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라구? 자네들 지금 속고 있는 거야."
지난해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대학생 인턴기자로 일할 때였다. 같이 인턴을 하던 형이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를 취재하러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보수단체 회원인 한 할아버지가 그 형이 <오마이뉴스>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빨갱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타일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얘기를 듣고 웃어 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 할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어쩌면 정말 그의 눈에 불쌍하게 비친 청년을 구제하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고 타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첨예한 남북 대립의 시기를 거쳐오면서 '공산주의자는 빨갱이요 사회적 악'이며 그런 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도 위험하다고' 믿고 살아오셨다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렇기에 마냥 웃어넘기기에는 다소 꺼림칙한 면이 남는 것이다.
기억하는가? 예전에 한 청춘 드라마에서 이런 실험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똑같은 크기의 막대 그림 '가, 나, 다'를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지각하는 학생을 기다렸다가 가장 짧은 것을 고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학생이 '똑같다'라고 대답하려다, 교수와 미리 '가가 가장 짧아요'라고 대답하기로 약속했던 학생 두 명이 먼저 그렇게 말하자 이 학생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그도 '가가 가장 짧아요'라고 대답한다.
옳고 그름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가'를 택한 것이다. 이건 결국 몇 몇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한 인간의 믿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고 자신들이 말하는 쪽이 진실이라 강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전체적인 맥락은 보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이 진실이라 끊임없이 우기고 거기에 반발하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분위기로 얼마든지 몰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세계 제일의 민주주의 국가를 아주 오래 전부터 자청해왔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바로 1950년대 매카시 상원 의원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매카시 의원을 들어보지 못한 자라도 '매카시즘'이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매카시즘은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反)공산주의 선풍). 미국에서는 반세기 전에 이미 용도폐기된 이 이론이 반세기가 넘어서도 우리나라 땅에서는 '친북좌파', '빨갱이' 등으로 변형되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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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카시 의원이 실존인물이었던 것처럼 머로도 실존인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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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나잇 앤 굿 럭> 중에서 |
| 그렇기에 곧 개봉할 매카시 상원 의원과 그의 부당성에 대해 공격하는 언론인 머로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굿나잇 앤 굿 럭>은 미국보다도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훨씬 클 것이다. <굿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 상원 의원이 제대로 된 고발장도 증인도 없이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연좌제로 처벌받게 만드는 데 대해 CBS 뉴스 앵커맨 머로우가 용기 있게 대항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매카시에 의해 매카시 의원이 하는 일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곧 공산주의자요, 애국자가 아닌 것처럼 몰아붙인 시대였기에 매카시 의원에게 대항한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머로우는 투쟁을 시작하고 역사의 진일보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 역사의 진일보는 영화 속에서 머로우가 하는 이 말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미국 국민은 어떤 사상이든 논할 자유가 있고, 또 그런 사상을 논한다고 해서 그 사상에 쉽게 빠져들거나 옳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사상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 것 뿐이지만, 당시 분위기에서는 대단한 용기였다.
21세기 한국은 여전히 50년대 미국 수준?
생각해보라.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21세기 들어와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부정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는 얼마 전 있었던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매카시 의원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고 다른 생각을 말하려 하면 역적처럼 몰며 공산주의자로 몰았듯이,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도 일부 보수적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저 '친북좌파'니 '빨갱이 사상을 대놓고 말하는 위험한 세상이 왔다'는 분칠만 열심히 해나갔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강정구 교수는 직위해제되어 수업권을 박탈당한다. 참으로 우습게도 한 개인이 자신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인데 우리 사회는 그런 개인에게 너무도 과감히 직위해제라는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곧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었다면서 스스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본주의 국가요,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특정 사안에 대해서 만큼은 말할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굿나잇 앤 굿 럭'을 두 눈 치켜뜨고 더욱더 자세히 봐야 한다.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증거나 절차없이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이들의 부당함을 머로우와 그의 동료들은 끊임없이 지적한다. 그리고 잠재되어 있던 불만은 이들이 불씨를 당김으로 인해 매카시즘에 익숙해져 있던 사회적 분위기를 점차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결국 연좌제로 인해 파직되었던 육군 대위가 복귀 하는 등 미국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하나 더 내딛는다.
이미 50년 전 미국이 한 번 해냈던 일을 우리는 여전히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보듯 강정구 교수 발언이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떤 논의할 점이 있으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고 심도 있는 논의 대신 그저 '빨갱이',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주류 사회에서 황급히 내던지는데 급급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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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투쟁이었으나, 머로는 끝까지 버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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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나잇 앤 굿 럭> 중에서 |
| 이런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태연자약하게 진행될 수 있기에 선거 때만 되면 일부 세력을 '친북좌파'니 '빨갱이'로 몰아가며 일부 정치인이나 보수 언론이 그렇게 열심히 분을 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을 많은 젊은 인재들 때문이다.
머로우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어떤 사상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달라고 불을 당기는 자가 나타난다 해도 머로우 주변에 지원군이 생겼던 것처럼 과연 지원군이 생길지 의문이라는 이야기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을 놓고 기업인들이 부정적 시각을 보이면서 동국대 학생들 중에는 취업에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동국대 학생들 중에는 강 교수를 격렬히 비난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생겼다는 신문 기사가 나기도 했다. 인간에게 '생존'이라는 욕구가 본능적이라고 본다면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고백하건대 나 역시 취업을 준비하는 동국대생이었다면 강정구 교수를 너그러이 볼 수 있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결국 그 점이 가장 우리 사회의 발전에 가장 두려운 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은 패기 넘쳐야 할 젊은이들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꿈보다 그 사회에 안주하겠다는 꿈을 더 크게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빨갱이'와 '친북좌파'라는 말을 들먹여도 그들이 비난받기보다 지지 받을 만한 토양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굿나잇 앤 굿 럭>은 특정 사상에 대해 심판하고 그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비난하며 적과 나로 나누는 흑백 논리가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한국판 <굿나잇 앤 굿 럭>이 나와 지금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다 제쳐두고서라도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몇 몇 정치인들은 <굿나잇 앤 굿 럭>을 꼭 보기를 소망한다. 이제 '레드 콤플렉스'로 국민들을 괴롭히는 건 제발 그만 좀 해주었으면 좋겠으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