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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있는가?
- 남효온(南孝溫) 귀신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신에 대해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직결되는 개념이다 보니 그게 미신이건 진실이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이 쓴 '귀신론'이란 글이 있다. 1483년에 그가 쓴 글인데, 32세 때 이 글을 쓰고 39세에 죽는다.
한창 배불 정책을 펴던 조선 초기 유학자라서 지나치게 유교적 관점에서 귀신을 해석하고, 불교와 무속을 비하하고, 또 왕권 중심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 잘못이 있기는 하나 이 시절에 이만큼 진지하게 귀신에 대하여 논한 글은 더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든 귀한 글이므로 전문을 싣는다.
먼저 남효온이 누군지 밝힌다.
- 남효온은 누구?
본관 의령(宜寧), 자 백공(伯恭), 호 추강(秋江).
1454년(단종 2) 한양 출생
1478년(성종 9) '소릉복위상소' 올림
1480년(성종 11) 진사 급제
1482년(성종 13) 죽림우사 결성
1483년(성종 14) 「귀신론(鬼神論)」초고
1485년(성종 16) 4월 금강산 유람. 9월 송도 여행. 「성론(性論)」집필
1486년(성종 17) 충청도 기행
1487년(성종 18) 호남 유랑과 지리산과 해운대 유람
1488년(성종 19) 가을, 김일손 등과 청도의 운문사 유람
1489년(성종 20) 관서 유랑. 의령(宜寧)에 머묾. 『육신전』지음
1491년(성종 22) 호서와 호남 방문
1492년(성종 23) 39세, 10월 별세
1504년(연산 10) 부관참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본관 의령(宜寧). 자 백공(伯恭). 호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 시호 문정(文貞). 김종직(金宗直)의 문하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數汝昌)·김시습(金時習)·안응세(安應世)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하였으나, 도승지 임사홍(任士洪),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 복위를 상소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다.
만년에 저술한 《육신전(六臣傳)》은 빛을 못 보다가 숙종 때 비로소 간행되었다. 1713년(중종 8) 소릉이 추복(追復)되면서 신원(伸寃)되어 좌승지에 추증되고 1782년(정조 6)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 생육신의 창절사(彰節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추강집(秋江集)》 《추강냉화(秋江冷話)》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귀신론(鬼神論)》 등이 있다.
귀신은 있는가?
- 남효온(南孝溫) 귀신론
누가 나 효온(孝溫)에게 이렇게 물었다.
“귀신이 천지간에 아득하고 황홀하여, 있는 듯 없고 실(實)한 듯 허(虛)하며, 앞에서 보이다 문득 뒤로 가고, 여기를 지적하면 저기에 있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한 번 밝혀줄 수 있겠는가.”
이에 나 남효온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다.
“귀신의 이치가 워낙 깊어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지 않은 것이라 자로(子路)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요, 정자(程子)ㆍ주자(朱子)가 겨우 말한 것인데, 나같이 천박한 말학(末學)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는 일을 알려면 지나간 것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되고, 사는 것을 알려면 죽은 것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되나니, 방촌(方寸 마음)의 가운데서 구하고 사물의 위에서 상고하면, 이 이치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일찍이 들으니, 귀(鬼)란 것은 돌아갈 귀자[歸]의 뜻이요, 신(神)이란 것은 펼 신자[伸]의 뜻이라 한다.
그렇다면 천지 사이에 와서 펴는 것은 모두 신이요, 흩어져서 돌아가는 것은 모두 귀(鬼)라 할 수밖에 없다.
크게는 양의(兩儀)ㆍ칠요(七曜)ㆍ28숙(宿)ㆍ12신(十二辰)으로부터 인금(人禽)ㆍ초목(草木)ㆍ풍운(風雲)ㆍ상로(霜露)ㆍ뇌전(雷電)ㆍ벽력(霹靂)에까지도 어디고 귀신의 체(體)가 아닌 것이 없고, 일음(一陰)ㆍ일양(一陽)이라는 주역은 귀신의 용(用)이니, 그 체를 말하면 이(理)일 따름이다.
이(理)는 마음도 없고 물(物)도 없으니, 《시경(詩經)》에 이른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것이요,
《예기(禮記)》에 이른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것이요, 《노자(老子)》의 이른바, ‘이(夷)ㆍ희(希)ㆍ미(微)요, 《장자(莊子)》의 이른바, ‘칠성(七聖)이 희미하다.’ 는 것이다.
*이(夷) 희(希) 미(微) : 노자(老子)《도덕경》에,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칭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은 희(希)라 칭하고, 덮치려 해도 덮칠 수 없는 것은 미(微)라 칭한다.” 하였다.
그 용을 말하면, ‘크게는 일원(一元)의 시종(始終)과, 작게는 하루의 아침 저녁과, 건곤(乾坤)ㆍ감리(坎离)의 방위를 정한 것과, 인금(人禽)ㆍ초목(草木)의 사생(死生)과, 깊고 아득하고 괴이하여 해명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귀신의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비록 머리가 하얗도록 변론하고 사람을 바꿔가며 말한다 해도 다 못할 것이라, 우선 그 큰 것만을 들어 말하겠다.
하늘[昭昭之多]이 있어 일월 성신이 매이고, 춘ㆍ하ㆍ추ㆍ동이 화(化)하는 것은 이른바 천신이요,
땅[撮土之多]이 있어 오악(五岳) 사독(四瀆)이 실리고 비잠(飛僣) 동식(動植)이 육성되는 것은 지신(地神)이라 이른다.
천지 중화(中和)의 덕을 얻어 소연하게 일월과 더불어 차고 기울어짐을 같이 하고, 사시(四時)와 더불어 길흉(吉凶)을 같이 하는 것은 인신(人神)이라 이른다.
한곳에 좌정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초목(草木)을 낳으며, 만물을 비장(秘藏)하여 인간의 재물을 일으키는 것은 산신(山神)이라 이르고, 유동하고 충만하여 하해(蝦蟹)를 낳고, 어룡(魚龍)을 기르고 보장(寶藏)을 안아서 세상에 주류하는 것은 수신(水神)이라 이른다.
오행(五行)으로 하여금 서로 생하고 서로 해[克]하게 하여, 오곡(五穀)을 길러 백성의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곡신(穀神)이라 이르며, 영화롭게 하고 발육하게 하는 것은 초목의 신이라 하고, 사람의 한 집을 맡은 것은 오사(五祀)의 신이라 하나니, 그 나타난 것은 기(氣)요, 그 은미한 것은 이(理)니, 이를 통틀어 귀신이라 말하는 것이다.”
* 오사(五祀) : 《주례》 춘관대종백(春官大宗伯)에 “짐승의 피로써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를 제사한다.” 하였다. 오사(五祀)에 대한 주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오색 제신(帝神)을 왕자(王者)의 궁중에 제사하는 것을 오사라 칭한다.” 하였다. 또 민가(民家)의 오사(五祀)가 있는데 즉 호신(戶神) 조신(竈神) 중류신(中霤神) 문신(門神) 정신(井神)에게 제사한다는 것이다.(조왕신은 부엌신, 중류신은 堂과 室의 신이다. 한자가 복잡해 표기못함)
사람들은,“그렇다면 그 귀(鬼)가 크고 작고 희고 검고 해서 형상이 있어 구별할 수 있는가.” 하므로, 나 남효온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천지가 천지된 것과 인물이 인물된 것도 귀신 때문이니, 당초부터 형체의 구별이 없다.
