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영 파동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2002]는, 전형적인 최루탄 영화이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이 만들어 당시 최고의 흥행 신화를 기록했고, 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던 [미워도 다시 한 번]은 특이하게도 같은 감독에 의해서 리메이크되었다.
기본 뼈대는 같다. 다만 이번에는 김수현이 각본을 썼는데 김수현 특유의 감각적 대사와 절제된 감성이 노감독의 빠른 템포 연출력과 함께 관객들의 시선을 붙든다.
나는 이런류의 억지 신파 멜로가 싫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성적 머리는 거부하지만 본능적 감성은 잘짜여진 신파 멜로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댄다.
유부남인지 모르고 시작한 연애. 그들이 같이 살던 집에 어느날 본부인이(김나운 분) 쳐들어 오면서 그들의 관계는 깨진다. 그녀는 헤어진 옛 연인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이미 임신 초기였던 그녀는 혼자 아이를 낳아 예쁘게 기르며 살아간다.
영화는,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갑자기 폐암 선고를 받으며 시작된다. 1년도 못살 것이라는 의사의 최후통첩을 받은 뒤, 그녀는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감정의 낭비를 어떻게 최소화하고 관객들의 감정의 누선을 얼마나 자극하느냐 하는 점이다.
김수현은 역시 이야기의 완급을 탁월하게 조절할 줄 안다. 어디서 절제해야 하고 어디서 터트려야 하는지 너무나 잘 계산된 그녀의 드라마는, 따라서 지나치게 조작된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 마지막씬,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친모(이승연 분)가 자신의 딸과 그 딸의 아버지(이경영 분)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정소영 감독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빨라진 대중적 속도감을 이해하고 있었다. 지루하지 않게 빠른 속도로 컷트된 편집, 이야기의 속도감 있는 전개, 꼭 필요할 부분만 정확하게 보여주는 연출은 젊은 감독의 솜씨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굳이 2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이 영화를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봐야할 필요가 있을까? 어머님 모시고 극장에 가서, 이 영화의 원작이 힛트하던 그 옛날 추억 더듬으시라고 자리를 마련한다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