠지요?
선생 물론이지요. '영춘권, 방탄복 3수 앞에 박살나는 괘소삽!' 이라고 대꾸했답니다.
고로 헤~, 그런 식이었다면 늘상 싸움이 벌어졌겠네요.
선생 브루스 리가 홍콩에서 했던 그 마지막 시합도 상대는 채리불파였다고 린다부인은 적고 있습니다.
고로 채리불 다음으로는 어떤 문파와 싸움이 잦았습니까?
선생 그게, 영춘권이었지요 아마.
고로 엣! 영춘권? 동문끼리는 타류시합이라고 부르지 않지 않습니까?
선생 부르지 않기 때문에 나도 참 난감합니다. 왜 영춘권은 그리도 툭하면 싸워댔는지...
고로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었던 탓은 아닐까요?
- 딱! -
고로 악!
선생 브루스 리의 스승인 엽문은 광동 상류계급 출신의 인격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전에 쫓기다보니 무일푼이 되었지요. 그래서 1949년에 홍콩으로 건너가 직업 권법가가 되어 이때부터 영춘권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중에 1번 제자가 되는 양상(梁相)이라는 사람이 자기 직장의 청년들의 모아서 엽문을 스승으로 정중히 맞아들였던 것이 계기가 되지요. 이 양상도 인격자로 소문이 났답니다.
고로 그런데 어째서 툭하면 싸움을 벌였을까요?
선생 글쎄, 가만 생각해 보면 첫째로 권법이 일반에 보급되면서 혈기왕성한 많은 젊은이들이 무술을 배우게 되었다는 점. 둘째로 엽문의 명성을 듣고 우수한 젊은이들이 영춘권에 모여들었다는 점. 그리고 셋째로 영춘권은 연습이 단순해서 항상 '틈이 있으면 쳐넣는다' 고 하는 가상훈련을 반복하기 때문에 거기서 논쟁이 벌어지기 쉬웠다는 점이 있겠지요. 동문끼리 차를 마시다가도 기술의 용법을 논하다보면,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가 되버렸지요. 자네, 브루스 리가 이런 논의를 하다가 화장실에서 한바탕 했다는 이야기, 알고 있지요?
고로 화장실에서의 시합이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선생 어느 날, 엽문도 출석한 영춘파의 큰 파티가 열렸답니다. 브루스 리는 친한 형제 제자들과 테이블에 둘러 앉아 권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늘 그렇듯이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러자 브루스 리는 슬쩍 눈짓을 해서 상대를 화장실로 불러냈습니다. 툭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두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브루스 리는 고개를 치켜든 득의양양한 얼굴, 상대는 고개를 푹 숙였다고 합니다.
고로 쿠후후후... 그것만으로도 누가 이겼는지 대번에 알겠네요.
선생 주위의 동료들은 알았겠지만 귀빈석에 있던 장로들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했는지 눈치채지 못했겠지요.
고로 이렇게 되니 황순량의 40번 승부도 너무나 알고싶습니다.
선생 직접 취재해 가다보면 답도 얻을 수 있겠지요. 브루스 리처럼 자신의 싸움을 전부 노트해 두었던데다 입회인이 보도기사 등도 썼으니까요.
고로 황순량은 아직도 건재합니까?
선생 최근 소식은 모르겠습니다만 브루스 리보다 5살정도 연상이니까 아직 60세 정도일겁니다.
고로 몇살 때 까지 타류시합을 했나요?
선생 1956, 7년 때 집중적으로 했답니다. 이때면 입문한지 몇 년 뒤, 22세 정도였겠지요. 하지만, 최후에는 대만의 권법대회에서 북파 소림권의 발기술을 쓰는 오명철(吳明哲)이라는 강자와 피흘리는 대시합을 벌여서 처음에는 우세했지만 종반에 뛰어차기를 맞고는 시합장에서 떨어져 시합불능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패했습니다만 잘 싸웠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동문들에게 환영받았지요. 그 때 엽문이,
"너는 지금까지 잘 싸웠다. 영춘의 닫혀있던 문호를 여는 공을 쌓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야. 그러나 타류와 동문간을 막론하고 더 이상은 남과 싸우는 승부를 하지 말아라. 도장을 열어 제자를 기르도록 하려므나."
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 이후, 실전승부를 일절 그만두었답니다.
고로 다른 한사람의 사형인 장탁경은 어찌되었습니까?