크건 작건 똑 같은 귀신이요, 검건 희건 똑 같은 이치다. 들[郊]에 제사할 적에 그 정성을 다하면 천신이 저절로 오고, 사당에 제사할 적에 그 정성을 다하면 인귀(人鬼)가 저절로 흠향하나니, 산천(山川)과 사직(社稷)과 오사(五祀)와 팔사(八蜡)의 유가 모두 다 그러하다.
* 팔사(八蜡) : 주(周) 때 해마다 농사를 마치고 12월에 선색(先嗇) 사색(司嗇) 농(農) 우표철(郵表?) 묘호(?虎) 방(坊) 수용(水庸) 곤충(昆蟲)의 여덟 신(神)에게 지내던 제사.(한자 복잡해 표기 못함)
《중용(中庸)》에, ‘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의 말이,“그렇다면 귀는 형상이 없고 기(氣)만 있는가.” 하므로, 이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담담한 그 속에는 본시 한 물건도 없는 법이니, 당초에 어찌 기가 있겠는가. 이(理)일 따름이다. 다만 제사하는 자가 정성으로 홀로 아는 곳에 바로 하고, 술을 관(灌)하여 아득하고 말 없는 속에 구해야만 그 물(物)이 있게 되나니, 이것이 곧 기(氣)라.”
그 사람이 말하기를,“《예기(禮記)》에, ‘천자라야 천지에 제사할 수 있고, 제후라야 산천에 제사할 수 있고, 그 자손이 되어야 그 부조(父祖)에게 제사할 수 있다’ 하였는데, 그대의 말이, ‘정성을 다하여 바로 하는데 물(物)이 있다’ 하니, 가령 제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하여 성심으로 섬기면 귀신이 또한 흠향한단 말인가.” 하므로, 나는 역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귀신은 예가 아닌 제사는 흠향하지 아니한다.”
그 사람의 말이,“귀신은 예가 아닌 제사는 흠향하지 않는 증거를 무엇으로 아는가.” 하므로,
이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다.
“귀신이란 곧 이(理)다. 그 이에 맞지 않는데, 제사하면 반드시 흠향할 이치가 없다. 이러므로 태산(泰山)은 계손씨(季孫氏)의 여제(旅祭)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주공(周公)이 어찌 천자의 주악(奏樂)을 흠향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귀신의 조화의 공용(功用)은 내가 이미 들었거니와 무릇 사람이 날 때, 무극(無極)의 진(眞)과 이오(二五)의 정(精)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어, 함께 조화와 공용(功用)의 테두리 안에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에 대답하기를,“체백(體魄)은 땅으로 돌아가고 혼기(魂氣)는 못 가는 데가 없다.” 하였다.
그 사람의 말이,“간다고 하면 형상이 있는 건가.” 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귀신은 형상이 없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기를 “소리는 있는가.” 하여 나는 역시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귀신은 소리도 없다.”
“마음은 있는가.” 하여 역시 이렇게 나 남효온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귀신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시 이렇게 물었다.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마음도 없는데, 그대는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면 흠향한다고 하니 무엇이 흠향한단 말인가.”
이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기(氣)가 흠향한다.”
그는,“기가 흠향하는 것을 무슨 증거로 아는가.” 하므로, 나는 역시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내 마음을 증험해서 안다.”
그는,“그렇다면 내 마음이 귀신과 무슨 관련이 되어서 아는 건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기가 모여서 사람이 되고 기가 흩어져서 귀신이 되는 것이니, 남이나 나나 똑 같은 이치인데, 하물며 조상과 자손의 사이는 천식(喘息)과 호흡이 신상에 통하여 여기저기의 구별이 없고 자손에게 느끼는 것이 있으면 문득 동하는 것이 있다.
신명(神明)이란 밝고 밝아서 의심이 없기 때문에 정중하게 섬겨서 청명(淸明)하게 하며, 슬픈 기색으로 부모를 다시 뵙는 듯한 정성이 제 마음속에 또렷하면 이른바 형상이 없다는 것도 형상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고, 소리가 없다는 것도 소리가 있게 될 수도 있고, 마음이 없다는 것도 마음이 있게 될 수도 있어, 좌우에 소연하고 상하에 충만하여 초목이 꽃이 피듯이 빛나게 된다.
《시경(詩經)》에, ‘나의 생각한 바를 이뤄준다.[綏我思成]’는 것과, 《주역(周易)》에, ‘귀신의 정상을 안다는 것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그렇다면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나 그 귀신은 마찬가진가.” 하므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같은 것도 있고 같지 않은 것도 있다.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나 천지의 이치와 오행의 기운을 얻어서 난 것은 마찬가진데, 다만 성인은 천부(天賦)의 성(性)을 따르고 보통 사람은 물욕에 따르는 고로 구별이 있게 되는 것이요, 죽게 되면 신기(神氣)는 날아 흩어지고 유독 남는 것은 이일 따름이다.
이치가 어찌 두 가지가 있겠는가. 이 점은 같으며 대개 순리(順理)로 죽으면 평인(平人)으로부터 상지(上智)에까지 다 그러하거니와 그 사이에 악한 남자나 곤궁한 여자가 역리(逆理)로 죽으면 왕왕 여귀(厲鬼)가 되는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서경(書經)》에 성인을 찬하기를, ‘은례(殷禮)를 올려서 하늘과 짝한다’ 하였고, 《시경(詩經)》에 성인을 찬하기를, ‘문왕(文王)의 척강(陟降)이 상제(上帝)의 좌우에 있다’ 하였으니, 어찌 악한 남자나 곤궁한 여자가 가당하겠느냐. 이 점은 다르다.”
어느 사람의 말이,“그렇다면 귀신을 제사하면 복을 얻는 것도 또한 정리인가.” 하므로, 나는“그렇다.” 했다.
그의 말이,“그대가 이미, ‘귀신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마음도 없다’ 했으니, 그러면 무엇이 화를 주고 복을 준단 말인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귀신이 흠향하고 아니하는데 따라 사람의 화복이 저절로 아득한 속에 더 묵묵히 정해지는 것이요, 귀신이 누구에겐 화를 주고 누구를 복 주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지을 적에 적게 심으면 적게 수확하고, 많이 심으면 많이 수확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바로 사람이 스스로 화복을 취한 것이요, 귀신이 사람에게 화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지금 무당[巫家]들 말이, ‘귀신이 각각 형상과 마음이 있어 사람에게 병을 주는데, 사람이 만약 술과 음식을 벌여놓고 빌면 신구(神具)가 취하고 배불러서 기뻐하여 병을 없애준다’ 한다면, 정리(正理)와 거리가 너무도 멀다.”
