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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기현, 선제 득점 후 포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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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은 포스트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 준 바 있다. 최전방 공격수 조재진이 프랑스의 세계적인 수비진을 상대로 수차례 공중 볼을 따냈던 것.
공을 확보한 조재진은 상대 수비진을 자신에게 끌어드린 뒤, 빈 공간을 확보한 이천수나 안정환, 박지성 등에게 공을 내어주는 타깃맨 역할을 소화해냈다.
전 세계 축구인들도 이 같은 조재진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골잡이로서의 능력이 아닌, 최전방에서 상대 선수와 살벌하게 투쟁하며 공을 취득한 점에 대하여 찬사를 보냈다.
지난 19일 우리는 또 한 번 조재진과 같은 성격의 선수를 접할 수 있었다. 조재진과 같은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은 물론 '기술'까지 겸비한 업그레이드 된 한국인 선수를 '재발견'한 것이다.
주인공은 한국시각으로 19일 벌어진 2006~0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에서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2-0 완승을 이끈 레딩의 설기현이다.
설기현은 찰턴 전에서 아일랜드 국가대표인 케빈 도일과 함께 투톱 공격수로 뛰었다. 자신의 전문직인 윙포워드 역할은 팀 동료인 리틀에게 내어주고서 말이다.
최전선에 위치한 설기현은 같은 동선에 자리 잡은 아일랜드 국가대표 케빈 도일과 빅 앤 스몰 공격진을 구축했다. 빅 앤 스몰이란 체격이 좋은 공격수와 스피드 있는 공격수를 함께 최전방에 박아 두는 공격 방법이다. 체코 국가대표팀의 전형적인 빅 앤 스몰 공격진인 얀콜러(2m)와 밀란 바로스의 스타일과 같은 느낌을 상상하면 된다.
이 빅 앤 스몰 조합은 찰턴의 영, 헤이더슨, 포춘, 카쿠리로 구성 된 4백 수비진을 쉴 틈 없이 흔들었다. 도일의 빠른 발, 효율적인 기술과 설기현의 포스트 플레이, 넓은 시야, 영리한 발재간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물론 찰턴이 프리미어리그 최하위 팀이기에 상대적으로 이 빅 앤 스몰의 공격력이 쉽게 통한 경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꼴찌 팀과 선두팀 간의 경기력 차가 크지 않음도 감안해야 한다. 첼시마저도 홈에서 찰턴을 상대로 2-1 신승을 거두는 '아리송한' 세계가 프리미어리그다.
설기현과 도일이 발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볼 때 레딩으로서는 새로운 투톱 공격진이 만족할만한 성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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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앤 스몰 작전의 전형1] 설기현의 포스트 플레이<1> - 포츈과의 헤딩 경합에서 우선권을 따내며 공을 상대 진영 중앙의 빈 공간에 떨어뜨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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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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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앤 스몰 작전의 전형1] 케빈 도일의 빠른 발 활용<1> - 도일은 설기현이 헤딩으로 떨 군 공의 궤적을 쫓아 대쉬한다. 다음 장면에서 이 공은 도일의 발아래 놓이며 골키퍼와 일 대 일로 맞서는 기회로 이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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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 '빅' 설기현의 구체적인 활약상을 분석하자면 설기현은 자신을 전담마크 했던 찰턴의 중앙 수비수 포춘을 끌고 나오면서 동료 선수들(리타, 헌트, 하퍼 등)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또 포춘이 밀착마크 하면 원터치로 투톱 파트너인 도일을 향해 패스해주면서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설기현은 파트너인 발 빠른 도일이 고립되었을 경우 드리블을 활용한 돌파로 독자적인 공격방향을 모색했다.
물론 무리한 드리블이 찰턴 전에서 장점이자 단점으로 부각된 면도 없지 않다. 상대 선수 두 명 정도는 가볍게 젖히는 능력을 보여 주었으나 오버래핑을 시도한 레딩의 오른쪽 윙백 머티에게 즉각 패스를 시도하지 않은 경우가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측면 공간을 확보했던 윙의 리틀에게 패스할 타이밍을 놓친 경우 역시 옥에 티다. 축구팬들은 다혈질적인 머티가 설기현에게 공을 빨리 내어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기현은 빅 앤 스몰 공격진 중 '빅'으로서 해야 할 일만큼은 전부 수행해냈다. 역습 상황에서 상대 진영 깊숙이 박혀 고립을 자초하는 게 아닌 중앙선까지 되돌아와서 공을 받고 다시 내어주는 장면이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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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앤 스몰 작전의 전형2] 레딩의 역습 찬스에서 설기현이 중앙선 부근으로 돌아 나와서 공 쟁탈전 직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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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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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앤 스몰 작전의 전형2] 설기현의 포스트 플레이<2> 설기현, 절묘한 힐킥 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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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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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앤 스몰 작전의 전형2] 케빈 도일의 빠른 발 활용<2> 도일, 설기현이 내 준 공을 쫓아 대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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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 상대 수비진을 바보로 만드는 힐 킥으로 도일의 단독찬스를 제공한 점도 있었다. 찰턴 전에서 근래 시즌 경기 중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설기현의 첫 골 역시 빅 앤 스몰 중 '빅'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위치선점을 통한 헤딩 슈팅이었다. 빅으로서 해야 할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체력도 좋아 후반 종반까지 풀로 뛰어 다녔다. 물론 윙포워드가 중앙 공격수보다 높은 체력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중앙공격수가 타깃맨일 경우 사정은 다르다. 체격 좋은 상대 중앙 수비진과 제공권을 다퉈야 하게 때문에 체력 소진의 정도는 윙포워드 못지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설기현은 찰턴 전에서 좋은 체력을 보여 준 것이다.
