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한중 양국 관계는 전방위로 넓어지며 깊어지고 있다. 또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이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 제대로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없다이처럼 파고드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연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특히 중국만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기관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외교안보연구원이나 통일연구원 국방연구원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종연구소 등 국가의 장기 전략을 다루는 연구소가 있지만 중국과 관련한 연구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거나 아예 없다. 경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연구소가 1, 2명의 전담자만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전담자를 둔 연구기관도 전체 15곳뿐이다. 중국 관련 학회를 포함해도 모두 25곳에 불과하다. 특히 중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기관은 8개뿐이다.
▼ ‘떠오르는 中’ 대응 전략은?… 답 내놓을 싱크탱크가 없다 ▼
물론 중국에 대한 전체 연구가 크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세원)가 최근 관동대 이규태 교수팀에 의뢰해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중국 관련 연구(도서 포함)는 2만8863건으로 미국(2만223건), 일본(2만5838건)보다 되레 많다. 대학의 중국 관련 학과 역시 167개로 미국 155개, 일본 112개보다 많다.
문제는 이들 연구가 심각한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연구의 36.1%가 무역투자와 기업경영 등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또 어문학 분야가 24%나 차지한다. 반면 최근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외교 분야는 겨우 2.6%에 불과하다. 수요와 공급의 심한 불일치다. 또 각 대학의 연구 역시 각개약진식이어서 반드시 연구해야 할 분야가 누락되거나 중복 연구마저 나타나고 있다.
또 한국연구재단의 외국박사 신고 현황(1945∼2009년)에 따르면 중국은 1005명으로 미국 2만620명, 일본 6012명에 크게 처진다. 중국 관련 논문은 대부분 국내에서 ‘안방퉁소’식으로 연구한 것이지 미국이나 일본 관련 논문처럼 연구 대상지역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연구한 게 별로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국가의 장기 전략을 세우기도 어렵다. 천안함 사건이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등 긴급사태 발생 시 정부가 제대로 대응 외교를 펼치지 못하고, 나아가 정부의 장기적인 대(
對)중국 전략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중국 연구에 몰두하는 미국과 유럽미국의 중국 연구 열풍은 ‘차이나 버즈(China Buzz)’라는 말로 요약된다. 벌이 윙윙거리는 것처럼 중국 문제가 어디서나 소란스러울 정도로 논의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엔 브루킹스연구소를 비롯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헤리티지재단 등 10대 싱크탱크 대부분이 중국연구소를 따로 두고 중국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활발한 연구를 하는 곳은 브루킹스연구소. 2006년부터 연구소 내에 중국센터를 따로 두고 있다. 소장은 워싱턴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케네스 리버설 전 미시간대 교수로 이 센터엔 10여 명의 연구원이 포진하고 있다. 이 센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책 자문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CSIS엔 찰스 프리먼 연구원 등 3명이 중국만을 전담해 연구한다. 헤리티지재단은 8명으로 구성된 아시아연구센터 내에 2명의 중국 문제 담당자를 두고 있다. 이 밖에도 존스홉킨스대의 데이비드 램턴 중국연구소장 등 미국 내엔 내로라하는 중국 전문가가 수두룩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1170개의 연구소에 재정을 지원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국립학술연구원(CNRS)과 국제관계연구소(IFRI), 파리정치대학 등 주요 싱크탱크와 대학에선 중국연구소 내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도 최근 중국 연구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일본은 연구기관은 많지만 인문학적 접근이 많고 최근 중국의 급부상과 관련한 연구는 다소 미진하다는 게 일본 학계의 자체 평가다.
○ 조정 기구, 지원 시스템 절실중국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국 연구가 점차 늘고 있지만 이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기획, 조정, 통합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수요기관의 특정 목적에 따라 일과성 연구가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나아가 연구 결과의 상호 공유 부재로 중복 연구하는 낭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연구 수요는 기본적으로 경제 분야가 많고 최근엔 외교 및 국방 전략 등까지 절실해지고 있지만 연구 인력은 여전히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국 연구와 관련된 범정부적인 지원 시스템의 수립도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5년 7월 정부 출연기관 23곳을 통합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출범시키고 지난해엔 미래전략연구센터까지 설치했다. 또 올해는 미래전략연구센터 내에 중국을 포함하는 세계지역연구본부까지 만들었지만 대(
對)중국 연구를 종합적으로 기획 조정하는 체계까지는 아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안 보고 안 듣는 게 더 큰 문제1992년 수교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882억 달러로 한국 3382억 달러의 1.4배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매년 9.8%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결과 지난해 경제규모가 한국(8250억 달러)의 6배인 4조9847억 달러로 늘었다. 괄목상대할 정도다. 15년 뒤엔 중국의 GDP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중국 관리들의 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주중 한국대사는 과거엔 외교부를 포함해 필요한 부서의 장차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외교부의 국장급 관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베이징(
北京)에서 취재하는 한국 특파원들은 중국 내에서 시시각각 떨어지는 한국의 비중과 위상을 실감한다.
이에 대해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국에 대한 일천한 연구와 이해도 문제지만 중국이 우리의 기대와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고의로 외면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부를 수 있다”며 “이제는 미래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국가의 전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