그 사람의 말이,“그렇다면 주자(朱子)의, ‘비는 것도 정리다’ 라는 말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이란 사정이 없는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위하고, 자식이 아비를 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아우가 형을 위하고, 붕우(朋友)가 붕우를 위하여 절박한 지성이 일호의 거짓이 없고 천리의 정당성에 순수하면, 여기서 느끼어 저기에 반응하는 이치가 그렇게 될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수가 있다.
의논이 여기 미쳐서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 주공(周公)의 금등(金縢 《서경》의 편명)에 대한 기도나 검루(黔婁)의 북두(北斗)에 대한 기도나, 얼음을 깨서 이어(鯉魚)가 뛰어 나오게 한 왕상(王祥)이 있고, 겨울철에 대밭에서 울어 죽순이 나게 한 맹종(孟宗)이 있으니, 어찌 이치가 없다면 그럴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은 말하기를,“그렇다면, 공자같은 성인을 신이 돕지 아니하고, 비간(比干)같은 충성을 귀(鬼)가 복되게 못하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하므로, 나는 역시 이렇게 말을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변(變)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간은 무덤흙이 마르기도 전에 봉하는 명령이 내렸고, 공자는 만세를 왕으로 제사 받들고 요순(堯舜)보다 높이며, 그 후손이 공후(公侯)의 낙을 누려서 지금까지 2천여 년을 내려오니, 과연 귀신의 도움이 없다 하겠는가.”
그 사람은 묻기를,“그대가 무당은 이치와 거리가 멀다고 하니, 그렇다면, 무격(巫覡)의 일도 대개 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인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무격(巫覡) : “여자 무당을 무(巫)라 칭하고 남자 무당을 격(覡)이라 칭한다.”《국어(國語)》의 초어(楚語)에 나온다.
“신이나 사람이 똑같은 것이니, 무당이 만약 성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 무함(巫咸)과 같다면, 어찌 신명을 통하지 아니하랴.
《예기》에는, ‘무사(巫師)가 남녀의 무당을 거느리고 나라가 큰 가뭄이 들면 무우(舞雩) 제를 지내고, 나라에 큰 재앙이 있으면 무항(巫恒)을 만들고, 또 임금이 신하의 상사에 임할 때에 무당이 도열(桃茢)로써 앞선다.'
* 무우(舞雩) : 우 (雩)란 한신(旱神)에게 비를 비는 제사 이름이다. 주례(周禮) 춘관사무(春官司巫)에, “만약 나라에 큰 가뭄이 들면 무당과 더불어 우단(雩壇)에 가서 춤을 추며 우제(雩祭)를 지낸다.” 하였다. 기우제(祈雨祭)를 무우제라 칭하기도 한다.
* 도열(桃茢) : 《예기》 단궁편(檀弓篇)에 “임금이 신하의 초상에 조문갈 적에는 무축(巫祝) 도열(桃茢)이 따른다.” 하였고, 그 주에, “도목(桃木)은 귀신이 두려워하는 것이요, 열(茢)은 담최(갈대 모개로 만든 빗자루)인데,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쓸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하였다.
또한 좌전《(左傳)》에는, ‘진무(晉巫)는 경공(景公)이 새 쌀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것을 알았다’ 하였다.
《한서(漢書)》에는, ‘여벽(女碧)이 왕망을 고발하다가 고묘(高廟)에 죄를 얻었다’ 하였다.
《논어》에, ‘사람이 항심(恒心)이 없으면 무당과의 원노릇도 못한다.’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그 술(術)은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 해득할 바가 아니다.
지금의 무당은 그에 반하여 대개 좌도(左道)를 가지고서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이를테면 일월(日月) 성신(星辰)은 천자가 아니면 제사할 수 없는데 무당은 칠성(七星)의 신을 설위(設位)하고 있다.
또한 명산 대천은 제후가 아니면 제사할 수 없는데 무당은 산천의 신을 끌어들이고 있다.
무릇 사람의 병은 모두 원기가 고르지 못한 데서 기인되는 것인데 무당은 귀신이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한 억지로 근거 없는 말을 만들어 쓸데없이 비용만을 허비하고, 무릇 사람의 화와 복이란 자기 행동의 선악에 달린 것인데 무당은 귀신을 제사하면 복을 받고 귀신을 경홀히 하면 화를 입는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그를 숭배하고 신앙하여 옷 입히고 밥 먹이니, 나라를 해롭게 하고 백성을 좀먹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어찌 이치에 벗어남이 다 아니하겠는가. 내가 한 말이 이를 지적한 것이다.”
그 사람은 묻기를,“무당은 족히 취할 것이 못된다면, 점치는 자가 복희(伏羲)ㆍ문왕(文王)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ㆍ원천강(袁天綱)ㆍ이순풍(李淳風)ㆍ진희이(陳希夷)ㆍ소강절(邵康節)을 귀신으로 삼아 길흉(吉凶)을 알려 달라 하고 있다니, 진실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므로, 나는“그런 일이 있다.” 하였다.
그는,“귀신 아닌 것이 없는데, 반드시 사성(四聖)ㆍ사현(四賢)에게 청하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하므로, 나는,“사성ㆍ사현이 유독 다른 귀신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을 만들어 냈다는 뜻에서 표본으로 존숭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는,“귀신에게 점을 청하는 것이 이치가 있다고 보는가.” 하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다.
“있다고 본다. 귀신은 바로 정도(正道)이니, 그 이치에 의하여 청하면 신이 반드시 점을 통해서 알려 주는 것이요, 하고자 하는 일이 이치가 아니고 청하는 것이 정성이 아니면, 신이 간혹 마땅하지 않게 여기어 답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관점(官占)의 책임은 예로부터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요, 요즈음 점을 청하는 자는 이치를 떠나서 구하고, 점 해주는 자도 경솔히 해석하여, 신은 내려서 고해 주지 아니하고, 점은 괘상(卦象)과 맞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점을 성인의 법이 아니라고 여기는데 이는 잘못이다.”
그는,“그렇다면 일마다 점을 물어야 할 것이냐.” 하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세상이 쇠하고 도(道)가 미약하여 점을 운용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속이는 것일 따름이다. 백성을 속이는 점을 어찌 족히 신봉하여 법받을 수 있겠느냐.”
그는 묻기를,“점은 족히 법받을 것이 못된다면, 집터나 산소자리를 가리는 자가 사록(四祿)ㆍ사탐(四貪)ㆍ사문(四文)ㆍ삼무(三武)ㆍ필(弼)ㆍ거(巨)ㆍ보(輔)ㆍ사렴(四廉)ㆍ이파(二破) 등의 별을 귀신으로 삼아 팔방을 빙 두르게 하여 그 득수(得水)ㆍ득파(得破)로 하여금 그 길흉을 정하며, 산의 청룡(靑龍)ㆍ백호(白虎)를 보아 그 향배(向背)로써 그 화복을 정한다는데 진실로 그런 이치가 있는가.” 하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다.
