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릉고등학교 제 11회 졸업생이다 올해는 고교 졸업 50주년이면서 칠순이 되는 해이다. 오늘 동기친구들은 우리의 삶속에서 또 하나의 10년을 지워버리는 날이다. 강릉지역에서는 각 학교마다 졸업 10년 단위의 축하 행사를 한다. 2024년 5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우리는 초당 모교 교정에서 이 축제와 만남이 이루어 지면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기장 주영석 총무 김남현,그리고 서울 지회 지회장 최선교, 총무 김상기의 인솔하에 많은 친구들이 새벽 기차를 타고 정동진 역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마치고 강릉 모교 교정에 왔다. 먼저 자리해 있던 강릉 지역 동기들과의 반가운 만남을 시작으로 흥겨운 시간이 흘렀다.
우리들은 총동창회 기금(1,000만원)과 야구부 후원금(500만원) 그리고 기숙사 재학생 후생복지를 위하여 쌀(588만원)을 기증하였다. 총 동창회에서는 답례로 칠순을 맞이한 우리들을 위하여 모교 광장 중앙에 칠순 잔치상을 차려 주었다. 모교 교정에서는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진행 중이었지만 우리들은 2대의 버스에 문과 이과 나누어 탑승하여 이동을 시작하였다.
강릉고등학교는 1961년 4월 강릉사범학교 병설 고등학교설립으로 용강동에서 출발하여 1972년 12월 19일 용강동 교정에서 학생들이 책상을 하나 씩 짊어지고 재건교를 건너 노암교정으로 이전하였다. 지금이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겠지만 70년대의 한국 실정은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우리 11기는 용강동 교정에서 2년 노암교정에서 1년을 수학하였다. 그리고 졸업후 모교는 1990년 2월8일노암동교정에서 초당동 교정으로 이전하였다.
모교체육대회를 뒤로 하고 우리는 추억여행을 떠났다. 용강동 교정 방문이다. 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는 울컥하는 기분을 느낀것 같다. 17세 소년으로 돌아간 기분은 어땠을까? 운동장 중앙에 둘러 앉아 기념 촬영을 마치고 잠깐의 자유시간 중 추억에 젖는 발걸음들은 서두르는 모습이 확연하다. 경포중학교 교정과 중앙국민학교 교정까지 살펴 보는 부지런한 발걸음은 칠순을 마지한 영감들의 느릿한 발걸음은이 아닌 것 같았다.
버스는 느릿느릿 책상을 둘러멘 우리들의 기억을 되살리듯 재건교 위를 서행하면서 남대천과 노암 공설운동장 자리를 지나친다. 잠시나마 70년대의 그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우리의 기억창고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추억은 쉽게 되살아 나지 않는다. 누군가 깨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는 노암교정으로 서서히 진입하고있다 양 옆에 도열해 있는 히말리아시다 나무의 환영을 받으며 50년 세월의 감상에 젖어본다. 비록 일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년 초의 도끼만행이라고 일컬어 지는 시대의 아픈 사연과 10월의 가슴 아픈 일 등의 추억을 뒤로하고 강릉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 솔향수목원을 향했다.
소풍 그것은 소풍이었다. 소나무숲 아래 나누어준 도시락 들고 각자 오랫만에 만난 가까운 친구들과 추억 가득한 정담을 나누는 모습들은 개구장이 청소년들의 그 모습 그대로 인것 같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을 거부한다. 입가의 미소와 눈가의 잔주름 잡힌 그 반가운 표정은 아름다운 황혼을 꿈꾸는 젊은 늙은이들의 모습 이었다. 식후 한시간에 걸친 수목원 산책을 뒤로 하며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핫한 방문지인 하슬라 아트월드다. 강릉 친구들도 사실 개별적으로는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 졸업 50주년 기념 행사의 일부로 단체 관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탄성이었다. 예전 초창기의 모습이 아닌 발전과 발전을 거듭한 모습은 강릉의 명물이라고 생각 되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한 개인이 아니 기업이 일정 장소를 개발하여 하나의 볼만한 관광지를 만든 다는 것은 지역사회 발전의 커다란 동력이 되지않을까하는 칭찬이 나온다. 철 파이프로 만들어진 오션 뷰 미로를 들어가서 이리저리 미로를 헤메일때 친구들의 그 아우성은 70을 살아온 우리들의 그 삶 한치 앞을 모르는 미로를 지나 오늘에 이른 우리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장시간의 헤메임 끝에 우리들은 탈출구를 빠져나왔고 안도의 숨을 내 쉴수 있었다.
5시 넘어 도착한 세인트 컨벤션웨딩 홀에는 하루 일정을 함께하지 못한 많은 강릉친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뙈약볓 아래 강행군으로 지친 몸이지만 반가움에 모두 피로를 잊는 모습이었다. 저녁 식사와 마술공연 그리고 나의 시낭송 (윤석구시인 늙어가는 길)을 시작으로 주영석, 최종설, 문홍식, 최상을, 김지수, 전영기, 신동균, 윤응범, 서성구, 김덕만 , 김수남등 우리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노래 장끼자랑이 벌어졌다. 간단한 뷔페식사와 여흥이 이어지고 흥겨움이 한껏 고조될 즈음 서울친구들의 귀경 열차시간이 다가왔다.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여흥의 끼를 장소를 옮겨서 갖기로 하고 강릉역으로 또 모교 교정으로 헤어졌다. 아쉽게도 나는 여흥 장소에 합류하지 못하여 뒷이야기를 정리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하여튼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흥 많은 젊은 노인들이니까.
강릉고 11기 졸업 50주년 기념 행사의 날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또 다른 10년을 기약하면서. 다들 건강 관리 잘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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