선생 사형이라고는 해도, 장탁경의 경우는 죽마고우라고 보는 편이 낫겠지요. 바로 그가 브루스 리를 처음 엽문에게로 데리고 갔답니다. 장탁경은 1960년경 호주로 유학을 갔습니다. 졸업 후 일단 그곳에서 공무원이 되었다가 후에 직업 권법가가 되어 전 호주 국술회를 창립, 그곳의 주석이 되었습니다. 브루스 리가 홍콩을 떠난 지 10년 후, 어느 날, 청소를 하는데 장탁경에게서 온 낡은 편지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장탁경에게 부친 편지가 공개되었지요. 자네, 읽어봤나요?
고로 글세요, 그것도 일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아닙니까? 뭐라고 씌어있나요?
선생 이것입니다. 복사본이지만......
고로 엣? 선생님, 이런 것까지 갖고 계셨습니까?
선생 이것은 말이죠, 브루스 리 연구에 빠질 수 없는 자료예요. 이 우정에 가득 찬 짧은 편지에 실은 도미 후 10년간의 무술적 활동에 대한 총괄이 담겨있지요. 이미 절권도의 유래를 알고있는 자네에게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고로 하지만 브루스 리 자신이 직접 쓴 것이란게 중요하지요. 꼭 좀 읽어보게 해주십시오.
선생 좋아요. 나중에 확대복사를 해서 사전을 옆에 들고 차근히 읽어보세요. 브루스 리 친필 영문장에서 그의 청춘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고로 한데, 일본인 중에 이런 희귀한 것을 갖고있는 사람도 드물겠지요?
선생 천만에요. 최근 일본에서 발행된 브루스 리 관계 책을 보면 말이지요, 브루스 리의 면허증을 갖고있는 등, 일본인의 드래곤 컬렉션에는 정말이지 놀랄 정도랍니다.
고로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선생 브루스 리가 사용했던 변기입니다.
고로 에엣! 세상에! 말도 안돼!
- 딱! -
고로 끄윽!
선생 그런 여학생같은 비명은 그만두라고 전에도 주의를 주었지요?
고로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거 조크는 아니겠죠?
선생 진짜입니다.
고로 선생님은 그것을 어디에서 보셨습니까?
선생 아니, 실물을 본 것은 아닙니다. 내가 홍콩에서 살았을 때 신문의 무술관계 뉴스에 나온 것을 본 것이지요.
고로 그 일본인은 어떻게 해서 변기를 손에 넣었나요?
선생 젊은 남자였는데, 브루스 리에게 푹 빠져 그가 살던 집을 방문했답니다. 아마도 홍콩의 신문사에 주소를 물었겠지요. 그러나 벌써 그곳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그곳은 러브호텔을 짓기위해 완전히 부숴져 있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현장에서 '뭔가 기념이 될만한 것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쪽에 버려져 있던 변기만 갖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변기가 얼마나 온전한 상태였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고로 선생님, 그 뉴스를 보고 창피하지는 않았습니까?
선생 아니오. 기사는 말이지요, '일본인들은 그렇게까지 하는가' 라며 철저한 행동에 놀라움을 표시했고 이쪽에서 그렇게 부끄러워 하도록 쓰지는 않았답니다.
고로 이름은 안나와 있었나요?
선생 나와있었던 것 같은데 그 기사는 스크랩해두지 않았습니다.
고로 아깝군요. 그것은 언제적 일이었나요?
선생 1977, 8년무렵입니다. '그가 어디 사는 누구였을까' 하고 지금도 생각해볼 때가 있지요.
고로 그 사람은 지금도 그 변기를 갖고있을까...
선생 브루스 리 팬클럽은 지금까지도 있는 것 같으니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한 번 조사해보세요.
고로 예, 저도 유품 컬렉션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선생 그 사람을 찾으면 한 번 TV의 감정프로에 나가도록 권해볼까요? 과연 얼마나 나갈까요? 드래곤의 변기.
고로 선생님,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새버리고 말았는데 장탁경은 어찌되었습니까?
선생 웃, 장탁경?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장탁경의 후일담은 별로하고 싶지 않아요. 무술인 사이의 도리라 생각하고 오늘은 변기로 이야기를 끝냅시다.
고로 싫습니다, 그건! 변기로 이야기를 끝내다니요, 지저분하게...
선생 그 대신에 재수가 좋을거예요.
고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싫다고 한겁니다, 정말...
선생 이런이런, 브루스 고로군, 그럼 이렇게 합시다.