“아득하고 황홀하여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윽히 의심하건대, 아무 산이 아무 모퉁이를 가려주면 바람 기운이 화평하고, 아무 물이 아무 바위로 흘러나가면 물 기운이 사납다 하여, 풍수(風水)의 화평하고 사나운 것으로 인생의 편안하고 안한 것을 점치는 것은 이치에 근사하지만, 만약 아무 귀신이 아무 방위를 지키고, 아무 별이 아무 땅에 다다라 있으니, 물이 아무 귀신을 범하면 흉하고, 물이 아무 별에 들어가면 길하며, 청룡(靑龍)이 달아나면 흉하고, 백호(白虎)가 오면 길하다 한다면, 너무도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 군자는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긴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제사에 대한 화복의 설과 무당이나 점장이가 신과 사귄다는 논이나, 풍수(風水)가 이(理)에 가깝다는 말은 내가 이미 들었거니와 지금 불가(佛家)의 설에, ‘사람은 죽지만 심신(心神)은 죽지 아니하여 만 억의 겁(劫)을 지내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인형(人形)을 받는다.’ 하는데, 그대는, ‘형도 없고 마음도 없다.’ 하니, 그들은 다 잘못 알았단 말인가.” 하므로, 나는 대답하였다.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은 이(理)요, 음양과 오행은 기(氣)다.
사람이 나면, 이와 기가 서로 합하여 형질(形質)의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 마음이요, 사람이 죽어서 형해(形骸)가 이미 소멸되면, 이(理)는 이대로 기(氣)는 기대로 있어서, 질(質)은 바로 흙이 되는데, 어디에 그 마음이 있고 그 형이 있겠는가.
불가의 사람 속이는 말은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부숴지고 말 것이다.”
그는 묻기를,“그렇다면, 한 번 차면 한 번 더웁고, 한 번 낮 되면 한 번 밤 되어, 이것이 갔다 다시 오고 저것이 왔다 다시 가는데, 다시 사람으로 될 수는 없단 말은 무엇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천지의 기운이 시(始)가 있으면 종(終)이 있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있으며, 끝난 것이 다시 시작하고, 간 것이 다시 오지만, 죽은 것이 다시 사는 이치는 없다.
해가 지난 겨울로써 끝났으니, 봄이 오는 해에 생기는 것은 오는 해의 기운이요, 해시(亥時)가 간 밤에 끝났으니, 자시가 오늘 아침에 생긴 것은 오늘 아침의 기운이며, 나뭇잎이 떨어지면 봄이 와야 잎이 돋아나고, 호흡이 다하면 원기가 움직여야 호흡이 나는 것이니, 결코 돌아간 것이 다시 오고, 죽은 것이 다시 사는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옥(地獄)ㆍ인과(因果)의 논과, 윤회(輪廻)ㆍ보응(報應)의 설이 이를 근거하여 생긴 것이니, 선비가 분명히 따져서 부숴버리지 않아서는 귀신의 이치가 끝내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는 묻기를,“그렇다면, 양소(良霄)가 죽어 정(鄭) 나라를 해치고, 팽생(彭生)이 죽어서 제양공(齊襄公)을 해치고, 여의(如意)가 죽어서 여후(呂侯)를 해치고, 관부(灌夫)가 죽어서 전분(田蚡)을 해쳤는데, 마음이 없다고 단정한다면, 이는 모두 속이는 말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이것은 속이는 말이 아니라, 바로 도리(道理) 중에 일종의 도리인 것이다.
무릇 사람이 이 이치를 얻어서 낳았으니, 이 이치에 순하여 끝을 마치면 혼은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그대로 남을 따름이다. 어찌 한낱 마음이 가슴 속에 잠재하여 위엄과 복을 베풀 수 있으랴.
만약 소득의 이치가 다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칼날 아래 죽게 되면, 마음이 엉겨서 흩어지지 아니하고, 분이 맺혀서 배설되지 아니하여, 괴이하고 추잡한 기운이 사람을 덮쳐 죽이는 이치가 반드시 없다고 못하나니, 이는 귀신의 변칙이요 정상한 이치는 아니다.” 하였다.
그의 말이,“그렇다면 옛날 싸움터에는 하늘이 음침하면 귀신이 울고, 혹 밤이면 불도 켜진다는데, 거짓이 아니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거짓이 아니요, 이도 또한 이치의 변칙이다.
그들이 또한 정당하게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기운이 맺혀 풀리지 아니하여, 하나의 기(氣)와 더불어 유행(流行)하지 못하다가, 비를 만나고 밤을 만나게 되며 음이 음과 맞부딪쳐, 내리치면 형이 나타나고 드날리면 소리가 나는 것이니 어찌 이치가 없다 하겠는가.
비유하건대, 산림의 언덕에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가 바람을 만나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그 나무에 돋힌 구멍이 코같고 입같고 귀같고 계(枅 주상(柱上)의 횡목(橫木))같고, 배권(杯圈 술잔처럼 된 그릇)같고, 확[臼]같고, 파진 못 같고, 방죽 같아서, 물 구비치는 소리, 살[箭] 가는 소리, 꾸짖는 소리, 호흡하는 소리, 외치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 울리는 소리, 애절한 소리로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화답하며 뇌성벽력이 공중에서 나와 백 리를 진동하니, 나무와 돌이 다 부서지고, 금과 철이 다 울리니, 이는 누가 시켜서 그러는가. 귀신이다.
사람이 바람과 우레는 익히 듣지만 귀신의 불가사의는 드물게 보는 고로, 바람과 우레는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귀신의 불가사의만 이상히 여기나 필경에는 괴변이 아니다.
장남헌(張南軒)이 일찍이 이 불가사의를, '보았다'고 했으니, 남헌은 절대로 망언할 분이 아니다.” .
그는 묻기를“그렇다면, 이 여귀(勵鬼)가 진실로 천지와 더불어 길이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그렇지 않고 오래 되면 저절로 소멸된다.
비유하자면, 마치 불이 막 꺼졌을 때엔 온기가 있어 사람을 후덥게 하며 손을 대면 열이 나다가 오래 되면 그 기운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그는 말하기를,“그러면 칼날에 죽은 자로(子路)가 요귀(妖鬼)가 되지 아니하고, 비명(非命)에 죽은 굴원(屈原)이 여귀(勵鬼)가 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인은 화와 복이 한 계통이란 것을 알고, 달사(達士)는 죽고 삶이 한 이치란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포위를 당했을 적에도 거문고를 탔고, 증석(曾晳)이 죽은 이를 조의(吊儀)하면서 노래하였으니, 일찍이 죽고 삶으로써 근심과 낙을 삼지 않았다. 이런 고로 소인의 죽음은 죽었다 칭하고, 군자의 죽음은 마쳤다 칭한다.
자로와 굴원은 이치를 순히 하여 마쳐서 하나의 기와 더불어 함께 화(化)했다. 자로는 죽을 적에, ‘군자는 비록 죽을 망정 관을 벗지 않는다.’ 하였고, 굴원은 죽으면서, ‘무지개 같은 깃발의 드날림이여, 옥방울이 딸랑딸랑 울리도다.
상령(湘靈)으로 하여금 비파를 타게 함이여, 해약(海若)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도다.’ 하였으니, 그 태연하여 주견이 흔들리지 않는 기상을 이로써도 관찰할 수 있다.
