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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인도 네팔 여행기-11일차 1월 15일 금요일(포카라)
윤상현 추천 0 조회 102 10.09.06 0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페와호의 새벽

  1. 페와호의 새벽

  1. 페와호의 새벽

  1. 페와호의 새벽

  1. 페와호의 새벽 고기잡는 어부

 

 2.  포카라 자전거 경주

  2.  포카라 자전거 경주

 3. 안나푸르나 트래킹 허가증

 4. 안나푸르나 트래킹 체크카드

 5. 데비드 폴

 6. 티벳 난민촌 부근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

 7. 페와호와 안나푸르나

 8. 포카라에서 만남 부분 일식

 10. 포카라의 숙소

 11. 포카라의 노선 버스

11일차 1월 15일 금요일(포카라)

‘페와호’의 아침 해돋이가 명물이란다. 여명의 시간, 미리 약속된 뱃사공을 만나 호수의 작은 섬으로 노를 저어간다. 석 대의 작은 보트가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다가 불과 십분 여에 힌두사원 곁의 부두에 닿았다.

호수의 물 건너 동편 하늘이 온통 벌겋다. 날은 아직도 어두운데 올려다 뵈는 ‘사랑코트(Sarangkot)’ 전망대 뒤로 설산의 두 꼭대기에 황금빛 햇살이 먼저가 닿았다. 내일이면 우리의 발걸음이 저 능선을 향하리라 생각하니 가만히 맘이 설렌다.

날이 밝고 보니 물 위에는 어부들의 조업(釣業)이 한창이다. 어제 저녁 쳐 둔 그물을 올리는 중인데 은색 비늘이 번뜩이는 것이 제법 조황이 좋아 뵌다.

아침 식사로 라면을 끓인 뒤 ‘공기 밥’을 말았다. ‘카트만두’에서부터 준비했던 것이 이제야 소용이 닿은 것이다. 네팔라면의 강한 카레향(香) 국물에 또다시 한 끼의 별미가 되었다.

내일부터의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위해서는 미리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오늘 하루 자전거 투어로 ‘포카라’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 중간에 겸하여 ‘안나푸르나 자연보호 협회’인 ACAP(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를 방문하여 퍼밋을 받아야 한다. 인근의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가 일반적 요금에 약간의 금액을 더 얹으니 번쩍이는 신품 자전거를 내어준다.

갑자기 시가지 중심의 사거리에서 브라스밴드 소리가 들려온다. 붉은 바탕의 ‘프랙카드’ 펄럭이는 아래 수 십 명 여고생들이 싸이클 경주를 위하여 출발선에 섰다. 경찰들과 군인들이 질서유지를 하는 가운데 결연한 표정의 여학생들이 총성과 함께 힘차게 내닫는다. 이곳 문화가 아직은 맨다리를 그냥 내놓는 것이 어색한가보다. 거의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검정 스타킹으로 종아리를 가렸다. 그래도 어른들의 치렁치렁한 차림에 비해니 그 다리(脚)가 여간 건강하게 보이는 게 아니다.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잠깐 지체한 사이에 그만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쏟아지는 자외선에 눈부시다. 채양 넓은 모자에 썬그라스로 무장하고 다급히 페달을 밟는다. 다행히 시가지의 거리 구조가 간단하여 그늘에 무리 진 일행을 쉽게 만났다.

급선무는 ‘트래킹 허가서’를 발급받는 일이다. 포실하게 자리 잡은 ‘네팔 국왕 별장’의 아름다운 돌담길 따라 짙은 그늘의 가로수 아래를 달린다. 작은 사거리에서 내리막길을 만나 잠깐 내려가니 ‘ACAP 협회’ 정문이 아치형으로 댕그라니 섰다.

잘 정돈된 사무실에 여직원이 친절하다. 차례에 의거하여 서류를 마련하는데 아뿔사! ‘퍼밋’을 위한 사진이 다시 2장 모자란다. 사전 정보에 의하여 인도의 ‘카주라호’에서 준비한 것은 두 장 뿐이었다. 인근의 PC방을 찾으니 경험 많은 여사장이 채 십분도 되지 않아서 증명사진을 건네준다. 다급히 마련된 사진 속의 내 몰골에 웃음이 난다. ‘퍼밋’을 발급받는데 2,000네팔루피(34,000원)를 지급하였다.

급선무를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한가하다. 뒤 돌아보니 정상부근만 보였던 설산들이 이제는 허리까지 드러냈는데 호면(湖面)의 반영(反影)과 어울려 그 아름다움에 경외감이 인다.

인근에 있는 ‘데비스 폭포’를 찾아간다. 대충의 위치를 파악하고 페달을 밟는데 앞에 나타난 고갯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날씨는 점점 더워오고 이마엔 땀이 돋는다. 가던 길이 아무래도 수상하여 길가의 학생에게 물어보니 목적지를 이미 지나쳐왔단다. 날도 뜨거운데 이런 젠장.... 하지만 되돌린 길이 내리막인지라 싱그러운 바람을 안고 달릴 수가 있어 오히려 상쾌하다.

