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낮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카페 골목.
SK그룹의 IT 자회사인
SK C&C 본사에서 '파크뷰' 아파트에 이르는 1㎞ 안팎의 거리는 점심때를 맞은 20~30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유럽풍의 아담한 가게들이 즐비한 카페 골목은 인근에 있는
NHN이나 SK C&C·엔플루토 등 거리 주변에 있는 IT기업 직원들에게는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 직원들이 카페 거리에 있는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겸한 회의를 열기도 한다. NHN 원윤식 팀장은 "얼리어댑터도 많다 보니 IT기기를 들고 토론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카페 거리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기업 NHN이 지은 신사옥이 최근 입주를 시작했다. NHN신사옥은 지상 27층 높이에 유리 외벽이 NHN을 상징하는 색깔인 초록빛으로 장식돼 있고, 건물 27층에는 분당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직원 식당 겸 휴게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분당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하면서 IT기업들의 분당 러시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분당은 2000년대 이후
휴맥스·SK C&C·NHN·포스데이타(현 포스코ICT) 등 국내의 대표적인 IT벤처기업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서울 강남에 이은 '제2의 디지털밸리'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현재 분당에는 430여개의 IT기업이 입주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분당과 인접한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가 가까워오면서 네오위즈게임즈 같은 대형 게임업체를 비롯해 소프트웨어·모바일·반도체 설계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벤처기업까지 분당으로 속속 터전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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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중앙로 따라 길게 늘어서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동쪽의 '정자동'에는 30층이 넘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즐비한 사이로 SK C&C와 NHN·KT·휴맥스·포스코ICT 등 한국의 대표적 IT기업들이 대거 몰려 있다.
하지만 분당밸리는
대덕이나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한 지역에 기업들이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분당 중심을 지나는 지하철역과 연결되는 중앙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예를 들어 야탑역 주변에는 전자부품 연구원을 비롯한 통신·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있고, 서현역 주변에는 포스코ICT 등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들이 늘어서 있다. 수내역에는
SK텔레콤의 네트워크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연구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기업이거나 각 기업의 연구개발센터라는 점. 1990년대 후반 'IT 버블(거품)'을 상징하던 테헤란밸리와 IT제조업 중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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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 넓은 토지 강점이처럼 분당에 IT업체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서울과 가까운데다 분당이 '주거' 공간으로도 선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서울과 왕래해야 하거나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전철이나 버스, 광역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1시간 안팎이면 다닐 수 있다. 휴맥스 관계자는 "요즘은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면서 "분당은 서울이 가깝고 생활 편의시설도 서울 못지않아 직장인들에게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땅값과 임대료가 싼 것도 IT기업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분당은 현재 임대료가 서울 도심의 80% 수준이지만, 정부와 성남시는 그동안 벤처기업 육성과 수도권 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파격적인 조건에 기업들을 유치해 왔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경우도 2000년대 초반 토지 분양 당시 가격은 시세의 50%에 불과했다.
땅값이 싼 만큼 같은 가격으로 넓은 땅을 살 수 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2013년 판교 테크노밸리가 완공되면 그쪽으로 본사를 이전할 생각"이라며 "테크노밸리에 지을 사옥은 현재 삼성동 사옥보다 3배쯤 넓은 공간에 미국의 구글처럼 대학 '캠퍼스' 같은 회사를 꾸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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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테크노밸리 추가 입주판교테크노밸리가 완공되면 엔씨소프트 외에도 290여개의 IT·BT(바이오) 관련 업체들이 추가로 입주할 예정이다. 경부고속도로 판교IC 인근 66만2000㎡(20만평)에 들어설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삼성테크윈(방산·부품) 등 3개 기업이 이미 건물을 다 지었고, 10여개 기업은 한창 공사 중이다.
SK텔레시스(통신장비)·
안철수연구소컨소시엄(소프트웨어)·넥슨(게임)·
SK커뮤니케이션즈(인터넷) 등 굴지의 IT기업들도 줄줄이 입주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테크윈은 창원과 기흥·성남 등에 분산돼 있던 연구시설을 합친 R&D 센터를 5월 말에 준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