* 상령(湘靈) : 순(舜) 임금의 비(妃)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자매가 상수(湘水)에 빠져 죽어 상부인(湘夫人)이 되었기 때문에 상령이라고 한다. 《후한서》 마융전(馬融傳)에, “상령이 내리고 한녀(漢女)가 노닌다.” 하였다.
* 해약(海若) : 해신(每神)의 이름이다. 《장자》 추수편(秋水篇)에, “바다를 바라보고 약(若)을 향하여 탄식한다.” 하였다.
어찌 원한 맺힌 생각이 양소(良霄)와 같은 것이 있겠는가.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부자(夫子)는 때에 맞춰 우연히 왔고 부자는 이치에 순하여 우연히 갔다.’ 하였으니, 이 두 분에게 적합한 말이다.”
그 사람의 말이,“자로는 그렇다 하려니와 굴원은, ‘여혜(茹惠 ; 향초)를 가지고 눈물을 가리우니 눈물이 내 옷깃을 적시도다. 어찌나 멀어 한도 없음이여, 어찌나 가늘어 얽어맬 수도 없도다.
지난 날의 바라던 바를 원망함이여, 앞길이 아슬함을 슬퍼하도다’. 하였다.
그러므로 상류(湘纍)는 원망이 많다 하였으니, 그 죽고 사는 것을 보기에 하나같이 한다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귀가 되지 않은 것은 어찌된 일인가.”
* 상류(湘纍) : 죄없이 죽은 사람을 유(纍)라고 한다. 초(楚) 나라 사람 굴원(屈原)이 상수(湘水)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상류(湘纍)라 칭하였다. 《한서》 양웅전(楊雄傳)에, “삼가 초나라 상류에게 조문한다.”는 귀절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굴원의 글에 ‘어찌 내 몸에 앙화가 미칠 것을 꺼려서랴. 황업(皇業)이 무너질까 두려워서다. 높은 추(楸) 나무를 바라보고 크게 탄식함이여, 눈물이 줄줄 흘러 비와 같도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굴원의 근심은 바로 나라에 대한 근심이요, 굴원의 낙은 바로 사생을 한결같이 본 것이다. 옛 사람은 순박해서 선(善)을 말하건 악을 말하건 모두 제 성정에서 우러났는데, 이런 말들이 어찌 자기 몸을 위한 것이랴. 그렇다면 여귀가 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묻기를, “그렇다면 방안에 편안히 누워서 죽은 이부인(李夫人)이 한 무제(漢武帝)를 미앙궁(未央宮)에서 보았고, 칼날에 죽지 않은 진숙보(陳叔寶)가 수 양제(隋煬帝)를 뇌당(雷塘)에서 책하였으니, 이것은 무슨 이치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어질지 못하여 의리심이 전부 상실 되고 따라서 품부가 편벽하고 간사하며 사욕이 마음을 병되게 하고, 원한이 가슴속에 맺혀 풀리지 아니하면 횡사(橫死)한 자와 더불어 다름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 괴이한 일이 있는 것이요, 평인 이상은 결코 그런 괴이한 일이 없다. 바야흐로 이 부인이 죽을 적에 무제가 친히 가서 보려고 하니, 이 부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지 않으려 하며 말하기를, ‘첩(妾)의 형모(形貌)가 형편 없이 되었으니, 이 모양으로 임금님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하여, 꼭 좀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고 기분이 나쁜 채로 일어났다. 부인의 자매(姉妹)가 책하니, 부인은 말하기를, ‘황제를 뵙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 형제를 길이 부탁하자는 것이다. 얼굴로써 사람을 섬기는 자는 얼굴이 시들면 사랑이 해이해지는 법이다. 임금께서 연연불망하여 나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얼굴 때문인데 지금 내 얼굴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보면 반드시 싫어져서 나를 버릴 생각이 날 터이니, 다시 무슨 마음으로 우리 형제를 가엾게 보아 주겠는가.’ 하였다. 이를 보면 그 사람됨이 간사하고 교활한 것으로써 세상을 살아왔는데, 어찌 부부의 영원히 이별하는 한과 청춘 시절에 죽어가는 원망이 가슴속에 맺히지 않았겠는가. 진숙보는 평생에 빨리 가는 세월을 몹시 아껴서 황잡하고 음탕한 짓이 정도에 지나치고, 하루 지내기를 10년이 지나는 것같이 아쉬워하였으니, 후정화(後庭花)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후정화(後庭花) :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의 약칭으로 음곡(音曲)의 이름이다. 《수서(隋書)》 악지(樂志)에, “진 후주(陳後主) 숙보(叔寶)가 청악(淸樂) 중에 황려유(黃驪留)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금차양빈수(金釵兩?垂) 등의 음곡을 창조해서 행신(幸臣)들과 더불어 가사(歌詞)를 지었는데 기염(綺艶)만을 숭상하여 극히 경박하였다. 남녀가 그 곡을 창화(唱和)하여 소리가 몹시 슬펐다.” 하였다. 말년에 이르러 원정(?井 물 없는 우물임)의 슬픔과 망국의 한이 어찌 일찍이 가슴에 잊혀질 수 있었으랴. 그렇다면 두 사람이 죽어서 사괴(邪怪)가 있는 것도 이치가 혹 그럴 듯하다. 그러나 방술(方術)하는 사람들이 탈바꿈하는 재주가 많아서 능히 다 죽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에 현혹된 것이 있게 하였으니, 또 어찌 부인의 원형(現形)이 소옹(少翁)의 재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며, 진숙보의 현형이 양광(楊廣)의 실심(失心)한 데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보증하랴.” 하였다. 그는 묻기를. “그렇다면 간혹 여귀(?鬼)를 만나도 죽지 아니하고, 괴물을 보아도 병되지 않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한결같이 마음을 가져 갈림이 없으면, 신명이 감동하는 까닭에 울부짖어서 상(象)을 밭갈게 할 수 있고, 거문고를 타서 적을 물리칠 수 있는데, 하물며 사특하고 추잡한 기운이 범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함녕(咸寧) 중에 큰 유행병이 있었으나, 능히 유곤(庾袞)을 전염시키지 못했거늘 하물며 유곤보다 어진 사람에 있어서랴.” 하였다. 어떤 이는 묻기를, “불가의 옳은 것 같으면서 그른 것과 인귀(人鬼)의 있고 없는 설은 내가 이미 들었거니와, 비[空]고 고요한 속에서 속삭이다가도 쫓아가 보면 아무 것도 없고, 사람에게 의탁하여 능히 언어를 통해서 미리 사람의 화복을 일러 주는 일이 있는데 혹 맞기도 하고, 혹 안 맞기도 하며, 물에 의거하여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은 용망상(龍?象)이라 하고, 산에 의거하여 사람을 화(禍)되게 하는 것은 산망냥(山??)이라 하는데, 이도 또한 귀신인가 속임수인가.” 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귀신도 아니고 속임수도 아니다. 무릇 귀신이란 음(陰)의 정(精)이 동시에 자체가 고요하고 침묵한데 어찌 사람과 더불어 언어를 할 수 있으며, 순강(純剛)하고 정대(正大)하여 천지와 더불어 덕을 같이 하는데 어찌 사람에게 화를 주겠는가. 