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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섭(서남대 국문과)
1. 20세기 말, 왜 혼불인가?
(1) 혼불 발표 연대
최명희(1947.10.10. - 1998.12.11.)
1981.2. 교사 사임
1981.5.28.(34세) 혼불 제1부,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 당선.
1983.3. 魂불 동아일보 2천만원 고료 당선장편소설 출간(동아일보사).
1988.9. - 1995.10. 혼불 제2부를 월간 신동아연재. 7년 2개월 동안 총85회 연재.
1990.12.(43세) 혼불 제1, 2부(전4권) 출간(한길사).
1996.12.(49세) 혼불 제1-5부(전10권) 출간(한길사).
1997.11.8. 국립국어연구원 초청 혼불과 국어사전’ 강연새국어생활(1998 겨울호) 수록).
1998.12.11.(51세) 영면
작가 최명희가 말하는 소설 혼불과 그 인고의 작업과정
혼불은 나의 온 존재를 요구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문단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80년 1월 1일,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면서였다. 그러나, 정작 나의 생애를 관통하는 소설에 붙들린 것은 이듬해인 1981년 5월 28일. 동아일보가 신문사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으로 2천만원 고료를 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했는데, 여기에 응모한 혼불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나에게 충격적인 갈채와 영광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풀어가야 할 숙제도 함께 지워 주었다. 그것은 둘 다 무거운 짐이었다. 나는 그 좋은 소식을 듣는 순간,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애초 구상한 대로 다 쓰지 못한 채 우선 마무리하고 말았던 소설 혼불의 다음 이야기들이 목메이게 부르는 소리를 같이 들었다. 그것은 갚아야만 하는 ‘빚’이었다. 나는 그때, 장편소설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서, 원고지 약 2천여 매라면 한 30년 정도의 세월은 넉넉히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착수해 보니 그 길이는 겨우 10년을 담기에도 부족했다. 칸칸이 사무치는 이야기의 회오리가 나를 휘어감고 놓아주지 않는 탓이었다.
고통과 고뇌를 떨쳐내고
어두운 역사 암울한 시절 1930년대, 외형적으로는 국권을 잃고 일제의 탄압을 극심하게 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이중적 시대상황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나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흡사 주술과도 같은 친화력이 핏속으로 저며들어 무서운 힘으로 나를 이끌었으니. 전라도의 한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며 치열하게 몸을 일으키는 종부(宗婦) 3대와, 천하고 남루한 상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애환이,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갈등하며 소용돌이치는 그 마을의 복판에 서서, 나는 한 시대의 강물 위에 떠올랐다 스러지는 ‘성취’와 ‘소멸’의 불꽃들에 홀리고 취하여 차마 그들을 떨치고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사로잡힌 포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해방과 6․25, 그리고 4․19를 비롯해 5․16까지로 준비했던 자료와 사건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응모에 제한된 원고지 2천 매를 어느새 다 써버린 뒤, 절망감 때문에 고꾸라져 남모르게 울었다. 이야기가 아직 뜻같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감 날짜 막바지에 이른 시간의 고비에서 더 이상 새로 고쳐 쓸 틈이 없었던 나는, 이 소설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여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매달려 쓴 이 원고를 제출조차 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렇게 참담하고 고통스런 가운데 쓰다 말고 응모한 글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보이지 않는 손’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을 절감하였다. 쓰지 못한 이야기가 덜미를 잡은 것이다.
17년 작업의 결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완의 붓이 어둠 속에서 푸른 몸을 솟구쳐 시위를 당기며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운명(運命).
나는 그 살촉에 생애를 깊이 꿰뚫리어 아직까지도 ‘혼불’을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언제 끝날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그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이 1980년 봄 4월부터였으니, 돌아보아 만 17년이 지났다. 먼 길을 아주 한참 어렵게 온 것 같은데 가까스로 여지껏 이만큼밖에는 못 와, 문득 고달프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 혼불은 1990년 12월, 제1부 ‘흔들리는 바람’ 1,2권과 제2부 ‘평토제’ 3,4권으로 모두 네 권이 한길사에서 출판되었으며 그 이후의 글들은 올 12월 총 5부 전10권으로 출간되었다.
이에 지난번 제1·2부를 책으로 펴내면서 그 말미에 쓴 ‘작가의 말’을 일부분 옮겨 적는 것으로 어떤 당선작의 후속을 애오라지 이토록 오래 이어쓰는, 이상한 형태의 소설에 대하여 저간(這間)의 소이(所以)를 밝히어 볼까 한다.
단 한 사람의 눈길을 기억하며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을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는 달리,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었다.
나는 마치 한 사람의 하수인처럼, 밤마다 밤을 새우면서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의 넋이 들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가라는 대로 내달렸다.
그것은 휘몰이 같았다......(중략)......
지금 이토록,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거기 거멍굴 사람들의 쓰라린 혼불들은 저희끼리 스스로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으니, 나는 아마도 그 불길이 소진하여 사윌 때까지, 충실하게 쓰는 심부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뒤쫓느라고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오래오래 나의 하는 일을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 눈길이 바로 나의 울타리인 것을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중략)......
나는 동구밖의 해묵은 장승처럼 오직 한 자리에 붙박히어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사로잡힌 큰칼을 목에 쓰고 서럽게, 홀로.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2) 20세기, 한국의 상황 변화
조선시대, 개항기, 일제강점기, 광복, 미군정기, 현대 -> 근대화, 산업화, 현대화 과정 - 한국혼 상실의 과정
(3) 20세기와 최명희 세대(광복 세대)
광복 이후 - 현세대 -> 급격한 현대화 물결 속에서 의식의 서구화 급속화(탈한국화, 서구화 심화 - 반서구인)
광복 세대 - 한국의 정통성(한국민의 민족의식) 유지의 마지막 세대 - 임무 : 민족혼 보존, 계승의 세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것, 우리의 전통문화가 소멸되어 가는 오늘날 진정한 생명체, 정신은 ‘혼불’이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 근원의 복원은 진정한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이러한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의식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작가 최명희의 세대만이 근원에 대한 해답을 전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이 머리 속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4) 최명희 개인적 임무 - 민족혼, 한국의 삶, 한국인의 의식 - 복원 - 혼불로 상징화
혼불 작품의 시대배경인 일제시대는 우리 민족의 생명인 혼불을 빼앗긴 어두운 시절이다. 혼불은 일제시대의 어둡고 억눌린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펴올리는 해원의 과정이다.
혼불이란 우리 몸안에 있는 불덩어리이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다. 우리 몸속에 있다가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혼불로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다. 이러한 존재의 핵, 우리 민족의 핵, 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 혼불이다.
(5) 왜 혼불의 배경은 남원인가?
남원의 역사성, 정신 - 항거, 저항의 터, 절개의 고장(춘향) / 변화욕구의 발원지(실상사, 이성계, 동학(최제우, 김개남)) / 국난극복의 아픔(만인의총, 지리산) / 풍류의 터(판소리, 도자기) - 고전문학의 산실(춘향전, 흥부전, 변강쇠가, 만복사저포기)
- 한국의 상징성, 대표성, 역사성은 간직한 곳 - 작가의 고향, 정신적 지주
- 작가의 어린날 회상(추석에 노봉마을 귀향 기억)
「내 정신과 몸의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작가 최명희에게는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홉살 때 아버지와 함께 본가가 있는 남원시 사매면 노봉으로 추석 차례를 지내러 가던 길이었다. 때마침 비가 와서 온통 진흙탕길이라 어린 최씨가 무슨 길이 이래라고 투정을 부리자 젊은 아버지는 손을 쳐들어 고향의 산과 들을 가리키며 어린 딸을 엄하게 꾸짖었다.