고로 어떻게요?
선생 장탁경의 후일담은 이것 하나만 들려주지요.
고로 좋습니다, 물론.
선생 약속입니다!
고로 예! 선생님이야말로 조심하십시오!
선생 웃, 무슨 의미지요?
고로 네? 무슨 의미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선생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먼저 이 10장의 연속사진을 보세요.
고로 사람들이 뒤엉켜있는데, 뭡니까, 이게?
선생 이건 말이죠, 독일에서 발생한 도장깨기 사진입니다.
고로 캑?! 여기에 장탁경이 연관되어 있는겁니까?
선생 당해버린게 장탁경입니다.
고로 선생님, 서로 뒤엉켜있는 사진만 봐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차근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선생 그러지요. 때는 1986년 9월 20일. 이때 장탁경은 벌써 40여세. 이미 호주를 거점으로 하는 영춘파의 국제적 권법가로 명성을 확립한 장정경은 이 날, 독일 쾰른시에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했습니다. 참가인은 80인정도가 왔습니다. 처음에 장탁경은 영춘권의 독특한 접근전법에 대해 해설했습니다. 그러면서 30분정도가 지났을 때 갑자기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국제영춘양정권술총회 서독지부 교련이다! 지금 당신이 말한 것들이 실제로 어느정도나 가능한지 한번 시합해보자!"
이 단계가 사진 1입니다.
고로 장탁경은 이 중에 누구입니까?
선생 사진 중앙에서 이쪽을 향하고 있는 흰셔츠의 인물이 장탁경, 카메라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 양정(梁挺)파를 자칭한 독일인 교련X입니다.
고로 양정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 마찬가지로 홍콩 영춘문입니다. 70년대 초기부터 활동하고 있으니까 장탁경보다 10년정도 후배가 되겠지요.
고로 역시 실전파입니까?
선생 좋게 말해서 영춘문의 풍운아!
고로 나쁘게 말하면 영춘문의 문제아?
선생 으음, 나한테는 긴자에서 한번 같이 차를 마셨던 친구니까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때 받았던 양정의 영춘교본은 상당히 훌륭한 책이었지요. 내 애장서이기도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양정은 엽문 최말년에 등장한 행동파로 일찍부터 독일에 지부를 세우고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엽문의 정당한 무술적 후계자라고 일찍부터 주장해 온 장탁경이 나타난겁니다.
고로 그래서 양정파가 '이놈이!' 하고 계획적으로 자객을 보내 세미나를 망쳐놓은겁니까?
선생 계획적이었는지 어떤지 그건 모릅니다.
고로 장탁경은 시합에 동의했습니까?
선생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동의할 필요도 없었지요. 다른사람의 세미나를 힘으로 방해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독일 법률상으로도 명백한 위법행위입니다.
고로 그런데 어째서 난투극이 되어버린겁니까?
선생 교련X는 막무가내로 시합하기를 고집했고 장탁경은 어떻게든 승부를 피하려 했지요. 교련X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셋을 세겠다. 그 동안에 결정해라!"
그리고 교련X는 진짜로,
"하나, 둘, 셋!"
하고 세더니 바로 장탁경에게 치며 달려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진 2입니다.
고로 사진이 희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 접근해서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날렸지요. 이것을 장탁경이 막아냈습니다. 다음 순간에는 이미 둘은 엉겨붙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고로 사진 3입니까? 두사람이 목을 감아잡고 있습니다.
선생 그리고 마루에 쓰러져 싸우는 사이에 교련X가 우위를 점해 장탁경을 깔고 앉아 먼저 얼굴에 팔꿈치치기를 먹였습니다. 이것이 사진 4입니다.
고로 사진 9에서는 교련X가 장탁경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선생 교련X는 장탁경의 머리를 잡고는 마루에 2, 3번 쾅쾅 찍었습니다. 이것으로 승부는 완전히 결정나버렸지요. 이 다음 교련X는 재빨리 회장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처음에 하나, 둘, 셋하고 시간을 주는 등, 어디까지나 합의에 의한 시합이라는 형식을 빌고 끝을 내자 '팟!' 하고 사라져버린다, 거기에다가 나중에 남을 정도의 큰 상처는 입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프로페셔널이랄까요?
고로 이 승부, 시간은 얼마나 걸렸습니까?
선생 실제 승부는 불과 10초도 안되는 사이에 끝났습니다. 실전이란 그런 것입니다.
고로 그래서 세미나는 어찌되었습니까?