더구나 천지의 사이에 억조(億兆)의 대중이 엄연히 눈으로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어찌 속임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이내 천지간의 사특한 기운이니, 한자(韓子 유(愈))가 말한 물괴(物怪)가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그는 묻기를, “하나의 기(氣)가 있어 행(行)이 건장하여 건(乾)이 되고, 체가 고요하여 곤(坤)이 되며, 밝아서 일월이 되고, 윤택해서 비와 이슬이 되고, 엉겨서 서리와 눈이 되고, 돌고 돌아 쉬지 않아서 바람과 우레가 되고, 묘(妙)가 이와 더불어 합하여 인물이 되고, 굴신(屈伸)하고 왕래하여 귀신이 되는데, 그 사특한 기운이 무엇을 인연해서 나타나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무릇 물(物)이란 오래 되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는 것이 이치다. 비유하자면, 마치 하(河)의 근원이 곤륜산에서 나올 적에는 하나의 냇물 줄기다. 처음에야 어찌 변함이 있었겠는가. 나중에 말류(末流)가 차츰 커져 내리 달려서 교하(交河)가 되고, 머물러서 염택(鹽澤)이 되고, 적석(積石)을 뚫고 지주(砥柱)를 끊고, 용문(龍門)을 넘고 뇌수(雷首)를 지나서 동해로 빠지는데, 부딪치면 뇌성벽력이 되고, 진동하면 바람과 비가 되고, 물결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은 그 형세가 자연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천지가 생긴 것이 오랜 지라 그 기(氣)를 쓴 것이 많으니, 기를 쓴 것이 많으면 사특한 기운이 그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도 역시 이치다. 마치 표목[表]이 그림자가 있고 알[卵]이 새끼 깔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였다. 어떤 이는 묻기를, “진실로 그대 말과 같을 진대 귀신의 덕이 그야말로 거룩하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들으니, 예전 사성(司成) 장계이(張繼弛)의 말에, ‘사람이 죽으면 처음에는 귀신이 있다가 오래되면 귀신이 없다’ 했는데, 그대가 귀신을 설명하는 데는 구근(久近)을 따지지 않고 곧장 지적하여 말하기를, ‘좌우에 환히 나타나고 위아래에 충만하여 빛나 초목이 번영한 것과 같다’ 하고, 광릉(廣陵) 이관의(李寬義)는 말하기를, ‘천지간에 귀신은 없고 이른바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신이란 특히 가탁한 말이며, 더구나 산귀(山鬼)ㆍ목귀(木鬼)ㆍ여귀(?鬼)ㆍ망량(??)의 속은 거의 허망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이니, 너무도 이치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였는데, 그대의 귀신에 대한 설은 그렇지 않아서 귀신 제향(祭享)의 도를 논한 것이 심히 명백하며, 그 물괴(物怪)와 여귀를 논함에 있어서도 모두 기(氣)의 변이요 속임이 아니라고 지목하니, 위 두 분의 설리(說理)는 그 시대에서 가장 정묘했고, 그대도 역시 일찍이 배운 바인데 소견이 그와 다른 것은 웬일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기(氣)가 제 구실을 다한 것이 귀신이니, 사람이 되건 귀신이 되건 기는 피차에 다름이 없다. 이른바 제 구실을 다한 것이란 어찌 처음에는 있고 나중에는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진실로 그 분들 말과 같을진대, 황제(黃帝)나 축륭(祝融)이 세대가 이미 요원하여 제를 받을 신이 없을 것이요, 공자(孔子)와 안연(顔淵)이 죽은 지도 이미 천 년이라 제사를 지내도 이익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삼대 이후로 밝은 임금과 어진 재상이 예악을 제작하면서 일찍이 전성(前聖)을 추제(追祭)하는 것을 다르다 아니하였는가. 《서경》에 이르기를, ‘칠대(七代)의 사당에 덕을 볼 수 있다’ 하였으니, 이런 때문에 은(殷) 나라 중종(中宗)ㆍ고종(高宗)과 주(周) 나라 문왕ㆍ무왕의 세묘는 은주의 세상이 끝나도록 변하지 않은 것이다. 가령 은 나라 주 나라가 종사(宗祀)를 유지하여 천 억만 년을 망하지 아니 했다면, 고종ㆍ중종ㆍ문묘ㆍ무묘도 또한 당연히 천 억만 년을 두고 그 제사를 폐하지 아니했을 것이니 어찌 오래되었다고 신이 없는 이치가 있으랴. 장씨(張氏)의 설이 여귀(?鬼)에 대해서는 그럴 듯 하지만, 귀신의 이치와는 너무도 위배되니 이만저만 잘못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자(李子)의 귀(鬼)가 없다는 설은 혹 그럴 성도 싶다. 그러나 그의 말에, ‘귀신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것은 그렇다 할지언정, ‘천지간에 귀(鬼)가 없다’는 것은 혹 이치에 위배되지 않나 싶다. 무릇 물(物)이 두 끝이 없는 것이 없으니, 한 번 그늘지면 한 번 볕나고, 한 번 오면 한 번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를 들으면 그 두 가지를 알 수 있고, 이것을 보면 저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세상 선비가 한갓 눈에 보이는 것만 알고 뜻밖의 것은 연구할 줄 모르는 고로 이와 같이 귀가 없다는 설이 나온 것이나, 기의 변에 이르러 사요(邪妖)와 여괴(?怪)가 될 수 있으며, 이(理)도 역시 물을 본떠서 하나도 빠짐없다는 것은 역시 혹 그럴 듯한 도이다. 변(變)을 말하고 정상을 말하지 아니하면 사곡하여 정답지 못하나 정상만 말하고 변을 말하지 아니하면 고체(固滯)하여 통하지 못하나니 이자(李子)의 설을 나는 감히 따르지 못하겠다.”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장씨의 잘못된 점은 내가 이미 얻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이자에게 묻기를, ‘그대는 귀신이 없다 하는데, 《시경》에나 《서경》에 칭한 귀신의 도가 매우 자상한 것은 어쩐 일인가’ 하니, 이자는 말하기를, ‘예전에 우리 고향 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무릇 사람이 그 어미와 골육의 연결이 있는 거냐’ 하기에 나는, ‘그대는 오곡(五穀)을 보라. 흙에다 종자를 뿌려서 성장하는 것이지만, 그 지절(枝節)ㆍ근엽(根葉)이 하나도 흙에 붙은 것은 없으니 종자는 아비와 같고 흙은 어미와 같다. 대개 어미는 공을 말하면 아비와 같지만 골육이 연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였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서 그 어미에게 불평하기를, ‘어제 이자에게 들은 바로서는 어머니가 나에게 아무런 은덕이 없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효심이 쇠해졌다. 물론 그 자식이 말을 알아 듣지 못한 소치겠지만, 이로 보면 경서에 실려 있는 질종(秩宗)ㆍ종백(宗伯)의 관과, 교사(郊祀)ㆍ가제(家祭)의 예문은 다만 사람을 위해서 근본을 갚아야 한다는 도리를 가르치자는 것이요, 참으로 귀신이 있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하였으니, 이 말이 모두 잘못된 것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소견만은 높으나 실은 참동계(參同契)의 뼈는 아비와 연결은 되고 살은 어미와 연결된다는 설과 반대되며, 그가 이를 들어 이야기한 것이 이른바 백치(白痴) 앞에서 꿈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 책임을 모면할 수 없는 것이며, 경서가 가설(假說)의 말이라고 지목한 것은 더욱 빗나간 말이다. * 참동계(參同契) : 위백양(魏伯陽)이 저술한 책이다. 참동계(參同契)라 칭한 것은 주역(周易) 황로(黃老) 노화(爐火) 등의 삼가(三家)를 참동하여 하나로 돌아와서 대도(大道)를 묘계(妙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서(書)는 감리(坎離) 수화(水火) 용호(龍虎) 연홍(鉛汞)의 요결을 많이 말하며, 후세에 노화를 말하는 자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여기서 황로는 도교를 가리킨다. 