“이 동네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 이 길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다니셨다. 온 조선 강토를 다 다녀도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외가의 어른들은 어린 최씨를 무릎에 앉혀놓고 몇대조 선조의 이야기까지 심지어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마치 지금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들려주곤 했다.
어른들이 들려준 것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섬기던 왕조가 망하고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면서도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제 스스로를 불태워 어둠을 밝힌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혼불’이다.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있게 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윗대로 이어지는 세보의 사다리가 저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죠.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았을까. 이 평범하고 소박한 의문이 저를 17년간 붙들어 맨 근거가 된 것입니다.
2.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
문체는 선택이고, 문체는 인격이다. - 작가의 창작의도 이해하기
민족의 상징성 - 민족혼 - 민속학, 모국어
(1) 민속학의 보고 - 농촌생활(농경사회), 양반/천민의 삶 - 대비, 역사, 다양한 풍속, 남원의 역사 ===> 민속학 사전, 박물관 보관
역사자료는 「혼불」이 아니라도 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역사의 느낌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박제돼 있는 선조들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 오늘의 내 삶과 한 탯줄로 잇기 위해서는 어머니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대로 「혼불」안에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 모국어의 보고 - 단일민족, 단일어 - 동질성 확인 ===> 국어사전 기록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의 결과가 우리말, 전통 생활습관에 눈을 돌리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쉽게 버려지는 오늘의 세대에 진정한 생명소를 지닌 바탕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습니다.
(1, 2) => 박제화(생동감 부재, 생명 상실) => 극복 => 복원(나의 삶과 밀착 / 우리집, 이웃집의 이야기 / 내 고장의 이야기 / 우리나라의 이야기) - 특수성 -> 보편성 획득의 과정
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 조상들은 무엇을 먹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의 해결 과정이 혼불이라는 의미이다.
작가 최명희는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복원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불을 통하여 순결한 모국어와 세시풍속, 관혼상제 등 전통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 산천초목, 생활습관, 사회제도, 촌락구조, 역사, 세시풍속, 관혼상제, 통과의례, 그리고 주거의 형태와 복장과 음식, 가구, 그릇, 치레, 소리, 노래, 언어, 빛깔, 몸짓들을 단순한 토막지식으로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행하고 치르고 감당했던 선조들의 숨결, 손길, 염원과 애증이 선연히 살아나도록 애절하게 재생해냈다. 이러한 것들은 민속학 사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몸으로 느끼고 호흡한 결과로 나타난, 철저한 고증의 결과이다.
작가는 머리로, 생각으로 혼불을 쓴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가슴으로 작품을 썼다. 최명희 작가는 혼불의 집필 태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 작품의 한부분을 따로 떼어 내거나, 나아가 한문장만 읽어도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머뭇거렸다. 이는 인간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우리 삶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한번 쓰기 시작하자 저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사로잡은 이 작품 때문에 밤이면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했다.”
(3) 자연, 지리풍토 중심문학(광의의 생태문학)
지구의 자연은 인간에 의해 계속 파괴되어 재생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자연을 되살리고자 하는 환경운동이 문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녹색문학, 즉 생태문학, 더 나아가 생태학과 환경, 그리고 자연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일에서는 환경문제를 다루는 문학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생태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환경운동이 확산되면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생태문학. 80년대 중반부터는 생태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들이 시작되었고 이후 생태시, 생태소설, 생태비평, 생태미학, 생태 페미니즘 등과 같은 다양한 개념으로 분화되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8 거멍굴 근심바우<3,235>
서선(西山) 노적봉(露積峰)을 등뒤에 병풍같이 둘러 세우고 멀리 아득한 동쪽으로 지리산의 능선을 바라보는 마을 매안의 지형은, 검푸르게 우거진 소나무 산 노적봉의 기맥이 아래로 벋어 내리다가 기슭에 이르면서 평평한 둔덕을 짓고 고이는데, 그 자락 끝에 나붓이 드러난 발등과 같이 도도록하다.
그냥 뒷동산이라고도 불리는 산 자락 기슭에는 해묵은 밤나무가 들어차 우뚝하거나 드러누운 바위의 큰 덩어리들과 어우러져 동무를 하고 있는데, 이 밤나무 숲은 뒤안으로 한 원뜸이 마을의 맨 위쪽이다.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암수 서로 마주하고 서 있는 종가의 솟을대문 아래쪽으로 형제, 지친과 그 붙이의 집들이 모여 있다.
<3,236>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더니만, 이것은 행무행열(杏茂杏悅), 큰집에 은행나무가 무성하니 우리집에 살구나무가 즐거워하는 격이네 그려. 허기는, 은행이나 살구나 무슨 속이 같어도 그리 같어서, 살구 행(杏), 동자(同字)를 쓰겄는가마는.”하고 기응이 말하며 웃은 일이 있는 오류골댁 살구나무 둥치는, 가을이면 눈이 시린 궁청의 하늘 아래 황홀 휘황하게 물이 드는 노란 은행나무 눈부신 떨기를 한겨울 내낸 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가, 이른 봄 땅이 녹기 시작하면 멀리 연두빛으로 트이는 봄 하늘 아래, 비로소 애달프고 자욱한 연분홍의 구름 머리로 꽃 피어 대구(對句)로 화답하였다.
이만큼 내려와 가운데 모인 중뜸의 언덕과 사립문 어귀에는, 그들의 새끼 나무들이 다문다문 흩어져 자리를 잡았는데, 어느결에 어미 나무가 되어 있곤 하였다.
그리고, 노적봉에서 날아온 솔씨가 어느 때쯤 떨어진 것일까. 매안에는 마을의 굽이마다 적송이 몇 그루씩 모여 서 있었다.
막 등천하려는 듯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기상의 붉은 몸에 용의 비늘 같은 갑옷을 입고 푸른 머리를 성성한 바람 속에 드리운 적송은, 울근불근 뿌리의 뼈가 땅 위로 드러나 있었다.
마을 왼쪽을 끼고 물이 흐르는 계곡이 그 흐름을 낮추어 개울로 변하는 아랫몰 언저리부터는 무논[水畓]이다.
울안마다 감나무가 지붕을 넘어 선 키에 가지를 늘이우고, 또 나름대로 배나무와 모과나무들을 마당 귀나 사립문 옆에 데불고 있는 매안의 집집들은, 지천으로 흔한 돌을 주워 쌓은 돌담말고도 심심치 않게 물소리를 내는 대나무로 울을 두른 곳이 많았다.
아랫몰 발끝에 서서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면 어머니의 앞자락 같은 안온함이 느껴지지만, 뒤돌아 노적봉을 올려다보면 그것은 부성(父性)의 웅자(雄姿)가 분명하였다.
(중략)
지리산맥(智異山脈)이라고도 부르는 소백산맥(小白山脈)과 노령산맥(蘆嶺山脈)이 일대 분수령을 이루면서 서로 나뉘는 지붕 꼭대기에서,
<3,238>
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낙동강의 맨 윗머리가 되고 서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섬진강의 맨 윗머리가 되는데, 서쪽으로 가는 여러 줄기 흐름은 이 골 저 골 물이 모이고 모이면서 합류하여, 남원군의 산동면(山東面)에 이르면 제법 긴 강이 된다.