선생 2일간의 예정이 그대로 모두 취소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로 장탁경은 뭔가 법률적인 보복조치를 하지는 않았습니까?
선생 그런 보도는 없습니다. 장탁경도 역시 실전파로 알려진 무술가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졌다고 고소하려 들지는 않았겠지요.
고로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으니 분했겠지요?
선생 복싱에서는 아무리 강한 챔피언이라도 언젠가는 패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전세계에 보도되고 말지요. 그래서 영원히 이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도 복서를 보면 알듯 최후에는 지더라도 강했던 시절의 명성은 확보가 됩니다. 장탁경의 명성도 이 한 사건만으로 사라져버릴 그런 것은 아니었지요. 장탁경은 소년시절, 엽문의 집에서 살면서 엽문에게서 다른 문인들이 듣지 못했던 것들까지 들었습니다. '나야말로 엽문의 무술적 직계 전승자'라고 한 것도 그만한 근거가 있었던 거지요. 장탁경에 대해서는 홍콩보도에서도 의외로 동정적이었답니다. 엽문의 2대째인 엽준(葉準)은 기자가 감상을 묻자,
"장탁경은 벌써 40이 넘었으니 젊은이에게 패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영춘이 영춘을 쳤다는 것입니다. 원래 무술가가 함부로 싸움을 해서도 안되지만, 동문끼리의 싸움이란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고로 브루스 리가 살아있었다면 도와줬을까요?
선생 아니오. 황정량, 장탁경, 브루스 리 모두 명성을 얻고부터는 실력행사를 피했습니다. 브루스 리 역시 자기 일만으로도 바빴지요.
고로 도전자가 잔뜩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었습니까?
선생 네. 내가 알고있는 사례만도 3번 있습니다. 홍콩 무술가들에게는 부루스 리에 대한 라이벌의식이나 반론, 혹은 명성에 대한 질투 등이 있었으니까요. 브루스 리에게 도전장을 내 유명해지려한 젊은이도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리에게 있어 홍콩은 편히 안주할 땅은 아니었습니다.
고로 그런 도전을 받아들여 실제로 싸운 적은 없습니까?
선생 유명하게 된 다음부터는 일체 없었습니다. 무술가로서의 브루스 리를 말한다면 도전하고나 받거나 하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지요. 실력승부같은 것은 말이지요, 젊은 수행시절에나 할 일이지 언제까지고 하고 있다면 그건 철부지나 마찬가지지요.
고로 그런데 선생님, 저로서는 정말 유감입니다. 브루스 리가 여배우 집 침대에서 죽다니......
선생 그래요. 하지만, 그 당시는 영화 연습을 위해 여배우집에 있었다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홍콩에서는 영화 기획이나 극 중 아이디어가 쉽게 도둑맞았지요. 밖에서는 같이 연습할 마땅한 장소도 없었구요. 때문에 비밀 회의나 연습은 개인자택에서 여는 편이 좋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배우는 고급 맨션에서 혼자 살았을테니 안성맞춤이었겠지요.
고로 그럼, 사망원인도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었나요?
선생 죽을 정도의 두통이 있었으니까요,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었지요.
고로 마약을 과용했다는 이야기는요?
선생 이것도 경찰의 위신과 생명보험회사의 지불에 관련되었으니까요, 철저하게 규명되었습니다.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까지 동원되었지요. 그 결과는 두통약으로 먹은 약이 몸에 맞지않아 일종의 알러지반응으로 뇌에 이상이 왔다는 것이었을겁니다. 마약과는 전혀 무관했지요. 마약이 사망원인이었다면 보험금이 아마 안나올걸요? 뭐, 상세한 것은 최근 린다부인이 새로이 낸 회상록 '브루스 리 스토리' 가 나와있으니 한 번 읽어보세요.
고로 선생님도 그 설을 믿으시나요?
선생 예. 하지만 말이죠,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있지요.
고로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선생 법의학적으로는 직접적인 사망원인을 확정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정체의학(整體醫學)적 규찰에 비춰보면 브루스 리의 죽음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지요.
고로 구체적으로는요?
선생 내가 처음 브루스 리 영화를 보았던 것은 1972년, 대만의 대중시에서였습니다. 당시, 나는 왕수금노사의 내제자(內弟子)가 되어 팔괘장을 수련하고 있었지요. 연습은 매일 아침과 하루걸러 오후 뿐이어서 한가할 때는 중국어 학습을 겸해 영화관에 들리곤 했지요. 그러다가 '정무문' 을 보게 되었는데 완전히 푹 빠져서 몇 번이나 보러갔었답니다.