성인이 훈계를 남겨 바른 도로써 가르치기를 하늘에 일월을 걸어놓은 듯이 하며, 석씨(釋氏)의 사람을 속여서 선(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뜻과는 같지 않다. 만약 귀신이 실제로 없는데, 성인이 사람에게 근본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라 한다면, 이것도 속이는 것일 따름이니 성인이 속임수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은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것은 그렇다 하거니 그대는 요사(妖邪)나 여괴(?怪)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이른다면, 지금 괴질에 걸린 집에서 서로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을 사람들이 귀신이 들어서 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진실로 그러한가.” 하므로, 나는 답하기를, “그것은 귀신이 아니라 바로 천행(天行)의 기운이다.” 하였다. 그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이 물(物)에 있어 살리고 기르는 것을 맡음에 어찌 물을 해할 마음이 있겠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사람의 작위(作爲)로 감염(感染)되는 것이다. 무릇 인기(人氣)가 아래서 화평하면 천기가 위에서 화평하고, 인기가 아래서 뒤틀리면 천도가 위에서 응하는 것이다. 혹시 큰 가뭄이 든 흉년의 뒤나, 군사를 출동하고 공사를 일으키는 사이에 신음하고 고통하는 소리가 화기를 상하게 한 것이지, 절대로 사명(司命)이 물(物)을 해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그는 묻기를, “지금 사람이 괴질에 걸리면 술과 소리와 색(色)을 금지하며 이를 범하면 병이 더욱 만연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므로, 나는, “그렇다. 술은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소리는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색은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니, 마음이 한결같지 못해서 병이 전염하게 되는 것이다.” 하였다. 그는 묻기를, “어떤 지역에는 해수병이 많이 있고, 어떤 지역에는 각기병이 많이 있다. 우리 나라로 보면 평안도ㆍ황해도는 해수병이 많고, 충청도ㆍ전라도는 각기병이 많은데, 사람들이 귀신이 들어서 그런다 해서 빌고 있으니 진실로 그러한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이는 귀신이 아니라 바로 땅이 주는 병이다.” 하자, 그는 말하기를, “땅은 물(物)을 성장케 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어찌하여 독기를 풍긴단 말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대개 풍기(風氣)는 무심한 것이나 이상한 수토(水土)를 만나면 저절로 장독(?毒)이 되는데, 사람이 만약 제 마음이 제 몸을 지키지 못하면, 부딪치는 데 따라 자연 병이 되고, 범하는 데 따라 혹 죽는 수도 있다. 땅이 어찌 마음이 있어 사람을 해하였겠는냐.”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학질병을 보고 염제(炎帝)의 아들이 들어서 그런다고 하니 이는 귀신인가.” 하므로, 나는, “이것은 귀신이 아니다. 한열(寒熱)이 고르지 못하여 오장(五臟)이 감상(感傷)되면 이 병이 생긴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 병 증세가 오고가는 도수가 있어 방사(方士)가 호통을 치면 물러가고, 피하면 면하게 된다. 고역사(高力士)ㆍ두자미(杜子美) 이래로 모두 다 그러한데 유독 귀신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귀신의 성실이 천지에 있어 양양하고 충만하여 마치 물이 땅 속에 있는 것과 같으니, 가사(假使) 귀신이 사람에게 화를 주어 병되게 한다면, 어느 땅으로 피한들 호통쳐도 두려워할 리 없다. 이를테면 지금 사람이 죄를 짓고 상대방에게 빌며 애걸복걸하여 자기의 불행을 하소연 한다면, 사람이 혹시 용서할 수도 있지만 만약 큰 소리로 검박한다면 성내지 않는 자가 없다. 사람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귀신이랴. 절대로 이런 이치는 없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람이 왕왕히 방법을 써서 면하게 되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마음은 바로 몸의 주인이라, 마음이 화평하여 뒤틀리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이런 병이 없지만, 다만 사람이 밖으로부터 오는 누(累)에 마음을 사려서 이 병을 갖게 된 때문에 방사(方士)의 술법을 깊이 믿어 마음이 태연하고 기운이 화창하여 병이 저절로 물러간 것이니, 이도 역시 하나의 이치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발반(發斑 홍진)하는 병든 귀에서 딴 소리가 들리고 눈에서 헛것이 보이며, 미치고 망령된 언어로 옆 사람을 경동하게 하는데 이것은 귀신이 들어서 그러는가.” 하므로, 나의 말이, “이것은 귀신이 아니요, 바로 바람과 추위가 외부를 공격하여 허열(虛熱)과 독맥(毒脈)의 일어난 소이이다. 의심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혹은 물괴(物怪)를 보고 꿈결에 귀신을 본 듯한 것이며 참으로 귀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창진(瘡疹)의 병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한 번 겪고 나면 종신토록 두 번 다시 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창진의 귀신은 총명하여 욕심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진실로 그럴 수 있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이는 귀신이 아니다. 사람이 처음 날 적에 반드시 나쁜 국물을 마시게 되므로, 시기(時氣)가 외부에 부딪치고 악독이 안에서 응하면 병이 따라서 발생하는데, 그 축적된 데가 오장(五臟)이므로 그 병이 나타난 것도 또한 오종(五種)이며, 그 국물을 두 번 마시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병도 역시 두 번 오지 않는다. 어찌 귀신의 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릇 약을 마련해서 병을 낫게 하는 의가(醫家)가 있는 데도 요즈음 사람이 귀신의 병으로만 지목하고 약을 쓰지 아니하여 앉아서 염라국에 떨어지게 하니, 이는 효도도 아니요, 자애도 아니다.”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책력을 만드는 자가 사방의 귀신을 열거하여 놓고 흙을 움직이는 일이 있으면 귀신이 사람에게 화를 내린다 하니 진실로 그러한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이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토신(土神)은 만물을 살리는 책임을 맡은 고로 흙을 움직인다 해서 성내지 않는다. 