여기서부터 물의 이름을 요천(������川)이라고 부른다. 이 강물은 산동면 아래 이백변(二白面)을 거쳐 남원읍의 동쪽을 휘감으며 유유 완만하게 비단필처럼 흘러가, 전라남도와 접경하고 있는 금지면(金池面)에 이르러 적성강 하류와 만나 합수하니, 이제 순자강(鶉子江)을 이룬다.
도도하게 굽이치며 흐르는 이 강이 섬진강의 크고 깊은 강물에 이르면, 푸른 물 흰 모래로 어울리어 구례, 곡성을 지나고 경상남도 하동땅을 적시면서 남해로 가는 것이다.
이 강물의 유역들은 지질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여 기름진 평야를 가없이 이루어 내니, 요천강 유역에는 가방(可防)평야요, 적성강 유역에는 금지(金池)평야여서, 그 아득한 넓이는 실로 백 리를 가고도 남았다.
이런 남쪽의 넓은 평야부를 제하면,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의 준령들이 드높고, 다른 쪽으로는 노령산맥이 위용을 떨치고 있는데, 이 노령산맥은 다시 여러 지맥으로 갈리어, 북쪽으로 마이산맥, 서쪽으로 부흥산맥을 이루어서, 동·북·서 삼 방면 모두가 크고 높은 산맥의 줄기와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 바로 남원군이었다.
이렇게 큰 산맥들에 에워싸인 남원군의 동쪽 어깨는 그 중 산악이 높아, 어깨 꼭대기에 올라앉은 운봉면(雲峰面)은 제가 속한 전라북도와,
<3.239>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삼도 접경 몰랭이로. 겨울 적설기에는 눈이 내리는 대로 얼어붙어 빙판이 된 채, 이듬 해 봄이 돌아와 남들은 꽃 핀다는 춘삼월이 지나가고, 모내기 해야 할 사월이 되어서야 얼음이 겨우 녹기 시작하는 산간 고원지대이다.
그러나 지리산맥과 노령·마이산맥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산 위에 산이요, 산 너머 산으로, 높은 산과 깎아지른 골짜기, 그리고 빼어난 봉우리와 험준하고 가파른 고개들이 첩첩으로 연하여 있어, 곳곳마다 신선이 노닐 만한 청량한 계곡과 구름이 스치는 기암 절벽들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운봉의 지형이다. 이렇게 높은 고원의 어깨마루 지대에, 운봉면과 아영면(阿英面), 그리고 그 옆에 동면(東面)까지 삼개면을 이룰 만큼 넓은 평원이 여원치(女苑峙) 고개를 막 넘어서면 한눈에 풍요로이 펼쳐져 들어오는 것이다.
이곳에 동천(東川)·서천(西川)의 물길 또한 넉넉하니 마을은 물론이고, 가히 가방평야·금지평야와 더불어 이 고장의 삼대 곡창이라 불리어 무색하지 않은 운봉평야가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두드러진 산간 고원의 치솟은 어깨나, 맑은 강이 흐르는 평야부의 비옥한 가슴말고는, 대체로 넓은 지역에 걸쳐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았다.
매안 마을이 있는 사매면(巳梅面)은, 남원읍에 맞닿아 인접한 곳으로, 군의 복판에서 서북 간방(間方)으로 약간 빗기어 앉은 이 면에 이어, 서쪽 손으로부터 북쪽 머리를 돌아 동쪽으로 띠를 이루며 거대한 삼태기처럼 주위를 에워싼,
<3,240>
대강면(帶江面)과 대산면(大山面), 그리고 덕과(德果)·보절(寶節)·산동(山東)·이백(二白)·주천(朱川)·송동(松洞)·수지(水旨) 같은 면들이 다 이 구릉지대에 속했다.
이 준평원의 구릉지대 안에는 크고 작은 들이 산재하여, 주위 경관을 데불고 농사짓기 마땅한 곳도 있고, 척박한 토질에 손가락이 갈퀴처럼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이런 지세를 높고 크게 에워싸고 있는 소백·마이·부흥을 두고 사람들은 삼대(三大) 산맥이라 하였다. 이 산맥들은 저마다 한 영봉에 그 정기를 갊아 넣었으니, 동쪽의 소백산맥은 지리산 묘경을 이루었고, 성수산맥(聖壽山脈)이라고도 불리는 북쪽의 마이산맥은 천황봉(天皇峰)을 우뚝 세웠으며, 서쪽의 부흥산맥은 저 노적봉에다 위엄있고 의연한 기상을 아무려 세상에 보여 주고 있었다.
이 노적봉의 발등이 매안 마을이다.
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동안을 걸으면 정거장에 닿는다.
본디 이곳은 무슨 이름을 따로 붙일 일이 없었던 논 가운데였다.
그러던 것이 전라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곳에 정거장이 생긴 것이다. 이 지점은 매안뿐만 아니라 그만그만한 주위 사방 마을과 여러 골짜기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까지 사람들이 골물처럼 모여 오기 알맞은 곳이었다.
논 위에 철도가 놓이고 정거장 역사(驛舍)가 세워지면서 역장의 관사와 역원의 집, 그리고 밥집이며 점방들이 처마를 맞댄 옆에 몇 채의 새 집이 들어서고 주막과 여각(旅閣)이 어울려 생겨났다.
<3.241>
지금까지는 근처에 없던 모양의 동네가, 철갑차와 더불어 새 풍물을 보이며 제법 불어나 정거장 동네는 북적거리게 되었다.
(중략)
매안에서 오수역까지는 시오리 길이요, 원이 있는 밤두내 율두천원(栗頭川院)까지는 십 리 길이고 남원 읍내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3,243>
<3,244>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찰방도, 역마도, 역졸도 모두 없어지고 그대신 철도와 정거장이 생겼다.
그거이 벌써 칠팔 년 전 일인데 다만 아직도 역이라는 옛말은 그대로 남아 뙈애액, 검은 연기를 온 하늘에 뿜어 내며 시커멓게 달려드는 철갑차를 맞이하고 보내고 하였다.<3,244>
찰방이 있던 역만큼이야 법석거리지 않지만, 그래도 정거장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와 어우러져 있었다.<3,244> 상행으로 서울로부터 하행으로 여수에 이르기까지 기차를 타려고, 여러 마을 여러 골에서 이곳으로 나온 사람들이 보퉁이를 하나씩 안고 들고 앉은 대합실은, 오수 장날이나 남원 장날이면 으레 더 많아지게 마련이었다.<3,244>
예전부터 오랫동안 그래 왔듯이, 시오 리 오수는 물론이고 삼십 리 남원장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 태반이었지만, 무슨 이기지 못할 큰 짐이 있을 경우에는 놉을 사는 것보다 차비가 더 적게 먹혀,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워서 쭈밋거리던 기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3,244>
이고 지고 나온 보퉁이와 꾸러미를 들고 장으로 가려던 사람들은, 이 정거장에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그만 저절로 물건을 바꾸고 사고파는 일들이 이루어져, 굳이 장에까지 안 가고 여기서 셈이 끝나 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히 장날이면 이 정거장 마당에 작은 장의 시늉이 서게 되었다.<3,244>
그러나 아무리 장날이라고 해도, 매안의 이씨 문중 사람들은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장 길에 익숙한 머슴이나 재바른 하인을 시켜 심부름을 보내기 때문이었다.<3,244>
<3,245>
만일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은데 피치 못할 급한 일이 생긴 수가 있다 하더라도, 장에 가는 일만큼은 정거장으로 나오지 않고, 오수, 남원까지 걸어서 소롯길로 혼자, 눈에 뜨이지 않게 다녀왔다.<3,245>
장바닥이란 원래 선비가 나설 곳이 아닌데다가, 반상이 마구 뒤섞이어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광경은 더구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3,245>
그런 일을 만부득이 하러 가는 경우라 할지라도
“팔도(八道) 모산지배(謀算之輩)가 위아래도 없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정거장.”