고로 선생님, 그것은 귀중한 체험이군요. 실은 말이죠, 선생님, 놀라지마십시오. 브루스 리가 살아있었을 때 브루스 리의 영화를 본 일본인은 거의 없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루스 리의 영화가 일본에 소개되었을 때에는 이미 브루스리가 죽은 후였거든요.
선생 귀국 후, '그런 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면 히트칠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작 '용쟁호투' 가 상영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나는 크게 놀랐답니다.
고로 어째서요?
선생 영화 그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브루스 리가 얼굴이 야위고 너무나 변해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용쟁호투를 제작하고 있을 때는 이미 건강이 상당히 나빠져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되어 나중에 내 나름대로의 이런저런 사망원인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린다부인의 회상록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고로 중요한 사실?
선생 자네도 알고 있지요? 1970년, 브루스 리에게 일어난 그 사건을.
고로 1970년, 드래곤의 몸에 일어난 그 사건? 아! 웨이트 트레이닝 중 그만 허리를 다쳐 반 년간이나 움직이지 못했던 일 말입니까?
선생 그래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실은 그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고로 하지만, 선생님. 분명히 의사가 재기불능이라고 단언했다지만 브루스 리는 멋지게 일어섰지 않습니까? 그때부터구요, 홍콩에 드래곤 붐이 일어난 것도. 기술도 전보다 훨씬 날카로와지지 않았습니까?
선생 몸은 잘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요.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요통 치료 중 너무 독한 약을 복용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그 약 이 내부에서 생명력을 빼앗아갔던 것이 아닐까요?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않될 것이 브루스 리는 약같은 것의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그것은 의학적으로 확인된 일입니까?
선생 나의 추측입니다. 그러나 브루스 리가 특이한 기질을 가졌다는 것은 자네도 인정하겠지요?
고로 정신적으로 매우 뛰어난 집중력과 폭발력을 가졌지요. 분노할 때도, 책상에서 연구할 때도 보통 사람 2배의 집중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 그리고 무술뿐만이 아니라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17세에 차차차 댄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몸의 근육을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요. 그 이상할 정도의 운동신경과 그 특이한 기질은 어쩌면 양친을 넘어 할아버지의 유전적 소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고로 할아버지요?
선생 외할아버지요. 상해에 있던 독일인입니다. 브루스 리의 어머니는 혈통적으로 독일계 중국인인 것이지요. 이 독일인 할아버지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나는 천재적인 점이 있는 예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적인 상상대로라면 어쩌면 댄서였는 지도 모르지요.
고로 개인적인 생각은 별 설득력이 없다구요.
선생 아무튼 브루스 리의 유전적으로 타고난 이상할 정도의 집중력과 폭발력은 바꿔말하면 뇌에 흐르는 전기활동이 보통 사람 이상으로 격렬했다는 것이지요. 약물의 자극은 그 활동에 보이지 않는 장해를 끼쳤고 그것이 서서히 쌓여가면서 결국에는 아주 적은 양의 약물에도 페니실린 쇼크같은 과격한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내 상상은 그렇습니다.
고로 그러고보니 브루스 리는 사망하기 2개월 전에도 1번 촬영장에서 갑자기 기절했어요.
선생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몸에 경련이 어찌나 심했던지 의사가 붙잡고 있느라 고생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브루스 리는 말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의식 밑바닥에서 '정신차려! 정신차리라구! 이대로 있다간 죽어!' 하고 스스로를 독려한 듯 합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려 되살아났지요.
고로 코카인이나 헤로인같은 그런 마약은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마리화나 흔적이 검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요.
선생 그것은 사실같습니다.
고로 그것은 왜 문제화 되지 않았을까요?
선생 영국인과 미국인, 두 사람의 법의학자가,
"마리화나로 죽은 것은 아니다. 사망원인과는 전혀 무관하다."
하고 증언했답니다. 아마도 영국과 미국에서 마리화나는 마약류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한 담배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나봐요.
고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선생 아니오. 마리화나는 비록 죽음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라도 간접적으로는 드래곤의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입니다. 브루스 리는 원래 술도 담배도 하지 못했어요. 그것은 말이지요, 본인이 절제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받지 않는 체질이었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고로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선생 '용쟁호투' 를 찍을 때 브루스 리가 이상하게 긴장해 있어서 촬영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아마 피웠다고 한다면 그 때쯤이 아닐까요?