총칭 토신이라 이름 지으면 족한데, 어찌 명자(名字)가 대장군(大將軍)이나 박사(博士) 등의 종류와 같겠는가.” 하였다. 그는 묻기를, “흙을 움직인다 하여 성내지 않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아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건(乾)은 건장함으로써 움직이고, 곤(坤)은 유순함으로써 움직이는 고로, 곤의 상을 취하기를, 암말의 정(貞)이라 하였으니, 그 움직임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봄에 갈고 여름에 김매고 오행이 상극(相克)하여 오곡(五穀)을 낳고 오곡이 성숙하면 흙을 봉하여 제사하나니, 토신은 진실로 흙을 움직인다 하여 성내지 않는다. 만약 호미와 쟁기로 흙을 일구고 쇠끝으로 흙을 다듬지 않는다면, 오곡이 생겨날 수도 없고 사토(社土)하여 제사할 수도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흙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토신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요즈음 사람들이 망령된 방술(方術)을 깊이 믿어 심지어 집이 기울어지고 담장이 무너져도 두려워서 수리를 못하고, 흔히 엎어지고 무너지는 화를 부르게 되니 애석하다.” 하였다. 그는 묻기를, “사람 죽은 집에서 특히 술서(術書)를 믿는 자는, 무슨 일진(日辰)에 무슨 생은 적호(的呼)가 되고, 무슨 일진에 무슨 생은 정호(正呼)가 된다 하여 아비가 죽어도 자식이 그 상(喪)을 피하고 남편이 죽어도 아내가 그 곡(哭)을 중지하며, 술사(術士)는 주인의 의복과 음식을 가져다 그 귀신을 제사하고, ‘이렇게 해야 죽음을 면한다’ 말하니, 그런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이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귀신이 사람을 화되게 않는다는 것은 전에도 자세히 말했거니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란 이미 착한 자를 복되게 하고 음란한 자에게 화를 주는 천리에 정해져서 꾀로 면할 수도 없고, 술수로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 이는 황당무계한 수단으로 의식을 뺏어 먹은 데 불과할 뿐더러 풍속을 상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은 없다. * 적호(的呼) : 속기(俗忌)에 있어 무릇 입관(入棺)이나 안장(安葬)할 때에 그날 일진(日辰)과 상충(相沖)되는 사람은 기피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적호일(的呼日)이라 하였다. 아, 도(道)가 밝지 못함으로 인하여 무당이나 중이나 술가들이 민생의 이목을 어둡게 하여 온 천하를 사특하고 더러운 데로 빠지게 하고 있으니, 아무리 호별 방문하여 귀신에 대한 것을 변론한다 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였다. 어느 사람은 묻기를, “그대의 말이 정당하여 족히 세상의 의혹을 깨트릴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이 혹시 이따위 병에 걸리게 되면 진실로 귀신이 발동하는 것을 본다는데, 그대는 유독 귀신이 아니라 의심과 두려움이 지극하여 혹 물괴(物怪)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지목하니, 그 자세한 이치를 들려 주겠는가.”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얼마 전에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이 나더러 이르기를, ‘예전에 선승(禪僧)이 밤에 변소를 가기 위하여 마루를 내려서다 생물(生物)을 밟아 죽였는데 짹짹하는 소리가 났다. 중은 이내 생각하길, 대낮에 금두꺼비가 댓돌 밑에 엎드려 있었으니 아마도 밟아 죽인 것이 반드시 두꺼비일 것이다.’ 하고, 벌벌 떨며 자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어렴풋이 잠이 든즉, 꿈에 두꺼비가 염라국에 소송장을 내어 우두(牛頭)의 사자가 와서 중을 시왕(十王)의 앞에 매놓고 장차 단근질[?炫]하는 형을 가하여 아비지옥(阿鼻地獄)에 가두려고 하므로, 중은 놀라 깨어 더욱 믿고 그대로 앉아 아침을 기다려서 댓돌 밑을 가보니, 두꺼비는 없고 다만 외[瓜子]가 댓돌 밑의 밟은 곳에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유생(儒生)이 어둔 밤에 산 속을 가다가 우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연방 찾아들어가니, 그 소리가 점점 가까우면서 점점 크게 들린다. 그래서 한 동구(洞口)에 당도하여 조용히 들어보니, 소리가 시냇물 사이에서 나기에 또 나아가 자세히 본즉 갈잎이 시내를 막아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잎을 제거하고 들은즉, 그 소리가 즉시 끊어지고, 잎을 두고 들으면 소리가 다시 일어났다. 또 정신을 가다듬어 가만히 들어 보니 바로 물 소리 뿐이요, 우는 소리는 없으므로 물러가서 처음 듣던 곳에 당도한즉 우는 소리가 여전하였다.” 하였다. 이 두 가지가 참으로 지옥(地獄)이나 귀신 울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의구심과 공포심이 생겨서 물체가 나타난 것이다, 무릇 마음이란 것은 잡아두면 그대로 있고 놓아버리면 도망하나니, 도망가면 사특한 생각이 생기고, 사특한 생각이 생기면 물(物)이 끌어 갈 따름이다. 물이 끌어가는데 보존할 줄을 모르면, 정신이 소모되어 피곤하고 온갖 맥박이 흐려서 깨끗하지 못하니, 형태가 없는 것도 형태가 있는 듯 눈을 가리고, 소리가 없는 것도 소리가 있는 듯 귀를 가려서, 차츰차츰 구출할 수 없게 되면, 심신도 따라서 없어지고 형기(形氣)도 따라서 흩어지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 이 따위 사람들을 보고서 참으로 귀신이 사람을 병되게 한다고 여긴다면 이는 어찌 이치라 하겠는가. 이로 보면, 사람이 독견(獨見)의 지식이 없고 또 사우(師友)의 도움도 없어 성리(性理)의 학에 깜깜하여 화복의 설을 두려워하는 자는 어둔 밤에 만약 사람이 없는 지경에 들어간다면, 이 병에 이르지 않는 자가 없다. 동봉의 이 말이 가장 우매한 것을 부숴버리는 지남(指南)이 되는 고로 나는 들어서 인증한다. 비록 그러하나 이는 그 대강이다. 이를테면 저 일원(一元)의 기운이 흩어져서 만물의 표면에 벌려 있는즉, 귀신은 일본(一本)이면서도 만 가지가 다르나, 집약하여 지극하고 한결같은 이치에 도달하면 귀신은 만 가지가 다르면서도 한 가지이다. 그런즉 이른바 천행(天行)ㆍ지행(地行)의 기(氣)와 창진(瘡疹)ㆍ오종(五種)의 병과 감상의 소치인 학기(?氣)ㆍ발반(發斑)의 병은 요사한 사람의 속임이요, 지신(地神)ㆍ적호(的呼)의 괴변(詭辨)이나 이 이기에 벗어난 것이 없으니, 비록 귀신이라고 지목해도 또한 가하다. 그러나 논이 이에 이르러는 격물(格物)하는 자와 더불어 이야기할 것이요, 범범한 평인과 더불어 말할 것은 아니다.” 하였다. 어느 사람이 두 번 절하며, “잘 알았다.” 하므로, 나는 이에 논을 저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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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석명절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을 차려놓고 귀신(조상의 혼)에게 절합니다. 방문도 열어놓지요... 결국은 사람마음 가운데 모든것이 있지않을까요?
심오한 글 입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