은 매안의 성품에 맞지 않는 탓이었다.<3,245> 행세가 빠지는 집이라면 모를까. 넓은 갓 쓰고 두루마기 떨쳐입은 양반이 상것들하고 나란히 앉아 한자리에 가야 하는 철갑차는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3,245>
어디의 누구네 집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행동거지 모색으로 보아 상것이 분명한 사람도 이쪽을 보고는 멀뚱멀뚱 하고 있거나, 토방에도 못 올라서고 뜰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하정배(下庭拜)를 올려야 마땅한 신분의 것들이, 장소 핑계를 대고 마주선 채로 우물쭈물 인사를 때우는 것도 도무지 아니꼬워, 차라리 그 꼴 안 보고 내 다리품을 팔지 싶은 것이었다.<3,245>
그렇지만 어디 원행(遠行)할 일이 생겨 만일 정거장으로 나오게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먼 발치에서도 이씨 문중 누구인지를 알아보아 그쪽에서 먼저 미리 조신하게 몸가짐을 고쳤다.<3,245>
더욱이 혹 거멍굴이나 고리배미 사람들이 문중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들지 못하였다.<3,245>
<3,246>
거멍굴은, 정거장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도와 이만큼한 거리에 나란히 길이 난 산 밑을 따라 한 식경쯤 걸으면 보이는, 근심바우 옆, 몇 가호 옹색한 마을이다.
그저 다박솔이나 옻나무, 잡목들이 생긴 대로 우거진 나직나직한 동산들로 이어지던 능선의 풍경이 문득 출렁 높아지느가 싶은 무산(巫山) 봉우리 아래 자리잡은 거멍굴은, 소쿠리 하나 안에 들만치 도래도래 모여 앉은 납작한 초가집들의 마을이다.
깊은 산간의 벽지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 만한 한 뙈기 땅을 구할 길이 없으니 결국 불을 놓아 밭을 일구는 화전민 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반대로 산이 전혀 없는 허허 벌판은 또 땔나무를 얻기에 힘이 들 것이므로, 산과 들이 알맞게 어우러진 지형이 살기에 제일 좋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 살아 마을을 이루는데 제일 좋은 명당은, 비산비야(非山非野), 산중도 아니고 들도 아닌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 곳이라야 인물이 나고, 마을이 번성하며, 오래 오래 자손이 이어져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는다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런 곳이 피난에 가장 적지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매안의 지형이 바로 비산비야였다.
노적봉의 영기(靈氣)가 벋어 내린 발등에 터를 잡아서 그 발 아래 논을 밟고 서 있는 형국이 매안의 지세였던 것이다.
그곳에 처음으로 입향한 현조(顯祖) 한 몸의 자손이, 몇 백 년 동안 나고 또 나서 온 매안에 가득 차고, 잔등이 너머 다시 작은집 마을 하나를 더 이루도록 창성한데.
<3,247>
이런 벌족한 동성(同姓) 마을의 이만큼에 외따로 멀리 물러앉은 여남은 집 산성촌(散姓村) 거멍굴은, 서로 생업이 달라 세 무더기로 끼리끼리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처음에야 그렇게 길이 나뉜 곳이 아니었지만, 철도가 생기면서, 저만큼 있는 몇 집과의 사이에 금이라도 그은 것같이 된 대여섯 가호는, 언덕배기만한 동산 아래 엎드려 있었다. 발치에 작은 개울을 끼고 있는 그 동산은 얼른 보면 무심한데, 뜻밖에도 제 키와 덩치에 맞먹을 만큼 시커멓고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제 가슴에 덜컥,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바위 덩어리의 형상이었다.
마치 한없이 큰 사람이 무슨 근심스러운 일이 있어 웅크리고 앉은 채, 이마를 무겁게 수그려 제 가슴 쪽으로 기울인 형상이 분명한 바위였다. 높이는 올려다보아 서너 길이 넘을 것 같고 넓이는 장정 대여섯이 팔을 있는 대로 벌린 만한데, 가슴이라 할 곳은 우묵하게 패여 들어가 있어 더 거멓게 보였다.
검은 근심.
그것을 쓸어 내리지 못하고, 웅크린 무릎 위에 시름 없이 얹어 놓은 두 팔도 모양이 확연하였다.
그런데 이 바위 덩어리는, 앞 모습만 그렇게 역력할 뿐, 뒷등은 무덤을 업은 것처럼 동산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동산의 한복판에 검은 바위 덩어리가 어둡고 깊게 박힌 것도 같았다.
<3,248>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이 바위를 두고 ‘근심바우’라고 불렀다.
그리고 숯덩어리 같은 섬은 이 바위의 빛깔을 빌어 생겨난 동네 이름이 ‘거멍굴’이었다.
3. 한국인의 한국어 모습
(1) 문학관
(가) 하찮은 것의 소중함 깨닫기 과정(화려함의 뒤안길 뒤적이기) - 조각인형:깎여나간 조각, 선운산 동백꽃:이끼 위의 낙화, 종가:거멍굴의 애잔함
(나)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을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 달리,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2) 언어관
작가의 언어관이 잘 드러난 글이 있다. 그 글에서 작가의 언어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몇 부분 살펴보기로 한다.
최명희, 1998, 혼불과 국어사전(특별 강연), 새국어생활 제8권 제4호(98년 겨울호), 국립국어연구원
(가) 자신만의 국어사전 만들기
- 방언, 일반적으로 쓰는 말, 새로 발견한 말 등등을 기록하였다.
- “사전을 시집처럼 읽으라” / 이민자 - 국어사전 선물
- 언어의 음향에서부터 오는 느낌을 나름대로 한번 조립해 보고 꾸며도 보고 그려면서 저절로 언어에 친화감을 가졌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나) 언어의 연금술사
많이 쓰고 빨리 쓸 수 있고 정보를 입력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나한테 컴퓨터 쓰기를 권한다. 그러나 문득 한번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쓰고 ‘빨리’ 써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뭇 의아해진다. 무엇보다 나를 황홀하게 사로잡는 것은 만년필의 촉끝이다. 글씨를 쓰면서도 흘리어 순간순간 그 파랗게 번뜩이는 인광에 한숨을 죽이게 하는 촉끝은, 한밤중에도 눈뜨고 새파란 불을 밝힌다. 나는 때때로 내가 본 이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이 만년필 눈이 아닌가, 찬탄을 금치 못한다. 만년필 등에서 날렵한 촉끝으로 쏟아지며 또 다른 불꽃을 일으킬 때, 나는 우주와 만년필의 교감에 전율하였다.
‘남원방언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이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 자체가 판소리’라고 말한다. 소설 문장이지만 소리내어 읽으면 바로 판소리 가락이 되는 그의 문체는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스란히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굵은 만년필로 원고지에 한자 한자 새기듯이 글을 쓰는 최씨는 “문장을 쓸 때 몇번이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문장마다 나름의 가락을 얻을 때까지 한뜸 한뜸 다듬는다”고 말한 바 있다.
혼불에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말이 많이 있다. ‘혼불’이라는 말도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가 있다.
