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미대(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카 지연에게 보낸 편지글임.
시뮬라시옹이란 무엇인가?
우선 지연이를 햇갈리게 하는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부터 설명해볼까? 애초에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현실 속의 실재로부터 나오는데, 시뮬라시옹이란 이와반대로 실제가 아닌 가상 모델로부터 현실이 만들어 지는 것을 뜻한단다. 그러다보니 현실과 가상(허구)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지. 그럼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께.
농촌을 소재로 한 TV드라마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을 보면서 우리는 브라운관 속의 세계를 실제의 농촌보다 더 농촌처럼 여기곤 하지. 그러다 어느 날 직접 시골에 가게 된다면, 아마 실제인 시골풍경이 오히려 낯설게 보일게 틀림없어.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이 TV에서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을 반복해서 구경하다 직접 아프리카에 가면 어리둥절할게 틀림없어.
내가 경험한 일인데, TV로 야구중계방송을 시청하다가 직접 야구장에 가서 보려니 너무 낯설더라.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는데, TV에서 보던 S라인의 예쁜 이효리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을 수도 있을 게야. 자주 보다보면 그 상태로 친근하고 낯익게 되니까. 그래서 어느 날 불쑥 군산 어데선가 이효리를 직접 만난다면 얼른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
9.11테러 당시 뉴욕 쌍둥이 빌딩 폭파나 미국의 이락 침공 때, 우리는 마치 컴퓨터 게임 장면 같은 가공할 장면들을 보았잖았니? 근데 우리가 실제 전쟁터에 가면 지극히 일부의 제한된 공간은 볼 수 있어도 TV에서처럼 전체적인 전쟁 장면을 볼 수 없을 게야. 그래서 실재의 전쟁터가 더 낯설지도 모른다는 거지.
이쯤되면, 대체 어떤 것이 더 실재이고 또 어떤 것이 가상의 세계일까. 이처럼 현실인 실재 보다 오히려 가상공간의 이미지가 더 현실같이 보이는 것을 시뮬라르크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단다. 이런 예는 오늘날 TV, 영화, 인티넷의 가상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란다.
이쯤해서 보드리야르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를 분석하면서 미국이라는 실제의 현실세계와 디즈니랜드라는 환상의 세계가 각각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은 미국 전체가 이미 디즈니랜드라고 말한단다. 그래서 실제사물과 환상의 사물, 또 진품과 모조품의 구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지.
그런데도 디즈니랜드가 환상적인 상상계로 제시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디즈니랜드의 바깥세계, 즉 실재의 미국은 현실계이고, 디즈니랜드는 상상계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단다. 따라서 디즈니랜드는 미국 전체가 이미 실물 현실의 세계가 아닌 환상적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거지. 바로 디즈니랜드는 원본 없는 시뮬라크라로서 초현실의 세계라는 게야.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일을 벌이는걸까?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디즈니랜드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보다 훨씬 이곳이 실제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가 하면, 디즈니랜드의 여러 볼거리 등에서 만끽하는 즐거움은 실제 미국사회가 제공하는 기쁨을 축소시켜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즐거움이라는 게야. 나아가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으며, 다른 세상을 실제라고 믿게 하기 위해 상상적 세계로 제시된다고 한단다.
왜그런가 하면, 이곳의 상상체계는 참도 거짓도 아니고, 실제의 허구를 미리 역으로 재생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로부터 이 상상 세계의 허약함과 유치한 백치성이 나오게 된단다. 여기서 우리는 시뮬라시옹의 위험성을 지적하게 되는데, 시뮬라시옹은 항상 자기 대상을 넘어서서, 질서와 법, 그 자체가 단순히 시뮬라시옹일 따름일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도록 함에서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단다.
결국 보드리야르는 실재보다 더욱 현실적인 복제(가상세계)들에 포위되어 버린 현대사회를 대변하고 있단다. 동시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아 실재와 가상이 혼란스러워진 시뮬라시옹 현상 속에서 미디어 테크닉과 사이버로 가득 찬 가상 현실이 점차 주도권을 확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주도권과 가치를 스스로 지켜냐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