고로 브루스 리는 전기자극으로 근육을 단련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선생 그래요. 그것도 생명력을 깍아먹었을 것입니다. 전기자극 같은 것은 브루스 리에게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을테니까요. 원래 신경활동이란 '+' 와 '-' 의 전기활동입니다. 그 전기활동이 천성적으로 격렬한 남자에게 오히려 전기자극을 준다면 몸에 좋을 리가 없겠지요.
고로 저로서는 약 반응이 어쨌다 저쨌다보다도 이쪽이 수명을 단축시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지요. 브루스 리의 얼굴모습은 60년대에는 턱선이 완만했지만 70년대에는 점점 건강이 나쁜 얼굴모습으로 이상하게 변해갔습니다.
고로 요통을 딛고 일어서 영광으로의 길을 걸었던 마지막 3년간이 동시에 죽음으로의 길을 걸었던 3년간이기도 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이군요.
선생 드래곤은 영광과 비극의 길을 함께 온 힘을 쏟아 솟아올라 천국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용쟁호투'는 1973년 8월 24일, LA의 그로우맨 차이니즈 극장에서 커다란 팡파레와 함께 개봉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봉을 눈앞에 두고 브루스 리는 돌연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명예의 팡파레는 드래곤을 애도하는 조종(弔鍾)이 되고 말았지요.
고로 홍콩 길위에 한 거지가 '드래곤 석별(惜別)의 시' 를 적었다고 선생님이 전에 '중국무술의 세계(복창당 1981년)' 에서 소개했지요? 브루스 리 주연영화의 작품명을 넣어 지었다던가하는 그 시, 지금도 기억하십니까?
선생 음, 그 시는 말이지요. 백발이 성성한 거지노인이 백묵으로 몇번이고 그어서 마치 붓으로 쓴 것 같이 멋지게 행서체로 쓴 것입니다. 그 때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보았을 뿐인지라 미처 노트 등을 써낼 수 없었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전에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휘갈려 쓴 당시의 메모가 나왔답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서 잊지 않도록 메모해 두었던 것이겠지요.
고로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그 시를 소개하면서 오늘은 이만 마쳤으면 합니다만 어떠신지요?
선생 그러지요. 하지만, 앞으로 연습은 어떻게 할거지요?
고로 그게, 저는 절권도를 한 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선생 그러면 N군에게로 가서 글러브를 끼고 툭탁툭탁 하도록 하세요.
고로 어? N씨가 절권도를 연습하고 있습니까?
선생 음, 친구들과 때때로 모여 체육관 등에서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고로 그거 정말 잘되었군요. 그럼 내일부터 열심히 할테니 어서 시를 소개해 주십시오.
선생 그러지요. 자, 이것입니다. 옆에 내가 해석도 써두었지요.
死亡遊戱成眞事 사망의 유희는 사실이 되었고
精武門人痛苦天 정무문인, 하늘에 통곡하네.
唐山大兄威猶在 당산의 대형, 위엄은 여전하니
猛龍過江聞世人 맹룡과강, 세상 사람들게 말씀드립니다.
사망유희 영화가 사실이 되고 말았다.
남은 우리들 정무문인의 고통은 하늘에 닿을 정도다.
(그러나 슬픔 속에서도)
중국 큰형님의 용명(勇名)은 지금도 존재하며,
장강을 건넌 맹룡과 같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리라.
고로 선생님, 멋진 시가 아닙니까? 홍콩 거지의 수준은 대단하군요? 그럼 이것으로 마치고 오늘은 이쯤에서 실례하겠습니다. 再見!
선생 再見!
이 글에 대한 권리는 번역자에게 있습니다.
번역 : 이윤석 (yurmtoki@hitel.net)
첫댓글 나름 이소룡에 대해 많이 알고있다고 자부해왔는데~아니었나봅니다. 이렇케 자료를 모아 일생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니요..(설령이글이 픽션이라 할지라도~) 특히 이소룡의 죽음에대해서는 저두 그렇케 느끼고 생각해 왔습니다. 건장하구 바른 청년이었던 이미지가 용재호투적의 이소룡의 모습은 야위고 매말르고 눈빛은 살아있서 살기조차 느껴지더군요.. 사망유희가 나중에 개봉되었지만 촬영은 용쟁호투가 맨마지막 작품이지요.. 좋은글 해석해주신분께 감사드립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