“사전에는 없지만 제 고향 전라도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 속에는 누구한테나 있다고 하지요. 그것이 바로 혼불로 생명의 불, 정신의 불을 뜻합니다. 그러나 저는 혼불의 유무를 떠나 「역사의 혼불」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어둡고 아픈 일제강점기에 혼불이 살아있는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피맺힌 한을 그려보고자 했던 것이죠.”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입니다. 혼불을 통해 우리말 속에 깃들인 우리 혼의 무늬를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국제화다 영상시대다 들떠서 누천년의 삶이 녹아 우러난 모국어가 단순한 기호로 흩어져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우리식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면서 서구 전래품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 형상화하여,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낱낱이 단위 자체로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각 장(章), 각 문장, 각 낱말을 나는 쓰고 싶었다.
최명희 작가는 20세기의 말미에 “한국정신의 원형질을 그려내고 싶다.”고 혼불을 통하여 우리에게 화두를 던졌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이 화두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다) 국어의 음조, 음률, 음향에 대한 관심 : 음의 상징성에 관심이 깊다
-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경원동) : ‘화원’이라는 음률, 음색이 주는 울림 - 화사한 꽃밭을 연상
- 전라북도 전주시 : ‘ㅈ' 발음 - 편안하고 낮은 음조 - 활짝 피었다기보다는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발음의 음감
- 택호 간치내댁, 간치내 아짐, 간치내 조카(까치 냇물) - 음향, 음색의 상상력 풍부
(라) 모국어 사랑
- “언어는 정신의 지문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모국애 정신은 그 나라의 모국어이다. 모국애 정신을 잘 담아 놓고 모국어를 제대로 잘 쓰고 모국어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나라야말로 그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이다.”
- “혼불이 모국어로 읽히기를 원한다.”
(3)혼불 언어 둘러보기
1. 귀품있는 한자어 사용 / 서민의 일상어 - 정신세계 표현/삶의 세계 표현
2. 의성의태어 사용/소리 관련 어휘 사용 - 이미지 형상화
1. 귀품있는 한자어 사용 / 서민의 일상어 - 정신세계 표현/삶의 세계 표현
(1) 한자어 사용(민속어 등 다양한 분양의 한자어)
며칠째라고 하지만, 그것은 꼬박 밤을 새우면서 방방이 불을 밝히고 장명등이 꺼지지 않은 날수만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요, 실상 분주하여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혼인하자는 말이 오간 의혼(議婚)이 있고, 청혼서(請婚書)가 오가면서부터였다.<1,13>
역시 매듭이 지지 않게 동심결(同心結)로 묶여 있는 것이었다.<1,14> 찬모 서저울네도 번철에 도라지와 쇠고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1,16> 상객(上客), 우귀(于歸), 혼례 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忽記), 한삼에 가리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梅花簪)의 푸른 청옥 잠두(簪頭)와 그 빛깔이 부딪치면서 그네의 얼굴을 차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었다.<1,19> 사모(紗帽)를 쓰고, 자색(紫色) 단령(團領)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1,20>
그는 체수가 작은데다가 깡마른 편이어서,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씨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문 입술과 더불어 날카롭게 빛나는 작은 눈에 예광이 형형하여 보는 이를 위압하는 것이었다.<1,23>
(2) 방언사용
남원 방언이 다른 지역의 방언과 다른 특성이 있음을 밝히는 대목
남원 말은 다른 곳과 달라 전라남북도와 경상도, 삼도 접경 지역의 여러 고을 사투리 억양이 묘하게 섞이어 있었다. ····· 콩심이가 이상하게 생각한 말은 “하아.”였다. ‘하’가 높고 ‘아’가 낮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콩심이도 얼마든지 경우따라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웃어른한테는 못 쓰는 것으로, 무슨 말에 대답을 할 때 주로 썼다. 그러나 그 쓰임새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너 밥 먹었냐?” “하아.”같은 것은 알아듣기 쉽지만, 긍정, 맞장구, 너무나 당연하다는 뜻, 감탄, 노여움 들은 모두 그 곡조로 알아들어야 했다. 그 곡조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내용,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궁무진 변조가 되었고, 미끄러지거나 채올리거나 툭 자르거나 미묘하게 출렁이는 말의 가락은 마치 노래 같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4권 75쪽)
경어법에 대한 인식
작품 내에서 등장인물들간의 대화에서도 대우법의 등급을 달리하고 있다. 각 인물들이 상호간에 대우법을 달리한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신분의 상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양반과 상민의 이야기를 다룬 것에서 연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언어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기 때문에 대우법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화자간에 화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상놈’이라고 하대하는 상민과, ‘하게’를 붙여 주던 중인(中人)·중로(中路), 그리고 ‘겨우 양반’이라는 소리를 얻어듣던 무세한 반족이 서로, 몇 집 안되는 타성끼리도 삼엄하게 나뉘는 것이다.(3권 151쪽)
고리배미에는, 이 중로와 상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신분의 구분은 있어서, 그들은 아무리 허물없이 이웃하고 살아도, 쓰는 말만은 마구 섞지 않았다. 그 사는 형편이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중로는 상민에게 ‘하게’나 ‘하소’로 말을 놓았고, 상민은 중로에게 ‘합니다’, ‘하지요’ 하며 말을 올려 했다. 지금이야 옛날 같지 않아서, 그런 신분을 정하여 옮도 뛰도 못하게 만들었던 조정도 망하고, 이제는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피에 불과한 것이었다.(3권 271쪽)
춘복이가 투박한 대로 말을 놓을 때는 마치 자기와 한 살인 듯 여겨지다가도, 이렇게 평상대로 말하면 별안간 허망해지며 내쫓긴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 문득 가슴이 선뜩해지기까지 하는 말투였다. ······ 그 심정을 말투로 드러내고 마는 것이었다.(3권 18)
등장인물들의 언어 특징 묘사
개인의 언어 특성에 따른 개인어나 순간적인 상황에 따른 언어의 변화에 대한 차이의 인식이 드러나 있다.
말을 할 때면 거의 살랑거리는 느낌을 줄만큼 상냥하고 가볍게 말꼬리를 쳐올리며 끌어 빼는 것이 김씨의 특징이었는데(5권 83)
몸이 방에 있어 이야기를 듣는 중이라 말로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정작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그런 말투였다.(4권 197)
의성의태어 사용/소리 관련 어휘 사용 - 이미지 형상화
‘소리’ 관련 어휘의 개념
‘소리’ 관련 어휘는 명사 ‘소리’가 직접 드러나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리를 묘사하는 의성어,그리고 ‘소리’ 명사나 의성어는 드러나지 않지만 ‘소리’를 함의하고 있는 어휘(예, 시끄럽다, 칭찬, 비난 등)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혼불의 한 단락에서만 보더라도 ‘소리’ 어휘가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1>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蕭蕭)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울타리 삼아 뒤안에 우거져 있는 대밭이나, 고샅에 저절로 커오르는 시누대,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왕댓잎의 대바람 소리는 그저 언제나 물결처럼 이 대실(竹谷)을 적시고 있었다.
<1,12>근년에는 이상하게, 대가 시름거리며 마르기도 하고, 예전처럼 죽순도 많이 나지 않아, 노인들 말로는 대숲이 허성해졌다고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하늘을 가리며 무성한 대나무들은 쉬흔 자의 키로 기상을 굽히지 않은 채 저희들끼리 바람을 일구는 것이었다. 전에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대는 속이 비어서 제 속에 바람을 지니고 사는 것이라,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대숲에는 바람이 차기 마련이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날씨마저 구름이 잡혀 있는데다가 잔바람이라도 이는 날에는 으레 물결 쏠리는 소리를 쏴아 내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시늉을 대숲이 먼저 하는 것이었다. 대실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대숲에서 일고 있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 소리만으로도 날씨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몸짓까지라도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기도 하였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서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얼마든지 들어 낼 수가 있었다.