초입에 마련된 기념품상가를 통과하여 폭포를 찾아보니, 이 계절이 갈수기(渴水期)인지라 그 유수(流水)량이 형편없다. ‘페와호’에서 흘러내려 수직으로 떨어지는 동굴의 면모로 우기(雨期)의 폭포 모습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어두운 동굴의 안쪽에는 이끼류를 비롯한 음지 식물로 가득 찼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같은 디자인의 ‘묘안석(猫眼石)’ 팔찌를 몇 개 구입하였다.

잠식 휴식을 갖고자 숙소로 귀환하는 중에 갑자기 자전거가 너무 무겁고 털털거린다. 펑크다. 자전거를 끌고서 오르막길을 오르며 수리점을 알아보는데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전혀 없다. 근 1km를 걷고서야 만난 경찰관이 제가 먼저 바람 없는 바퀴를 발견하고서 자전거포를 알려준다.

허름한 지붕 위에 널어둔 폐타이어로 간판을 대신한 수리점 주인은 하던 일을 제쳐두고 내 일에 매달린다. 두 군데 펑크다. 무리한 운행으로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져 변상해야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자전거에 오르니 엉덩이가 아파 죽겠다. 이곳의 자전거는 품질이 형편없어 ‘안장(鞍裝)’이고 ‘바디(Body)'고 간에 완충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있지 않아 도로 요철(凹凸)의 충격이 그대로 온 몸에 전해온다. 장시간 같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니 견뎌낼 턱이 없다. 어정쩡한 자세로 겨우겨우 몰아가는데 그 지세가 민망하다. 영문을 모르는 일행들이 다 떠나간 와중(渦中)에 저만치 길가에서 아우가 근심스런 얼굴로 기다리는 중이다. 도로에서 한참 동안 보이지 않는 형을 걱정함이리라. 길가 소공원에서 한 숨을 돌리며 다시 ‘페와호’와 어울린 ‘안나푸르나’를 올려다본다.

점심으로 네팔 만두 ‘모모’를 주문했다. 테이블에 앉았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태양을 향했다. ‘부분 일식(日蝕)’중이다. 여행 길 마다에서 일식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지난여름에는 중국의 호남(湖南)성 ‘소상강(江)’ 강가에서 ‘개기일식(皆旣日蝕)’을 만났었다. 눈에 쓴 고글을 벗어 카메라 필터삼아 촬영을 해보니 태양의 아래 부분을 갉아먹은 달의 모양이 선명하다.

점심 식사 후에 일행의 일부는 ‘페러그라이딩’에 나섰고 우리 형제는 쑈핑을 하기로했다. 어제부터 눈여겨 봐둔 ‘마무트’ 등산화를 구입하였다. 아우는 ‘슈퍼다운 조끼’를 마련했는데 모두 흡족한 가격이다.

비록 엉덩이가 많이 아프지만 돈 들여 빌린 자전거를 이른 시간에 그냥 반납하기도 좀 아까워 호수의 북쪽으로 라이딩에 나섰다. 엉덩이는 더욱 아파온다. 반쯤은 후회하며 페달을 겨우 밟아 절벽의 고갯길을 오르는데 오가는 차량이 모두 섰고 수많은 구경꾼이 모였다. 내려다보니 수면 위에 웬 흑인의 시신이 둥둥 떠 있다. 한 눈에 봐도 아프리카 출신이다. 험한 도로에서 추락사고가 났다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방인에게 열심히 알려주는 마음이 친절하다. 저 흑인 녀석, 이 먼 곳까지 와서 객사를 하게 되다니, 어지간히 운이 없는 친구다. 새삼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니 여러 가지 악조건에 나도 목숨 걸고 하는 여행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테러의 위험까지 상존(常存)함에랴. 어쨌든 꿈에 나타날까 걱정이다. 못 볼 것을 본지라 가던 길을 되돌렸다. 다시 올라앉은 안장은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아예 도로를 벗어나 밭두둑 길을 가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전거를 끌고 간다. 벌써 해는 뉘엿하고 서편에 지는 해는 역시나 아름답다.

더 이상 미련없이 자전거를 반납한 뒤, 내일부터의 트래킹을 위해 약간의 비상식을 준비하는 한편 지고 갈 ‘배낭 짐’을 줄이기 위해 ‘대형 가방’을 구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꼭 필요한 물건들로만 배낭을 꾸리고 나머지는 ‘큰 가방’에 따로 담아 이곳 숙소에 맡겨두기로 한다.

가벼운 저녁 식사 뒤에 숙소에 그냥 있기가 무료하여 거리 산책에 나섰다. PC방에 들러 처음으로 집에 전화하였다. ‘인터넷 전화’ 요금이 많이 저렴하다. 그 사이는 가족들과 간간히 문자만 주고받았을 따름이다. 초저녁에 ‘한국라면’과 ‘누룽지’로 저녁을 해결했었는데 왠지 입이 심심하여 다시 밤참을 준비한다. 버너의 강한 불길로 끓인 네팔 라면의 맛이 담백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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