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 딸의 결혼식
글/嘉泫박순금
신부입장!
나만 그런가, 어떻게 된 일인지 결혼식에 신부 입장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오르며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오늘은 더욱 그러하다. 아빠가 안 계신 조카 딸 결혼식이기 때문이다.
일순간 많은 생각이 오고 가고 지난 일들이 수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오빠가 살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확하게 12년 전에 어느 날 갑자기
중 학생이던 두 딸을 남겨놓고 훌쩍 이승을 떠나버린 나의 셋째 오라버니,
그런 오라버니께서 무척 아끼고 사랑하던 작은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년해로하는 날이다.
우리는 종종 예기치 않게 비극을 맞이한다.
이제 겨우 내 집을 장만하고 여유 있게 살만 한데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그렇게 오라버니께선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며 사랑스러워하던
딸자식을 두고 홀연히 생을 마감했다.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유난히 정이 많고 다정다감했던 오라버니를 잃은 아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암담함과 허망함, 그리고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아니 어쩜 나의 슬픔은 차라리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않는 일을 당하고 보니
실컷 울어볼 여유도 없이 두 딸을 데리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올케 언니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어린 조카와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당장 삶의 일터로 뛰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올케 언니의 아득한 현실 앞에서 마치 나의 일처럼 막막하고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된다고, 그랬다.
물론 암담할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 책임지고 혼자 감당해 내야 하는 고통!
두 사람이 함께 모든 것을 해 왔는데
아이들 교육문제, 경제 문제, 힘든 사회생활, 모든 것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 당혹스러움,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잘하는 일인지
판단이 잘 쓰지 않을 때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세월은 어느 듯 첫째 딸은 이미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로
이번엔 두 번째 딸마저 결혼을 했다.
세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고 고난의 나날이었을까
여자 혼자서 자식을 공부시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떤 난관과 어려움에도 잘 참고 견뎌 이제 부모로서 할 도리는 다한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두 사람,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부모가 관여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몫이다.
그렇게 바르게 잘 키운 올케 언니가 자랑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수고 했다고,
오라버니께서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문득 오빠와의 추억이 생각난다. 유난히 낚시를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했던 오빠,
나처럼 난을 좋아하고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해
집안에 늘 식물로 넘쳐나 마치 숲 속에 온 것 같이 싱그럽고 아름답게 해주었다.
아들 형제가 많고 딸이 무척 귀했던 집안이라 딸자식을
유난히 예뻐하고 사랑스러워했었지,
그래서 아이들 이름도 예쁘고 좋은 이름으로 직접 짓기도 하고
딸들을 데리고 노래방 가서 노래하기를 무척 좋아했었지.
모두가 그동안 살기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추억이라도 안고 가려고 그랬는지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우린 유난히 자주 만나 어울리며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종종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곤 했다.
우린 생애 최고의 행복을 느끼며 핏줄의 소중함과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모두 기반도 잡았고 큰 걱정 없이 즐겁고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사고 후 처음엔 말도 잘하고 해서
우리는 모두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튿날부터 의식을 잃었다.
알고 보니 뇌에 피가 고여 뇌출혈이었단다.
사고 즉시 큰 대학 병원에 갔더라면 무사히 살아났을 텐데
지방 소도시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조건 큰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인가 보다.
아까운 나이에 그렇게 되고 보니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며 어이없어했다.
오라버니는 무척 섬세하고 성격이 곧아 직선적이고 융통성도 없어
불의를 참지 못했다. 그런 점이 직장 생활에 맞지 않았는지
번번이 옮겨다니곤 하여 가족들을 힘들게도 하였다.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 오면 뭔가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토록 딸을 사랑하고 아들이 없다고 전혀 서운하다거나 섭섭하게 생각지 않던
오라버니께서 심리적으로 뭔가 변화를 느낀 것인지,
어느 날 언니에게 진작 아들 하나만 더 낳을 걸 하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내가 없어도 당신에게 큰 의지가 될 텐데 하며 무척 아쉬워했단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늘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승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저승에서도 알아볼 수는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어느 날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 해도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 형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받아 드리기도 어렵고
용납할 수가 없을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눌 아주 작은 여유조차 용납되지 않던 죽음!
그래서인지 무의식 상태에서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가 보다.
그럴 것이다. 자신은 아직 의식이 살아 있고 느끼고 있음에도
이미 육신은 회복 불능에 서서히 식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부의 어머니는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는 올케 언니는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고 단아하다.
그리고 여유 있고 편안해 보인다.
부모로서 당연한 도리이고 의무이기도 하지만,
홀로 두 딸을 이만큼 키워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딸은 더욱 그러하다.
밤낮없이 노심초사 조마조마
행여라도 거리에서 혹시나 불량배라도 만나면 어쩌나
늘 초조와 불안감으로 안절부절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런 딸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 결혼을 시키는 언니의 마음은 어떨까
안도감과 뿌듯함, 그리고 보람을 느낄 것이다.
큰딸을 결혼시킬 땐 저의 큰아버지께서 신부를 데리고 입장했는데
이번엔 신랑신부 두 사람이 그렇게 의논을 했는지 둘이 동시에 입장을 한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요즘은 그렇게도 한다니,
사랑하는 유진아!
부디 행복하고 슬기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삶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2006.9.16. 단 한 사람뿐인 사랑하는 고모가
첫댓글 조카를 사랑하는 고모의 예쁜 마음이 깃들어 있어서 그 조카는 행복하게 잘 살리라..저도 결혼식에 신부 입장소리에 가슴 한곳이 미어 집니다..우리 도련님 장가 보낼때 내가 눈물이 나서 혼났답니다..누가 보면 형수가 왜저렇까 싶지만 마음이 짠한것은 내의식과는 상관없이 무의식중에서 나오는것라~~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것을 또한번 느끼면서 홀로 두딸들을 예쁘게 키운 올케언니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서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래요..고운 밤 되세요^^
조카를 생각하시는 고모의 마음이 아름다우십니다. 조카되는 분도 고모님의 지극함을 아시겠죠. 고운 글 마음 내리고 갑니다.
조카 사랑하시는 박시인님 정이 가득 담겨 있으니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조카들이 어리거던요 건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