<1,13>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그 대바람 소리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에 큰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낮의 한가운데 하이얀 햇볕의 폭을 가르며, 응아아아, 갓태어난 어린 것의 울음 소리가 터질 때. 청암부인은 소리 없이 낙루(落淚)하였다. 아, 저 소리. 내가 한세상을 기다려 온 소리. 이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가장 힘 있는 소리. 청암부인은 밤이 허옇게 새어 버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2,228)
혼불에 ‘소리’ 어휘가 몇 번이나 쓰이고 있는지 그 횟수를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이 2,129회가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정 어휘가 한 작품에서 이처럼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작가가 이 어휘를 통하여 특별히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1) ‘소리’ 어휘의 의미적 분류
‘소리’ 관련 어휘를 의미범주별로 분류하면 자연의 소리, 사물의 소리, 사람의 소리, 동물의 소리로 나눌 수 있다.
다시 자연의 소리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로 나눌 수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소리들도 분류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대표적으로 이 두 소리가 많이 쓰이고 있다.
사물의 소리는 농기구 소리, 생활용구 소리, 주택 부속물 소리, 악기 소리로 하위 분류할 수 있다.
사람의 소리는 말소리, 웃음 기쁨의 소리, 울음 슬픔의 소리, 성난 소리, 경 읽는 소리, 상여소리 기타 소리로 하위 분류할 수 있다.
동물의 소리는 새 소리와 가축의 소리, 벌레나 곤충의 소리로 나눌 수 있다.
(가) 자연의 소리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① 바람소리의 예와 일부의 의성어
왕댓잎의 대바람소리(대실(竹谷)마을) - 사르락사르락, 솨아, 쏴아, 우우우(1,11)
사르락사르락(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는 소리)
솨아(댓잎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내는 물소리와 유사한 소리)
쏴아(잔바람이 이는 날, 물결 쏠리는 것과 같은 소리)
우우우(푸른 잎의 날을 세워 누구를 부르는 것과 같은 소리)
서로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골에서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성이 나서 푸른 날을 세워 물을 솟구치는 소리
심심하여 이파리를 흔드는 소리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내는 한숨 소리
별의 무리가 대밭에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
- 등장인물들은 소리만으로도 날씨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소리에 예민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어휘가 많이 쓰이고 있고 그처럼 많이 사용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물소리의 예
개울물 소리(2,46), 강물소리(4,166), 물소리(4,100),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3,142),
물소리가 철벙철벙 난다(1,121)
③ 기타의 소리
불을 때는 소리(4,167), 솔바람소리, 청솔바람소리(4,163),
달빛 소리(5,40), 천둥소리(5,34)
오동잎소리(5,41), 가랑잎 소리(2,77), 명아주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2,319)
(나) 사물의 소리
농기구 소리, 생활용구의 소리, 주택 부속물의 소리, 악기의 소리로 나눌 수 있다.
① 농기구의 소리
장작 패는 소리(1,15), 물지게 소리(2,50), 베폭 찢는 소리(4,84), 베짜는 소리, 물레방아 소리(2,144),
놋재떨이 소리(2,205), 돌깨는 소리(1,161), 톱 소리(2,156), 쇠 치는 소리(3,260), 흙더미 무너지는 소리(1,50),
논바닥에 엎드린 햇빛에서 놋쇠 익는 냄새가 난다. 탱그르르 소리가 울릴 것도 같다.(1,120),
② 생활용구의 소리
떡메 소리(1,15), 맷돌들의 울음소리(1,55), 다듬이 소리(1,15), 맞방망이 소리(1,185),
그릇 씻는 소리(1,77), 적(전) 부치는 소리 치지지이이 치직(1,16)
신발 끄는 소리(1,134), 짚신짝을 꿰는 소리(3,21), 어수선한 발소리(2,50),
붓이 백지 위를 달리는 소리(3,163), 차락차락 소리를 내며 넘기던 책장 한 끝에(1,123)
불꽃 튀는 소리(4,129), 촛불 심지 타는 소리(3,115),
가락지와 반지만 하여도 패물함으로 저렁저렁 소리가 나게 하나 가득이었는데(1,221)
③ 주택 부속물의 소리
문 열리는 소리(1,65), 풍지소리(3,203), 쇠통 소리(2,202),
문풍지가 더르르 울리더니((1,78), 바람에 더르르 풍지가 운다(1,205)
범종소리, 종소리(4,163)
과녁에 맞는 소리(2,165),
④ 악기소리
젓대(피리) 소리(1,16), 피리소리(3,219)
농악소리가 개갱갱갱거리는 것 같았다(1,114), 농악의 꽹매기 소리(1,115), 소구, 장구 소리(1,116), 북소리(1,132), 징소리(3,265)
바이올린 소리
(다) 사람의 소리
사람의 소리는 말소리, 웃음 기쁨의 소리, 울음 슬픔의 소리, 성난 소리, 경읽는 소리, 상여소리 기타 소리로 하위 분류할 수 있다.