최전방 공격수로 보직을 바꾼 데는 또 하나의 이점이 있다. 코너킥에 합류하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찰턴과 앞선 토트넘과의 경기까지만 해도 설기현은 코너킥 시 페널티 박스 밖에 위치해 있었다.
자신의 전문직인 윙포워드는 원칙적으로 득점보다는 도움 역할이었고 동료(윙 백의 오버래핑)가 나간 자리를 메우는 역할임을 감안할 때 설기현은 코너킥 합류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자신의 장기가 타점 높은 헤딩력 임에도 말이다.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사례를 보충하자면 축구팬들은 지난 2003년 8월 7일에 열린 2003∼2004 유럽챔피언스리그 2라운드 안더레흐트 대 부카레슈티(루마니아)의 2차전 '명 경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날 설기현은 후반 종반 동료 선수의 코너킥을 위치선점과 점프력을 바탕으로 통렬한 결승 헤딩 골로 연결했다. 이 골로 3-2 역전승을 기록한 안더레흐트는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에 진출한 바 있다. 설기현의 장점(헤딩기술)이 가장 잘 드러난 득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전방 공격수로 보직 변경한 설기현 '일단 합격점'
사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설기현이 전문직인 '윙포워드' 대신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경기는 찰턴 혹은 앞선 토트넘 전이 시초가 아니다.
벨기에 리그 소속 명문 안더레흐트에 몸담고 있던 시절 에스트로비치나 모르나르 등과 절묘한 투톱 콤비를 이룬 바 있다. 크로아티아의 몸집 좋은 테크니션 모르나르와의 투톱 궁합은 훌륭했다.
설기현은 당시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안더레흐트 첫 시즌 2001~02에서는 리그 2골을 기록했고 2002~03시즌에는 11골을 작렬했다. 2003~04 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리그 3골에 머물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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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기현, 포츈과 공중 볼 다툼 중 착지 후에 포츈 으로부터 발목을 밟혀 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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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중계화면 캡쳐, 그림판 작업 | 설기현은 안더레흐트 시절에도 상대 진영 깊숙이 박혀 있다가 느닷없이 나와서 동료 미드필더인 바세지오에게 패스를 이어 받았다. 그리고 다시 원터치로 내어 주고 자신은 상대 수비진 배후로 달려가 공간을 확보한다. 곧 스루패스를 받아 페널티 박스 안에서 가볍게 슈팅을 하여 득점을 기록한다. 이와 같은 공격방법에 능했던 것이다.
또 모르나르의 예리한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 넣는다든지 단독 돌파에 이은 중앙선 조금 넘은 부분에서 장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기록하는 등 공격수로서의 다재다능함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내가 안더레흐트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벨기에 시절 최전방 공격수가 되어 펼쳐 보였던 기량이 한 단계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한다는 점을 말하려기 때문이다.
찰턴 전을 통해서 설기현은 전문직인 윙포워드 뿐만이 아니라 중앙 공격수로서의 능력도 검증받았다. 과거-벨기에 리그 시절-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음은 자명하다.
설기현의 성공적인 중앙 공격진 진출은 한국 대표팀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현재 이동국이 부상에서 완쾌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고 정조국과 김동현, 박주영 등은 독자적으로 최전방 공격수를 책임지기엔 경험이 부족하다.
설기현이 윙에서 중앙 공격수로 '땜방'이 아니라 완벽하게 보직이 바뀐다면 박주영에게 부족한 몸싸움, 정조국에게 부족한 제공권 장악, 김동현에게 부족한 세밀한 발재간 등을 모두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찰턴 전 활약은 설기현의 재발견이자 대표팀의 수확인 셈이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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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기현 득점 직 후 찰튼 레스 리드 새 감독의 착찹한 표정 (찰튼은 앞서 이안 도위 감독이 성직 부진으로 경질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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