① 사람의 말소리
- 장음화
살으은 썩어어 물이 되에고오 뼈는 썩어어 흙이 되에니이 한심허어고 가아련허다 근들 아니 원호온이인가아(2,145)
- 방언의 사실적 묘사
“아이고오, 서방니임. 서방님 아니싱교잉?” 누군가 다급하게 튀어나와, 돌아서는 그의 뒷덜미를 나꾸어채듯 부른다. 하도 찰지게 낯익은 전라도 가락의 남원말이라, 강모는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인가 싶어 펀듯, 고개를 돌린다. <10-65>
② 웃음, 기쁨의 소리
신이나서 재재거렸다(1.13),
화사한 농담(1,22), 덕담(1,20), 우스갯소리(1,110), 웃는 소리(1,26), 웃음이 터져나왔다(1,185),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물었다(1,185)
홍소(哄笑)의 소리(1,29), 홍소를 터뜨리고 있을 때(1,70), 떠들썩한 홍소가 터진다(1,90),
파안대소하였다(1,94)
고운 소리(4,104), 맑은 소리(3,143)
③ 울음, 슬픔의 소리
통곡소리(1,165), 목을 놓아 우는 소리(3,39), 아이의 울음소리(2,94), 한숨 소리(1,194), 목쉰 소리(1,196), 곡소리(4,248)
비명(1,187), 울부짖는 소리(3,39), 가슴 찢는 소리(3,194), 상여소리(4,260)
안타까운 목소리(1,19), 잦아드는 소리(3,81), 목멘 소리(2,153), 목안에 잠긴 소리(3,32), 눈물 떨어지는 소리(3,157), 애끓는 소리(3,182)
탄식하다(1,16), 탄식처럼 낮은 소리가 터진다(1,20), 아하아아 탄성을 발했다(1,24)
희롱의 소리(2,186)
④ 성난 소리
목청을 돋운다(1,108), 말끝을 누른다(1,62)
입바른 소리(1,111), 오금을 박는 소리(4,64), 이빨 박는 소리(3,133), 상놈소리(4,234), 애민소리(4,231), 볼멘소리(4,117), 메마른 소리(2,161), 싸가지 없는 소리(2,281), 박살나던 소리(3,69)
기침소리, 쇳소리(1,108), 뒷소리(4,103), 잔소리(4,200), 모진 소리(4,199), 신음소리(2,93)
거친 소리(2,308), 궂은 소리(2,308)
목소리에 등잔불의 그을음이 섞여든다(1,78)
율촌댁 음성에 모가 섰다(2,79)
⑤ 기타의 소리(속삭이는 소리, 작은 소리, 일반적인 소리)
낮은 목소리(1,24), 숨소리 섞인 귓속말(1,20), 숨소리(4,47), 기척소리(4,58), 헛소리(2,280), 풋소리(3,304), 의논소리(4,236), 노랫소리(4,303), 축문 읽는 소리(4,303), 말소리(3,19), 대답소리(3,82)
침 삼키는 소리(4,200), 삼키는 소리(4,200), 가래가 걸린 소리(2,307)
소근거리다(1,21), 귀엣말을 소근거리다(1,22)
어린 아이 노는 소리(3,11)
호령소리(3,40)
선소리꾼(3,203)
당골네 백단이의 독경소리(2,110) 육갑해원경(六甲解寃經), 부정경
발자국 소리(2,132), 발소리(4,174)
(라) 동물의 소리
① 새의 소리
뻐꾸기 소리(1,85), 뻐꾹새소리(2,128), 까치 소리(2,50), 까치의 날개(치는) 소리(4,168), 새소리(2,128), 왜가리소리(5,178)
② 가축의 소리
개짖는 소리(1,184), 닭이 홰를 치는 소리(1,44), 엉머구리 우는 소리(4,96), 늑대의 울음 소리(2,239), 개구리 우는 소리(2,137), 구욱 구구 꾸꾸거리는 영계들(1,214)
③ 벌레나 곤충의 소리
풀벌레 울음(2,146), 여치 울음 소리(2,151), 매미소리(4,100)
꿀벌들의 닝닝거리는 소리(1,122)
(3) ‘소리’ 관련 어휘 사용 양상
(가) 기존 어휘 사용
(나) 개인적 조어 사용 - 특히 의성어의 경우
① 여러 의성어가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여러 소리들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구나 절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② ‘소리’와 호응하고 있는 서술어의 쓰임과 종류가 흥미롭다. 동시에 ‘소리’는 청각인데 시각적인 서술어나 동작성 서술어나 상태성 서술어와 호응하는 경우가 많다.(감각화 용법)
시각화 : 허근의 말이 길게 꼬리를 끌며(1,21),
그럴 때 차갑게 귀를 적시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얼마나 시리었던가.(2,46),
율촌댁 음성에 모가 섰다(2,79), 흰 목에 붉은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2,182)
저지난 해 여름, 강수의 넋을 혼인시키던 명혼(冥婚)이 있던 무렵에도 이렇게 석류껍질 벌어지듯 쩌억 소리를 내며 햇빛이 갈라졌었지. 그 햇빛이 갈라진 자리에 캄캄한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2,205)
목소리마저도 쉰 듯하다. 쉬었다기보다 푸스스 먼지가 일 것 같은 소리다.(2,277)
청각화 : 탱그르르 소리가 울릴 것도 같다.(1,120)
후각화 : 논바닥에 엎드린 햇빛에서 놋쇠 익는 냄새가 난다.(1,120)
동작화 : 무엇인가를 털어내는 듯한 말을 토했다(1,35),
발자국소리가 불꼬리를 밟는다(1,78), 문풍지가 더르르 울리더니 등잔불이 흔들린다(1,78)
상태화 : 목소리에 등잔불의 그을음이 섞여든다(1,78), 기표의 음성은 꼬챙이처럼 이기채의 심정을 아프게 쑤신다(2,76)
③ 개인적 조어 형태의 의성어 등장이 특이하다
문풍지 - 더르르
논바닥에 엎드린 햇빛에서 놋쇠 익는 냄새가 난다. 탱그르르 소리가 울릴 것도 같다.<혼불1,120>
- 탄성이 터져 나오며 와그르르 한바탕 웃음이(1,37),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와그르르, 웃는 소리가 뒤쪽에서 일었다(1,26)
- 핏줄이 석류 벌어지듯 쩌억 소리를 낸다(1,47)
- 저녁 까치가 ····· 허공에서 까작까작 소리가 울린다(1,123)
- 문종이에서 둥둥 소리가 울린다(1,132)
- 문풍지가 더르르 운다(1,184)
- 구욱 구구 꾸꾸거리는 영계들(1,214)
- 차락차락 소리를 내며 넘기던 책장 한 끝에(1,123)
- 무신 노무 목청이 그렇게 때까치맹이로 땍땍땍땍.(1,275)
- 누렁이가 싱겁게 크엉, 하면서 소리를 멈추면(1,302) => ‘컹컹’(몸집이 큰 개 짖는 소리)에서 유추
- 캐갱 크르르. 건넛집 대장장이 금생이네 강아지가 잠결인 듯 짖는 시늉을 하다가만다.(2,278)
- 그의 노기가 쩌엉, 소리를 내는 것 같았는데(1,305) => ‘쩡쩡’(얼음 따위의 굳은 물질이 갈라질 때 나는 소리)에서 유추
- 투명한 풀벌레 울음이 담밑 풀섶에서 째애애 째르르윽 들린다.(2,146)
- 괭괭거리는 징소리(2,191)
- 늑대가 귀밑에서 아후 우우웅 길게 울었다.(2,239)
- 털럭털럭, 다 떨어진 부채를 부치는 소리만이 밤이 깊은 것을 더욱 느끼게 한다.(2,281)
④ 용법 전이의 의성어(쓰임 확장)
- 춘복이는 쩔걱쩔걱 발바닥에 물소리를 내며(2,18) => 춘복이의 심사가 쇠붙이처럼 단단하게 뒤틀려 있다고 생각하여 - ‘절걱절걱, 쩔걱쩔걱, 쩔꺽쩔꺽’(쇠붙이 따위가 맞부딪치거나 걸릴 때에 나는 소리) 사용 *용법 전이
- 감나무 가지에서 때를 맞추어 마른 잎사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중 몇 잎은 떨어지는 마당에 구르는 소리가 떼구르르 난다(1,176) => ‘데(대)구루루, 덱(댁)데구루루, 데그럭’(크고 딱딱한 물건이 단단한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 - ‘마른 감나무 잎사귀’에 사용 *용법 전이
- 마을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그네가 잠 못 이루며 길쌈하는 소리는 덜컥, 덜컥, 밤이 가슴에 얹히곤 하였다.(2,46) => ‘덜컥, 덜걱’(기계나 연장 등 크고 단단한 물건이 부딪치거나 걸려 나는 소리) - 한 밤중의 길쌈 소리, 큰 것으로 강조, 확대 - 밤이 가슴에 얹힐 때로도 해석 가능(중의적)
- 강모의 귓속에 율촌댁의 음성이 쟁쟁하게 울린다.(2,170)
⑤ 의태어의 개인 조어
의성어와 동일하게 의태어에서도 개인조어를 많이 볼 수 있다.
의성어가 나타나는 문맥에서는 자연스럽게 의태어도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데 감각화하여 사실적,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 아이의 희고 둥근 얼굴에 복숭아 꽃빛이 발그레 물들어 있다. 새액색 숨소리가 고른데, 명주 이불 바깥으로 고사리 같은 주먹을 앙징스럽게 쥔 손이 나와 있다.(2,228)
- 야기(夜氣)를 띤 밤바람에 싸르락 뺨에 닿는다.(1,80)
- 담배를 재던 떠꺼머리 걱실걱실한 장정이 붙들이를 보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런 것은 우스갯소리라는 듯 한 마디 던진다.(1,110)
- 어쩌면, 얼었던 산 비탈의 황토흙이 해토(解土)가 되면서 버슬버슬 부스러지며 무너져내리듯, 몸뚱이가 그렇게 흐무러지는 것도 같다.(1,133)
- 버들피리의 부드럽고 여린 음향은 ····· 그 소리는 나훌나훌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1,136)
- 혼주(婚主)가 실심을 한데다가 모친도 없는 낭재(郎材) 준의는, 염려와 달리 누가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 차일피일 미룩미룩 하면서 날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1,225)
- 차마 율촌댁의 서슬에 마당 가운데로 나서지 못한 채 행랑에서 하인과 머슴들이 웅숭웅숭 내다보고, 안서방네와 바우네는 부엌에서 나온다.(1,248)
- 공배네가 고개를 꼬아올리며 물었다. 그 바람에 아낙들이 웅긋중긋 일어서며 삼태기를 넘겨다보았다.(2,16)
-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며, 온몸에 뜨겁게 돋는 소름을 후루르, 부둥켜 안았다.(2,31)
- 맷돌질 해 보면, 왜, 우아랫짝이 맞물려 돌면서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지만,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채 통째로 빠져 나오는 놈이 있지 않던가? 신기하니. 꼭 그 통밀이나 통팥, 녹두같이 또글또글 살아서 튀어나온 희망, 그것이 저수지였어.(2,33)
- 그 소리를 속 시원하게 지워 줄 용소의 소용돌이는, 이미 물줄기가 잦아들어 바닥을 드러낸 메마른 입술로, 빠작빠작 타들어가는 제 가슴을 밤이 겹도록 깎고만 있었다.(2,202)
- 토담 귀퉁이에 어우러진 찔레 덩굴에는 하얀 꽃이 벙울 벙울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늦은 봄볕에 겨워 독한 향기를 뿜어내며 어질머리를 일으켰다.(2,300)
- 2,305>
이불을 걷어낸 오류골댁이 무망간에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다듬으며 마루로 나섰으나 푸르께하게 밝아오는 마당과 헛간 쪽, 그리고 뒤안 어디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2,306)
민속어휘와 생활어휘
호제, 머슴, 담살이, 새끼머슴, 깔담살이, 물담살이
문중(門中) 종중(宗中) 대문중(大門中), 파문중(派門中), 소문중(小門中) 입향조(入鄕祖), 장손, 종손, 문장(門長), 유사(有司), 상좌(上座), 종회(宗會), 위답(位畓), 위전(位田), 종토, 망형(亡兄), 가묘(家廟), 지차(之次)의 자손, 절손(絶孫), 청암부인을 위해서는 모상(母喪)이니 재최(齋裳) 삼 년을 입겠지만, 이울댁을 위해서는, 지팡이를 짚는 장기(杖朞) 일 년만을 입을 것이다.
천귀(天貴)·천액(天厄)·천권(天權)·천파(天破)·천간(天奸)·천문(天文)·천복(天福)·천역(天驛)·천고(天孤)·천인(天刃)·천예(天藝)·천수(天壽), 갑자·을축은 ‘해중금’(海中金)이라 바닷속에 잠긴 쇠요, 갑오·을미는 ‘사중금’(沙中金)이어서 모래 속에 묻힌 쇠다. 그리고 무진·기사는 ‘대림목’(大林木)으로 우거진 수풀에 선 나무인가 하면, 무술·기해는 ‘평지목’(平地木)이매 평평한 땅에 난 나무다. 육갑해원경(六甲解寃經), 동녘골 질부가 참척(慘慽)을 본 것은 절통한 일이나, 사람의 지혜, 분별지(分別智)로 알아내기 어려운 일인 것은 전생이나 다를 바 없느니라. 일가 친척 대소가라는 것이, 지친(至親) 육친 한가지인데
(나) 개인 조어 사용
일반 명사 : 꽃심(연필심, 심지, 심줄) - 꽃의 중심되는 것 또는 꽃 마음, 꽃을 꽃답게 하는 꽃스러운 꽃의 마음
의성의태어 -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 / 아, 이건 꼭 요렇게 말했으면 좋겠다’라는 의도 때문에 사용
- 봄날 얼어붙은 강물이 풀리는 밤의 강물 소리 - 소살소살(ㅅ과 오, 아) - 소살소살 돌아오는 강물이여
- 절의 저녁 종소리 - 강- 강-
아. - ‘아’가 사람 가슴 속에 오래 울렸으면 하는 경우, 남아 잇는 여백 여운의 느낌, 가슴을 울려주는 강조
(다) 복합서술어, 접두사 활용
동사활용을 통한 감각화 이미지 극대화
아까보다 더 무섭게 검어진 몸통이 위로 오르다가 누일 듯 구부러지면서 뒤틀어 앙바튼 둥치를 바라지게 뻗치고 선 나무의 형상은, 꼭 지심(地心)으로 뻗은 고목의 우람한 뿌리인 것만 같다.<4,165>
이미 어둑어둑 초가지붕과 낮은 담, 그리고 조붓한 마당에 내린 어둠은 사립문 옆 검은 살구나무 아래 선 강실이를 소리 없이 에워싸며 스며들어, 얼굴은 거뭇하게 지워지고 소복은 오히려 소슬하니, 그네가 움직이지도 않고 어둠을 흡수하며 서 있는 모습은 흰 나무 같았다.<4,167>
어디 먼 데로 갈 리 없는 동네 까치들은 기껏해야 낯익은 마을의 지붕과 나뭇가지 사이를 날며 놀다가, 밭머리에 앉아 먹이를 쪼아 먹고, 이제 날이 저물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4,169>
그 화관에 햇살은 아지랑이로 일렁이며 내려앉고, 강실이의 검은 머릿단에 푸르게 미끄러지며 자운영 화관을 아득히 에워싸, 어쩌면 강실이가 꼭 햇무리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4,171>
바람이 범종 소리에 실려, 저무는 겨울 골짜기를 쓸어 내리며 긴 꼬리를 달고 휘돌아 강실이의 가슴속으로 후비고 들어온다.<4,172>
그 눈물은 흘러내리지 못하고 살과, 가슴의 갈피와, 더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 고이고, 배어, 삭아 내렸다.<4,179>
봉분의 풀들은 꺼끌하고 뻣세면서 적막한 기운이 이상하게 유정하였는데, 귀남이의 동그만 얼굴은 여리고 보드랍고 따뜻하며 뭉클했다.<5,319>
낯익은 선생의 필체가 날카롭고 선명하다.<10,12>
무릇 남자가 여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간사하고 혹은 연약해서 요사스러운 짓을 많이 하고, 여자가 남자 같은 기질이 많으면 혹은 사납고 혹은 잔인해서 일찍 과부가 되는 사람이 많아, 본디의 음양 품수(稟受)가 서로 뒤집히고. 명수(命數)가 각각 어그러지기 쉽다고 했으니.<7,11>
빨랫보를 벗겨 내고 깨끗한 다듬이 보자기에 옷감을 바꿔 싸서, 차고 매끄럽고 단단한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은 뒤 박달나무 방망이 두 개로, 딱 딱 딱 딱, 또르락 똑 딱, 또르락 또르락, 또르락 딱 딱 두드리는 음향은<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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